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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 추구와 윤리 - 2006 제7회
※ 본 글은 KPO 홈페이지(http://philosopiad.org/kpo)의 게시판 중 자료실에 공개된 필자 본인의 글입니다. 홈페이지에 올려진 글에 나온 이름은 "김동윤"으로 되어있지만, 제 이름은 "김동원"입니다. 그 점과 문단 형태를 좀 다듬은 점을 제외하고는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을 복사해 온 것에 일절 수정을 가하지 않았음을 밝혀두는 바입니다. 상기의 사이트에 접속하시면 다른 수상작들도 보실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 제시문은 올려져 있지 않습니다만, 글을 읽고 대충 내용 파악을 하실 수있을 거라 짐작됩니다.===========================================================================대원외고 김동원 - 고등부 금상작<행복 추구와 윤리> 오늘날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큰 축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 구성원들의 각자의 능력을 자유롭게 발휘하여 개인 또는 그 개인이 속한 집단의 소득을 창출하고 부를 축적하는 것을 허용한 사회이다. 사회 구성원들은 잘 살기 위하여 부를 쌓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가 곧 행복의 척도라고 우리는 정의할 수 있다. 즉, 사회 구성원들은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인간이 행복의 원리에 따라서 삶을 산다는 것은 비단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찍이 아리스토텔레스, 에피쿠로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철학가들도 행복을 삶의 선(善)으로 규정하고, “행복한 삶이란 무엇인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탐구하고, 그에 대한 답을 제시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덕과 중용을, 에피쿠로스는 식욕 등 삶의 본질적인 욕망의 추구를, 그리고 스토아 학파의 제논 등은 금욕, 절제를 내세웠다. 이와 같은 철학자들의 답은 곧 각 철학자의 윤리관으로까지 이어져, 행복 추구에 대한 고찰은 윤리학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제시된 글은 행복의 원리가 도덕과 윤리에 적용된다는 생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대립적 의견을 담고 있다. 제시문은 오히려 행복의 원리가 윤리성의 원리와 대립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 근거로 크게 네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제 아무리 보편적인 행복을 의지의 법칙의 근거로 삼는다 해도 그에 대한 인식은 개인의 경험과 변화무쌍한 주관적 생각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에, 행복의 원리는 보편적 규칙을 제시할 수 없다고 기술되어 있다. 행복의 기준에 대한 판단이 가변적이므로 항상 어느 조건 하에서도 동일해야 하는 도덕 법칙의 정언 명령적 성질에 부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로, 자기 사랑을 영리함으로 규정하면서 자기 사랑, 즉, 행복을 추구하는 것의 규칙은 항상 자명한 도덕 법칙과는 달리 모호성을 띠고 있으며 이득을 취하려는 영리함을 통해 규칙의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시문에 나온다. 세 번째, 윤리의 정언 명령을 행하는 일은 언제 누구에게나 가능하나 행복의 윤리에 따른 명령은 구 규칙에 따르기 위한 능력이 요구되기에 드물게만 가능하다고 이 글의 저자는 비판한다. 마지막으로, 행복 추구에 대한 명령의 무의미함을 주장한다.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곧 스스로 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이 제시문의 주장에 대해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도덕 법칙이 필연적으로 타당하고 어떤 경우에서든지 자명하고 지켜져야 한다는 점에 대한 반례를 들자면, 도덕적 딜레마 상황을 들 수 있다. 가령, 어떤 배가 침몰할 위기에 처했는데 구명정에 탐승 정원이 훨씬 넘는 수의 사람들이 타려고 한다. 모든 사람이 타면 구명정 역시 가라앉아 전부 물귀신이 될 것이다. 정해진 수만 타기 위해서는 몇 명의 희생이 필요하다. 이 상황의 사람들은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와 사람의 생명을 최대한 많이 살려야 한다.‘는 두 도덕 법칙의 딜레마에 처하게 된다. 결국 이 상황에서는 전자의 법칙을 따라서 전부 익사하거나, 전자의 법칙에 배치되는 방법을 취할 수밖에 없는 후자의 법칙에 따른 방법을 택해야 한다. 대개 후자의 법칙에 따라 몇 명의 희생을 각오하고라도 최대한 많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받아들여진다. 일화로는 ’칼네아데스의 판자‘가, 법률 조문 상으로는 ’긴급 피난‘이라는 것이 있다. 이 경우,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라는 도덕 법칙의 예외가 인정되었으므로, 제시문의 도덕 법칙에 대한 정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 또한, 제시문은 ‘행복’이라는 개념을 지나치게 편협하게 해석하고 있다. 제시문에서 든 여러 사례 중에는 한 개인의 행복 추구가 타인의 불행 또는 손해가 되는 형식의 사례가 많이 있다. 그러나 모든 행복 추구가 이 사례들처럼 ‘제로섬 게임’이 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한 개인의 부의 증대가 반드시 타인의 부의 상실로 이어지지 않고 대체로 전체 사회의 부가 증대되어 사회 복지의 확대를 가져온다. 이처럼 행복 추구는 전체에게 이익이 되는 ‘윈-윈 게임’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도덕 법칙의 궁극적 목적은 사회의 안정 및 평화에 있다. 이는 곧 사회 구성원들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고로, 윤리성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점들을 제시문의 저자는 간과했다. 도덕과 윤리를 지키는 데는 가끔 고난이 따른다. 그러나 그것은 고진감래라는 말처럼 결국 행복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이 윤리적으로 살게 하려면 행복 추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쾌락적 가치를 좇는 그릇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삼가게 하고, 어떤 행위가 결과적으로 개인에게나 전체에게나 행복을 가져다 줄 지에 대한 각성과 실천 의지가 필요하다. 윤리학은 그 각성과 실천 의지에 관한 교육을 위해 존재한다.===========================================================================시상식이 지난 토요일에 있었지만, 장소가 또 성대라서 패스... 그래서 달랑 저 혼자만 부상인 상금을 받지 못했다네요.. ㅡㅠ 3만원이라지만.. 시상식 안 왔다고 상금 안 주는 건.. 왠지 억울하다는 느낌도 들고.. 글자 수 세기 프로그램 돌려보니 글 길이가 대충 2400자 안팎으로 나옵니다. 여러분들의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 싶어서 비평글 게시판에 올려봅니다. p.s. 본 대회는 고등부에서 대상 1명, 금상 2명, 은상 3명, 장려상 4명이 수상하였습니다.(은근 슬쩍 3등안에 들었다고 자랑하는 김씨..ㅡㅡ;)↑돌을 던지시면 회피스킬이 준비되어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