문장웹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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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아리랑 연구자 김연갑 선생님과의 만남
아리랑은 가장 흔한 노래이지만 결국에는 맨 마지막에 우리가 한국인이며 조선인이며 까레이스끼의 존재임을 확인할 수 있는 노래, 그런 노래가 아리랑이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아리랑은 ‘존재 증명의 노래’라고 볼 수 있어요. 노수복이라는 정신대 할머니는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숨긴 채, 필리핀에서 40년을 살아오신 분이었죠. 그런 할머니께서 ‘내가’ 조선 여인이라는 것을 밝히는 마지막 방법으로 아리랑을 불렀다고 해요. 또 훈 할머니도 그렇고 심지어는 입양아 수잔 브링크 양도 우리말을 잃어버렸지만 자신이 어렸을 때 들었던 아리랑은 기억해서 우리와 같은 민족임을 증언했어요. 결국 우리가 한국인이며 북한인이며 일본에 있는 조선인이며 러시아에 있는 까레이스끼라는,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증명서가 곧 아리랑이라는 것이지요. 어느 누가 그 어디서 아리랑을 부르면 우리는 그를 한국인, 혹은 조선인으로 인정해 줄 거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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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4월 혁명과 「무너진 극장」
앞쪽의 6·25 세대라든가 식민세대와는 다른 역사 환경 속에서 성장한 ‘신세대’였던 것임에는 틀림없다. 한문교육이나 일본어교육이 아니라 최초로 한글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하여 ‘한글세대 제1세대’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4·19의 50년……, 세대 아니라 시대를 살펴야 할 일인데 1960년에서 2010년에 이르는 50년의 역사공간을 어떻게 설명해 보게 되는 것일까.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 1988년 2월 25일에 다시 개정된 대한민국 헌법의 전문(前文)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는데, ‘4·19 민주이념’이라는 표현을 주목해 보게 된다. 감히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는 ‘민주이념’의 뚜렷한 신념을 지니어 4월 19일 당일에 거리 시위를 하였던 쪽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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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마로니에백일장 우수상_산문]엄마의 얼룩
그런데 속옷에 피가 묻었다면 이상 징후임이 틀림없다. “언제부터?” “한 이 년 됐나 봐.” 이 년씩이나? 나는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왜 몰랐지?” “네가 언제 내 속옷에 관심이나 있었냐? 넌 빨래 바구니랑 세탁기에 얼씬도 안 하잖아. 회사 일로 피곤하다면서. 하긴 뭐 그랬다고 해도 몰랐을 거야. 항상 속옷은 바로바로 표백해 놓으니까.” 엄마 말대로 나는 엄마의 속옷을 들여다볼 여유 같은 건 없었다. 당연히 집 안의 모든 빨래는 전업주부인 엄마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속옷을 건조시키는 일도 개키는 일도 마찬가지였다. “속옷에 짙은 갈색 얼룩이 묻었으면 병원부터 가야지 표백할 생각이나 했다고? 백날 팬티만 하얗게 염색하면 뭐 해? 엄마 죽으면, 그 팬티 누가 입는데?”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보건 말건 나는 병원 앞 버스정류장에서 울며 화를 냈다. “표백하면 얼룩이 없어지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