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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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시는 쓰이기 전에 결정된다
작고한 시인 중에 ‘진짜 시인’은 한용운, 김소월, 윤동주, 이상, 김수영, 그리고 조금 성격이 다르면서 과소평가되었던 천상병, 박용래, 김종삼 등의 시인들이 있습니다. 이선영 : 저에게는 한때 시인 아닌 사람은 마치 다른 인종인 것처럼 보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시인과 인간, 그 분기점은 어디라고 생각하십니까? 예를 들면 이상(李箱) 같은 경우는 시인으로서는 탁월했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에서는 무능한 인간이었는데 같은 맥락에서 천상병, 서정주 등의 시인들도 인간적으로는 불행했거나 한때 과오를 범하기도 했던 분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현종 : 시인이라고 해서 잘못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일제 시대의 이야기는 그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미당의 경우도 자서전에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특별하게 그것을 지적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백을 했고 용서를 빌었으면 용서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때에 살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생각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친일한 경우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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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문학카페 유랑극장 후기]고래의 꿈과‘서로’기다린다는 것에 대하여
천상병과 베케트, 그리고 정일근의, 기다림의 차이와 공통점 그리고 그 기다림의 자세에 대한 홍윤기 식의 해법에 어느덧 모두의 눈과 귀가 집중되었습니다.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그리워하면서 기다리는 것, 또 그 기다리는 사람의 어떤 자세에 관하여 홍윤기 선생님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다소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내색하지 않으시고 누구보다도 밝게 웃으면서 그 시간을 장식해 주었지요. 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사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휴대전화를 손에서 뗄 수가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누군가 구조되었다는 ‘낭보’가 전해지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세월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굉장히 조심스러웠습니다. 게다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몰라 더욱 더 말을 삼가던 참에 정일근 시인이 이렇게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기다림, 기다림, 하는데 지금 우리는 누구보다도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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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모색 어린 사람
그즈음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처음 읽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는 경이로움이 반가웠다. 몇 번을 되새겨 읽었다. 아마 그때부터 이 정도 시는 나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오만함이 자라났던 것 같다. 가끔 학교에서는 동시를 써오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그럴 때면 나는 긴밀하게 행동했다. 하얀 에이포 종이를 먼저 꺼냈다. 연필을 쥔 뒤, 읽었던 시를 몇 개 떠올리고, 멋있는 말을 쓴다고 생각하며 나도 무엇인지 모르는 것들을 적어 갔다. ‘작업’이 끝나면 종이 양 끝을 잡고 멀찍이 둔 채 글자 더미를 감상했다. 나 혼자 써서 나 혼자 만족했다면 재미는 빠르게 사그라졌을 것이다. 나를 둘러싼 환경도 나를 부풀게 했다. 나는 스스로 시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선생님과 또래와 주변 사람들의 찬사를 받으며 적어도 그렇기를 소망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는 마음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한두 해가 흘러 열 살 무렵이었다. 나는 진주청소년수련관으로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