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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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서울, 과거와 첨단의 시간
류큐(琉球―오키나와)의 수리성(首里城)보다는 크다. 그래서 크지도 작지도 않다. 이를테면 누구나 모스크바에 가면 그 이국적인 크레믈린보다 오히려 모스크바대학의 스탈린 시대 건축의 무모한 권위주의에 역겨워할 것이다. 누구나 서울에 오면 서울의 경복궁의 편안함이 여수(旅愁)를 달래 줄 것이다. 자유란 허황하거나 아주 밀폐되거나 하면 거기에 있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서울에는 광장이 없다. 녹색과 공원의 한가(閑暇)가 턱없이 모자란다. 1968년인가 한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이 ‘세계의 광장’을 연속특집할 때 한국 차례가 되자 서울의 광장에 대한 에세이를 나에게 청탁했다. 나는 교통량이 집중되는 식민지 시기 총독부 청사이던 중앙청 앞에 외롭게 서 있는 광화문 앞거리를 내 마음대로 광장을 삼아 ‘광장 광화문’을 썼다. 오늘날의 그 세종로에는 전(前) 시장이 시민복지를 내세워 세종대왕 동상을 안치하고 산책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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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이것은 사랑 없이는 깰 수 없는 유일한 꿈이었다.
그래도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그때 죽었던가, 얼마나 많은 류큐 왕국 주민들이. 그래, 그래서 유타가 혼자 무대에 오를 작정을 한 것이기도 했다. 유타는 무대 위에 서자마자 처음엔 자신의 검이 향할 미군의 자리를 확인했다. 큰 무대라 그런지 사진사들도 여럿이었다. 낯익은 부인사진관 막내 사진사가 있었다. 난리통에 저 어린 여자 사진사가 피해를 보지 말아야 할 텐데. 안쓰러운 마음으로 유타가 한참이나 그를 바라보자 그가 유타에게 입 모양으로 무언가를 말하려 애쓰기 시작했다. 유타가 조심스레 다가가 보니 주머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여주었고 순간 유타는 그 사진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것은, 그 언젠가 무대 위의 유타와 이심이었다. 뜻하지 않게 찍혔던 날이었다. 사진을 보니 그날의 많은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호남검무를 추던 날이었다. 대부분 이런 곳에 오는 사진사들은 무대 위의 사진이나 박수를 치는 미군 장교들의 모습을 함께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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