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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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친애하는 비트겐슈타인 선생께
친애하는 비트겐슈타인 선생께 진은영 별빛이 젊은 예술가의 이마 위에 어둠의 긴 자루에서 빠져 날아오는 낫 같이 찍힌 후 더 깊은 심연으로 되돌아가는 밤입니다 로댕 씨의 작업장은 아주 넓고 아름답습니다 저는 지르던 비명을 완성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석고상이나 팔다리 없이 영원을 향해 애무의 몸짓을 던지려는 청동토르소 사이를 거닐고 흰 라일락의 턴테이블에서 밤공기의 검고 낡은 음반이 돌아가며 흘리는 향기를 맡습니다. 타블로이드판 신문 냄새, 새로 깔은 파리 대로의 타르 냄새, 노동자들의 오래된 가죽장화 냄새가 소음처럼 뒤섞이는 곳에서 저는 이곳 주인장의 명성과 그가 만든 조각들의 탄생과 죽음을 써야 합니다. 모든 사람의 혀에 익숙한 맛이 아니라면 파리에 계속 머물기는 힘들겠지요. 이 고요하고도 소란한 저녁 무렵 친애하는 선생 재단 사무원의 갑작스런 전화에 저는 이런저런 상념에서 깨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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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전쟁에 반대하며
강조는 원문을 따름. 6)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이영철 역, 『철학적 탐구』, 책세상, 2006, 173쪽. 7)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위의 책, 165쪽. 8) 차후에 보충할 테지만, 이러한 규정은 이중의 함의를 지닌다. 주디스 버틀러가 강조했듯, 사람은 자신이 애도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이룬다. 동시에 사람은 타인의 응시에 의해서 비로소 그의 내면을 내면으로 인정받는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로 내면은 오롯이 자기 소유일 수 없다. 9)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위의 책, 118쪽. 10) 해비 카렐, 박유진 역, 『아픔이란 무엇인가』, 파이카, 2013, 28~33쪽 참조. 11)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위의 책,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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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공동체를 허물고 세우는 소설 건축술
한유주는 영민한 철학자의 당부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비트겐슈타인, 『논리-철학 논고』)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함구해야 하지, 완전한 이해, 완전한 묘사는 불가능하니까.”(「그리고 음악」) 그러나 이야기와 운명을 같이 해야만 하는 소설가로서의 숙명은 어쩔 것인가…… 그래서 그녀는 말없이 말하려 한다.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지옥은 어디일까」)을 드러내기 위해, 의미를 낯설어 하는 파편적 기표들의 유동적인 흐름 가운데 침묵의 골을 파놓는 말줄임표들을 곳곳에 심어 놓는다. 우리는 “그 침묵의 밑바닥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도사리고 있(「세이렌 99」)”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의미 전달의 수단이라기보다 물질성을 구현하는 감각적 기표, 침묵하는 세이렌, 그것들이 한유주의 텍스트가 고정된 정체성을 확립하는 곳이 아니라 유동적 정체성의 틈 사이로 타자를 불러들이는 장소임을 희미하게 감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