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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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사물과 사물
사물과 사물 한재범 한옥마을을 지나 한국에서 가장 한국적이라는 도시를 지나 점차 사람이 적은 곳으로 간다 텅 빈 고속도로를 타고 엇박자의 배기음을 들으며 내 옆의 그가 연신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고 불편한 조수석 과한 히터 도로 양옆으로 숲이 펼쳐졌고 숲 속에는 무언가 있다 퍽퍽 눈이 쌓이고 그 겨울은 기록될 만한 추위였다 죽고 싶을 만큼 살 수 있을 만큼만 살기로 다짐했다 대도시로 간 건 실수였지 그곳엔 이미 사람들 사이에 숨으려는 이들이 많았다 항상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자 그가 말한다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죠 그는 내 나이에 공장을 다녔다고 했다 너무 많은 걸 일찍 봐버렸다고 공장단지의 조용한 사고사 기계는 무섭게 움직이고 그뿐이다 멈춘 기계를 상상해 봐 그건 이미 세기말의 풍경 한밤의 야산 무언가 툭 튀어나올 것 같지 죽은 것이든 산 것이든 헤드라이트를 켰다 밟지 않기 위해서 더는 길이 보이지 않아 멈춰야겠어 차에서 내려 뒤를 돌아본다 새하얀 도로 가운데 그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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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전망들―감정과 사물
전망들 ― 감정과 사물 김리윤 꿈은 사건을 의미 불명 상태에서 건져내기 쉬운 현실이다. 그런 말을 했던 이웃은 언제나 아래를 향해 45도 정도 기운, 커다란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사람은 위를 볼 수도 위에서 보일 수도 없었다. 그 사람은 날 때부터 모자를 벗을 수 없었고, 그러니까 위를 볼 수도 없었고, 그래서 자신은 정수리 위의 세계를 오직 상상으로만 구성하고 있다고 했다. 거짓말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는 담배나 불이나 마늘 몇 쪽 같은 것을 빌릴 때마다 위를 봤을 때 보이던 것들을 하나씩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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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휴먼들의 소화불량, 비인간-사물의 매혹
표면적 층위에서 사물 그 자체로, 감각적으로 존재하는 것들, 그 사물들은 단순히 장식적이고 부차적인 소재의 기능을 넘어 각각의 인물에 버금가는 존재로서 삶의 여기저기에 배치된다. 이 사물과 인물의 마주침은 그들 서로에게 낯선 감각으로 조우하게 되며, 서로에게 뿜어내는 기호와 징후들은 상호 감지될 것이다. “나무들이 내뿜는 기호에 민감한 사람만이 목수가 된다.”18)는 말처럼 황정은 소설의 사물들이 방출하는 기호를 민감하게 해독하고 해석하면서 번역해 내는 일은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물들이 공명하는 순간의 기록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황정은의 사물들은 대상의 부재로 소환되는 기억의 매개물이나 추억의 부산물로의 기능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 너머에서 사물들이 펼쳐내는 세계의 감각을 적극적으로 읽어냄으로써 무심하게 존재하는 타자-사물들을 새로운 배치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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