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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우리동네 놀러와] 놀기 좋은 동네
[우리동네 놀러와] 놀기 좋은 동네 한서영 이사를 많이 다닌 나는 고향이라 말할 만한 곳이 없다. 그래도 나름대로 좋은 점이 있긴 했다. 이곳저곳 살아 보니 여러 동네의 특징과 각 동네의 단점과 장점을 알아서 어째야 좋은 동네라 할 수 있는지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 동네의 경치, 시설, 접근성 같은 여러 요소들이 모두 잘 어우러져야 좋은 동네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시골 마을인 영동으로 이사하기 전에 포항에서 살았다. 포항에는 해맞이 공원이라는 큰 공원이 하나 있다. 첨단 시설을 들여놓거나 조경을 아주 잘 해 놓은 공원은 아니었지만 산책길이나 운동장, 족구장 같은 것이 있어서 우리 가족은 종종 공원으로 놀러가곤 했다. 나는 공원에서 주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탔다. 자전거와 달리 신발처럼 신고 달리는 것이라 다양한 폼을 잡으면서 갈 수도 있었지만 소심했던 나는 폼은커녕 빨리 가지도 못하고 혹시 실수해서 넘어지지나 않을까 걱정과 긴장을 하며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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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젊은작가의 樂취미들] 나무를 잘 그리고 싶다
내가 올려다보고 있는 거대한 건물을 작은 종이에 옮길 수 있었다. 도시를 빼곡히 채우고 있는 건물의 면(面)이 보였다. 새하얀 불빛이 쏟아지는 앞면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을 가늠하게 되었다. 무엇이든 내가 더 배우면 건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비뚜름한 다면체들을 스케치북에 그리고 난 후에 나는 조경을 배웠다. 계산된 직선으로 가득 찬 건물보다 눈에 익은 것을 그리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가장 많이 연습한 것은 나무였다. 스웨터의 보푸라기같이 생긴 것을 꼬아 그리면 나무의 이파리가 되었다. 이파리가 빈약하든지 너무 복슬복슬하면 어수룩한 태가 났다. 펜으로 강약조절을 해야 나무가 그럴 듯해 보였다. 내가 그린 야자수는 잎이 너무 진했고 대나무는 흐물흐물해 보였다. 공을 들이면 들일수록 펜이 엇나갔다. 제대로 그리고 싶어서 몸이 떨릴 정도였다. 거리에 나오면 온통 나무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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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당신은 나의 개
죽은 이의 가슴과 제 가슴을 열고 들여다봐야 합니다. 자살자의 가족이 견디기에 그 과정은 몹시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한 번은 거쳐야 합니다. 경찰은 선생님을 찾아가 심리 부검을 받아 보라고 했습니다. 죽은 아버지를 이해해야 저도 살 수 있다고 하더군요. 선생님. 이 창으로 내다보이는 공원에는 여러 꽃이 심어져 있습니다. 목련, 철쭉, 수레국화, 덩굴장미, 수선화 구근까지 다양합니다. 이 공원의 조경을 맡은 사람은 아무래도 상록수보다는 꽃을 더 좋아하나 봅니다. 한겨울에도 꽃이 피고 지는 곳입니다. 선생님이 더 잘 알고 계시겠지만요. 이곳에 올라오기 전에 저 공원을 몇 바퀴 느리게 돌았다고 말씀드렸지요. 지금은 아이들이 어린이집으로 모두 돌아갔네요. 어린이집과 공원이 니은자로 이어진 화단에 두 그루의 동백나무가 심겨 있습니다. 어른 가슴께까지 오는 키에 바짝 붙어 심어져 언뜻 보면 한 그루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한철이 지나 핀 꽃보다는 바닥으로 진 꽃이 더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