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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21세기―살림의 시, 삶의 기획 곤경을 넘어 애도에 이르기까지
1. 그날 이후의 풍경
문학은 누군가에겐 상처의 기록이라는 생각을 오래도록 해왔었다. 내가 문학에 입문하게 된 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청춘이라 불리던 시절 내가 공감하고 매혹되었던 시와 소설도 상처와 마주 선 글들이었다. 비평가로서의 글쓰기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글을 쓰는 행위는 한편으로 내게 막막하고 암담한 현실을 버티며 살아갈 힘이 되어주었다. 글 쓰는 행위로 존재를 견디며 그렇게 주변의 자리, 소외된 자리가 문학의 자리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무척 자연스러운 이행이었다.
그런데 어떤 상처는 문학이 설 자리를 앗아가 버리기도 한다. 거리를 두는 일도 위로를 건네는 일도 비판적 성찰조차도 어렵게 만드는 절대적 슬픔 앞에서 때론 문학은 너무나 무기력하다. 2014년 4월 16일, 눈으로 보면서도 믿을 수 없었던 광경을 이 땅에 사는 모든 이들이 지켜봐야 했던 그때 이후로, 시를 쓰고 소설을 쓰고 비평을 하는, 이른바 ‘문학’을 한다고 믿어왔던 많은 이들은 그런 곤경과 마주해야 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확인하고 우리의 민낯을 확인하는 일의 곤혹스러움. 예고 없이 맞닥뜨린 그 곤경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막막해 넋 놓고 있기도 했을 것이다. 저 절대적 슬픔 앞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야 했고, 한없이 비루하고 초라한 나의 언어를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곤경 앞에서 절망하면서도 주저앉아버릴 수는 없었다. 주저앉는 것은 문학의, 시의 몫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날 이후 우리 문학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접촉지대’에 놓이고 만 것일지도 모른다. 이 곤경을 어떻게 통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는 접촉지대. ‘세월호 참사’는 우리 문학을 그런 자리에 서게 했다.
곤경을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은 쓰고 읽고 나누며 기록하고 기억하는 길밖에 없음을 지난 1년 3개월여의 시간을 지나면서 우리는 자연스레 체득해왔던 것 같다. 2014년 4월 16일, 그날 이후의 문학이 달라야 한다는 당위의 차원을 넘어서, 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자연스럽게 열리고 있다. 그날로부터 1년하고도 3개월가량이 더 지난 지금의 시점에서 그날 이후의 풍경을 문학적 글쓰기의 실천을 중심으로 돌아본다면, 현실이 문학을 다른 세상으로 이끄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무엇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날 이전의 문학과 이후의 문학은 달라졌다. 아니, 달라진 건 문학이 놓인 풍경, 우리들 마음의 풍경인지도 모르겠다. 당위와 윤리의 차원을 넘어서 서서히 다른 세상이 열리고 있다고 나는 고백하련다.
2. 불편한, 두려운 고백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를 겪으며 이 믿을 수 없는 사태가 우리 시대를 전혀 다른 자리로 이끌 거라는 예감에 많은 이들이 사로잡혔을 것이다. 이 예감은 어떤 면에서는 적중했고 어떤 면에서는 빗나갔다. 여전히 현재진행형 사건이라는 점에서 세월호는 우리 시대를 다른 자리로 이끌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아무것도 밝혀지거나 해결된 것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의 시계를 2014년 4월 16일에 멈춰 세우고 말았다. 세월호를 통해 우리의 민낯과 바닥을 다 보아버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우리가 바닥이라고 생각했던 곳이 바닥이 아니었음을 날마다 환기시켰다. 1980년대를 통과한 많은 이들이 ‘광주’를 트라우마로 기억할 수밖에 없었듯이, 2014년 4월을 통과한 이들에게 세월호는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1980년대의 문학에 ‘광주’가 깊은 상처로 아로새겨졌듯이 2014년 이후의 우리 문학은 ‘세월호’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가늠하기 어려운 절대적 슬픔 앞에서 한없이 초라할 수밖에 없는 문학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 슬픔과 분노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뿐일 것이다. 그날 이후 시인, 소설가, 비평가 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자발적인 문학 활동은 기억의 투쟁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기록하는 일은 물론이고 그날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과 생존자 및 그 가족들에게, 광화문과 청운동과 우리의 거리와 광장에,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고 어떤 감정의 변화를 겪었는지 기록하는 일, 겨우 1년 3개월여 만에 무엇을 망각하고 지우려고 하는지, 무엇을 지겹다고 말하는지, 무엇으로부터 도망가려고 하는지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 또한 문학의 몫이 될 것이다.
그날 이후 읽고 쓰고 기억하고자 하는 문학적 실천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다. 작가회의를 중심으로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라는 공동 시집을 출간했고 시를 쓴 시인들이 광화문이나 서울광장의 세월호 문화제에 나와 광장의 시민들 앞에서 시를 낭송했다. 김애란, 김연수, 김행숙, 박민규, 진은영, 황정은 등이 중심이 되어 『문학동네』에 연재한 세월호 관련 기록들은 『눈먼 자들의 국가』라는 이름으로 책으로 묶여 출간되어 널리 읽혔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그 밖에도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의 육성을 기록한 『금요일엔 돌아오렴』, 인문학협동조합이 기획한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 세월호 이후 100일이 넘는 기간 동안 일기처럼 그날의 아픔을 기록한 전영관 시인의 『슬퍼할 권리』,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 거주하며 치유공간 ‘이웃’에서 이웃 치유자로 살아가고 있는 정혜신 선생과 진은영 시인의 대담을 기록한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 등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많은 시인들, 작가들이 세월호와 관련된 책들을썼지만 그 책들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은 아니었다. 문학이되 이미 문학 너머의 것인 이 글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세월호와 관련된 문학적 실천은 이전과는 다른 세상으로 우리 문학의 자리를 서서히 열어주고 있는 것 같다. 특히 ‘304 낭독회’와 ‘생일시 쓰기’는 시민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 시민들과 함께 이어가고 있는 문학 활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보인다. ‘304 낭독회’는 2014년 9월 20일 4시 16분에 광화문 광장에서 시작된 한 줄 선언 낭독회로, 2009년에 있었던 ‘6·9 작가선언’의 맥을 잇는 문학적 실천이었다. ‘304 낭독회’의 문제의식은 ‘사람의 말’을 하겠다는 ‘6·9 작가선언’의 문제의식과 맥이 닿아 있었지만, 시민들과 함께한 선언이었다는 점에서 그 형식은 좀 더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6·9 작가선언’은 시인, 작가, 비평가 들이 주체가 된 선언이다 보니 이후 창작을 통해 각자의 문제 의식을 지속해갔다고는 해도 선언 자체는 일회성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304 낭독회’는 시인, 작가, 비평가 들과 시민들이 함께하는 한 줄 선언으로 시작된 만큼 시인, 작가, 비평가 들은 물론이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낭독회로자리 잡아 가고 있다. 세월호에 관해 직접 쓴 글이나 마음에 드는 글을 가져와서 함께 읽고 듣는 ‘304 낭독회’는 광화문, 청운동, 시청, 대학로, 연희창작촌, 대학교 등으로 장소를 옮겨 가며 매달 진행되어왔는데 어느새 11회를 채웠고 곧 12회를 앞두고 있으니 일 년 가까이 진행되어온 셈이다.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304명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의미로 ‘304 낭독회’라 이름 지었지만 한편으로는 304번의 낭독회를 진행하도록 그날의 아픔과 분노와 슬픔과 부끄러움을 잊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하다.
‘304 낭독회’를 시작할 때 여는 글에서 항상 “오래 읽고, 쓰고, 행동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을 먼저 되뇌는 까닭도 망각과 싸우는 기억의 투쟁에서 함께 읽고 쓰고 행동하는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있기 때문일 것이다. ‘304 낭독회’는 시작하는 말을 하고 나서 한 사람씩 나와 준비한 글을 읽고 모두가 읽기를 마치면 행사가 끝난다. 무언가 다른 것을 기대하고 낭독회에 온다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낭독의 시간이 주는 공감의 힘은 생각보다 크고 무겁다. 낭독의 힘 못지않은 듣는 힘이 작동하는 공간은 낭독회가 진행되는 동안 전혀 다른 공간으로 태어난다. 타인의 말에 공감할 준비, 누군가의 말을 진심을 다해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앞에서 준비한 글을 낭독하고 함께 듣는 경험은 짙고 오랜 여운으로 마음 깊이 울려 퍼진다. 그 공간의 공기를 바꾸는 힘이 거기에서 만들어진다. 이 공간에서 만들어지는 공감력과 감응력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퍼져 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한없이 느려도 눅진하게 공기에 들러붙어 좀처럼 흩어지지 않을 기운이 그곳에서 생성되고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시인이든 시민이든 낭독자의 자리에 서면 자신의 곤경을 고백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것은 말할 수 없음을 말하는 일이자 부끄러운 자신과 마주하는 일임을, 그럼에도 말해야 하는 일임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의 마음을 치유하는 첫발일지도 모르겠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생일을 맞아 아이들의 목소리를 받아 적는 ‘생일시쓰기’활동도 시인들을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이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해 그들의 친구들 및 지인들과 시인들이 함께하는 활동이라는 점에서 전문적 시인과 시민의 경계를 허무는 ‘접촉지대’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문학적 실천이라 부를 수 있을 듯하다. 조심스럽고 불편하고 두려운 고백이지만 그 고백의 경험은 시를 쓴 시인에게뿐만 아니라 그 시를 함께 읽고 나눈 이들에게도 특별한 공감과 치유의 시간을 경험하게 해줄 것이다. 좋은 문학이 영혼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3. 곤경의 기록을 넘어
그날 이후 우리 모두가 놓인 곤경을 쉽게 타개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명명백백하게 진상이 밝혀지지 않는 한 우리는 내내 저 곤경과 마주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섣불리 치유를 말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도저히 시를 쓸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까닭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몸소 겪거나 가까이서 지켜본 이들의 아픔과 비교할수는 없겠지만 사실상 우리 모두가 목격자이자 사건 당사자였던 사건이 세월호 참사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목격하고 경험한 저 사건을 기록하는 일도 비단 시인, 작가들만의 몫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4. 16. 11:18-
아니요……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는 여기, 있습니다
아니요…… 죽임이 나타났습니다 사선 뒤의 사선이 나타났습니다
뉴스가 꺼지고,
카톡이 안 되는 시간입니다
스마트폰이 숨 거둔 시간입니다
기다려라 기다려나 봐라 기다려버려라, 없어진
우리는 천천히 오그라듭니다
고통이 너무 많이 천천히, 천천히 옵니다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죽임이 옵니다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죽임이 만집니다
우리는 천천히, 천천히 죽임이 알아봅니다
우리는 다급히…… 죽음을 모릅니다
헤어지지 않습니다, 버려졌으니까 네 손과 내 손을
묶습니다 정말 없어질지도 몰라, 입 맞춥니다
젖은 몸을 안습니다 젖었으니까 안습니다 웁니다
그칩니다 웁니다 어둡습니다
무섭습니다
미끄러지고 뒹굴고 떨어지고 부딪히고 처박힙니다
떱니다
찢어지고 흘립니다 움켜쥐고 끊어지고 긁습니다
부러집니다 꺾입니다 그리고……
어둡습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숨을 안 쉽니다
우리는 너무 자꾸 피에 젖습니다
모면하고 모면하고 모면합니다 실낱같이
가혹해집니다 희미하게 희미하게, 살아집니다
고통이 너무 많이 번개처럼 옵니다
고통이 너무 많이 번개처럼 웁니다
살고 싶어요를…… 죽고 싶어요를 눌러 죽이는 시간입니다
아픕니다 아팠습니다 아팠던 것 같습니다
아프고 있습니다
끝났습니까 끝났습니다 끝났습니까 끝났습니까……
(……)
0. 00. 00:00
초록 바다 수평선 너머 먼 곳으로 수학여행 가야 해요
수학여행, 가고 싶습니다
수학여행 보내주세요
아니, 아니…… 돌아가야 해요
예쁘고 미운 친구들과 괴롭고 즐거운 학교와
인사하던 골목길과 상점들에게로 그렇고 그런 사람들에게로
돌아가야 해요, 꿈꾸고 꿈꾸고 꿈꾸면 괜찮아지던 곳으로,
끝내 와주지 않던 그, 나라라는 곳으로 돌아가야 해요
무엇보다, 몰래 우는 엄마에게로
숨죽여 울어야 하는 아빠에게로
집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수학여행 다녀오고 싶습니다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수학여행 다녀올게요
—이영광, 「수학여행 다녀올게요」부분
이미 많은 지면에서 소개된 이영광 시인의 「수학여행 다녀올게요」는 두 번째 ‘304 낭독회’에서 낭독된 시이다. 4월 16일 사건 당일 08시 59분부터 10시 11분까지의 시간, 배가 기울자 단원고 학생들을 비롯한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에 따라 구조를 기다리던 바로 그 시각으로부터 시작해 같은 날 11시 18분, 스마트폰이 멎은 시각을 지나, 4월 17일, 18일, 20일, 그리고 영원히 지속될 무한대의 시간을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은 단원고 학생들의 목소리로 기록한 시이다. 이영광의 ‘유령’연작시 여섯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찍은 스마트폰 동영상을 통해 우리가 듣고 보았던 목소리들이 이 영광의 시에 살아 있다. 그는 충실하게, 따라서 몹시 고통스럽게 사건의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스마트폰이 멎은 이후에는 우리가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었던 장면들과 소리들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빌려 기록된다. 이 시를 쓰고 낭독할 때 이영광 시인은 무巫의 자리에 가닿았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목소리를 말하게 하고 들을 수 없는 소리를 듣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의 접촉지대를 오가는 무당은 치유의 기능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그날 현장에서 낭독될 때 이 시도 상처 입은 우리 모두의 영혼을 어루만져주고 치유해주는 놀라운 힘을 보여줬었다. 사건 당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이 느꼈을 복잡한 감정과 말도 안 되는 일을 목격하며 우리 모두가 겪어야 했던 감정들을 어루만지고 아파하고 슬퍼하게 하는 힘이 이 시에는 있었다. 정제된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날것의 목소리로 전달되었기 때문에 이 시는 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아빠 미안
2킬로그램 조금 넘게, 너무 조그맣게 태어나서 미안
스무 살도 못 되게, 너무 조금 곁에 머물러서 미안
엄마 미안
밤에 학원 갈 때 핸드폰 충전 안 해놓고 걱정시켜 미안
이번에 배에서 돌아올 때도 일주일이나 연락 못 해서 미안
할머니, 지나간 세월의 눈물을 합한 것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해서 미안
할머니랑 함께 부침개를 부치며
나의 삶이 노릇노릇 따듯하고 부드럽게 익어가는 걸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
아빠 엄마 미안
아빠의 지친 머리 위로 비가 눈물처럼 내리게 해서 미안
아빠, 자꾸만 바람이 서글픈 속삭임으로 불게 해서 미안
엄마, 가을의 모든 빛깔이 다 어울리는 엄마에게 검은 셔츠를 계속 입게 해서 미안
엄마, 여기에도 아빠의 넓은 등처럼 나를 업어주는 포근한 구름이 있어
여기에도 친구들이 달아준 리본처럼 구름 사이에서 햇빛이 따듯하게 펄럭이고
여기에도 똑같이 주홍 해가 저물어
엄마 아빠가 기억의 두 기둥 사이에 매달아놓은 해먹이 있어
그 해먹에 누워 또 한숨을 자고 나면
여전히 나는 볼이 통통하고 얌전한 귀 뒤로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아이
제일 큰 슬픔의 대가족들 사이에서도 힘을 내는 씩씩한 엄마 아빠의 아이
아빠, 여기에는 친구들도 있어
이렇게 말해주는 친구들도 있어
“쌍꺼풀 없이 고요하게 둥그레지는 눈매가 넌 참 예뻐”
“너는 어쩌면 그리 목소리가 곱니,
어쩌면 생머리가 물 위의 별빛처럼 그리 빛나니”
아빠! 엄마! 벚꽃 지는 벤치에 앉아 내가 친구들과 부르던 노래 기억나?
나는 기타를 잘 치는 소년과 노래를 잘 부르는 소녀들과 있어
음악을 만지는 것처럼 부드러운 털을 가진 고양이들과 있어
내가 좋아하는 엄마의 밤길 마중과 내 분홍색 손거울과 함께 있어
거울에 담긴 열일곱 살, 맑은 내 얼굴과 함께, 여기 사이좋게 있어
아빠, 내가 애들과 노느라 꿈속에 자주 못 가도 슬퍼하지 마
아빠, 새벽 세 시에 안 자고 일어나 내 사진 자꾸 보지 마
아빠, 내가 여기 친구들이 더 좋아져도 삐치지 마
엄마, 아빠 삐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하은 언니, 엄마 슬퍼하면 나 대신 꼭 안아줘
성은아, 언니 슬퍼하면 네가 좋아하는 레모네이드를 타줘
지은아, 성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노래 불러줘
아빠, 지은이가 슬퍼하면 나 대신 두둥실 업어줘
이모, 엄마 아빠의 지친 어깨를 꼭 감싸줘
친구들아, 우리 가족의 눈물을 닦아줘
나의 쌍둥이 하은 언니 고마워
나와 함께 손잡고 세상에 와줘서 정말 고마워
나는 여기서, 언니는 거기서 엄마 아빠 동생들을 지키자
나는 언니가 행복한 시간만큼 똑같이 행복하고
나는 언니가 사랑받는 시간만큼 똑같이 사랑받게 될 거야,
그니까 언니 알지?
엄마 아빠
나는 슬픔의 큰 홍수 뒤에 뜨는 무지개 같은 아이
하늘에서 제일 멋진 이름을 가진 아이로 만들어줘 고마워
엄마 엄마
내가 부르고 싶은 노래들 중 가장 맑은 노래
진실을 밝히는 노래를 함께 불러줘 고마워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더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
—진은영, 「그날이후」전문
단원고 2학년 3반 학생이었던 故유예은의 생일시로 쓰인 이 시도 ‘304 낭독회’에서 낭독되었다. 이 시는 ‘예은이가 불러주고 진은영 시인이 받아 적다’라는 부기와 함께 『천사들은 우리 옆집에 산다』에도 수록되어 있다. 예은이의 목소리로 말하는 이 시를 읽다 보면 예은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 소녀였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예은이의 목소리로 이 시를 받아 적기까지 시인은 예은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귀 기울여 들었을 것이고 예은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세심히 들여다보았을 것이다. 그 공들임의 시간이 시인에게 예은이의 목소리를 허락해주었을 것이다. 아빠, 엄마, 할머니, 하은 언니, 성은이, 지은이, 이모, 친구들을 하나하나 호명하며 남겨진 가족과 친구들을 걱정하고 미안해하는 예은이의 예쁘고 안타까운 마음이 잘 담긴 이 시는 기막힌 참사 앞에서 충분한 애도의 시간을 갖지 못한 가족들에게 예은이가 들려주고 싶었을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애도를 허락한다. 이별의 시간조차 갖지 못했던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사랑하는 아이와 작별할 시간을 선사한다. 슬픔의 바닥까지 가닿을 수 있을 때 슬픔을 넘어서는 일도 가능해질 것이다. 무당과 같은 교통의 기능을 한다는 점에서 이 시는 이영광의 시와도 상통하지만, 이영광의 시가 고통을 기록하는 데 좀 더 충실했다면 진은영의 시는 예은이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위로를 우리들에게 건넨다. 이영광과 진은영의 시는 이렇게 곤경을 넘어 치유의 시간을 열어준다.
딸을 잃고 40일째 단식 중인 아빠 앞에서
폭식투쟁 한다고 떠들썩한 꼬마 마귀들,
단식 3일째 안내문을 앞뒤로 써붙이고
자장면 시켜 먹는 늙은 마귀들,
연옥에도 장유유서는 있다고
어버이들 뒤에 엄마들, 그 뒤에 대학생들,
줄줄이 늘어선
마계서열 100위권 밖의 떨거지들,
10위권 이내의 강자들은 그렇게 안 하지
먼저CCTV를 끄지
가만있으라고 말하고는 자기도 가만있지
이놈이 범인이라고 뼈만 남은 시체를 던져주지
자기는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그래도 밝히라, 밝히라, 밝히라고
단식하는 이들이 백 명, 천 명, 만 명으로 늘면
멀리 도망가서 오뎅을 먹지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경내에서 술래잡기를 하지
그래도 밝히라, 밝히라, 밝히라고
동조하는 이들이 만 명, 이만 명, 삼만 명이 되면
교황 앞에서 총칼 들고 열병식이나 하지
애들 대신 경제는 꼭 살리겠다고 동문서답하지
컨트롤도 안 되고 타워도 없어서
대뇌피질에 숭숭 싱크홀이 생겼지
그래도 밝히라, 밝히라, 밝히라고
천국의 아이들이 보내주는 환한 빛이
그 구멍들을 죄다 비추지 그렇게.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오겠지
꼭 오겠지
—권혁웅, 「마계대전」전문
세월호 참사 이후 시에 주어진 소명이 있다면 그것은 그 후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를 낱낱이 기록하는 일일 것이다. 5·18 광주 민중항쟁의 진상이 알려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이 소요되었으며, 진상이 규명된 후에도 학살의 주범이 제대로 된 책임을 지지 않았고, 심지어 5·18의 상징과도 같은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탄압이 다시 꿈틀대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의 현장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이 이후 어떻게 살아왔는지 기억하는 일에 우리는 소홀했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인 힘은 1980년 5월의 광주는 이미 지난 역사가 아니라 여전히 살아 있는 역사이며 지금껏 우리 곁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처임을 아프게 증언했다는 데 있을 것이다. 어쩌면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를 겪고서야 우리는 1980년 5월의 아픔을 다시 기억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기까지도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날 이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하다. 권혁웅은 『마징가 계보학』이후 지난 시절의 문화사를 그려왔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 이후를 기록한다. ‘304 낭독회’에서 낭독된 「마계대전」은 그날 이후 광화문에서 벌어졌던 목불인견의 참상을 보여준다. 진상 규명을 외치며 단식농성에 돌입한 김영오 씨를 비롯한 유가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였던 이들, 온갖 방법을 동원해 유가족들을 조롱하고 그들의 마음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이들을 “마계서열 100위권 밖의 떨거지들”이라 호명한다. 마계서열 10위권 이내의 강자들이 진상을 은폐하기 위해 무슨 짓을 벌였는지도 낱낱이 기록한다. 그날 이후에도 1년 3개월여의 시간 동안 우리가 얼마나 믿을 수 없는 일들을 계속 겪어야 했는지를 권혁웅의 시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를 목소리 높여 외쳐 보아도 CCTV를 끄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범인의 시체를 던져주고 교황을 모독하고 모든 문제를 경제로 환원해 동문서답하며 지쳐서 나가떨어지기를 기다린다. 어쩌면 시인의 바람처럼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꼭 올 거라 믿으며 기나긴 기억 투쟁을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 긴 싸움이 우리 문학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리로 이끌 것이다.
정영효가 말했듯이 “많은 게 사라졌고/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갑작스럽게 떠돌던 풍문이 사라지면/풍문이 없어진 확실한 이유도 사라”질 것이고 “굳게 입을 닫을 때 우리” (「사라졌다」)도 사라질 것이다. ‘파도처럼 펼쳐지는 어둠’ 속에서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끊임없이 말하고 기록하고 기억해야 할 것이다.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는 망각과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접촉지대에서 시인, 작가와 시민 들이 함께 읽고 쓰고 기억하는 일을 지속해야 할 것이다. 권여선의 말을 빌리면 세월호를 기억하는 일은 고통의 무늬를 포개놓는 일이다. 저마다의 고통과 세월호의 고통이 포개질 때, 고통을 어루만지고 마음을 포개며 서로 공명하고 치유하는 시간도 서서히 열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