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웹진(9)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모로
지하철역 근처나 번화가에서 광고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이나 잡지 구독과 우유, 학습지 판촉 매대와 다를 바 없었다. 확성기를 틀고 예수 천국 불신 지옥을 외치는 것도 아니고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런저런 설교를 길게 하는 것도 아니었다. 눈에 띄는 점이 있다면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간혹 현지 옆에 있던 그 남자처럼 사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이십 대 초중반이었다. 그들은 서로 농담을 주고받는지 웃고 떠들었다. 왁자지껄한 분위기와 산뜻한 목소리로 지나가는 이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호기심을 보이는 노인들도 있었다. 대화를 하며 팸플릿을 들춰 보기도 했다. 둥그런 벤치에 비둘기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노인들과 그들 곁에 서서 함께 웃고 떠드는 젊은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활기찬 풍경이었다. 내 시선은 계속해서 현지를 찾아다녔다. 그런 내가 현지를 우연히 보게 된 곳은 술집과 카페가 즐비한 번화가였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_콤마 > 소설 무중력 스페셜
쇼핑, 아이 학원, 학습지 같은 결정은 점점 어려워졌다. 안나는 요즘 자신의 역할이 최대한 잘 소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생필품, 반찬 같은 것부터 아이 교육에 관한 것까지 최대한 모든 정보를 취합해 최선의 판단을 내리는 것.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고민할 새도 없이 흐름에 맡기면서 왜 이렇게 사소한 일에 집착하느냐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즘 들어 안나는 유능감을 느낄 수 있는 일이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예전에 직장을 다닐 때 느꼈던 매우 주관적인 감정. 뭔진 모르겠지만 뭔가 해내고 있다고 느꼈던 기억들. 동료들과 상사 험담이나 회사 욕 같은 별거 없는 대화를 나누며 느꼈던 공감대. 퇴근 후, 주말의 해방감. 아이의 유치원 상담을 하러 갔다가 교사가 신고 있는 뒤축이 닳은 고무 슬리퍼를 보고 안나는 문득 할 일이 있고 돈을 버는 교사가 부러웠다.
-
문장웹진 > 문장웹진 > 소설 화이트아웃
저 사람, 학습지 선생을 할 때 신었던 낮은 굽의 구두가 떠오른다. 비좁은 현관에서 구두를 벗을 때마다 저 사람은 부은 발을 빼내느라 신음소리를 냈다. 원탁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난 후에도 부은 발등은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바깥쪽이 비스듬히 닳아버린 저 사람의 구두는 지금도 여전히 신발장 한 쪽에 놓여 있다. 저 사람, 지하철 역 계단을 걸어 내려간다. 하이힐이 보이지 않고 종아리가 그리고 옹송그린 두 어깨가 사라진 뒤 이윽고 보이지 않는다. 언젠가 내게 엽서 한 통쯤은 보낼 것이다. 제 사는 곳의 수려한 풍광을 담은 사진엽서일 것이다. 잘 살고 있어요. 주머니 속에 사진을 꺼내든다. 아이의 얼굴 위를 손끝으로 매만진다. 이를 드러낸 채 웃고 있는 아이의 표정 어딘가에 긴장감이 배어 있다. 웃어요, 활짝. 촬영기사의 채근에 아이는 마지못해 입술을 열었을 것이다. 사진을 내려다보며 훌쩍 커버린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디어 대디(Dear Daddy).
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