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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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매듭
매듭 남상순 1 식사를 마치고 출근을 위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설 때까지만 해도 할아버지의 여든네 번째 생신은 그냥 그렇게 끝나는 듯 보였다. 사실 말이 생신일 뿐 핑계 김에 그저 아침이나 같이 먹자는 게 그날 모임의 취지이기는 했다. 바쁜 시간이라 변변히 이야기 나눌 틈도 없이 음식을 나르면서 부산을 떨었지만 정작 여자들은 밥숟가락을 입에 대보지도 못한 상태에서 남자들을 배웅해야 할 판이었다. 전화벨이 울린 것은 고모부가 먼저 가겠다며 현관에서 구두를 신고 있을 때였다. 공교롭게도 어머니가 수화기를 들었다. “누구라고?” 노인네의 숨가쁜 음성이 자꾸만 높아졌다. 고모부는 어머니와 눈인사라도 나눌 요량으로 현관에 대기하듯 서 있었다. “아이구매, 자네가 어쩐 일인가?” 엉거주춤 쪼그린 채 전화를 받던 어머니가 갑자기 무너지듯 주저앉더니 탄복이라도 한 듯 한 손으로 방바닥을 두드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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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관절이라는 매듭
이미 피곤해서 죽을 지경인 내가 기어이 어느 날 섧게 우는 갓난 매듭 덩어리로 땅 위에 내던져졌다. 인생은 얽힌 매듭을 푸는 시간이었다. 지나치게 명민했던 내 친구는 단 이십 년 만에 제 몸의 매듭을 모두 풀고 바람의 태생으로 돌아갔다. 내 친구의 친구는 회사 난간에서 투신하여, 지구라는 거대한 망치로 자신을 내려쳐 호두처럼 단단한 매듭을 단번에 으스러뜨리기도 했다. 부러진 계절과 계절, 하루와 하루라는 관절 사이에 밤이 검고 차가운 쇠심처럼 박혀 있다. 하루는 수만 개로 조각난 관절을 가진 짐승이다. 수십억 년간 지구는 초 단위의 관절을 모조리 구부려 거대한 원형으로 웅크린 짐승이다. 언젠가 순식간에 날개를 펴고 바람으로 날아가 버릴 것이다. 늘 시큰거리는 무릎은 나를 이루는 가장 굵은 매듭. 세상에서 가장 작은 무덤. 그는 천진한 학살자, 날 이곳에 묶어 둔 방랑자. 나는 그가 나를 혁명적으로 다시 써주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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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꿈에서 꺼낸 매듭
꿈에서 꺼낸 매듭 이서하 이를테면 이런 마음, 평생을 가난하게 살던 어느 노부부가 공사판에 나가 함께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늦은 저녁 간식으로 받은 노란 앙금이 들어간 빵을 함께 나눠 먹으며 어휴 달다, 달어 같은 말을 하는 진짜 단것, 목구멍에 차도록 단것 배부르게 단잠이 쏟아지자 부부는 대낮 같은 꿈속에 들었다 헌데 우리가 언제 저녁을 먹었더라? 여기가 내 집이던가? 누가 날 좀 데려가 주오, 아침 진즉에 일하러 가야 한다우 글쎄 정신이 없네. 정신이? 응 집을 나갔대, 이제 나오지 말라며 빵을 건네받은 것이 꿈속의 일이었던가 엊그제의 일이었던가 별의별 소리가 다 있고 별일이 다 있는 진짜 같은 마음, 아프던 다리도 멀쩡해지고 편안한 것이 부부는 좋았으나 먹을 것도 입은 옷도 다 떨어지고 가진 돈도 마땅치 않아 지나가던 개가 풀에 오줌을 갈겨대는 것을 보곤 풀이다!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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