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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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운명
운명 김태동 언젠가 저 물빛 마시며 저수지 물가에 다다르는 저 햇빛처럼 힘겹게 떠, 오르는 이 붉은 꽃들, 그래 그것들 그것들이 제 울음을 물가 풀어놓을 때 나는 내 운명의 살가죽을 이- 저수지에 풀어놓으며 유영하는 뼈다귀 귀신이 되어 거푸, 거푸 헤엄쳐 돌아다닐 것이니, 고기여 그렇게 멀뚱하니 쳐다보지 마라 휘둥그런 눈의 사슬 던지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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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집의 운명
집의 운명 차창룡 흑석동 68-15번지를 떠나 60-8번지로 갑니다 재개발조합에서 온 사람들이 홀로 남은 68-15번지의 지붕을 부수고 벽에 구멍을 뚫습니다 더 이상 사람이 살아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흑석동 68-15번지에 세워진 3층 벽돌집은 아직 젊지만 그렇게 입적했습니다 머지않아 67번지와 68번지가 하나가 되어 거대한 아파트를 하늘로 밀어 올릴 것입니다 기적의 집이여 죽어서도 부디 의연하여라 너의 자궁에서 가난한 생명이 감로수를 얻었나니 너는 네가 아닐 때 더욱 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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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기획 [젊은작가들의 樂취미들] 취미는 사랑
나는 나의 삶이 ‘작가’로 운명 지워졌다고 믿는다. 다시 살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똑같이 살 것이고,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작가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하나의 삶을 더 살 수 있다면, 나, 사실은 FBI(로 대표되는 어떤…… 손수 범인도 때려잡고, 프로파일링에도 능한 그런…… 아, 상상만 해도 두근거려)가 되고 싶다. 그러니까, 총을 무지 잘 쏘는 FBI. 처음 시작은 이랬다. 남자 친구와 데이트 → 남자 친구, 사격게임장을 발견하고 인형을 뽑아 주겠다 함 → 남자 친구가 총 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어쩐지 해보고 싶어짐 → 어? 나 좀 쏘네? 그랬다. 한 번 쏴봤는데, 뭔가 굉장히 짜릿했고, 또 어느 정도 소질이 있었다. 그 강렬한 쾌감을 잊지 못해 그 후로는 내가 먼저 게임장에 가자고 할 정도였다. 몇 년 전 친구와 여행을 갔다가 그곳에서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아주 정교하게 잘 만든 사격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