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7)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동지(冬至)
동지(冬至) 박홍점 어둠이 하나 둘 깃털을 꺼내기 시작할 때 손길이 닿지 못한 들판의 구근들이 한 겹 단물을 보탤 때 번쩍, 마른하늘 번개처럼 튀어나온 칼 한 자루 전의가 되살아나듯 돌아가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새것인 채로 상자 속에 담겨 서랍 밑바닥에 늙을 줄 모르는 사진 속의 얼굴처럼 푸르게 반짝이는 오월의 잎사귀를 본떠 만든 에메랄드처럼 첫 칼질이 시작되고 무엇이든 앞으로 앞으로 불러낸다 끊고 맺는 솜씨가 깔끔하다 뭐 또 다른 게 없을까 나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좋아해 군더더기 없이 선명한 순간 순간을 칼질이 칼질을 부르고 수많은 사선들이 손가락 끝에 떨어진다 칼질이 펼쳐 놓은 왁자지껄한 세상 겹겹의 깃털 속으로 사선들이 사라진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동지(冬至)’라는 말 속에 들어가
동지(冬至)’라는 말 속에 들어가 정유화 누워본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공모마당 연간 최우수상 수상작]장르_겨울날 초원에서 일어날 법한 일
그 축제의 이름은 동지 축제라고 한다. 초원의 겨울은 길고 추우며 건조하다. 테무게가 뿜어낸 하얀 입김이 하얀 하늘에 서렸다. 칸의 막내아들인 그는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다 가졌다. 모든 부족에서 가장 빼어난 말을 탔고, 모든 부족에서 가장 훌륭한 활을 쏘았고, 모든 부족에서 가장 살찐 양을 먹었다. 그의 몸을 감싼 값진 금 장신구도 그랬다. 그는 부족한 것이 없었고, 올해의 동지 축제에서 칸의 후계자로 선포될 것이다. 그러려면 업적이 필요했다. 예를 들면, 축제의 꽃인 승마 경주에서 우승을 하는 것 같은 업적이. 바얀테무르는 초원에서 제일가는 사냥꾼이고 기수다. 물론 그는 승마 경주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승마 경주는 아직 정수리를 밀지 않은 자들, 그러니까 어린아이들과 여자들만이 참여하는 행사다. 그런 그가 출발선 앞에 서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테무게는 지난 며칠간 바얀테무르를 끈질기게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