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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지나간 것들의 따뜻한 속삭임 | 조용우「세컨드핸드」

세컨드핸드 조용우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주스, 요 거트, 구름, 구름들 이라고 친구는 읽어 줬다 코트가 죽은 이의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르는 사람의 옷은 꺼림칙하다고도 했다 먹고사는 일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하고 웃으며 구름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친구는 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오래전에 사려고 했던 것들을 입으로 외워 가면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따뜻한 코트를 버려두고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접어 여기 안쪽에 넣어 두고 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일까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시장을 통과할 때 상점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바구니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시큼하기만 한 요거트를 맛있게 떠먹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식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놀라운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구름들 바깥에서 이곳을 무르게 둘러싸고서 매일 단지 다른 구름으로 떠오는 그러한 것들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지나쳐 걷는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오고 있다 - 시집 『세컨드핸드』(민음사, 2023)

2025.03.06 김언
문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햇빛 마중』 중 「북극의 여인들」

나는 여느 때처럼 카페 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사람은 내가 있는 바로 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순간, 기억났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 문구점에서 스프링이 달린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서, 거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낙서 같기도,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숨기지도 않고 시집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은 한번도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화나게 했다니. 하지만 수업 시간에까지 시집을 읽었던 건 시를 향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내게 그것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어 과목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했다. 1학년 7반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던, 바짝 마른 몸에 단 한 번도 치마란 것을 입지 않았던 서른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그날 내가 숙제로 제출한 시를 나도 모르게 도 대회에 출품했다. 그 시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상금으로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7천 원짜리 롤케이크를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 걸까? 아무튼 그때 내가 쓴 시는 새벽 4시의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교무실로 불러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게 어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건데요’하고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회한의 기미가 스쳤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 그런 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마흔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쟁반을 들고 잠시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한쪽 끝에 앉아 았는 바 자리의 다른 한쪽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머그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문득 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을 들고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가끔 내 생각을 했다고.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고, 신간이 나오면 사서 읽었다고. 나는 두 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요? 그녀는

2025.02.20 천운영
나는 단골이고 싶지 않아서 | 조해주 「단골」

단골 조해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종로에 있고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나는 단골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날은 안경을 쓰고 어떤 날은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어떤 날은 혼자 어떤 날은 둘이 어떤 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오는데 어떻게 차갑게, 맞지요? 주인은 어느 날 내게 말을 건다 커피를 받아들고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저어서 드세요, 빨대의 끝이 좌우로 움직이고 덜컥 문이 잠기듯 컵 안에 든 얼음의 위치가 조금 어긋난다 주인은 내가 다니는 회사 맨 꼭대기 층에 지인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 김지현이라고 아나요? 나는 그런 이름이 너무 많다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주인은 얼음을 깨물어 먹고 설탕처럼 쏟아지는 창밖의 불빛들 참, 내일은 어떻게 하면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일까 생각하면서 -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

2025.02.06 김언
전성태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여기는 괜찮아요』 중 「숲으로」

수아는 그 나무를 알아보았다. 마을에서 보자면 대숲 가운데에 꺼멓게 머리를 내놓은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수아는 그들이 대숲 어디쯤에 와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바람 많이 타던 오른편 능선 중턱이었다. 할머니가 손전등을 왼편으로 돌렸을 때 재우리만한 빈터가 나타났다. 수아는 봉긋한 흙더미를 보았고 이내 그것이 묘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잔뜩 긴장해 있던 수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풀 한오라기 없는 묘지는 무덤이라기보다 정말 흙무더기 같았다. 할머니는 묘지 앞에다가 짚을 깔고 음식을 차렸다. 숙모에게 종지를 건네 술을 따르게 해서는 무덤 이쪽저쪽에 나누어 뿌렸다. 절도 없는 성묘는 금세 끝나고 이내 셋은 돌아섰다. 수아는 숙모에게 누구 무덤이냐고 숨죽여 물었다. 숙모는 강씨 할아버지 묘라고 말해주었는데 수아는 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기억에 없었다. 수아는 그 무덤의 내력을 집안 여자 어른들에게서 들었다. 여러 밤 제삿날의 부엌 담화를, 조각난 파편들을 꿰어 짐작하게 된 사연이었다. 증조할머니가 과부로 살다가 떠돌이 계절노동자를 만나 새살림을 차렸는데 그 할아버지는 성실하고 의붓자식들도 잘 돌보았다. 그가 혈육도 남기지 않고 늙어 죽자 의붓자식들이 장례를 치러줬다. 선산에는 못 가고 앞산에다가 묻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 묘지는 남부끄러운 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문중에서 묘지 주변에 대나무를 심었다. 온 산이 대숲이 되는 데는 십년도 걸리지 않았다. 수아는 그 이야기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대숲이 조성된 사연이 기묘하고, 할머니들의 야행은 아름다웠다. 묘지 가에 대나무를 심은 집안 남자들의 용렬한 행태보다도 여자들이 밤길로 다닌 성묘가 인간적으로 보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도 여겨져 마음으로 아끼게 되었다. 그 성묘가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모른다. 수아는 어른들이 음식을 해서 대숲에 드는 걸 그 뒤로 목격하지 못했다. 금이가 재혼하고 몇 해 있다가 큰집 부엌에 발을 들이게 되고, 수아는 마치 교대하듯이 부엌에서 물러났다. 어린 딸들까지 부엌에 넣는다고 금이가 싫어했다. 아마 성묘는 집안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지속되지 않았을까? 큰어머니나 숙모들도 얼마간 성묘를 다녔을지 모른다. 이제 부엌의 여자 어른들이 대부분 세상을 등졌고 도회지로 나간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일전에 대밭 매매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강씨 할아버지의 묘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해서 금이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했다. 그러면서 금이는 도둑 제사가 동티를 피하려는 이 집 여자들의 욕심이 한 짓거리라고 혀를 찼다. 남자들보다 더 악랄하다고, 금이는 차갑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수아는 놀랐다. 모든 제사라는 게 산 자들의 발원에서 비롯한 행위이기도 하므로 그 일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금이가 보인 적의가 전에 없던 거라 당혹스러웠다. 뒤미처 수아는 재취로 들어온 금이의 피해의식이라든가 섭섭한 마음 같은 걸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다. 수아로서는

2025.01.23 천운영
이자켓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복어 가요」

복어 가요 이자켓 합정까지 걸을까? 추운데 목도리 빌려줄게 너는? 난 추위 잘 안 타 추워서 머리가 멈췄나 봐 겨울이라 그런가 차디찬 골짜기인 거야 그곳에 도달한 생각들은 모두 얼어붙는 거지 그 골짜기 다 녹여주고 싶다 그럼 범람할 거야 아무 말이나 쏟아져 나올 거야 그건 안 돼 왜? 저거 들려? 뭐? 구세군 종소리 연말이긴 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뭐 해? 요즘 살쪘나 봐 패딩 탓인가 나 부해 보여? 조금 떨어진 채 빗물 언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한적한 합정에는 이 거리 끝에도 저 거리 끝에도 담배 태울 곳이 없어서 ‘그런지’라는 카페를 지나고 솔방울식당 지나고 푸르게 칠한 건물과 목련이 자라는 주택 지나 어둑한 골목에 들어섰다 불을 붙이고, 신발 뒤축으로 얼어버린 물웅덩이를 부수었다 얼음 조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다 맥없이 나뒹굴었다 종소리가 한 번, 두 번 이편저편 맴돌았다 10번 출구가 보였다 목도리를 돌려받았다 조심히 가 너도······ 넌 뒤돌아보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매끄럽게 사라졌다 점점 작아지는 뒤통수를 보다 돌아섰다 코트 주머니에는 킹 크룰의 앨범이 들어 있었고 움켜쥔 목도리는 방어 태세의 복어만큼 부풀어 올랐다 - 시집 『거침없이 내성적인』(문학과지성사, 2023)

2025.01.09 김언
안보윤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알마의 숲』

올빼미가 말하길. - 정어리를 먹어. 올빼미가 말했다. - 난 정어리에 대한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한 달 내내 정어리만 생각했지. 정어리, 정어리, 정어리, 매일 백 번씩 말했다. 아니, 이백 번은 말했겠군. 정어리통조림이나 정어리를 넣은 샌드위치를 생각하고,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과 정어리를 잡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어리처럼 생긴 비쩍 마른 남자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했지. - 정어리를요. - 그래, 정어리다. 오로지 정어리였지. - 그래서 그건 어떤 이야기가 되었나요? 유쾌하고 흥이진진한 이야기? 건조하고 냉정한 이야기? - 못 썼다. - 왜요? - 난 정어리를 본 적이 없거든. 먹어본 적도 없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정어리, 라는 단어에 빠져 있었던 거겠지.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주나 왕자에 빠져드는 것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하필 정어리에 빠졌던 거다. 정어리에 대해 매일 생각했지만 그건 진짜 정어리가 아니었지. 내가 상상해낸, 정어리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그러니 내가 뭘 쓰더라도 그건 정어리에 대한 글이 아니게 되는 거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알마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저씨 때문인가요? - 남 탓을 하다니, 정말이지 촌스럽기 짝이 없군. - 역시 아저씨 때문이었군요. - 됐다. 다시 정어리얘기로 돌아가자. 아니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한 네 얘기로 돌아가지. 너는, 그런 거다. 넌 네가 죽어야 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정작 네가 경험한 건 아주 짧은 단어 한 개,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장면 하나에 불과한 거다. 내가 정어리, 라는 단어를 읽고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처럼 너도 어디선가 고통이나 죽음 같은 단어를 보고 거기 동화되기 시작했겠지. 나는 정어리라는 단어밖에 모른다. 정어리에 대한 책을 백 권쯤 쓴다 해도 거기 진짜 정어리는 없지. 너도 마찬가지다. 넌 아직 삶도 죽음도 논할 자격이 없지.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정어리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내가 정어리가 비리다거나 기름지다거나 담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네 삶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거다. 넌 유 서를 쓰지 않은 이유가 네 엄마가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스럽길 바라서였다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다. 너는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거다. 네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뭐가 널 그리 힘들에 만드는지 너도 몰랐을 테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쉽게 결심한 거지. 어린애답게 말이다. - 아저씨도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 너는 그냥, 서툰 거겠지. 어린애들의 특권이다. 멍청하고 성급한 건. 어린애니까 가끔은 그런 식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기도 하는 거다. 괜찮겠지, 그 정도는. 난 어설프고 서툰 것들이 싫지 않다. 그런 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채워지거든. - 숲에 떨어지는 동물들처럼요? - 그래, 멍청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 난 멍청하지 않아요.

2024.12.27 천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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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늦게 피는

아주 오랫동안 녹슨 향초를 꺼냈습니다 어떤 냄새 났었는지 다 까먹은, 가지만 남은 꽃겨울에 피는 꽃을 상상합니다 동백꽃이 아니라 이미 피었던 것을요 내가 만질 수 있던 꽃잎은 누렇게 썩어버리고 애초에 보이지 않던 냄새는 인지 밖으로 흩어지고 그런 꽃 말입니다 초록을 잃어버린 머리 없는 사람 같은 꽃을요 나는 꽃이 보고 싶어 향초를 핍니다 냄새는 역시나 하늘 위 철새처럼 보이지 않고 떠나가는 모든 것을 그림으로 그립니다 나를 지나간 사람의 얼굴과 내가 지나친 사람의 얼굴때때로 다르지 않았다예컨대 철새들가위 모양을 그리면서 하늘을 휭주하는 모습에서 꽃향기를 맡습니다 향초와는 조금 다른, 다 시든 겨울의 꽃냄새를 눈이 다 녹았다 그렇다고 꽃이 피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철새들 모두 지나치는 사람의 얼굴이었지 향초조차도 언젠가는 꺼지고 만다는…오늘따라 애타는 것들은 떠나가는 것의 얼굴을 한다 다 바스러진 가지를 손이 쥡니다 바램 같은 마음을 창문이 그리고 빛이 여전히 스미는 마루에 앉아서나는 겨울꽃의 냄새를 맡습니다 내가 지니가는 것지나치기만 하는 겨울 핏줄처럼 돋은 무신경과 가위 모양의 새들다 탄 향초의 냄새무신경한 곳에서도 피는 흐르고 있었다 냄새 맡는 행위는 때때로 기도가 되었고

2025.04.10 김백석
동침

고된 하루의 끝에 침대에 몸을 맡긴다머리맡에 날아드는 아직 저물지 못한 해의 모습이태양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서서히 눈이 감길 즈음 수평선에 걸쳐 펼쳐지는 노을이기다려준 너의 눈꺼풀에 감사를 표하는 광경이 되어그렇게 같은 땅에 누워 잠을 청하는 태양과 너네가 그랬던 것처럼 누군가 먼저 침대에 누워너의 하루를 지켜보며 눈을 감지 못한고마운 눈꺼풀 하나 둘 있을지도언젠가 다시 만날 그날에 같은 침대에 누워너 혼자 남았던 지난날을 노래할지도

2025.04.10 월운
원시도 근시도

도시에 살아서 산이 흐릿하다가까운 걸 너무 많이 봤나하얀색을 내비두지 못해 검정이 박힌 벽지, 손때가 타서 누렇게 물든 핸드폰나는 울음이 많은 성격인데, 가끔 왕따가 되지 그래서 슬픈가 벽지를 타고 흐르는 여릿한 신음 이불에 고개를 파묻고 나는 괴로워했습니다 이유를 찾으면 조금 가실까 한참 동안 괴로움을 바라보았습니다 역시나 산처럼 괴로움은 흐릿했다 문뜩 너무 많은 사람들이 라식을 했답니다한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그 한동안이 너무 많은 사람에게 긴데 우리는 너무 쉽게 실명을 선택합니다항상 가까운 곳을 보고 싶어서 제 눈을 뽑았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고 나조차 그런 사람이었다나는 괴로움을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라식 때문이다 수술대에 눕는다 얼음을 조금 깨고 나온 유속, 느린 번쩍임레이저가 쏘아진다 오대수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 그러니 괴로움에 대강 이름을 붙이는 거지 아무도 세심한 것 따위 모르니까자신의 실명에 즐거워하고 피라미드에 깃발을 꽂고 등정을 선포한 이들웃긴 사람들이지 틀리지 않았지만 대충 사는 사람괴로움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준다 습관적으로 눈이 내린다 도시에서도……눈 산은 눈에 덮이고……그러면 저건 눈인 거야, 산인 거야 답을 아는 사람들은 실명 하거나 항상 가까운 것을 본다 우린 상자 속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운다어디에도 정답은 없었다

2025.04.09 김백석
인터내셔널

담벼락을 넘어보는 새눈망울에 부유하는횡단의 빛감나무 위에서 허상을 쪼아먹다가하늘에 깃을 세운다 나무는 머리칼을 정돈하며 씩 웃어넘기는그런 오후에는 인터내셔널.교차하는 과거와 통과하는 미래 속에서새는 날아가고———소음이.뿔을 세운 황소처럼 내닫기 시작한다혼자라는 말을 쪼아먹으려면 네가 필요해너와 나 사이그것을 가로지는 여러 선과선을 넘나드는 사슴과 새와그들만의 또다른 유역.나는 너를 놓고 싶지 않았으나새는 허공을 입에 물고우리 사이에 정확히 떨어뜨린다이것을 우리는 거리감이라 불렀다보호 구역 입니다오백 미터 앞 좌회전 입니다사고 다발 지역입니다덜컹거림 속에서도 보았지횡단의 눈망울을 뻐끔거리는한 마리의 새를

2025.04.09 옥상정원
망상

쉼 없이 거리를 달리다 돌연바라본 그곳에 찾아 헤매던기억의 한 자락 마주한 광경 마치 비와 같이 떨어진 자물쇠들이미처 피하지 못한 몸뚱이에 떨어져옷을 적시고 주저앉는 광경 저 멀리 올려다본 밭의 천장엔새벽의 아버지께서 해를 삼켜황혼과 함께 하루를 종언하는 광경 짖은 안개에 깔려 두 무릎을 잡고쪼그려 앉아 두 눈에 담아진 망상 속반투명한 조각 하나 뽑아내어 움켜쥐고 고개 숙여 얼룩진 바닥에 빗살을 그어접어둔 세 손가락 펼칠 또다른 망상심장 한 켠에 숨겨둔 망상은 다시 혼탁한 머릿속 유일한 출구 되어

2025.04.09 월운
허라브리라

우리 그때 약속한 거 있잖아, 하늘이 푸르다는 걸 잊지 않는 것 무거운 가방을 메도 움츠러들지 말 것 비에 젖은 운동화 안에서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버스를 기다릴 것, 신발끈을 묶어주면서 다시는 풀리지 말라고 풀잎이 울먹거리고 우리는 정류장에 앉아 같은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었다 빗방울이 음악을 담고 있어 귀는 자꾸만 먹먹해지고 엉덩이가 축축해져 너는 마치 허라브리라같다고 말했다 그 말을 되뇌기만 했다 어깨에 기대는 순간까지도 공기를 머금었다 떨어지는 나뭇잎이 앞을 스친다 발목에는 양말 자국이 나고 교복이 투명 우산을 물들인다 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해? 나는 어서 집에 가고 싶다고 다만 양말이 나를 붙잡고 이어폰은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어서, 그래 정말 허라브리라처럼 신발끈이 풀려 보도블럭을 쓰다듬을 때 버스를 몇 번 놓쳤는지 센다 벤치에 떨어진 물방울만큼 기다린다고 말하고 싶어 하늘은 달빛을 먹고 우리는 가로등을 마시지 채워지지 않는 갈증은 오늘밤으로 충분하고 우린 내일도 같은 노래를 들을 거야 신발끈을 발목에 묶어 두었다

2025.04.09 문월
이름 없는 개

이름 없는 개를 본 적이 있었다무구한 눈빛을 가진 개였다때가 묻지 않아 순해 보이면서도동시에 더럽혀질까 두려웠다선한 존재들이 마땅히 갖는 일종의 무지(無知) 같은 것이었다.그건 아마 몇천 년 전부터 이어졌을 일종의 습성일 것이 분명했다.이름 없는 개는 그렇게 있었다한정된 자유를 꼬리에 담은 개였다제약된 선 안에서 자유를 표출하는종 내부에 깊숙이 박혀있는 꼬리를 살랑댔다평생 누군가를 위해 꼬리를 흔들어야 하는 이들을 떠올렸다종속 관계에 갇혀서도 결국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믿고 있을개는 눈을 감을 수 있었다꼬리도 흔들 수 있었다그 개가 없는 건 이름뿐이었다그 개는 그냥 '개'였다문득 내가 지금껏 개의 주인을 찾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이름이 무엇일지 감히 멋대로 추측하기도 했던 거 같았다나는 내심 앞으로도 그 개가 그저 '개'이기를 바랐다이름을 원하지 않고 손길을 원하지 않기를 바랐다그게 나의 이기심에 비롯된 마음이란 것은 머지않아 깨달았다

2025.04.09 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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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협성마리나G7)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호텔프린스)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남이섬)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2025년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 2025년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추가공모 사업에 대한 공통 안내문입니다. 사전에 확인 후 세부 공고문 확인바랍니다.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문학)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1. 사업개요 ○ 사업명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사업기간 : 2025. 10월 중순 ~ 11월 중순 (1개월) ○ 사업장소 : 일본(Japan) - 교토(Kyoto) ○ 주요내용 : 오프닝 포럼, 클로징 이벤트 등 교토작가레지던시 개최 프로그램 참여 및 작가 개인 창작활동 수행 ※ 사업 세부소개 • 해외협력기관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홈페이지 : https://kyotowriters.org/ • 기관/사업소개 - 교토에 있는 대학의 문학 학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2022년에 설립된 국제 문학 레지던시 - 전 세계의 작가 및 번역가들이 교토에 머물며 창작활동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 • 세부 프로그램 - 레지던시 공식행사인 오프닝 포럼 및 클로징 이벤트 2회 ※ 모든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되며, 공개 행사에 한하여 영어-일본어 통역 진행 예정 2. 지원신청자격 ○ 문인(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최소 1권 이상의 발간 실적이 있는 문인 ※ 그림책, 희곡, 비문학(에세이 등) 제외 -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 ○ 선정자는 레지던시 공식 행사 필석 3. 지원규모 및 항목 ○ 참가 예술가 직접 지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선정자 보조금 지급/지원신청서 내 예산 편성) 구분 선정 인원 지원규모 자부담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1인 (후보군 3~5인 내외) 100만원 내외 총 사업비(보조금+자부담)의 10% 이상 - 프로그램 참가를 위한 왕복 항공료(이코노미석 기준 실비 지원) ※ 비자 발급비, 현지 체재비 등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회계법인 회계검증수수료 ※ 회계검증수수료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신청 공통안내사항 내 가이드라인 참조 ○ 기타 지원항목(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번역가/제작업체 지급) - 문학 분야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시 15편, 소설 30페이지 내외) : 400만 원 ※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당업체, 번역가에게 직접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해외협력기관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 : ¥430,000 ※ 숙박비, 일부 식사, 공식 행사 관련 통역료(영어-일본어),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비용 포함 ※ 현지 체류 중 지급되는 현지 체재비 외 추가분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해당 지원 내역은 해외협력기관과의 협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4. 제출서류 및 자료 (필수자료 총 3개) ※ 우편 및 방문 접수 불가 제

202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