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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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썰매마을
썰매마을 한연희 폭설이 내린 마을엔 인기척이 없다 운전사를 태운 버스만 간신히 지나다닌다 모두들 쥐떼처럼 처박혀서는 때를 기다린다 눈사람이 앞마당에 자라나기를 기다린다 발밑에 놓인 작은 썰매 안에서 숨소리 없이 너는 태어나고 말을 배우고 손짓을 한다 어서 오세요 어서 오세요 나의 작은 쥐새끼, 하얗고 커다란 눈망울을 간직한 너는 이 앞마당에도 저 앞마당에도 태어난다 한껏 웅크린다 그러다 눈덩이처럼 굴러가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불어난다 아무도 밟지 않는 눈밭을 가로지른다 납작한 썰매들이 함께 겨울을 이끌고 간다 겨울과 오래도록 함께 있기 위해서 나아간다 눈사람이 죽은 쥐를 품고 가듯이 둔덕을 미끄러져간다 우리 마을엔 대장이 없단다 우리 마을엔 전설만이 있단다 우리 마을엔 아무 것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요 우리는 마을처럼 애초에 없었던 거잖아요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태어나고 죽는 거잖아요 우리는 집안 전등이 꺼질 듯 깜빡거리는 걸 본다 골목 어귀가 발자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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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술래잡기
술래잡기 한연희 과수원에서 놀았지. 정신없이 놀다가도 사과! 복숭아! 자두! 와르르 달려가 나무 뒤에 숨는다. 나는 술래가 된다. 밤이 됐는데 아무도 찾지 못한다. 멍이 든 사과를 줍는다. 못 찾겠다 못 찾겠다 꾀꼬리. 빼곡한 가시덩굴 안에서. 어둠뿐인 그때부터 나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나무껍질 속에 숨었나 아니면 바위 틈. 도망가는 개구리를 잡아 입을 벌리지. 너희는 어디에도 없구나. 밑창이 닳아빠진 운동화가 보인다. 도둑고양이의 뻣뻣해진 다리는 세 개. 다른 하나는 어디로 갔을까. 이상한 소리들이 들린다. 자두야, 사과야, 복숭아야, 저들은 대체 누굴 부르는 중일까.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바스락 바스락 술래가 오는 모양이다. 나는 뿌리처럼 구부려 내내 울고만 있고. 다른 친구들은 원래부터 없었던 거야. 꼭 꼭 숨어라. 얘들아 나는 나뭇잎이고, 돌멩이고, 솔방울이지. 너희들은 언제부터 내 꿈속에 숨어든 거니? 여기엔 비밀이 묻혀있지. 집단구타가 있었다는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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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원래는 잘못 만들어진 푸딩
원래는 잘못 만들어진 푸딩 한연희 이 작고 말랑말랑한 기분에 대한 것 원래는 못 먹었지만 이제는 잘 먹고 싶은 푸딩을 우릴 생각하며 사 두었지 각웅, 봉배, 금팔 그리고 덕오는 나 이런 이름의 조합이라면 뭐가 되고 싶은지 마음먹기에 따라 다종의 세계관을 쥐락펴락할 역량이 되지 않겠소 이 작고 살랑이는 의외의 느낌에 대한 것 이제는 생각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 검은 망토를 두른 만물상회의 아이가 마타리꽃과 냉이초로 만든 푸딩은 일종의 변신 물약 폴리 주스라 했지 마치 해리포터의 파란 물약을 닮은 저 푸딩을 풀잠자리 거머리 독사 등등 쏙 뺐다고 해서 변신의 효능은 사라지진 않으니 원래는 잘못 만들어진 푸딩이란 없으니 이 행성에선 우연으로 불완전해지니 각웅은 귀여움으로 봉배는 쾌활함으로 금팔은 엉뚱함으로 그리고 덕오는 다정함으로 각각 푸딩의 다양한 아이덴티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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