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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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층간 소음
층간 소음 민구 위층에 코끼리가 산다 코끼리는 사막이나 열대 우림에 서식하는데 가족과 서식지를 잃고서 밀렵을 피해 연희동으로 건너온 모양이다 코끼리는 물과 먹이를 구하러 이틀 동안 잠도 안 자고 이동할 수 있다 그래서 낮에도 걷고 밤에도 걷는 걸까 코끼리 새끼와 싸우러 올라간 적이 있었다 문을 두드려도 나오지 않았다 멸종위기종이라도 월세를 감당하려면 일해야 한다 통신요금도 내고 데이트 비용도 부담하고 조직 활동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겠지 그는 나와 같은 버스를 기다린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잊고 서성인다 코끼리는 코가 손이니까 과자를 주면 코로 받고 화가 났을 땐 아카시아 나무를 다 뽑아버리며 우연히 마음에 드는 상대를 만나면 코로 사랑 고백을 한다고 한다 오늘은 위층이 조용하다 아무도 없으니까 드넓은 초원에 혼자 떨어진 것처럼 쓸쓸하고 공허하다 이럴 땐 코끼리 똥이라도 주워야지 올라가서 따질 말을 하나라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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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시·시조 「아침을 믿어요」외 6편
사람들도 순환직이라고 횡단보도에서 우르르 이동 중이다 방배 씨 붉은 벽돌, 역삼 씨 티켓, 구의 씨 버스킹* 역 이름을 붙인 배역처럼 한때 청춘이 혜화역에 깃들다 간다 연극이 끝난 것 같은 하늘로 좁은 엘리베이터 타고 비행운이 지나고 있다 지구에 세 들어 살면서 낙엽에게 차이고 사색에 취한 채 공원이라는 차고지까지 오게 된 날, 나는 나갈 수 없어 남아야 하는 세입자처럼 당분간 벤치에 연행돼 있다 * 바탕골 소극장 연극 종합 병원에는 뱀이 있다 종합 병원 외래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 대기실 좌석 전체가 지그재그 똬리 틀고 있다 한 사람이 일어나면 배밀이하듯 꿈틀꿈틀 옆으로 이동한다 꼬리의 내가 언제 머리에까지 이를까 한 시간쯤 지나자 모니터 화면 세 번째 줄에 늘름대는 내 이름이 보인다 석자 가운데의 동그라미가 호명을 사리고 있다 갑상선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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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안국동울음상점 외 3편
눈보라가 빗금을 그으며 떨어지는 12월, 너구리 가죽 가득 눈꽃들을 받아주겠다고 손녀딸의 잠을 툴툴 털어 주고 계신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선생님, 우와, 하고 입을 쫙 벌린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조직 폭력배, 동승, 소설가 김씨, 사실은 순진했던 너구리 가죽을 뒤집어쓴 국회의원 양반, 통속적인 활극을 연출하는 너구리 삼인조, 왁자지껄, 수한무를 찾는 숨이 넘어가는 만담, 모두가 즐거운 한때, 눈은 쌓이는데, 두런두런 유년을 찾아가는데, 종종 미끄러지는데, 청어를 굽는데, 날치 알을 먹으며 깔깔대는데, 하얀 눈은 아랫마을을 재우고는 재 너머 공동묘지에도 내리는데, 썩은 굴참나무 그림자에 빠져 죽은 수상한 허물들 위에도 내리는데, 누군가 죽은 친척 이야길 꺼내 시무룩해졌다가는, 다시 만월(滿月)의 잔이 도는데, 푸치니 오페라 『나비부인』 중 「어떤 갠 날」도 좋고, 음정 박자 무시한 「한 오백 년」도 좋은데, 엉덩이춤을 추는데, 정부도 없고 계급도 없고 빈부마저 없이 너구리 가죽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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