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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문장의소리] 허구적 인물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소설가의 고민들 with 박하신 & 최수진 소설가 | 801화 2부](/attachFiles/board/0032/20250331224232973.jpg)
![[문장의소리] 시적인 것과 무관한 우리의 일상은 어떻게 시가 될까? with 남현지 시인 | 801화 1부](/attachFiles/board/0032/20250320142032212.jpg)
![[문장의소리] 신춘 그날, 당선자들은 무얼 하고 있었나 with 남의현 & 홍성구 소설가 | 800화 2부](/attachFiles/board/0032/20250320141550892.jpg)
![[문장의소리] 새해 첫 날 신문에 내가 나온다면? with 안수현 & 박연 시인 | 800화 1부](/attachFiles/board/0032/20250306191936349.jpg)
문학집배원
세컨드핸드 조용우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주스, 요 거트, 구름, 구름들 이라고 친구는 읽어 줬다 코트가 죽은 이의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르는 사람의 옷은 꺼림칙하다고도 했다 먹고사는 일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하고 웃으며 구름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친구는 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오래전에 사려고 했던 것들을 입으로 외워 가면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따뜻한 코트를 버려두고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접어 여기 안쪽에 넣어 두고 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일까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시장을 통과할 때 상점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바구니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시큼하기만 한 요거트를 맛있게 떠먹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식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놀라운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구름들 바깥에서 이곳을 무르게 둘러싸고서 매일 단지 다른 구름으로 떠오는 그러한 것들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지나쳐 걷는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오고 있다 - 시집 『세컨드핸드』(민음사, 2023)
나는 여느 때처럼 카페 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사람은 내가 있는 바로 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순간, 기억났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 문구점에서 스프링이 달린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서, 거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낙서 같기도,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숨기지도 않고 시집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은 한번도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화나게 했다니. 하지만 수업 시간에까지 시집을 읽었던 건 시를 향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내게 그것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어 과목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했다. 1학년 7반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던, 바짝 마른 몸에 단 한 번도 치마란 것을 입지 않았던 서른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그날 내가 숙제로 제출한 시를 나도 모르게 도 대회에 출품했다. 그 시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상금으로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7천 원짜리 롤케이크를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 걸까? 아무튼 그때 내가 쓴 시는 새벽 4시의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교무실로 불러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게 어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건데요’하고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회한의 기미가 스쳤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 그런 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마흔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쟁반을 들고 잠시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한쪽 끝에 앉아 았는 바 자리의 다른 한쪽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머그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문득 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을 들고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가끔 내 생각을 했다고.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고, 신간이 나오면 사서 읽었다고. 나는 두 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요? 그녀는
단골 조해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종로에 있고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나는 단골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날은 안경을 쓰고 어떤 날은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어떤 날은 혼자 어떤 날은 둘이 어떤 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오는데 어떻게 차갑게, 맞지요? 주인은 어느 날 내게 말을 건다 커피를 받아들고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저어서 드세요, 빨대의 끝이 좌우로 움직이고 덜컥 문이 잠기듯 컵 안에 든 얼음의 위치가 조금 어긋난다 주인은 내가 다니는 회사 맨 꼭대기 층에 지인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 김지현이라고 아나요? 나는 그런 이름이 너무 많다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주인은 얼음을 깨물어 먹고 설탕처럼 쏟아지는 창밖의 불빛들 참, 내일은 어떻게 하면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일까 생각하면서 -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
수아는 그 나무를 알아보았다. 마을에서 보자면 대숲 가운데에 꺼멓게 머리를 내놓은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수아는 그들이 대숲 어디쯤에 와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바람 많이 타던 오른편 능선 중턱이었다. 할머니가 손전등을 왼편으로 돌렸을 때 재우리만한 빈터가 나타났다. 수아는 봉긋한 흙더미를 보았고 이내 그것이 묘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잔뜩 긴장해 있던 수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풀 한오라기 없는 묘지는 무덤이라기보다 정말 흙무더기 같았다. 할머니는 묘지 앞에다가 짚을 깔고 음식을 차렸다. 숙모에게 종지를 건네 술을 따르게 해서는 무덤 이쪽저쪽에 나누어 뿌렸다. 절도 없는 성묘는 금세 끝나고 이내 셋은 돌아섰다. 수아는 숙모에게 누구 무덤이냐고 숨죽여 물었다. 숙모는 강씨 할아버지 묘라고 말해주었는데 수아는 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기억에 없었다. 수아는 그 무덤의 내력을 집안 여자 어른들에게서 들었다. 여러 밤 제삿날의 부엌 담화를, 조각난 파편들을 꿰어 짐작하게 된 사연이었다. 증조할머니가 과부로 살다가 떠돌이 계절노동자를 만나 새살림을 차렸는데 그 할아버지는 성실하고 의붓자식들도 잘 돌보았다. 그가 혈육도 남기지 않고 늙어 죽자 의붓자식들이 장례를 치러줬다. 선산에는 못 가고 앞산에다가 묻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 묘지는 남부끄러운 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문중에서 묘지 주변에 대나무를 심었다. 온 산이 대숲이 되는 데는 십년도 걸리지 않았다. 수아는 그 이야기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대숲이 조성된 사연이 기묘하고, 할머니들의 야행은 아름다웠다. 묘지 가에 대나무를 심은 집안 남자들의 용렬한 행태보다도 여자들이 밤길로 다닌 성묘가 인간적으로 보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도 여겨져 마음으로 아끼게 되었다. 그 성묘가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모른다. 수아는 어른들이 음식을 해서 대숲에 드는 걸 그 뒤로 목격하지 못했다. 금이가 재혼하고 몇 해 있다가 큰집 부엌에 발을 들이게 되고, 수아는 마치 교대하듯이 부엌에서 물러났다. 어린 딸들까지 부엌에 넣는다고 금이가 싫어했다. 아마 성묘는 집안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지속되지 않았을까? 큰어머니나 숙모들도 얼마간 성묘를 다녔을지 모른다. 이제 부엌의 여자 어른들이 대부분 세상을 등졌고 도회지로 나간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일전에 대밭 매매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강씨 할아버지의 묘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해서 금이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했다. 그러면서 금이는 도둑 제사가 동티를 피하려는 이 집 여자들의 욕심이 한 짓거리라고 혀를 찼다. 남자들보다 더 악랄하다고, 금이는 차갑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수아는 놀랐다. 모든 제사라는 게 산 자들의 발원에서 비롯한 행위이기도 하므로 그 일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금이가 보인 적의가 전에 없던 거라 당혹스러웠다. 뒤미처 수아는 재취로 들어온 금이의 피해의식이라든가 섭섭한 마음 같은 걸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다. 수아로서는
복어 가요 이자켓 합정까지 걸을까? 추운데 목도리 빌려줄게 너는? 난 추위 잘 안 타 추워서 머리가 멈췄나 봐 겨울이라 그런가 차디찬 골짜기인 거야 그곳에 도달한 생각들은 모두 얼어붙는 거지 그 골짜기 다 녹여주고 싶다 그럼 범람할 거야 아무 말이나 쏟아져 나올 거야 그건 안 돼 왜? 저거 들려? 뭐? 구세군 종소리 연말이긴 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뭐 해? 요즘 살쪘나 봐 패딩 탓인가 나 부해 보여? 조금 떨어진 채 빗물 언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한적한 합정에는 이 거리 끝에도 저 거리 끝에도 담배 태울 곳이 없어서 ‘그런지’라는 카페를 지나고 솔방울식당 지나고 푸르게 칠한 건물과 목련이 자라는 주택 지나 어둑한 골목에 들어섰다 불을 붙이고, 신발 뒤축으로 얼어버린 물웅덩이를 부수었다 얼음 조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다 맥없이 나뒹굴었다 종소리가 한 번, 두 번 이편저편 맴돌았다 10번 출구가 보였다 목도리를 돌려받았다 조심히 가 너도······ 넌 뒤돌아보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매끄럽게 사라졌다 점점 작아지는 뒤통수를 보다 돌아섰다 코트 주머니에는 킹 크룰의 앨범이 들어 있었고 움켜쥔 목도리는 방어 태세의 복어만큼 부풀어 올랐다 - 시집 『거침없이 내성적인』(문학과지성사, 2023)
올빼미가 말하길. - 정어리를 먹어. 올빼미가 말했다. - 난 정어리에 대한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한 달 내내 정어리만 생각했지. 정어리, 정어리, 정어리, 매일 백 번씩 말했다. 아니, 이백 번은 말했겠군. 정어리통조림이나 정어리를 넣은 샌드위치를 생각하고,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과 정어리를 잡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어리처럼 생긴 비쩍 마른 남자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했지. - 정어리를요. - 그래, 정어리다. 오로지 정어리였지. - 그래서 그건 어떤 이야기가 되었나요? 유쾌하고 흥이진진한 이야기? 건조하고 냉정한 이야기? - 못 썼다. - 왜요? - 난 정어리를 본 적이 없거든. 먹어본 적도 없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정어리, 라는 단어에 빠져 있었던 거겠지.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주나 왕자에 빠져드는 것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하필 정어리에 빠졌던 거다. 정어리에 대해 매일 생각했지만 그건 진짜 정어리가 아니었지. 내가 상상해낸, 정어리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그러니 내가 뭘 쓰더라도 그건 정어리에 대한 글이 아니게 되는 거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알마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저씨 때문인가요? - 남 탓을 하다니, 정말이지 촌스럽기 짝이 없군. - 역시 아저씨 때문이었군요. - 됐다. 다시 정어리얘기로 돌아가자. 아니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한 네 얘기로 돌아가지. 너는, 그런 거다. 넌 네가 죽어야 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정작 네가 경험한 건 아주 짧은 단어 한 개,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장면 하나에 불과한 거다. 내가 정어리, 라는 단어를 읽고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처럼 너도 어디선가 고통이나 죽음 같은 단어를 보고 거기 동화되기 시작했겠지. 나는 정어리라는 단어밖에 모른다. 정어리에 대한 책을 백 권쯤 쓴다 해도 거기 진짜 정어리는 없지. 너도 마찬가지다. 넌 아직 삶도 죽음도 논할 자격이 없지.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정어리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내가 정어리가 비리다거나 기름지다거나 담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네 삶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거다. 넌 유 서를 쓰지 않은 이유가 네 엄마가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스럽길 바라서였다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다. 너는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거다. 네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뭐가 널 그리 힘들에 만드는지 너도 몰랐을 테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쉽게 결심한 거지. 어린애답게 말이다. - 아저씨도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 너는 그냥, 서툰 거겠지. 어린애들의 특권이다. 멍청하고 성급한 건. 어린애니까 가끔은 그런 식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기도 하는 거다. 괜찮겠지, 그 정도는. 난 어설프고 서툰 것들이 싫지 않다. 그런 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채워지거든. - 숲에 떨어지는 동물들처럼요? - 그래, 멍청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 난 멍청하지 않아요.
글틴
나는 내리막길을 내려갈때마다 상상한다김밥처럼 굴러가는,마침 또, 칙칙한 아스팔트 바닥으로겉도 김처럼 파릇한 검정색이 되겠네.김밥이라니, 맛있겠다떡볶이도 있으면 좋을 텐데.그런 김밥이 실재로 있다면 좋을 텐데,사람들은 그런 김밥이 질색인가 봐.싫어하는걸 넘어, 경멸, 무시를 쏘아보거든.정신이 나간 김밥이라고.내가 열심히 고안해낸 김밥인데,대접 한 번 못하게 되었지.그렇게, 관심 대신 무심을 받을 김밥을조용히 뒷구석으로 치우고,늘 내가 만들던 김밥이지만,언제나 메뉴판 위에 올릴 수 없었지.도로를 굴러가는 김밥은,나만 아는 메뉴로 끝난 것이다.모두가,내리막길은 김밥을 만드는 곳이 아니라고하니깐.
모두가 행복했고우리도 웃었었고나마저 즐거웠다바람 불어 탈 벗겨질까 걱정했던 우리 모두웃음기 빠질까 우려했던 나도연약하게 스멀스멀 흩날리는 고운 바람하나아주 잠깐 인사해오니탈 사이로 공기 들어우리 모두 탈을 바로잡는거 아니겠나우리 다시 웃어보자우리 기껏 탈 하나이기지 못하겠나아 그래도 난 미루란다조금 더 활짝 웃고 싶고하얀 모습만 비추고자하고울면서 의지하던 그까짓거언제쯤 던질 수 있으라나
맨발로 모래를 밟으면 커다란 조개가 될 수 있어진주를 품은 모, 또는 무가 되어모래의 온도로 계절을 느끼지따스해지나 싶으면봄인 줄 알고 뻐끔, 하다가 아차모래알들에 베여서영원히 입을 벌리지 않을 것처럼땅 속 깊숙이, 썰물에 흩어진 플라스틱 입자 사이로그렇게 잠기기도 해진주는 잘 굴러다니고 무슨 색인지는 모르겠어모의 품을 닮았으면 새까말 텐데무의 품을 닮았으면 새하얄 거야나는 태어나길 새하얗게 태어났지만지금은 봐, 플라스틱 조개야그러니 진주가 무슨 색일지는완전한 미지수모래의 온도는 변덕적으로 바뀌어하루종일 따듯하지도 춥지도 않아이걸 일교차라고 정의할 수 있다면분명 밖은 맑을 텐데 말이야코를 찡긋할 때마다 비 냄새가 나서먹먹한 플라스틱 냄새가 나서정의할 수 있는 단어가 사라져버렸어조개의 사계절은 하루 동안 순환해여기, 좁고 어두운 모래 안에서진주의 성장은 느리니까 괜찮아두드리면 둔탁한 소리가 나는플라스틱 조개 안에서진주는 자라고 있어자라나고 있어맨발인 채로 태어난 내가신발을 필수품으로 여겨도무에서 시작된 그들이 용서해주듯이
기다란 총신에 붉은 것을 삽탄한다.12게이지 산탄쇳덩이 부딪히는 소리는 귓바퀴에 앉을 여유따위 없다.그것이 참 아쉬워 손으로 잡아채고는가까이 가도 들리지 않는, 들을 수 없는 소리횟배 앓는 내 몸에 쇳소리 들리우면그제야 소리 같은게 나와는 관련 없을 것을 알텐데앉기 역겨워 하는 이를 떠나 보내려면내 등 먼저 보여야지그래, 그 등.등에 무어라 적힌지 나는 모른다아무도 모르겠지. 아니, 그 사람은 봤을까아무렴 어떨까. 항구를 떠난 타이타닉은 돌아오지 않았는 걸여길 내팽개치기 전 사랑을 마지막으로 느끼고 팠다.내 배는 나 몰라라 한숨 쉬고 진즉 나를 버렸다.모든 사랑이 나를 아프게 한다면한번의 사랑만이 더 남아있으리마지막 사랑은 그리 크지 않다12게이지는 내 입을 가득 채우지 못한 것이 세상 큰 한이다.뺨에 흐르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게 된 것 역시 한 인 것을 아직은 몰랐다.삽탄은 탄을 넣는 행위라지덤덤하게 눈을 감고그 사람 이름 하나 가슴에 새긴 채로내 마지막 키스를 밀어내며 삽탄한다.
갑작스러운 인형극나는 그곳 정확한 위치에 떨어졌다. 손에 쥐어진 실나는 그 실만지고 예쁘게 묶고내 몸을 간지럽혀도 봤다. 주위를 둘러보니또 다른 인형이 있다.그 인형들의 팔과 다리심지어 손가락과 발가락실이 꽂혀 있다 내가 쥐어진 손을 펴니그 실은 나를 압박하며손과 팔, 다리 차례대로마음대로 조종한다. 누군가 말한다.“네가 뭔데 실을 조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내가 했던 행동들전부 실의 영향들 나는 정해진 장소 정해진 시간그곳에서 그 순간에서실이 없는 머리로 간신히조그마한 차이를 만들 뿐그 외는 만들 수 없다. 모두 실의 영향에 있는 일생각을 분해 재조립밖에 하지 못한다. 누군가 또 말한다. 그 실을 잘라내면몸속 깊이 박혀있는 실독이 되어 나를 경직 시켜 죽인다고 나는 이 구조 속에 갇혀있는 마리오네트차이 밖에 만들어 내지 못하는 마리오네트나는 이 구조를 벗어나지 못한다.나에게 선택은 처음부터 없었다.
거뭇한 새벽에 비오니꾸역 꾸역 기어온 지렁이푸르게 변한 이 햇살 밑에서어찌 살아돌아갈터이니아까 기던 힘 다 바쳐가까이 있을 화분찾는 지렁아마침내 힘잃어 철푸덕 드리누운지렁아딱딱하게 굳어버린 네 피부가어쩌면 내게 가장 필요한가보다지렁아
‘우리가 섹스의 대상이기만 하면 좋겠지? 좋아. 대신 당신들을 노예로 만들겠어’ 크로이체르 소나타 중 톨스토이.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 작품은 몰라도 이름은 알 것이고 대체로 작품을 기억하는 것도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전쟁과 평화니 안나카레니나니 하는 것부터 단편선이나 이반일리치의 죽음, 바보 이반 같은 작품들도 꽤나 유명하다. 그러나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어떤가? 톨스토이의 연대기에 짧게 나와있는 것이 전부일뿐이다. 그나마 찾을 수 있는 설명들은 금욕주의니 섹스에 대한 혐오니 하는 단어들 때문에 언뜻 보면 톨스토이는 노망 난 반동적인 노인네처럼 보인다. 그러나 분명히 밝혀두건대, 비록 그가 반동이라 할지라도, 그는 완전히, 정열적으로 순수하게 무모순적인 인간 해방을 위해 노력했던 이상주의자였다. 나는 그를 반동이라 표현하느니 가장 급진적인 진보주의자라 부를 것 같다. 크로이체르 소나타는 그래서 어떤 소설인가? 그것은 그 내용 그 자체(내용 그 자체는 조금의 가치도 없다)보다 그것의 사상을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 한 가지의 질문을 던지겠다. 사랑은 어떻게, 얼마나 인간을 구성하는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인간이 있는 반면에 그를 부정하는 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수많은 사람들(역사에서나 지금이나)은 사랑으로부터 살아가야 할 이유와 젊음을 소모해야 할 당위를 얻는다는 것이다. 부수적으로 글 쓰는 많은 사람들에게 직업을 제공했다(로맨스 장르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쟁하는지 보라). 사랑은 꽤나 중요한 감정이다. 인간과 인간을 결합시키면서 동시에 감정적 만족을 주고 상당히 많은(대체로 우리가 역사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사람은 그런 영향에 거의 종속되다시피 했다) 제도적인 장치와 문화를 남겼다. 자유로운 개인 간의 연애가 확산된 지는 꽤나 오래됐다. 그러나 반동적인 구조가 남아있는 것은 현대의 우리나 톨스토이 시절의 러시아나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헤테로섹슈얼에서 다루어볼 것은 3가지가 있다. 섹스, 로맨스, 그리고 관계와 결혼이다. 섹슈얼리티와 로맨스는 본질적으로 성질은 거의 완전히 같다. 모두 상대를 필요로 하며, 독립적인 욕구다. 섹슈얼리티는 선천적이지만 로맨스는 다소 그 구분이 모호한 것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런 것이 어떻든, 로맨스 또한 후천적으로 습득되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만은 사실일 것이다. 그 둘은 대체로 비슷한 성질을 띄며 서로 연관되어 나타나고 또한 수많은 매체에서 다양하게 표현되고 출판된다. 다만 섹슈얼리티는 어느 정도 접근에 제한이 있는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로맨스는 맥락을 불문하고 섹슈얼리티보다 우월하며 도덕적으로 옳은 것처럼 취급된다.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는 것도 있지만, 문학이 로맨스를 신성시하는 게 크다고 본다. 로맨스는 어째선지 다른 모든 감정과 욕구를 들을 초월하여 훌륭하고 권장할만한 것으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하면, 로맨스는 섹슈얼리티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사람이 평생 섹스만 하며 살 수 없듯이, 로맨스도 어느 순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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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기※ 2025년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추가공모 사업에 대한 공통 안내문입니다. 사전에 확인 후 세부 공고문 확인바랍니다.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문학)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1. 사업개요 ○ 사업명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사업기간 : 2025. 10월 중순 ~ 11월 중순 (1개월) ○ 사업장소 : 일본(Japan) - 교토(Kyoto) ○ 주요내용 : 오프닝 포럼, 클로징 이벤트 등 교토작가레지던시 개최 프로그램 참여 및 작가 개인 창작활동 수행 ※ 사업 세부소개 • 해외협력기관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홈페이지 : https://kyotowriters.org/ • 기관/사업소개 - 교토에 있는 대학의 문학 학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2022년에 설립된 국제 문학 레지던시 - 전 세계의 작가 및 번역가들이 교토에 머물며 창작활동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 • 세부 프로그램 - 레지던시 공식행사인 오프닝 포럼 및 클로징 이벤트 2회 ※ 모든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되며, 공개 행사에 한하여 영어-일본어 통역 진행 예정 2. 지원신청자격 ○ 문인(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최소 1권 이상의 발간 실적이 있는 문인 ※ 그림책, 희곡, 비문학(에세이 등) 제외 -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 ○ 선정자는 레지던시 공식 행사 필석 3. 지원규모 및 항목 ○ 참가 예술가 직접 지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선정자 보조금 지급/지원신청서 내 예산 편성) 구분 선정 인원 지원규모 자부담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1인 (후보군 3~5인 내외) 100만원 내외 총 사업비(보조금+자부담)의 10% 이상 - 프로그램 참가를 위한 왕복 항공료(이코노미석 기준 실비 지원) ※ 비자 발급비, 현지 체재비 등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회계법인 회계검증수수료 ※ 회계검증수수료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신청 공통안내사항 내 가이드라인 참조 ○ 기타 지원항목(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번역가/제작업체 지급) - 문학 분야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시 15편, 소설 30페이지 내외) : 400만 원 ※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당업체, 번역가에게 직접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해외협력기관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 : ¥430,000 ※ 숙박비, 일부 식사, 공식 행사 관련 통역료(영어-일본어),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비용 포함 ※ 현지 체류 중 지급되는 현지 체재비 외 추가분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해당 지원 내역은 해외협력기관과의 협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4. 제출서류 및 자료 (필수자료 총 3개) ※ 우편 및 방문 접수 불가 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