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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마윤지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동지」

동지(冬至) 마윤지 12월에는 흐린 날이 하루도 없으면 좋겠다 그런 약속이 있으면 좋겠다 놀이터엔 애들도 많고 개들도 많으면 좋겠다 살도 안 찌고 잠도 일찍 들면 좋겠다 조금 헷갈려도 책은 읽고 싶으면 좋겠다 어디든 갈 수 있는 차표를 잔뜩 사고 안 아프면 좋겠다 30만 년 전부터 내린 눈이 쌓이고 눈의 타임캡슐 매일의 타임캡슐 다 흘러가고 그게 우리인가 보다 짐작하는 날들이 슬프지 않으면 좋겠다 묻어 놓는 건 숨기는 게 아니라 늘 볼 수 있도록 하는 거지 그 무엇보다 많이 만져 보는 거지 나중엔 번쩍 번개가 되는 거지 오렌지색 같은 하늘이 된다 맛도 향기도 손가락이 열 개인 털장갑 이를테면 깍지 햇빛의 다른 말이다 - 시집 『개구리극장』(민음사, 2024)

2024.12.12 김언
조예은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스노볼 드라이브』

그 순간을 꽤 선명히 기억한다. 백영중학교 건물은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었고, 덕분에 학교 전경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였다. 운동장에는 세로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야구부 아이들이 기합을 외치며 트랙을 돌고 있었고, 담장 근처 등나무 그늘에는 늦은 시간까지 동아리 활동을 하는 방송부 아이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는 중이었다. 야구부 애들이 나아갈 때마다 그림자가 점점 길어졌다. 그 그림 같은 배경 안으로 달음박질하려던 순간이었다. 내 하늘색 컨버스화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허리를 숙여 이제는 회색에 가까워진 흰 끈을 단단히 동여맸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눈이 시린 걸까. 양손으로 두 눈을 비벼 보있다. 눈은 여전히 시렸고, 눈앞에는 믿기 힘든 낯선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푸르른 기운이 무성한 6월의 학교에 내리는 함박는. 그것은 그 해의 녹지 않는 첫눈이었다. 때아닌 함박눈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운동장으로 뛰어 내려갔다. 눈송이를 손으로 받고, 고개를 쳐든 채 방방 뛰며 팔을 휘저었다. 건물 안의 아이들은 창가에 다닥다닥 붙어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진풍경은 화면에 고스란히 담겼다. 나는 현관에 서서 팔을 뻗어 떨어지는 눈 한송이를 받았다. 내 새끼손톱보다도 작은 그 결정체는 꼭 모형처럼 딱딱했으며, 차갑지 않았다. 차갑지 않은 눈이라니. 이게 정말 눈이 맞을까? 눈송이는 높은 기온과, 내 체온에도 녹지 않았다. 6월 충순, 초여름이었고, 등교 직전 뉴스에서 본 기온은 27도를 웃돌았다. 결정체의 모양이 일반적인 눈송이와는 달리 불규칙적이었다. 그리고 훨씬 밝게 반짝였다. 꼭 진짜 눈을 흉내 내어 만든 모형처럼. 그런데 곧 눈송이를 받치고 있던 손바닥 주위로 불그스름한 반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한발 늦게 가려움이 밀려들었다. “아, 따가워.” 소리가 나는 곳을 좇았다. 운동장과 이어지는 계단에 앉아 있던 두어 명이 건물 처마 밑으로 뛰어 들어오면서 머리와 체육복에 묻은 눈들을 털어 낶다. 그들의 몸에서 떨어지는 눈은 눈이라기보다는 조금 입자가 큰 모래알 같아 보였다. 잔 우박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박처럼 차갑지도 부서지지도 않았다. 그것들은 녹지 않고 그대로 바닥에 쌓였다. 맨 처음 따갑다고 외쳤던 단발머리가 둥얼거렸다. “왜 이렇게 따갑지? 이거 뭐야? 나 새우 먹어서 알레르기 반응 올 때 꼭 이러는데.” “내 손도 그래. 이 두드러기들 뭐야? 징그러워.” 소매 밖으로 드러난 손목과 손등이 온통 붉었다. 나는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다시 정면을 바라보았다. 하늘 곳곳을 수 놓은 하얀 점들이 보였다. 눈송이들은 조명을 받은 보석처럼 반짝이며 떨어졌다. 그 비현실적인 풍경에 정신 팔려 잇던 나를 깨운 건 운동장 한복판에서 울려 퍼지는 비명 소리였다. 제일 먼저 뛰쳐나왔던 1학년 아이 한 명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운동장 바닥을 구르고 잇었다. 황토색으로 물든 하복 교

2024.11.28 천운영
허꽃분홍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최지은 시인의 「가정」

가정 최지은 우리는 말이 없다 낳은 사람은 그럴 수 있지 낳은 사람을 낳은 사람도 그럴 수 있지 우리는 동생을 나눠 가진 사이니까 그럴 수 있지 저녁상 앞에서 생각한다 죽은 이를 나누어 가진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한 사람이 완성된다 싹이 오른 감자였다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없는 푸른 감자 엄마는 그것으로 된장을 끓이고 우리는 빗소리를 씹으며 감자를 삼키고 이 비는 계절을 쉽게 끝내려 한다 커튼처럼 출렁이는 바닥 주인을 모르는 손톱을 주웠다 나는 몰래 그것을 서랍 안에 넣는다 서랍장 뒤로 넘어가버린 것들을 생각하면서 서랍을 열면 사진 속의 동생이 웃고 있다 손을 들어 이마를 가리고 있다 환한 햇살이 완성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다 우리가 눈 감으면 우리를 보러 오는 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거기 있었다 - 시집 『봄밤이 끝나가요, 때마침 시는 너무 짧고요』(창비, 2021)

2024.11.14 김언
윤이안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온난한 날들』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2024.10.24 천운영
조성래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창원」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2024.10.11 김언
김기창 소설가의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2024.09.26 천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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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봄 그때는 어땠을까?5살이라 불리지만 4번째 봄을 맞이하는순수한 나로 존재했을 때 제주 여행건물 하나 없는 다정한 곳봄인데 햇살은 여름처럼 뜨거웠어.딱딱한 꽃 썬글라스를 쓰다, 벗다, 했어.넓은 벌판을 말을 타고 달렸어. 이걸 담은 영상잠자리가 날아다니는 논밭의 노래가 배경음악 봄과 가을은 연결 돼있어. 많은 불이 켜져 있는그래서 빛이 있는회색인광활한호텔 로비 그곳에서 찍은 사진 덕분에기억이 여기까지 건너온다. 그때 어땠을지에 대한 답은 창문이 있을 자리가 뚫려있는종이로 만든 것 같은버스에서의 나 애기 목소리그리고엄마의 사랑이 담긴 목소리

2024.12.29 벨라
수필 초등교육 중등교육을 보내는 시론

비가 내렸거나 해가 났거나 희박해서 무시할 만 하지만 현재를 기준으로 얼마 후에는 추세를 알 수 없는 확률로 눈 혹은 우박이 내린 날 태어났다. 그리고 앞의 문장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다 날씨도 태어남도, 생각해 보라구 산부인과의 지붕 아래서 날씨를 모르고 태어났고 태어나면서 태어남을 몰랐어 따라서 내 태어남은 거짓이다 나는 태어난 적 없다. 어느 순간 존재가 발견됐을 뿐 그래도 이것은 설화 나부랭이가 아니다 생각을 하고 나니 있음을 알게 되었다 지성체가 존재하기 시작함에 따라 우주도 존재하기 시작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가설과 같은 종류의 것이다. 미끄러지는 것들 위에 미끄러지지 않는 것들을 두어 결국 미끄러질 수밖에 없도록 한다.언제나 태어날 때와 같았다. 미끄러지지 않는 나의 사고와 미끄러지는 주변 환경. 흔히들 사고라고 불리는 것을 내 지방질 전기신호 전달기는 바다의 표층에 둥둥 떠다니는 식물성 플랑크톤의 행동같이 체화하였다. 사건을 겪고 정보를 받으면 그 텍스트를 그대로 퍼와 범람하는 정보에 떠서 정보가 흔들리면 내 사고가 요동친다고 느껴버린다.인식의 첫 순간 내 손가락은 믹서에 갈리고 있었다. 6살 때의 일이다. 가족 중 누군가 혹은 내가 고의로 혹은 실수로 내가 믹서 날을 손으로 돌리고 있을 때 전원 버튼을 눌러 피가 주루룩 났다. 어느새 전선은 연결 돼있었고 나는 그걸 몰랐던 것 같다. 6살의 내 사고는 대략 이러하다:날을 돌리고 있었다 왜지? 돌아가는게 신기해서. 돌린다. 모터 소리가 난다. 앞에 있던 가족 구성원의 얼굴에 이상한 표정이 떠오른다. 믹서가 치워진다. 다른 가족 구성원이 소리를 지른다. 아하, 손을 본다. X자로 상처가 나있다 피가 죽죽 나온다. 놀란다. 이게 뭐람? 소리 지른 가족 구성원이 호들갑 떨며 가져온 붕대를 신나서 줄줄 감는다 왜 감지? 모른다. 흐르는 피는 신기하게 생겼다. 왜지? 그냥, 흐르잖냐. 또 다른 가족 구성원이 차에 태워 병원에 데려간다. 흥분된다. 엄지 손가락 둘레가 두 배가 됐다. 상처인 x를 붕대 위에 연필로 그린다. 어떻게 생겼는지 까먹으면 아쉽잖아. 모처럼 생긴 상처이니까. 안타깝게도 흉터가 남지 않다. 회복이 쓸모없을 정도로 빨랐다.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눈치도 없는 줄기세포와 그 외 다수, 역량을 조금 아꼈으면 어땠을까 물론 설계 상으로는 10~30대에 재생산 하고 사라지는게 나은 덩어리이니 원가 절감을 위해서 그렇게 되는게 맞긴 하지만..결국 사고는 뚝뚝 끊겼지만 환경이 매끄럽게 흘러갔었다. 가족 구성원들의 질서정연한 행동이라거나, 뭐 이것저것.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믹서를 작동한걸까? 싶기도 하다. 왜? 몰라 그건. 아직도 사고에는 허리가 없다.초등생활은 헛소리 단편들로 채워졌다 이건 그거고 이유는 저거다 근거는 없다 수고해라. 그래도 있어보였나보다 부모가 박사냐는 말도 들었댔으니, 그런데 아쉽게도 석사졸, 석사 수료란다. 이 경향은 아직도 있다. 이 책의 주장은 이거다 이유는 없다 수고해라. 한결 다루기 편해졌지 않나? 이유는 없다 수고해라.중학생, 말을 빨리

2024.12.29 데카당
별을 읽는 자

손틈새로 비쳐오는 밤하늘의 수많은 이정표.별자리가 하나 둘 내 손에 닿을 때는 내 앞길과 함께 모두의 앞날이 열린다네. 차갑고 매서운 폭풍우는 어느새 우리의 성장통이자 크나큰디딤돌이 되어준다네. 별을 읽는 저 눈빛은 어딘가를 향해서.. 그렇게, 그렇게 더욱 열정을 빛나게 만든다네.하나 둘, 오리온자리에 의해 맺어지고, 북두칠성은 이내 드넓은 대지에 닿아가고,그런 열망이 신념과 소원을 가지고 항해한다.별을 읽고, 듣고, 보며조류들의 방향을 보며 그렇게 언젠가는 닿을 땅을 보며내 신실한 마음이 저 어딘가에서 자라난다.

2024.12.29 초하루
수필 있잖아

있잖아, 나 오늘은 밝아지는 척을 연습해봤어.친구들이 오늘따라 내가 너무 이상하대.아이가 되기 위해 떼쓰는 어른 같았대.사람들은 항상 진정한 어른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잖아.근데 어느 순간부터 어른이 되어 있는 내가,가끔은 떼쓰고 싶고 여기저기 침의 얼룩도 묻히며 반항도 하고싶어.어렸던 내가 가장 잘하던 거였는데떼쓰는 방법을 잃어버렸어.침 흘리는 방법을 잃어버렸어.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렸어.이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우리는 언제부터 어른이 되어있었을까.모든 게 어리숙한 우리의 어린 시절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그 시절로 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기에점점 기억들도 흐릿해져만 가는 것 같아.하루가 지나면 지날수록 한 조각, 한 조각 잃어버리고 있는 퍼즐 조각이 점차 늘 수록순수했던 어린 나와는 이제 작별 인사를 할 때가 왔다는 소리와 행동 없는 침묵의 신호인 거 같아.이제는 추억에 약한 어른으로 날 정의하면 되는 걸까?그래도 모든 게 서툴러서 방황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힘들었을 텐데 잘 버텨준 너에게 고마워.우리가 어른이 되었다는 건,이제 각자만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어른이 된 거야.네가 쉬어갈 그늘을 만들고, 네가 빠져들 수 있는 바다를 만들고,네가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들어봐.추억에 약한 내가 아닌, 현재의 충실한 내가 될 수 있게.우리가 찬란했던 옛 순간들은 이제 옆에 있는 보관함에 잘 보관해 두고,우리가 아직 찾지 못한 각자만의 별을 이제 찾아 나설 시간이야.저 멀리서 우리를 부르며 열심히 빛나고 있을 각자만의 별을 떠올리며느리더라도 내일도 오늘과 같이 날이 밝으면 눈을 뜨고 일어서서 땅을 밟자.노력하는 너에게최선을 다하는 너에게오늘도 일어선 나에게고마워.

2024.12.29 한솔
촛불

바람이 불어 꺼지는 것이 아니라내가 불어야만이 꺼지는 것이다

2024.12.29 검은흰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

네 손목을 열어줘네가 좋아하는 건 내 손목에서애처롭게 흘러내릴 피 내 눈을 먹어줘네가 좋아하는 건네 눈에 비친 세상 내 혀를 삼켜줘네가 좋아하는 건네 입에서 나올 내 말 내 갈비뼈에손을 넣어서심장을 꺼내줘 머리를 열어서내 뇌를 꺼내줘 네가 좋아하는 건시체만 남을 뿐인 내 몸

2024.12.28 사용하실 필명
틈을 비집고 나온 정적

내 하품을 사람들은 슬픔이라 착각하지조용한 천장을 바라볼 때 하품이 많다동생은 맨날 코골이만 느끼고엄마와 아빠는 멀리 안방에 산다어떤 것을 설명하려면 백마디가 필요하다난 한마디면 충분하다하품이 나왔다코골이의 권태와 벌레없는 겨울의 고요생각하는 동상처럼 침대에 누워맺힌 눈망울, 떨어진 물 하나내 째진 눈에서 사슴을 본다면 좋을 텐데다들 증오하는 얼굴을 본다그대들의 눈은 검은 노른자처럼 둥글어서나를 다트의 과녁으로 쓴다내게는 한마디가 사는데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하품으로 나오고어른들은 시식코너를 지나쳐 보지 못 한다아무리 들끓어도 라면 넣을 타이밍을 놓쳤고나는 지루해서 그만뒀다이불을 꾹 눌러 씌어 어둠을 밀어내고눈물이 나온다아니다 하품을 했다이 저녁이 조금 지루하다

2024.12.28 백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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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jang
공지사항 2025 글틴캠프가 1월 20일, 파주에서 개최됩니다.

캠프 운영 날짜 : 1월 20일(월) ~ 22일(수) / 2박 3일 ▶신청하러 가기◀

2024.12.13
공지사항 2024년 문학광장 이벤트 첫번째(문학광장 댓글 챌린지)

문학광장 댓글챌린지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발행된 문학광장 콘텐츠를 보고,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추첨을 통해 참여 작가의 사인본과 캠핑 테이블 등 푸짐한 선물을 드립니다! ㅇ 참여방법 1. 2024년 발행된 문학광장 콘텐츠에 댓글을 남기고 캡처하세요! ★ 댓글 작성 가능 콘텐츠 : 김기태, 윤이안, 김중혁 소설가 및 조성래 시인의 작품 ★ 바로가기 - 김기태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102000000&bid=0032&act=view&ord=B&list_no=101601&nPage=2&c_page= - 윤이안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703000000&bid=0035&act=view&ord=B&list_no=103036&nPage=1&c_page= - 김중혁 소설가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102000000&bid=0032&act=view&ord=B&list_no=103264&nPage=1&c_page= - 조성래 시인 : https://munjang.or.kr/board.es?mid=a40702000000&bid=0034&act=view&ord=B&list_no=102878&nPage=1&c_page= 2. 댓글 작성 후, 응모 폼에 설문 제출! ★ 인스타그램 피드 또는 스토리에 @munjang2005를 태그하여 댓글캡처본을 공유하면 당첨 확률이 UP! ★ 응모 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O3oQP ㅇ 댓글 작성 플랫폼 : 유튜브, 문학광장 누리집, 팟빵, 인스타그램 등 어디든 OK!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문학광장 작가 사인본 (16명) - 『천국어 사전』(5명), 『온난한 날들』(3명), 『두 사람의 인터내셔널』(5명), 『영화보고 돌아오는 길에 글을 썼습니다』(3명) - 접이식 캠핑 테이블 (5명) 지금 바로 댓글 남기고 특별한 선물을 받아보세요!

2024.12.05
공지사항 2024년 문학광장 이벤트 두번째(문장 ONE-PICK)

문장 ONE-PICK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문학광장과 함께하며 가장 인상 깊었던 콘텐츠를 ONE-PICK 해주세요! 독자 코멘트는 문장웹진 2025년 1월호에 소개되며, 푸짐한 선물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ㅇ 참여방법 1. 2024년 문학광장 콘텐츠(문장웹진, 문장의소리, 문학집배원) 중 가장 인상 깊은 콘텐츠를 골라주세요! 2. 선택한 콘텐츠와 그 이유를 이벤트 응모 폼에 작성해 제출하세요! ★ 응모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v9lyN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문학광장 작가 사인본 (4명 ): 『카카듀』 - 손난로 보조배터리 (12명) - 리싸이클 코끼리 노트 (9명) 여러분의 최애 콘텐츠를 골라 문학광장과 함께해보세요! 당첨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4.12.05
공지사항 2024년 문학광장 이벤트 세번째(숨은 문장이 찾기)

숨은 문장이 찾기 이벤트 2024년 한 해 동안 문학광장과 함께 한 콘텐츠에 숨겨진 '문장이' 캐릭터를 찾아주세요! 정답을 맞히면 푸짐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ㅇ 참여 방법 1️. 2024년 문학광장 콘텐츠(문장웹진, 문장의소리, 문학집배원) 중 무작위로 '문장이' 캐릭터가 삽입된 5개의 콘텐츠를 찾아주세요! 2️. 찾아낸 '문장이' 캐릭터가 있는 콘텐츠 링크를 복사하여 설문폼에 제출하세요! ★ 설문폼 링크 : https://answer.moaform.com/answers/EKnp4g ㅇ 이벤트 기간 : 11.28(목) ~ 12.9(월) ㅇ 당첨자 발표 : 12.10(화), 개별 안내 예정 ㅇ 경품 안내 - 여행용 구급 키트(10명) - 로이텀 A5 다이어리 LEUCHTTURM 1917(5명) - 에코 키트 선물세트(손목가방, 대나무칫솔, 고체치약, 고체 3종 어메니티)(5명) 문장이를 찾아 문학광장의 재미를 더해보세요! 당첨자에게는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