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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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마음
마음 김은경 키 작은 내가 가끔은 키 큰 수숫대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한 것처럼 어느 날엔 애 둘 낳고 서른에 집 떠난 큰삼촌의 마음을 알 것 같기도 하다 엄마가 우리 몰래 무언가를 숨겨 놓던 다락에도 장롱처럼 깊고 캄캄한 곳에도 그것은 있다가 없고 없다가 있었다 조약돌만 할까 그것은? 솜사탕처럼 바스라지기 쉬운 걸까? 불같다는 소문이 돌았고 누구는 귀신같다며 가만히 입술에 손가락을 댔다 기실은 물뱀의 무늬처럼 여린 배신자의 마음 추분이 오기 전 벼락같이 떨어져 내리는 능소화의 마음 기어이 물을 건너가는 사공의 마음 사탕 봉지를 열면 달콤한 사탕 냄새 곧 죽어도 괜찮을 것 같던 사랑스런 냄새 어떤 사람은 그 냄새를 찾는 데 일생을 바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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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유리의 마음
유리의 마음 백아온 선생님은 내 얼굴에 흰 천을 씌워 주며 말했다. 모르는 사람에게 온 편지는 함부로 뜯어 보지 말아요. 50분짜리 모래시계가 뒤집혔다. * 열차는 어딘가를 지나치고 있었다. F열 13번 좌석에 앉아 소설의 도입부를 읽었다. 작가는 첫 페이지에 이 글은 20년 뒤, 사랑하는 딸에게 바치는 일기라고 했다. 작가는 딸이 자신을 ‘엄마’라고 불렀던 순간을 환희와 슬픔에 빗대서 쓰고 있었다. 마지막 줄엔 자기가 불행한 것 같다고 쓰여 있었다. 내가 소설을 읽는 동안 열차는 바다와 숲과 절벽을 지났고 식물원에 다다랐을 때 쏟아지는 잠. 그때 선생님은 원래 있던 모래에 모래를 덧대었다. 먼 과거를 쓸어내리는 모래. * 아이가 엄마에게 고래는 어떻게 울어요? 물었다. 고래는 푸우- 하고 울어. 푸우- 푸우- 푸우- 그렇게 고래 울음을 따라 우는 엄마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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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마음 2
마음 2 이효영 동생이 죽고 마음이 왔다 두드리고 있었다 들이박고 있었다 찌그러지다 마침내 문을 부서뜨렸다 어디 멀리서 불쑥 오는 그렇구나 마음은 네발짐승 마음은 짧고 뭉툭한 다리로 바닥을 쿵쿵 쿵쿵 찧으며 발자국 보라고 새긴 것과 남긴 것 비교해 보라고 “왔어, 왔어, 마음이가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