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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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시 자신만은 천국에 갈 것이라 굳게 믿는 이들이 모인 지옥
자신만은 천국에 갈 것이라 굳게 믿는 이들이 모인 지옥 서효인 지상에 빛이 쏟아져 그들의 허연 입김과 몸을 섞었다. 내 할아버지에게서도 같은 냄새가 났었다. 하루치 노동을 끝내고 돌아와 유황처럼 냄새를 뿜었다. 씻겨지지 않는 그것들을 매단 채 모로 누워 텔레비전을 보았다. 천국에 갔을지는 모른다. 그의 장례식에는 동네 교회의 집사와 간사가 여럿 모여 찬송가를 불렀다. 찬양하였다. 불쑥 쏟아지는 빛에 눈을 찡그렸다. 장창을 든 천사가 다가와 서명을 요청하였다. 나는 이름만 적으면 천국에 갈 수 있는 건지 물었다. 천사는 말했다. 믿는 자는 의심할 자격이 없거늘. 내 할아버지는 끝내 문맹이었으나 이름만은 적을 줄 알았다. 그렇다면 그는 천국에 갔을까. 하나 그는 여기에 없고 믿는 자들에게서는 할아버지의 냄새가 났다. 그들은 사역 중이었다. 일하는 중이었다. 매달려 있었다. 노동을 마친 할아버지는 기도 없이 저녁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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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왜 고통은 증언되어야 하는가
“수천 번 / 살아나고 뒈지는 곳”이라는 표현을 통해 시인은 “어느 별의 지옥”에서 여성의 고통이 까마득한 시간 동안 지속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이미지에는 고통을 감응케 하는 호소력이 있으며 역사적 차별을 하나의 이미지로 응집한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그런데 내가 이 작품을 숙고하게 되는 것은 시집의 제목이 된 이 마지막 표현 때문이다. 시인은 여성의 삶을 ‘어느 별의 지옥’, 즉 지구에 현전하는 지옥이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그것은 여성의 고통만을 초점화할 때만 타당하게 들린다. 여기서 자연물은 여성의 오랜 고통을 빗대기 위한 하나의 이미지로 종속된다. 다시 말해 자연물은 고통을 느끼는 주체로서 호명되지는 않는다. 오직 여성만이 고통의 주체이고 지구와 지구상의 동식물은 고통을 주거나 여성적 고통을 표현하는 배경이 된다. 김혜순은 사람이 인간 중심적이라는 의미와 유사한 맥락에서 여성주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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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커버스토리 3월호
「기도」(황시운, 《문장 웹진》, 2월호)를 읽고 뜨거운 반복 나미나 가끔 이 현실이 지옥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어디의 누군지도 모를 신에게 기도를 하곤 한다. 부디 이 상황을 누군가 알아주기를. 하지만 그 누구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이 소설을 읽으며 내 마음을 누군가 알아주길 바란다면 나 먼저 주변을 살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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