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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퀴어 테크놀로지(들)로서의 소설 – 김봉곤식 쓰기, 되기
(김녕, 「선명(鮮明)에서 창연(蒼然)으로-혐오에 응수하는 최근 퀴어 텍스트들에 대한 스케치」, 『실천문학』 2018년 여름호, 173-174면, 179-180면) 한편 '퀴어 서사'라는 명명에 국한되지 않고 보편성과 화해('퀴어 서사 이상이다!')해야 한다는 근래의 비평적 호명들은 실은, 퀴어 서사를 역으로 단일화하고 압축하는 것은 아닐까? 퀴어 서사로 '균일'하게 보지 말자는 우려야말로 퀴어 서사 내부의 결들을 '덜' 보기 위함이 아닐까? (퀴어 서사의 특징들은 벌써 충분히 독파된 것일까?) 퀴어 서사들 내부의 인물들, 형식들, 장르들을 더 풍부하게 독해하고 명명해야 한다. 9) 게일 루빈이 욕정(lust)과 젠더를 구분하고 근원적 사회적 과정/제도로부터 탈각하면서 욕정이라는 정동의 영역은 섹슈얼리티 장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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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실패의 의지
하지만 우리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독해한다면, 퀴어 사랑이 실패한 지점은 규범화된 사랑의 불가능성에 대한 증명이자 가능한 퀴어 사랑에 대한 질문이 생성되는 자리라고도 할 수 있다. 잭 핼버스탬을 경유하자면 이때의 실패란 규범적인 것에 대한 실패, 즉 “통달에 대한 거부로, 자본주의 내에서 성공과 이윤이 직관적으로 결탁하는 데 대한 비판으로, 패배에 대한 반헤게모니적 담론”16)으로 읽을 수 있다. 위에서 본 것처럼 퀴어 사랑의 실패 서사는 규범적 시간성과 퀴어 생애 주기의 불일치,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공백을 주시하게 한다. 지배적 시간관과 퀴어 생애 주기가 결코 조응할 수 없는 장면에서 퀴어 사랑의 불가능성이 노출되는 것이다. 4. ‘실패는 실패를 환영한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는 물론 중요한 의제임에 틀림이 없지만, 그 전에 선행되어야 할 질문은 가족을 이룬다는 것에 대한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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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웹진 > 문장웹진 > 비평 저들은 나를 알지 못하나이다
이를 퀴어-게이적 주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시대 퀴어 문학이 도달한 퀴어 미학의 한 대목이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정확히 인식하고, 그것이 가진 위험성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 감정을 향해 나아가는 것. 박상영은 오토픽션을 통해 그러한 퀴어 미학의 한 정점에 도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기구원에 도달하고 있다. 물론 “‘퀴어’ 속 주체들은 단일하지 않다”.15) 지금까지 서술한 퀴어-게이적 특징들은 박상영 소설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김병운, 박선우, 김봉곤 등의 퀴어-게이 작가들은 박상영과는 또 다른 차별점을 보여준다. 그 차이들을 세심히 살피고, 서술하는 것이 퀴어-게이 문학의 논의를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겠지만 이 글에서는 예수 같은 이율배반을 경유해 베드로처럼 배신하고,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박상영의 서사만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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