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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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멍게 부케 폴리시
마지막에 무게를 재며 창원 할머니가 물었다. "그라믄 바르는 건 안 쓸끼가? 버릴 꺼면 내 주면 안 되나?" 창원 할머니는 얼룩덜룩한 분홍색 티셔츠에 보풀이 인 자주색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누비바지는 무릎 부근에 접힌 선이 자글자글했고 검은색 털신은 긁힌 자국마다 더께가 앉았다. 바짝 깎아 뭉툭한 손톱에 물로 씻어도 쉽게 지지 않는 흙 때가 까맣게 껴 있었다. 들은 말로는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라고…… 찰나라기에는 오랜 침묵과 무심하다기에는 동선이 긴 시선을 겨우 갈무리했다. "갖다 드릴게요." 세이의 대답에 창원 할머니가 반 토막 난 유기농 고구마를 안겨 주었을 때보다 활짝 웃었다. 주름이 많은 얼굴이 더욱 자글자글해졌다. "다음 주는 월수금만 나오시면 돼요." "알았다. 밖에 춥다. 단디 싸매라." 작업장을 나가면서 창원 할머니가 살가운 인사를 건네기는 처음이었다. 세이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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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고등어
고등어 오성인 오일마다 열리는 영산포 풍물시장 수산물 장터 블록을 쌓은 듯 켜켜이 놓인 스티로폼 박스, 그 안에 자갈처럼 깔린 얼음 위로 나란히 누운 고등어들 살아 있을 적보다 더 맑고 또렷하게 허공을 꿰뚫는 눈, 죽어서도 쉬이 바다를 잊지 못하는 모습에 감탄하다가 몇 마리 주문한다 싱싱한 놈으로 골라 주겠다며 자존심처럼 부푼 배를 가르는 상인의 손 위로 한때 그들을 바다만큼 정열적으로 살게 했던 태양의 붉은 속살인 듯한 것들이 흐물거린다 검은 봉지 속에서도 여전히 기개를 잃지 않는 눈과 푸른 등에서 불현듯 읽히는 생의 기록 요동치는 세상의 중심에서 가볍디가벼운 가난한 몸으로 격정의 시간을 버티며 함부로 흔들리지 않았던 아버지 등허리에 크고 작은 바다의 이름들을 아로새긴 고등어처럼 벌교 순천 정읍 인천 의정부 창원 광주 크고 작은 도시들의 이름이 이제는 부쩍 마른 그의 뒤에 생의 증표처럼 붙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독하게 바다를 품는 고등어 굴곡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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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3월_신작시_입] 완벽한 입
작가소개 / 오성인(시인) 1987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벌교, 순천, 정읍, 인천, 의정부, 창원, 광주 등지로 옮겨 다니며 자랐다. 2013년 계간 《시인수첩》에 시 「못다 끓인 라면」외 4편이 뽑혀 등단했다. 《글틴 웹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