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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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불타는 열차
불타는 열차 허연 우리는 모두 뜨거운 수프 같은 열차를 탄 적이 있다 도적이 되어 혹은 야반도주자가 되어 덜컹대는 사연에 올라탄 적이 있다 대개는 취기에 기대어 다시 안 올 거라고 침 몇 번 뱉으며 은하철도에 올라탄 적이 있다 득의양양했지만 마음은 한없이 무너졌으며 두고 온 것들은 어쩌면 그렇게 또렷하게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어두운 차창에서 되살아났는지 밤열차에선 지친 사람들이 조각상처럼 줄지어 쓰러져 누군가는 귤을 씹고 누군가는 계란을 까곤 했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고 죽고 싶었지만 그것을 못 했던 조각상들 굵은 점선 같은 철로를 따라 슬픈 여자들은 쉼 없이 알을 낳고 남자들은 피를 닦아내고 있었다 잠들지 못하는 아이는 공주를 그리고 또 그렸고 거칠어진 공기를 뚫고 뜨거워진 열차는 이제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태우고 옥수수밭으로 들어가는 얼룩무늬 뱀처럼 막다른 세월 속에서 아주 짧은 석양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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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희곡 환승
한동안 열차 소리만 크게 들리고 두 사람, 말이 없다. 5. 신길역 환승을 알리는 소리 들리고 상희 어? 신길역이에요! 민재, 내릴 채비하며 민재 5호선 열차 잘 탈 수 있겠죠? 상희, 스마트폰을 확인하며 상희 조금만 서두르시면 충분히 가능하실 것 같아요. 민재 알겠어요. 고마워요. 민재, 문 앞에 가 선다. 민재 먼저 갈게요. 상희 네, 환승 잘하시고 연락 주세요. 문 열리고 민재, 급히 내린다. 상희, 한참을 스마트폰만 만지작거린다. 열차 빠르게 달리는 소리 크게 들린다. 잠시 후, 전화벨 울리고 상희, 전화 받는다. 상희 네, 환승 잘하셨어요? 다행이에요. 아직 많이 남았죠? 얼른 들어가세요. 네, 감사합니다. 내일 뵙겠습니다. 상희, 전화 끊고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윤아에게 전화 건다. 상희 윤아 님, 잘 들어가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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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그들이 어디 갔나
그들이 어디 갔나 백무산 그래, 그 시절엔 여름비 내려 그저 엉덩짝만 한 물웅덩이만 생겨도 한나절 지나면 물방개 미꾸라지 소금쟁이 땅강아지 새끼붕어 물잠자리 어디서 왔는지 그 새 오물오물 천연덕스레 물장구치고 놀았다 동무들이 비 내리는 호남선을 타고 밤 열차 청량리 행 완행열차를 타고 밤 봇짐 싸서 서울 갈 때 따라갔는지 나도 떠나 공단 검은 도시에 가서 젊음 다 퍼다 주고 빈손으로 와서 좀 쉬어 갈까 했는데 풀벌레소리도 귀에 낯설다 마음의 웅덩이에도 첨벙대며 찾아오는 것 없고 생각의 냇물도 찰랑찰랑 여울지지 못하고 팍팍한 아스팔트다 내 사랑도 푸드득 물살 거슬러 오르지 못하고 창백하다 그 들판에 다시 서니 측량기사가 붉은 말뚝을 박고 있다 그들에게 물방개 소금쟁이 미꾸라지 땅강아지 물잠자리 다 어디 갔나 물었더니 다 측량되어 부동산이 되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