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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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나의 투쟁
나의 투쟁 -컨베이어벨트 조인호 아버지는 정말 유태인이었나 독일나치당원이 유태인에게 채운 표식처럼 한쪽 팔에 완장을 차고서야 알았다 장례식장에서 피어오르는 향이 아우슈비츠의 독가스 같다는 것을, 새벽녘 장례식장 밖 세상의 모든 공장들이 전자레인지 불꽃만큼 소리 소문 없이 뜨거워지네 3교대 돌아가며 야근하는 공원들의 어깨가 롤러만큼 자꾸만 둥글어지네 검은 밤이 컨베이어벨트같이 흐르네 화장터의 굴뚝은 점령당한 파리의 에펠탑보다 높았을까 한 삽의 석탄처럼 불길 속에 아버지를 던져 넣는 가혹한 노동이여 삼일 밤을 샌 나의 투쟁이여 나는 코피를 흘리네 야근하는 외국인 노동자처럼 혹은 수용소 낡은 침대 위의 고요한 유태인처럼 코피를 흘리네 뚝뚝, 떨어지는 코피는 고체이면서 액체인 환한 액정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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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스스로 재래식무기(在來式武器)가 된 사나이
스스로 재래식무기(在來式武器)가 된 사나이 조인호 1 스킨헤드 소년이 빨간 마스크를 쓴 채 N서울타워 꼭대기 위에 서 있다 철탑 밑으로 케이블카가 멈춰 있다 지상에서, 불발탄을 어깨에 짊어진 사나이가 우뚝 선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향하여 육탄돌격한다 해발 479.7m 철탑 101m 탑신 135.7m 거대한 구름기둥과 불기둥 속, 스킨헤드 소년은 탑이 움직이는 두렵고 경건한 음성을 들었다 그 탑이 대륙간탄도미사일처럼 상승하는 것인지 우르르 땅속으로 무너져 내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 탑이 사라진 후 원숭이 두개골을 닮은 스킨헤드 소년은 지상(地上)에 고아처럼 버려졌다 2 11번가 철근 콘크리트 공사장, 그 때 인부들이 불발탄을 발견한 것은 한낮의 무더운 폭염(暴炎)속이었다 포클레인이 붉게 녹슨 그것을, 땅속에서 서서히 퍼 올렸을 때 붉게 탄 석탄 같은 광대뼈와 횡단철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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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괴뢰희(傀儡戱)
괴뢰희(傀儡戱) 조인호 방독면을 뒤집어쓴 채 잠에서 깼네 뭉게뭉게 사람들을 잡아먹는 연기들 꿈속에서 본 사람들 얼굴이 군화 같은 검은 연기 뭉치에 밟혀 뭉개지고 있었네 불은 붉은 튤립 꽃다발처럼 잔인한 총천연색이었네 바닥을 기던 꼬리 달린 연기가 뱀인 양 발목을 물고 달아났네 색을 빨린 사람들은 흑백의 재로 변한 채 스스스 주저앉아 버렸네 바람에 풀풀풀 날렸네 나는 방독면 안에서 풀무질하듯 거친 숨을 쉬었네 불은 활활활 사나워졌네 꿈밖으로 뛰쳐나오기 위해 사람들이 눈꺼풀의 닫힌 문을 탕탕탕 두드리며 울부짖고 있을 사이 훼훼훼 나만 홀로 자물쇠 같은 방독면 안에서 안전했네 방독면에 철컥, 잠긴 얼굴은 그 누구도 알아챌 수 없었네 그 어둠 안에서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1) 같은 공기를 나만 홀로 들이마셨네 꿈속에 갇힌 사람들아, 너희들은 어렸을 때부터 영웅들의 가면을 쓰고 놀았고 나만 홀로 이상한 방독면을 쓰고 있었지 학교가 끝나면 실내화 주머니 대신 방독면 주머니를 질질질 끌며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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