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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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붙기 전에 外 1편
붙기 전에 고영민 『창비시선 300 기념 시선집』이 그만 변기에 빠져 버렸다 화장실 찬장 선반 위에 올려놓고 볼일을 볼 때마다 내려 들춰보던 책이 쏟아지면서 보기 좋게 변기 속으로 골인을 했다 재빨리 끄집어냈는데도 책 가장자리가 온통 젖어 낱장들이 하나로 붙어 있다 방에 들어와 붙어 있는 낱장을 떼어 낸다 김수영과 정철훈을 떼어 내고, 정철훈과 허수경을 떼어 내고 허수경과 장석남을 떼어 내고, 장석남과 나희덕을 떼어 내고 고은과 김용택을 떼어 내고, 김용택과 이은봉을 떼어 내고 이은봉과 박형준을 떼어 내고, 박형준과 강신애를 떼어 내고 손택수와 임영조를 떼어 내고, 임영조와 하종오를 떼어 내고 김선우와 이시영을 떼어 내고, 이시영과 장대송을 떼어 내고 문태준과 안도현을 떼어 내고, 안도현과 유안진을 떼어 내고 조말선과 유홍준을 떼어 내고, 유홍준과 최영숙을 떼어 내고 최영숙과 이병률을 떼어 내고, 이병률과 박연준을 떼어 내고 이재무와 신경림을 떼어 내고, 신경림과 이진명을 떼어 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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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소설 김알렉산드라 中에서
● 낭독 : 정철훈 ● 출처 : 정철훈 장편소설 『소설 김알렉산드라』, 실천문학사,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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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막차 外 1편
막차 정철훈 막차에서는 양계장 냄새가 난다 닭털이 눈발처럼 날리는 양계장 닭털이야 과장이지만 몇 안 되는 승객들의 눈꺼풀은 닭을 닮았다 하품은 전염병처럼 입천장에 들러붙고 온전한 사람이 하나도 없다 코끝이 빨갛게 취해서 비스듬히 기울거나 아예 목을 뒤로 젖힌 채 졸고 있다 앉은 자세로 보건대 삶은 온전한 질서가 아니다 아침에 보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빨려가 버린 느낌 빈 좌석에는 어떤 온기도 남아 있지 않다 남은 승객은 겨우 셋 차량기지로 들어간다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어기적어기적 일어나 문 쪽으로 가는데 뒤를 돌아보니 일어날 생각도 없이 앉아 있는 또 다른 내가 있다 제 깃털을 노란 부리로 콕콕 뽑고 있는 한 마리 닭 닭 모가지와 새벽에 관한 비유는 역사가 과장되어 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차라리 닭털이 눈발처럼 날린다는 막차에 관한 비유가 더 정직하다 막차에 실려 가는 오늘의 마지막 신화는 사람이 닭처럼 양육되고 있다는 양계장식 비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