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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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자하문 밖
자하문 밖 조용미 윤동주 하숙집을 지나 박노수 미술관을 지나 수성동 계곡으로 올라간다 서울의 한 부분을 내려다본다 우리는 사대문 안에 있다 비해당 집터 있던 곳이라고, 인문학적이고 문제적 인간 안평에 대해 열심히 이야기 한다 마치 그가 나의 오랜 연인이었던 것처럼 말한다 그의 글씨와 그림과 고뇌에 대해 시냇물처럼 소곤소곤 많은 말을 쏟아낸다 컴컴한 북악을 바라보며 내 이야기를 듣는다 아무래도 사대문 안이 좋겠다고 한다 우리는 자하문 밖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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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고개를 끄덕이다
고개를 끄덕이다 조용미 여름, 권태와 광기 사이에서 뜨거운 솥 위의 찻잎처럼 이리저리 마구 굴려지던 마음 향천사의 선원 굳게 닫혀있던 그 문 앞에서 오래 서성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大休門 나도 저런 편액을 하나 걸어두고 오래 문 잠그고 싶었다 크게 한번 쉬고 싶었다 예당저수지 바라보며 어죽을 먹는다 대빗자루로 저 큰 물마당을 쓸어보고 싶다 무한천의 백로들을 따라간다 역재방죽, 폭풍이 지나고 난 뒤의 따가운 햇살에 허옇게 부유물들을 떠올리고 있다 거미줄을 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늑대거미처럼 또 무엇을 찾아 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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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식물의 기분
식물의 기분 조용미 무언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비 그친 뒤의 숲으로 우산을 두고 갔는데 누가 부르는 것 같았는데 그게 저 수없이 겹겹 총상꽃차례로 피어있는 만첩빈도리일 줄은 더듬더듬 아는 덜꿩나무 근처로 갔는데 꺼끌꺼끌한 그 잎을 그냥 만져볼까 했는데 빗물에 번쩍이는 초록 잎들의 숨을 나도 쉬어볼까 했는데 흰 털 보송한 종 모양의 꽃받침 길게 나와 있는 암술머리의 연두색 여린 붉은색 줄기가 이제 마주 보는 얼굴이 되었다 모든 세부적인 것을 알아차리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나뭇가지에 아래 들어 흰 꽃들을 올려다본 순간 속눈썹에 빗물이 떨어졌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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