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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학집배원
나는 수미를 만나러 갔다. 오로라와 나비가 생긴 발로 내가 만나러 간 사람은 2031년의 수미는 아니고 2022년의 수미였다. 2022년이 막 시작된 겨울에 수미가 내게 어떤 협곡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수미가 일러준 협곡 입구로 가서 표를 끊었다. 그곳은 남한 최북단 마을에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자 까마득한 암반 절벽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자신이 일이 끝나는 시간대와 얼추 맞을 거라고 수미가 말했다. 나는 주상절리의 무늬들을 건너다보면서 절벽에 긴 선반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걸었다. 벼랑길 밑으로 하얗게 언 강이 이어졌고 그 위를 사람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강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가끔씩 멈춰 서서 이쪽 벼랑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절벽 위를 한 시간 남짓 걷고 나서야 나는 넓은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공원 한쪽에 빨갛고 기다란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방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의 줄 끝에 서 있다가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누군가 이미 앉아 있어 대각선 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협곡 탐방객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나는 룸미러로 버스 기사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마스크를 더 올려 써야 했다. 구독자가 2,01만명인 한 여행 유튜브 채널에 수미가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개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수미는 버스가 설 때마다 승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트레킹 코스가 엉켜 헤매는 사람들한테 막힘없이 대안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더 거쳐 내가 표를 끊었던 협곡 입구로 왔다. “끝났다, 일.” 그렇게 말하고 수미는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는 걸었을 테니 얼음 위를 걷자고 하면서. 나는 수미를 따라 강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금세 얼음 트레킹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 틈에서 운동화를 신은 건 수미와 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또 금세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양옆으로 현무암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마치 하늘이 보이는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미와 나는 눈이 희끗희끗하게 덮인 얼음 위를 걸어서 암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며 좁은 협곡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벗었고, 곧이어 양말도 벗었다.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 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
혼자 가는 먼 집 남지은 일곱 살처럼 살라고 엄마는 말하고 뭐든지 서서히 하라고 아빠는 말한다 삼 년 안에는 첫 시집을 내야지 선배가 조언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해요 치료사가 당부한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언니가 혼잣말처럼 물어오고 시를 몇 편 쓰면 시인이 되나요 시인은 시만 쓰나요 시가 아니면 안 되나요 글쓰기 수업 학생들이 열띠게 질문한다 덜 핀 작약을 안아든 귀갓길 울 데가 필요해서 찾아왔다고 뵌 적 없는 시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니 여기까지 잘 왔네, 하신다* 사랑 많은 손을 붙들고 나는 여기 무어든 받아 적는다 포장을 끄르면 사라질 신비 같은 * 2020년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의 2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북한산을 내려오는 길에 김민정 시인이 건네준 말. “수경 언니는 틀림없이 지은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시의 제목은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에서 가져왔다. 『그림 없는 그림책』 (문학동네, 2024)
이제 목화에게 그분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알 필요가 없다. 우주에 마음이 있는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목화는 선하면서 악한 사람을, 의롭고도 불의한 이를,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동안 목화는 줄곧 나무에게 질문했다. 대답은 없었다. 목화는 나무를 느꼈다. 나무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시를 바랐다. 그 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목화는 나무를 찾으려고 했다. 없애고 싶었다. 나무를 없애면 온전한 자기 의지로 자기만의 삶을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무는 정말 나무로서 존재하는가? 목화는 그 나무가 자기 숨통을 쥐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구할 때도, 구토에 시달릴 때도 자기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사람을 구하는 순간에도 나무의 명령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 나무는 대체 무엇인가? 나무에게 집중할수록 나무의 의미는 비대해졌다. 나무에게 호소할수록 나무의 힘은 강해졌다. 목화의 질문과 호소에 개의치 않고, 고통스러워하거나 안도하거나 상관없이, 악하든 선하든 관심 없이 나무는 영원히 거기 있다. 그 나무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존재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물이 나타났다가 멸종했고 진화했으나 도살되었다. 돌로 만든 무기로 동물을 사냥하고 무리 지어 이동하며 빠른 소도로 다른 생물을 몰살시키던 인류는 순식간에 핵폭탄과 우주선을 만들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면 과연 인류라는 종을 돕고 싶을까. 살리고 싶을까. 나무가 주는 생명은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이라는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도.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죽음을 바라보는 일을 거부하고 싶었다. 사람을 구하고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피하고 싶었다. 구한 자가 악인 같을 때는 마치 한통속인 것처럼 괴로웠다. 중개 때문에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목화를 지배하는 것은 나무였다. 나무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구한 사람들처럼 단 한 명인 목화는,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오직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신목화는 임천자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며 마침내 운명을 수긍했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목화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상, 온전히 자기 것으로 거둔 이상 이제 그것은 목화의 것이었다.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 목화는 생각했다. 그건 바로 지금의 삶. 목화는 원하는 삶 속에 있었다. 다시, 목화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죽음. 임천자가
봬요 숙희 내일 봬요 그래요 내일 봬요를 처리하지 못해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내일 뵈요 라고 썼다가 그건 또 영 내키지가 않아 그럼 내일 뵐게요 라고 적어보니 다소 건방진 듯해서 이내 그때 뵙겠습니다 라고 고치자 너무 거리를 두는 것 같고 내일 봐요에 느낌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두 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갈팡질팡하는데 가벼운 인사를 가벼운 사람으로 당신이 나를 오해할까 잠시 망설이다 숨을 고르고 다시 봬요로 돌아온다 그런데 봬요를 못 알아보고 세상에 이렇게 한글을 이상하게 조합하는 사람도 있네 라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봬요는 청유형 존대어라 어색한 걸 모르냐고 되물을까 봐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져 내일 봅시다 라고 따따따 찍어보니 참나 이건 정말로 더 아니다 싶어 결국 내일이 기다려져요 라고 보내버리고는 손목에 힘이 풀려 폰을 툭 떨어뜨렸다 『오로라 콜』(아침달, 2024)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덩그
환한 집 강우근 나의 어린 조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누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너의 그 칙칙함을, 무표정을 좋아해” 가족 모임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부기라는 옆집 아저씨를 닮았다고 많은 것을 무서워해 바깥을 안 나가는 부기 아저씨를 소피라는 꼬마가 매번 불러내어 모험이 시작된다고 나는 그런 조카를 하루 맡아주기로 하고 “나는 하얀 집에 살고 싶어” 조카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집을 꺼낸다. 여름에는 태풍이 오고, 가을에는 은행이 터져 나가고, 겨울에는 폭설이 떨어질 텐데. 하얀 집은 금세 검어질 것이다. 우리의 테이블에 놓인 생크림 케이크는 작아질수록 포크 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삼촌은 어떤 집에 살고 싶어?” 나는 검은 집이라는 말을 삼키고 환한 집이라고 대답하며 애써 웃는다. 조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환한 집은 어떤 집일까, 생각에 잠기는 사이 생크림 케이크에는 검은 파리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나는 서둘러 케이크를 치우고 조카가 돌아온 테이블에는 새롭게 놓인 생크림 케이크 “······삼촌이 배가 고파서” “삼촌에게 추천해 줄 케이크의 맛이 아주 많아.” 환한 빛이 우리를 비추는 동안 우리는 생크림 케이크를 아무런 근심 없이 나눠 먹는다. 『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
글틴
밤이 휘어지던 그 자태를 보라곡선의 미학트라이앵글의 찬미뫼비우스 예술에 대한 고찰절벽 끄트머리에 다다라서야나는 층계참에 매달린 그날을 떠올렸다 격자 무늬 벽지실타래가 풀어진 것처럼 퍼지던 노란 불빛휘영청 뜬 주홍색 만월네 눈 속에도 꼭 널 닮은 별이 숨어들었지 터진다너와 내가그날의 기억이존재하던 그날의 모두가마치 폭탄처럼 터지던 그날의 화폭과 같이폭죽이 검은 창공을 가득 메운다넘실넘실실타래처럼마치 파도처럼바닷속을 유영하는노랑 불빛섬광이 터진다불꽃이 곡선을 타고 굴러간다 비스듬히 중앙을 비껴나간다 너도 아마 저 찬란한 빛무리처럼네 입꼬리도 아마 곡선을 타고데구르르굴러갔겠지 도약한다해수면에 기대어 별을 헤던 그 밤 비루한 생을 영위하지 않아도 된다는 너의 그 말이어찌나 나를 괴롭게 유혹했는지너는 영영 모를 것이다모난 곳 하나 없는 이 세상은 곡선의 극치그중에서도 나는 평면 바다의 굴곡을 사랑했다 높은 심연에 부유하는 것들이 얼마나 허황되었는지밀랍 날개 이카로스의 추락이 우는 얼굴 시지프스의 즐거운 지탱이 어찌하여 뫼비우스의 곡선을 따라 자취를 그려나갔는지너는 아마 평생 의문이겠지너의 그 굴곡진 마음 또한그날 네 입꼬리를 타고 움직이던숱한 기억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고 빙글빙글물결 속에서도 너는세차게 잔잔하게 해파리처럼느릿느릿한 팔을 휘젓고중심으로 세상의중심으로 출구로빨려들어가기 위해서배회 아닌 헤엄을햇무리 헤엄치는 바닷속에서 은은히 퍼져나가는 주홍 물결구비구비 숨겨진 곡선의 세계회전축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튕겨나가듯아찔한 너의 미소에 나는 직선으로 추락하고 마는 것이다오늘도 어김없이 네가 눈꼬리를 휘는 밤이야
학교에서 나온 뒤 거리에 풍경은 내 머리에 스며들었어풍경을 머리에 넣을수록 생각이 깊어진다는 사실학교에서 배우지 않았지배우지 않은 문장은 소화가 잘 되지 않아나는 입이 받지 못하는 것을 뱉는 버릇이 있어상식으로 기억되는 모든 단어들을 뱉었어학교 밖 거리는 언제나 힘이 있어병원 주변이라 소독약 향이 흘러와서더 그랬던 것 같아은행 나무들이 바람을 받고바람을 꾸는 친구들의 웃음문구점 주인은 바람들을 슬러시 기계에 돌리고하나의 바람을 팔았지가을이지만 아직 뜨거워녹는 슬러시 기계에 내가 들어갔지병원 소독약 향과 함께웃음을 만들었고문구점 주인과 함께하나의 바람을 팔았어나도 언제나 병원에서 바람을 따서링거로 내 정맥에 넣어학교에서 배운 시간들을 모두 넣어계속 놓고 넣기를 반복나의 주체는 이제 약이지만오래된 풍경들이 머리에서 깊어져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내가 마지막으로 배운 사실입이 거부하지만 버릇을 고쳐야 해나는 링거에 걸린 풍경 안에서밖을 걷는 바람들을 잡고입을 틀어 막았어
젖어든 팔로개구리를 안으면그 작은 것이 한 아름을 가득 채워서개구리 안고 폴짝 폴짝우물이든 숲속이든 뛰어다니고아스라이 비가 내리면나무 껍질 속 잠을 자는 나의 심장 고동발개진 내 볼도 한껏 붉어서푸른 우물돌 앉아 생각을 해보면세찬 비바람조차 세계의 질서가 되어지금 이 떨림은 추위가 아닌 따듯함이 된다내일 있을 구름은 오늘 비가 되어 내려주었고이는 하늘이 들려주는나에 대한 사랑임을개구리 안고빗속을 헤엄쳐나가면연잎이 나보다 크고빗소리는 천둥이 되고언젠가 나도 개구리처럼 작아져서개굴개굴세상의 일부가 된다
내 손바닥 위에는 희고 모서리가 뭉툭한 방 하나가 있었다 손바닥을 펼칠 때 비로소 생겨나는 방 입주자는 정오의 흰 빛이었다 입구도 출구도 없이 옆구리에 창문 하나만 매단 채 깊이를 더해가는 안쪽의 그림자 내려다보는 방의 부피는 그대로지만 자꾸만 스스로 넓이를 더해가는 방을 보며 때때로 계속 생각했다 달아오른 거울과 마주 앉아 있던 시간을 햇볕이 변주도 없는 음악처럼 어지럽게, 직선으로 흰 프레임 화장대의 거울에 내리꽂힐 때 건너편의 얼굴 위로 일어나는 파문을 향해 손 뻗었고 반듯하게 펴낸 힘만큼 짙고 붉은 딱지를 손금에 새겼다 보풀처럼 일어난 빛의 먼지 속에서 흰 풍선이 나의 딱지가 어쩌면 모서리 희미한 방이 부풀어 오르는 상상 천천히 팽창하는 세상은 얼마나 깊숙한 속내를 가질까 나를 궁금하게 하는 재능이 있었고 몸을 한껏 뻗으며 아물어가는 것들의 그림자가 나의 방향으로 희게 드리우면 손바닥은 얇고 투명한 전개도의 모습 다 들켰구나, 들켜 버렸구나 키득거리면서 손바닥을 비볐다 그럼 작은 알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처럼 조금씩 따듯해졌고 나를 천천히 작동시킬 수 있었다
빛바랜 곳으로 들어가 쓸쓸하게 혼자 남은 서랍을 열어보니 어릴 적 가지고 다녔던 나의 애착 인형이 담겨있습니다 애정이 가득하다 못해 흘러넘쳤었던 서랍을 열어보니 가장 좋아했던 나의 공주 옷이 담겨있습니다 더 이상 손이 닿지 않아 죽어가는 서랍을 열어보니 이제 이런 것은 싫다며 내쳤던 나의 새 옷들이 담겨있습니다 색이 다 바래버린 어머니의 서랍을 열어보니 어머니가 가장 아끼시는 내가 담겨있습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버린 것을 기다리고하늘에 버려진 별들이 별사탕처럼 까끌거리고나는 까끌거리는 별들을 주머니에 넣고 하나씩 까서 먹어자퇴서에 써져 있는 내 이름깨져 있는 이름주머니에 있어잡을 거야 (집으로 갈거야)나는 역 벤츠에 앉아별 조각들을 바라봐전철이 돌아오지 않는시간에 앉아서자퇴서가 별사탕처럼 까끌거리고이름은 별들처럼 반짝이고주머니는 시간의 녹음에 따라 끈적이고내 입은 오래된 역을 담은 것처럼 지워져내 눈에 별들이 들어갔다별들이 벌들처럼 내 눈에 달려와눈에 들었던 별사탕이 깨지고오래된 향기가 풍기는 마음산 감정을 뱉었어버렸던 것들이 기억에서 밀려오고나는 헌 감정이 쏟아져별들처럼 웅성거려아무도 오지 않는 헐어버린 역에서떠나간 이름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인사휴대폰 불빛으로 깨지고 눅눅해진 시간을 보내이번에 내릴 것은 감정산 감정
그대는 순백의 산호와 같다 숭배의 고리에서 숨을 뱉는다는 것어미로서의 역할을 마친 문어의 행방불명 비겁하게 순리를 따르는 것이야비탄의 윤리 운운하던 괴상한 교리 역시나 당신은 순결하지 않다당신을 보면 침몰하는 난파선을 원망하는 기분이다 모두가 더렵혀지는 거야나비의 연쇄 작용으로서 우리는 모두 달려드는 거야 잔잔하게 전진하는 바다로 우린 돌진하는 거야 잔류하던 그것이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집어삼킬 때까지 나는 도무지 이면적 존재의 괴리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북방의 사자와 그의 황금빛 갈기는 빅브라더의 8번째 환생 기울어진 8의 반복은 광신적인 숭앙을 잉태했으니까 어쩌면 네로의 예술가적 면모를 자극시킨 것은 카르타고의 두 영웅 자극과 연상 정의라는 것의 정확한 정의를 나는 모르겠다 도대체가 나는 정의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나는 언제나 무능하고 무지한 사냥개에 불과하니까 그대의 발자취를 좇으며 나는 그대가 이 세상에 남긴역사 속 슬픔의 광신화에 관한 혼란을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침묵과 묵도의 현상을 더이상 견딜 수가 없다 그대는 정녕 '안'의 독립적 완연함인가?애초에 '밖'이라는 것이 존재하기는 하는가?그대가 죽어가던 날 나는 어미 잃은 아이처럼 엉금엉금 기며 발화하는 모국어의 잔상을 삼켰다 그대는 순백의 산호와 같다죽어가는 산호섬의 몰락처럼 붉게 저무는 황혼처럼 그대는그렇게 쓰러져갔을 거야그렇지?반복이야그것의 형태가 무엇이든수치스러운 번뇌는 계속되겠지화마가 파도치는 벼랑에서는한 줌의 재가 될 소망을 날려보내고현실과 환상의 거짓을 모방한 관문에서는진실의 신호탄을 조사하겠지전서구는 없는 희망을 절고당신은 없는 생을 과시하리라 믿어그게 우리의 가시적 소명이자 소망이니까그러니까 약속해요 그대초월을 약조하기로 해요우리 초월에서 만나요
문장소식
바로가기안녕하세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여성 문학인 발굴을 위해 1983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수석문화재단, 동아제약, 동아ST가 후원하는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어느덧 제42회를 맞이하는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이 올해도 여성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대회 취지상 '여성'만 참여가 가능합니다.) 2024년에는 10월 8일 화요일,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사전 접수를 통해 미리 참여 신청해주세요. [사전접수 기간] 2024.9.6.(금) 18:00 ~ 9.27.(금) 24:00 [사전접수 혜택] ① 행사 당일 신속한 본인확인 ② 행사 관련 다양한 알림 수신(*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동의 필요) ③ 선착순 접수 인원 대상 기념품 증정 [사전접수 방법]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사전 접수 바로가기 ☎ 문의사항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061-900-2325)
1. 공모부문 - 시, 소설, 수필, 감상&비평 2. 공모대상 - 만 13세~18세 청소년 3. 공모기간 - 상시모집 (~2024. 12. 31) 4. 참여방법 및 당선작선정 - 응모 : 글틴 '쓰면서 뒹글'에 창작 작품 게재 (문학광장 회원가입 후 가능) - 예심 : 매월 월 장원 선정 ※ 장르별 멘토의 판단에 따라 월 장원 선정작이 없거나, 추가될 수 있습니다. - 본심 1차 : 월 장원 대상으로 글틴 멘토의 심사 - 본심 2차 : 본심 1차를 통과한 작품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에서 위촉한 심사위원의 심사 - 당선 : 당선자 개별 연락 및 시상식 개최 5. 권리 및 유의사항 - 출품된 작품의 저작권은 응모자에게 있습니다. - 글틴 '쓰면서 뒹글'에 게재하는 모든 작품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 표절·모작·AI창작·타 백일장 및 공모전 수상작은 월 장원 선정 및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이 불가합니다. - 위반 시, 수상 취소 및 상금 회수와 더불어 글틴 이용 패널티로 '쓰면서 뒹글' 게시판 이용이 1년 간 제한됩니다. - 주최자는 비영리·공익적 목적으로 입상작을 복제 및 전송할 수 있습니다. - 입상자와 별도의 협의를 통한 이용허락을 얻어 2차적저작물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ex. 비매품 수상작품집 출간 등) - 심사 진행 과정에 관한 문의는 받지 않습니다. 6. 문의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 글틴 담당자 (061-900-2337, 2325 / munjang@arko.or.kr)
안녕하세요. 문학광장입니다. 문장의 소리가 2024년을 맞아 6월부터 새로운 모습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박참새 시인, 세 분이 모여 만드는 2024년 문장의 소리는 6월 5일 수요일 첫 방송을 시작으로 매주 수요일 문학광장 누리집, 유튜브, 팟빵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꾹꾹 눌러담은 알찬 콘텐츠로 청취자 여러분들을 찾아뵙기 위해 다양한 기획코너와 숏폼, 하반기 공개방송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채널문장 인스타그램(@channel_munjang)에서는 다음 주 출연자를 미리 확인하실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문장의 소리에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ㅇ 문학광장 누리집 : https://munjang.or.kr/board.es?bid=0032&mid=a40102000000 ㅇ 문학광장 유튜브 : https://www.youtube.com/@munjang2005/videos ㅇ 문장의 소리 팟빵 :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90048 ㅇ 채널문장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channel_munjang/ ㅇ 문학광장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munjang2005/
안녕하세요. 문학광장입니다. 2024년 문장웹진 문장서포터즈에 지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선정되신 분들 모두 축하드리며, 아쉽게 선정되지 못한 분들은 다음에 더 좋은 인연으로 문학광장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이름, 연락처 뒷자리 2024년 문장웹진 문장서포터즈 선정자 이름 연락처 뒷자리 이*초 8858 김*아 4662 이*빈 6946 김*은 3526 갈*정 4158 배*주 3016 선정자 분들에게는 지원신청서에 작성한 연락처 및 메일 주소로 개별 안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