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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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벌레
벌레, 벌레, 벌레, 미안합니다, 벌레, 벌레, 벌레……. 몇 번이나 겹치고 겹치며 쌓아 올린 피의 문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내릴 기세로 나를 굽어보았다. 나는 압도당했다. 무의식적으로 뒤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러자 그 위에 군림하는 두 개의 글이 드러났다. ‘나는’. 그것이 나를 내려다보더니 벽에서 튀어나왔다. 나풀거리며 떨어져 내렸고, 뒤이어 글자의 산이 무너져 내리며 나를 덮쳐왔다. 비명을 지르며 뒤로 기어 도망쳤다. 갑자기 매끄러운 촉감이 손끝에 와 닿았다. 한 장의 사진이었다. 피와 먼지로 더러워진 사진에는 여행 중인 듯한 자매가 찍혀 있었다. 키가 큰 쪽은 머리를 뒤로 묶고 반팔 셔츠와 반바지를 입고 있었으며 큼지막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작은 쪽은 빨간 모자를 썼는데, 여행이라기보단 피크닉이라는 느낌으로 얇고 하늘하늘한 분홍 민소매 셔츠를 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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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충천
우리뿐만 아니라 밥집 아줌마도, 산 아래 카페 주인도 모두들 벌레 얘기를 했다. “얘들은 대체 어디서 배터리 충전을 하는 거야? 편의점? 아니면 태양광 전지인가?” “사람도 자체 발광 기능이 있었으면 좋겠다. 어두운 데서 열쇠를 찾을 때, 극장에서 자리 찾을 때, 좋잖아?” “맞아, 애인이랑 그거 할 때는 은은하게 조절하고.” 그즈음 우리는 다른 공방과 연계한 단체전을 준비중이었다. 지역문화재단에서 지원금도 약속받았겠다, 작품만 잘 만들면 되는 전시회였다. 그런데 전시회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는 다른 공방에 비해 우리는 더디기만 했다. 선생 때문이었다. 선생은 대부분의 시간을 밖에서 보냈다. 머릿속에는 벌레 생각만 가득한지 걸핏하면 벌레 얘기만 했다. “저것들은 어디서 온 거지? 혹시 중국제 흙에 묻어온 게 아닌가? 지방에서 사온 흙은 내가 골라온 거라 요만큼도 안 버렸거든. 중국제 흙은 가끔 저기 가마터에 내다버렸었다.” “그냥 어디서 날아왔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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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관찰
징그럽고 슬픈 벌레. 자꾸만 죽어버리는 벌레. 입을 열면 그런 벌레들이, 이름이 생긴 사과들이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썩은 채로 영영 자라나던 사과나무들이 그것을 바라볼 것 같습니다. 축소된 사과는 뼈처럼 단단하지만 입안에서 살처럼 말랑해집니다. 썩은 부분이 가장자리를 썩게 만들 때까지 유리병 밖의 인간들은 썩은 사과의 맛을 알지 못하고. 반쯤 그을린 얼굴로 사과의 썩은 맛과 썩은 사과의 맛에 대해 생각합니다. 소진되지 않고 계속해서 생겨나는 사과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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