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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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분노의 포도
분노의 포도 ―드라마 6 권혁웅 주(朱)와 강(姜)은 호형호제하는 사이였다 한 잎새 아래 모여 있는 포도 알들마냥 한 지붕 아래서 두 가족이 종주먹처럼 살았다 작은 부엌을 사이에 두고 왼쪽이 주, 오른쪽이 강이었다 아니, 반대였던가? 둘은 동고동락했다 문제는 동거동락이라는 오자(誤字), 취기는 본래 좌우를 가리지 못한다 술에서 깬 강 옆에는 사우디에 가 있던 주의 마누라가 누워 있었다 엎질러진 포도주였다 배반이 낭자하다의 그 배반이 아니었던 거다 아이는 작은 주(朱)가 되었다 아버지와 아저씨가 이름과 방을 바꾸었던 셈이다 호형호제를 잘하면 호부호형을 못한다 아니, 호가호위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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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수필 「포도나무 아래에서」외 1편
포도나무 아래에서 안미선 오늘은 그 포도나무 그늘에 대해 말하고 싶다. 서울의 주택가에서 포도나무를 보는 일은 드문 일이었다. 구옥 마당에서 포도를 기르는 일이 이전에는 이따금 있었던 것 같지만, 마당 가운데에 버팀대를 세워놓고 포도 덩굴이 자라도록 하는 일은 번거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땅값이 비싼 도시의 살림집에서는 포도 덩굴에 내어줄 여분의 자리가 더욱 마땅치 않다. 재개발이 되면 오래된 감나무나 모과나무가 사라져가듯 포도나무도 그렇게 사라져버린 건지도 몰랐다. 그런데 새로 이사 온 다음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다가 나는 골목길에서 포도나무를 발견했다. 널찍한 골목의 한 집에 딸린 담에 넓은 잎사귀가 달린 포도나무가 보였다. 나는 신기해서 그 자리에 서서 오래 바라보았다. 포도의 갈라진 잎은 담장 아래로 내밀어져 있고, 덩굴은 담장 언저리에 걸쳐져 있었다. 나중에는 제법 굵은 포도알이 맺혀 검보라색으로 익어갈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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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파리의 압생트주와 서울의 포도주
[예술을 위하여_6 / 마지막 회] 파리의 압생트주와 서울의 포도주 김경미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식사에 곁들여 포도주를 마셨다. 음악 전문가께서 가져온 칠레산의 최고급 와인이었다. 맛은 좋았지만 가능한 최소한으로 마셨다. 포도주만 마시면 항상 두통이 일어서다. 내게 포도주를 마시는 일은 포도주만 빼면 다 좋다. 작가는 참 좋은 직업이다, 글만 안 쓸 수 있다면, 식인 거다. 사소한 주변 부속품으로 중요한 핵심을 누리려는 허황에의 경고나 풍자 같기도 한 ‘불화’다. 음악과 음식에 대한 얘기들이 오가는 동안 나는 줄곧 고흐의 포도주와 압생트주를 떠올렸다. 피에르 푸케와 마리튼 드 보르드는 『술의 역사』에 썼다. “반 고흐는 가끔씩 그의 붓을 포도주에 적심으로써 근심거리를 환한 태양같이 만들 수 있었다.” 생전에 고흐가 자주 마셨던 술은 압생트주였다. 압생트주는 압생트라는 식물을 으깨어서 만든 초록색의 독주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