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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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복서
복서 조동범 복서는 섬을 떠올렸다. 해변은 온통 시신으로 가득했고, 홀로 살아남은 자를 호명하며 섬의 전설은 언제나 고독했다. 오래된 별자리가 은밀하게 사라지자 숲의 너머는 어둠을 헤아리며 경악했다. 꽃이 피고 새가 울고 나무들은 저마다 열매를 맺었지만, 근해를 떠도는 시신들은 바다의 창백한 깊이를 응시하며 말을 잃었다. 링 위에 누워 복서는 섬을 떠올렸다. 복서를 둘러싼 함성이 피를 토하며 고요했다. 조명이 눈부시게 쏟아졌고, 복서는 물러설 곳 없어 한없이 고독했다. 링을 둘러싼 함성이 복서의 눈동자에 적막하게 음각되었다. 해변을 배회하며 복서는 스스로 섬이 되어 갔다. 물러설 수 없는 복서의 자리마다 온통 시신으로 가득했고 복서를 호명하는 소리가 홀로 고독했다. 링 위에 누워 복서는 지금, 절대 고독을 맞이하고 있는 중이다. 해변을 배회하는 복서의 눈동자가, 적막하게 음각된 함성을 뚝뚝 떨어뜨리며 링을 향해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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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므두셀라
므두셀라 조동범 공포가 들려오면 당신은 어느 곳으로 사라지려 합니까. 당신의 음성이 나의 심장을 파고들 때. 세계의 모든 종말과 신파는 그러나 아름답습니까. 신성은 무너지고, 당신의 주치의는 믿을 수 없는 모든 맹세를 책망하려 합니다. 쥐덫에 묶여 있는 것은 절망입니까. 아니면 참을 수 없는 어느 날의 치명입니까. 모든 것은 잊힐 거라는 나의 음성은 당신을 위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춘천의 안개입니까. 안개는 어느새 사라집니까. 안개의 너머에서 박하의 향은 어느덧 당신을 흐느끼려 합니다. 당신은 신성의 은혜로운 사람입니까. 그리하여 강물 위로 피어오르는 것은 두려움입니까. 아니면 사랑의 파국입니까. 당신은 이제 세상의 모든 추모와 이별을 흐느끼려 합니다. 당신의 심장을 어루만지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원죄의 밤을 추모하려 합니다. 그것은 죄책의 밤입니까. 아니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완성입니까. 세계의 모든 신성이 무너지고, 당신은 이제 씻을 수 없는 상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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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풀밭 위의 식사
풀밭 위의 식사 조동범 소풍을 가야지 단풍이 뚝뚝 떨어지는 날 떨어지는 단풍처럼 뚝뚝 눈물을 흘리며 더러운 신파로 가득한 날들을 지나쳐 소풍을 가야지 샌드위치를 싸고 신선한 오렌지 주스와 과일도 몇 조각 즐겁고 행복하게 즐겁고 행복하게 소풍을 가야지 진지한 날들을 위해 건조한 휴일과 무의미한 예배의 날들을 위해 소풍을 가야지 굶주린 식욕을 창백하게 들고서 성스럽고 경건하게 소풍을 가야지 텅 빈 몸과 다리를 끌고 어둡고 깊은 발자국을 따라 가고 또 가야지 굳게 다문 입술과 흉기처럼 도사린 혀를 감추고 가야지 풀밭 위의 식사를 위해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다만 화창하게 웃으며 소풍을 가야지 한 손엔 솜사탕 한 손엔 즐거운 카메라를 들고 우걱우걱 김밥을 먹으며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가고 또 가야지 소풍을 가야지 고독한 질주와 아이들의 붉은 눈물을 위해 진지한 슬픔과 돌이킬 수 없는 날들을 위해 가야지 소풍을 가야지 절뚝이는 맨발을 끌고 맨발의 빛나는 상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