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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의 비애 - 파과 / 구병모
1. 행간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어떤 공기는 작품의 총체적 분위기를 결정짓는다. 구병모소설의 빈공간을 남김없이 메꾸는 냉소의 기운은 행간에서부터 영역을 확장하며 이야기 곳곳을 깊숙이 침투해나간다. 단락 하나 문장 하나를 읽을때마다 짙게 묻어나오는 이 냉소는 타인의 지저분한 얼굴을 굳이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까지 눈살을 찌푸리는 작금의 보편적 일상을 지긋이 마주보고 지적해냄과 더불어, 좀 더 거시적 차원의, 성취감과 상승의지라는 그럴듯한 어휘로 포장된 사람들의 속물적인 목적의식, 자본주의 계급사회의 이면을 예리하게 관철해낸다.(-방주로 오세요) 그러나 이 냉소는 최근작인 본작에 이르러서 다소 이질적인 양샹으로 변모하게 되는데, 슬픔과 체념이라는 감정과 함께 병존하며 시간의 흐름을 피부로 체감케되는 노년의 비애를 강렬하게 내비친다. 2. 작가가 감정에 지나치게 도취된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는 작품은 그 감정이 독자의 심상에까지 전이되지 못하고 금세 소모되어 버리기 마련이다. 일순간 고양되고 폭발하는 감정또한 찰나의 분출이 으레 그렇듯 독자의 가슴에 어떠한 자취도 남기지 못한다. 구병모의 소설들이 줄곧 일관되게 유지하던 냉소의 기운을 본인이 유난히도 좋아하는 이유는 어설픈 감정적 접근을 일절 배제해버린 이른 포기의 태도를 포함했기 때문이다. 작가 본인조차 겪어보지 못했던 감정의 격정을 흉내내려 하기보다 자신의 장기인 현실에 대한 냉소를 집요히 투영시킨 그녀의 소설은 메마른 감성을 지녔지만, 허위로 물든 세상의 비정함을 환기시키며 더욱 짙은 여운을 자아낸다. 이러한 관조의 차원을 넘어선 염세적 세계관은 문체에서도 쉬이 추적할 수 있다. 많은 어휘를 포괄하는 만연체의 문장은, 사물을 묘사하고 인물을 설명할 때 조차 서늘한 냉기가 베어나오지만 시종 명쾌하고 단단하며 난잡히 흩어진 어휘들을 꿰고 덧붙여 운율을 자아내려는 무리한 시도또한 하지 않는다. 산문이 결코 시의 리듬을 따라 갈 수 없고, 단순히 어휘를 나열한 것으로 문장이 성립될 수 있음에도 그녀가 구사하는 문장은 음악적 선율이 느껴질 만큼 리드미컬하고 매끄럽다. 이 모든 것들은 본작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문장은 시퍼렇게 날이 서있고, 냉소도 이전과 다를바 없지만, 이전의 구병모 소설에선 볼 수 없었던 감정의 파장이 소설 전반을 에워쌓고 있다. 이질적이지만 어색하지는 않다. 3.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아무것도 아닌것들의 조형과 부착으로 이루어진 콜라주였고 지금의 삶은 모든 어쩌다보니의 총합이었다.아무리 구조가 단단하고 성분이 단순명료하다 해도 사람의 영혼을 포함해서 자연히 삭아가지 않는 것은 이세상에 없다. 존재한 모든 물건은 노후된 육체와 마찬가지로 연속성이 단절되며 가능성은 협착된다. 늙는다는 것,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자신이 놓여졌던 선택의 순간을 복원하고 지난날에 하지 못했던 또 다른 선택을 후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을 더듬고 곱씹어보며 또 다른 나를 상상해보지만 이내 체념하고 당도한 현실에 몰입하기 바쁜것이 청년과 노년의 중간이라면, 육신이 소실되는 과정을 거칠때마다 선택의 순간을 한숨과 함께 그리워하는 것이 노년이다. 그래서 노년은 비애다. 본작이 지닌 정서가 이것이다. 살인청부업의 세계에서 이미 퇴물이되어버린 킬러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은 기실 '레옹'에서 파생된 '아저씨'나 '테이큰'과도 이야기의 맥락을 같이한다. 살인이 일상인 자신의 세계에 염증을 느낀 킬러, 자신이 겪어보지 못했던 삶에 매혹을 느껴 그 동안 이룩했던 것을 털어버리려 하지만, 이내 맞는 비극적 최후. 여러 콘텐츠에서 변주되고 재생산된 이러한 류의 장르물은 이제는 자못 통속적이기 까지만, 본작에서 체감되는 공기는 오락적 재미의 추구뿐만이 아니다. 선택과 우연이 한데모여 완성시킨 삶의 운명적인 속성을 빼어나게 묘사하는 한편, 원하고 가지고 싶은 것을 더 이상 갈망할 수 없는 노년의 육체에대한 슬픔을 특유의 필치로 그려낸다. 주인공 본인의 슬픔이 타인에 대한 연민으로 이어지는 대목은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다. 목표물을 눈앞에 두고도 폐지줍는 노인에게 연민을 느껴 살인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만족적인 우월감의 연민 때문이 아니다. 동질감에서 비롯된 연민 때문이다. 선명하게 새겨진 굵은 주름 뿐만 아니라 소멸의 지점에 근접해선 누구나 같은 얼굴을 지니고 있음의 깨달음이, 생면부지의 타자에게서 투사된 것이다. 킬러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일절 면식이 없던 타인에게 어줍잖은 위무와 연민의 손길을 뻗던 자신을 비판하면서 이것은 금방 체념으로 귀결되는듯 하다. 잠깐이나마 자신이 속한 세계를 이룬 살점과 핏방울과 뼛조각을 잊고 긴장이 풀린채 따뜻한 꿈을 꿀 뻔했던 순간을, 소독약과 스킨섞인 독특한 냄새를, 한 폭 주단과도 같던 미소를 떠올리지 않을 것이다. 지금 마음속에 피어오른 것은 일시적으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이 아닌 다른 세계와 접속했기 때문에 생겨난 작은 흥분에 불과하며 거기 몸을 깊이 담그지 못하고 발만 살짝 적셨다가 돌아나온데서 비롯한 아쉬움의 반영일 뿐이다. 그러나, 무의식 한켠에 염원하고 있던 것, 화목하지만 파국을 앞둔 가족을 위기에서 구출해내면서 '주어진 상실'에 대한 의지를 다짐하는 것으로 변화한다. 사라진다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그래서 아직은 류, 당신에게 갈 시간이 오지 않은 모양이야. 소설에서 또하나 인상적인 것은 '투우'라는 캐릭터이다. 그는 어린시절, 주인공 '조각'에게 살해당한 이의 자녀이다. 자신의 가정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그녀의 본래목적을 짐작하지 못하고, 부모에게 환대받지 못하던 본인에게 잠깐이나마 관심의 손길을 보여준 그녀를 궁금해한다. 그러나 아버지의 죽음을 목격한 날, 그녀가 일을 수행하고 공연히 자신에게 보내던 눈빛을 잊지 못한채, 투우 자신또한 킬러의 세계로 입문한다. 이내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며 조각의 입지를 위태로이 하는 한편, 그녀 주변을 맴돌며 방해의 손길을 뻗치지만, 이것은 네가 내 가족을 무너뜨렸다는 복수심의 발로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타인에게 자신의 인상을 남기려는 행위의 본질과 같다. 조각으로 인해 가정의 해체를 겪었지만, 기실 그에겐 해체후 또한 이전의 삶과 변함이 없는 무관심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조각이 보여준 관심과 마지막 순간을 잊지 못하고 그녀만은 자신을 기억하리라는, 아니 너만은 나를 기억해내야 한다는 상념을 이러한 킬러로서의 행동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순간, 조각에게 죽임당하면서도, 그녀가 자신을 어렴풋이 떠올리는 제스처를 취하자 옅은 웃음을 짓는 것도 이같은 맥락일 것이다. 4. 분명 장르문학의 서사를 지니고 있음에도, 오락적 쾌감이나 엔터테인먼트적 요소의 발현이 눈에 띄는 소설은 아니다. 그보다 더욱 체감되는 것은 '노년의 비애' 라는 주제의식이며, 이러한 주제를 순문학의 형태가 아닌, 다소 이질적인 장르문학의 화법과 접목시켰다는 것이 본작의 가장 큰 이점이다. 이 같은 진부한 수식어를 덧붙이고 싶지는 않지만, '역시 구병모' 라는 말이 자연스레 새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