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visual_section

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munjang

문학집배원

윤이안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온난한 날들』

정오가 되자 태양이 머리 꼭대기 위에 떠올랐다. 슬슬 직장인들이 몰려와 테이크아웃을 해 갈 시간대인데 손님은 하나도 없었다. 당연했다. 이런 땡볕에 에어컨도 안 트는 카페에 올 손님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틈을 타 나는 유리와 함께 카페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늘어져 있었다. 평택호 바로 앞 관광단지라는 특성 때문에 원래가 직장인보다는 뜨내기손님이 더 많은 가게였다. 단골도 별로 없다. 주변에 같이 장사하는 가게 사장님들 외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이 가능한 거리라 버스나 지하철을 탈 필요가 없다는 게 유일한 장점이었다. 고개를 들었다가 다시 테이블에 반대쪽 볼을 갖다 댔다. 테이블에서 올라오는 찬기로 얼굴이 조금은 시워해져서 이러고 있으면 그나마 살 것 같았다. 점장님은 이러고 누워 있는 우리를 보고 나무늘보가 따로 없다고 잔소리를 하시지만. 볼을 바꿔 대려고 고개를 다시 들었을 때, 앉아 있는 테이블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던 스킨답서스 화분에서 불길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듣는 순간 테이블에 엎어져 있던 몸을 벌떡 일으킬 정도로 놀랐다. “부점장님, 왜 그러세요?”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 정도로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소리가 들린 것 자체가 오랜만이긴 했다. 지난달 초에 한 번 듣고 이번 달에 처음 듣는 거니까 얼추 두 달 만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유리가 불안해할까 봐 다시 테이블에 볼을 갖다 대고 누웠다. 누운 채로 점장님이 있는 포스기 쪽을 향해 물었다. “점장님, 저희 화분 몇 개만 더 뺄 수 없을까요?” 카페 내부에는 보이는 자리마다 화분이 깔려 있다. 어스프레소는 대대적으로 친환경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는 마케팅을 펼치곤 했다. 일회용 플라스틱 없는 커피 브랜드로도 유명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플라스틱 제로가 아니라, 여기 평택 에코시티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신소재 플라스틱만 사용한다는 뜻이지만 신소재 플라스틱은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금방 썩는다는 특징이 있으니 크게 다른 말은 아니다. 평택이 신소재 플라스틱 시번 사용 도시, 에코시티로 지정된 지 이제 10년째였다. 평택 구도심 아래쪽, 평택호 인근 지역이 에코시티로 지정된 이후 시티 내에서는 사용하는 플라스틱 양에 제한이 없어졌다. 신소재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만큼 탄소 배출도 타 지역보다 20퍼센트까지 더 가능하다. 그 영향인지는 몰라도, 최근 들어 공장이나 기업의 본사가 에코시티로 이전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어스프레소의 본사만 해도 에코시티 내에 있었다. 그러니까 가게 내부에 가득한 화분은 어스프레소의 친환경 브랜드 마케팅의 일환이었다. 어스프레소 사장님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게 내 업무 환경을 저하시키는 데 한몫하고 있었다. 점장님에게 매일 우리 화초 좀 몇 개만 빼자고 말해도 내 의견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점장님이 말했다. “명색이 에코시티인데, 초록이 좀 많아야 보기도 좋지 않니?” 초록, 저도 참 좋아하는

2024.10.24 천운영
조성래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창원」

창원 조성래 창원으로 갔다 이제 두 달도 더 못 산다는 어머니 연명 치료 거부 신청서에 서명하러 갔다 아무리 먼 곳이라도 일단 도착하면 나는 그곳과 너무 가까운 사람이었다 먼 곳은 먼 곳으로 남겨 두기 위하여 나는 아무 데도 가고 싶지 않았다 먼 곳이 너무 싫어서 먼 곳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세상의 모든 먼 곳으로 가고 싶었다 속속들이 모든 먼 곳을 다 알고 모든 먼 곳을 파악하고 모든 먼 것들의 사정을 다 이해하고 용서하는 전지하신 하느님께 합장하고 기도 올리는 성모마리아······ 파티마 병원에 어머니는 누워 계셨다 빗자루에 환자복을 입혀 놓은 것처럼 바싹 말라서 아직 살아 계셨다 내 손을 잡고 울다가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다 조금 뒤면 자기가 죽을 것을 까맣게 모르는 사람처럼······ 내가 하나도 밉지 않은 듯이, 어제도 날 본 사람처럼 웃었다 다음 생에는 안 싸우고 안 아픈 곳에서 함께 있자고 이제 당신이 내 자식으로 태어나라고 내가 당하겠다고 당신도 당해 보라고 눈물이 끝 모르고 흘렀다 눈물 흘릴 자격이라도 있는 것처럼 마치 자식 된 사람인 것처럼······ 그 시각 모든 일이 먼 곳에서 동시에 벌어지고 있었다 거기선 엄마도 죽고 나도 죽고 끔찍한 날 피해 자리를 비킨 동생도 죽고 모두 죽어서 죽고 나서 웃고 있었다 모두 지난 일이라는 듯 모두 지나야 했던 일이라는 듯······ 그러나 그건 나 혼자서 듣는 소리였다 어머니는 홀로 죽을 것이며 나는 여전히 어떤 현실들에 마비된 채 살아도 되는 사람처럼 살아서 살아 있는 것 같은 사람들 사이를 걸어 다닐 것이다 —시집 『천국어사전』(타이피스트, 2024)

2024.10.11 김언
김기창 소설가의 『지구에 커튼을 쳐줄게』

도경이 사는 곳은 용희가 익히 경험해 본 장소였다. 대학 시절 같은 과 동기의 자취방이 꼭 저랬다. 여름에 동기의 자취방은 주변에 햇빛을 가려 줄 만한 큰 건물이 없어 작은 냉장고에 몸을 쑤셔 넣고 싶은 집으로 탈바꿈했고, 매서운 바닷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는 동면할 수 없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뼈 시리도록 반성케 하는 집으로 변모했다. 도경의 집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림막 하나 없는 여름 한낮의 옥탑방은 재난 지역으로 선포해도 무방했다. 딱 한 가지 좋은 점은 상쾌한 가을밤이 내려앉았을 때 옥상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며 담배를 피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캔 맥주가 손에 들려 있으면 더 좋았다. 용희는 옥탑방을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그리고 생각했다. 도경에게 캔 맥주 한 박스를 몰래 사다 주는 것 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용희는 긴 한숨을 내쉬며 언덕길을 내려다보았다. 도경이 검은 봉지와 막대 아이스크림을 손에 쥐고서 자신이 있는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도경이 용희를 알아보는 데 쓰인 10초는 용희에게 머나먼 북극의 바다를 두어 번 갔다 오는 시간만큼 길게 느껴졌다. 당황한 용희는 마찬가지로 어찌할 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도경을 향해 소리쳤다. “제가 지구에 커튼을 쳐 드릴게요!” 도경은 입을 벌린 채로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용희는 도경의 집 옥상에 놓인 평상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지난 5년간 얼핏얼핏 그려 왔던 일이, 지난 이틀간 문득문득 상상했던 순간이 눈앞에 당도했다는 기쁨에 용희는 이마에서 얼굴로 주르륵 흘러내리는 땀방울도 잊은 채 자신의 심장 소리에만 주의를 기울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그러나 그 역시 정해진 트랙을 벗어나 날뛰는 소리는 아니었다. 용희는 심장이 악보 없는 음악에 홀려 무작위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처음으로 천문대를 찾았을 때 광활한 우주를 탐사하며 느꼈었던, 거대하고 두려운 무언가가 눈앞에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예측불가능한 불안함 속에서도 주체할 수 없는 흥분으로 몸을 떨던 때의 심장 소리였다. 그때, 도경이 옥탑방에서 나와 유리컵 두 개와 감자칩을 담은 그릇을 평상에 내려놓았다. 도경은 평상에 편하게 앉더니 검은 봉지에 든 맥주 세 병을 꺼냈다. “병맥주 한 병을 마셨을 때 기분이 제일 좋아요. 그제 제 주량이에요. 더 마시면 정신 줄 놔요.” 용희는 물었다. 그런데 왜 세 병을 샀느냐고. “술이 술을 부르니까.” 용희는 빙긋 웃었다. 도경은 용희의 컵에 맥주를 따른 후 자신의 컵을 스스로 채웠다. 건배 없이 도경이 먼저 맥주를 들이켰다. 용희도 마셨다. 도경이 말했다.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었다고.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내 탓은 아닌 것 같은데, 정말 내 잘못은 아닌 것 같은데.&r

2024.09.26 천운영
이린아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양동이」

양동이 이린아 그해 여름 양동이 속에 머리를 넣고 살았다 양동이는 늘 밖에서부터 우그러진다 우그러진 노래로 양동이를 펴려 했다 그때 나는 관객이 없는 가수가 되거나 음역을 갖지 못한 악기의 연주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다 잘 보세요, 얼굴에서 귀는 유일하게 찌그러진 곳입니다 보컬 레슨 선생이 말했다 가끔 내 목소리가 내 귀를 협박하곤 했다 세모 눈썹, 불타버린 미간을 펴며 귓속과 목구멍의 구조를 샅샅이 뒤지는 소리를 내려 했던 여름 노래, 그해 여름에 배운 노래는 반팔이었고 샌들을 신었고 목덜미에 축축한 바람이 감기는 그런 노래였다 양동이 속에서 노래는 챙이 넓은 모자를 뒤집어쓰곤 했다 골똘한 눈, 꺾인 손등으로 받치고 있는 청진의 귀를 향해 벌거벗은 노래를 불렀다 양동이 속에서 듣던 1인용 노래 허밍과 메아리의 가사로 된 노래를 우그러진 모자처럼 쓰고 다녔다 - 시집 『내 사랑을 시작한다』 (문학과지정사, 2023)

2024.09.12 김언
최은미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마주』

나는 수미를 만나러 갔다. 오로라와 나비가 생긴 발로 내가 만나러 간 사람은 2031년의 수미는 아니고 2022년의 수미였다. 2022년이 막 시작된 겨울에 수미가 내게 어떤 협곡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수미가 일러준 협곡 입구로 가서 표를 끊었다. 그곳은 남한 최북단 마을에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자 까마득한 암반 절벽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자신이 일이 끝나는 시간대와 얼추 맞을 거라고 수미가 말했다. 나는 주상절리의 무늬들을 건너다보면서 절벽에 긴 선반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걸었다. 벼랑길 밑으로 하얗게 언 강이 이어졌고 그 위를 사람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강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가끔씩 멈춰 서서 이쪽 벼랑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절벽 위를 한 시간 남짓 걷고 나서야 나는 넓은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공원 한쪽에 빨갛고 기다란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방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의 줄 끝에 서 있다가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누군가 이미 앉아 있어 대각선 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협곡 탐방객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나는 룸미러로 버스 기사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마스크를 더 올려 써야 했다. 구독자가 2,01만명인 한 여행 유튜브 채널에 수미가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개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수미는 버스가 설 때마다 승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트레킹 코스가 엉켜 헤매는 사람들한테 막힘없이 대안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더 거쳐 내가 표를 끊었던 협곡 입구로 왔다. “끝났다, 일.” 그렇게 말하고 수미는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는 걸었을 테니 얼음 위를 걷자고 하면서. 나는 수미를 따라 강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금세 얼음 트레킹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 틈에서 운동화를 신은 건 수미와 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또 금세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양옆으로 현무암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마치 하늘이 보이는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미와 나는 눈이 희끗희끗하게 덮인 얼음 위를 걸어서 암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며 좁은 협곡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벗었고, 곧이어 양말도 벗었다.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 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

2024.08.22 천운영
남지은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혼자 가는 먼 집」

혼자 가는 먼 집 남지은 일곱 살처럼 살라고 엄마는 말하고 뭐든지 서서히 하라고 아빠는 말한다 삼 년 안에는 첫 시집을 내야지 선배가 조언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해요 치료사가 당부한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언니가 혼잣말처럼 물어오고 시를 몇 편 쓰면 시인이 되나요 시인은 시만 쓰나요 시가 아니면 안 되나요 글쓰기 수업 학생들이 열띠게 질문한다 덜 핀 작약을 안아든 귀갓길 울 데가 필요해서 찾아왔다고 뵌 적 없는 시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니 여기까지 잘 왔네, 하신다* 사랑 많은 손을 붙들고 나는 여기 무어든 받아 적는다 포장을 끄르면 사라질 신비 같은 * 2020년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의 2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북한산을 내려오는 길에 김민정 시인이 건네준 말. “수경 언니는 틀림없이 지은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시의 제목은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에서 가져왔다. 『그림 없는 그림책』 (문학동네, 2024)

2024.08.08 김언
바로가기

글틴

시선이 향하는 곳에 먼저 팔을 내밀고조명보다 더 빠르게빛을 가르며 달려나가자생각은 언제나 시간보다 빠르지미래가 행동을 따라잡을 수 없는 것처럼관중이 손짓할 때환호에 맞춰 춤을 추자ㅡ사랑한다고 했을 때너의 손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나 무서워요나는 조금 떨려요내가 실수하면 어쩌죠.박수갈채를 한 몸에 받으며몸을 크게 들썩이고다리를 한 번 차올리자텅 빈 소리를 내는 나무 바닥에서몇 번이고 고개를 돌리며박차오르자 손을 머리 위로 뻗었다가다시 내리고 다시 들었다가 떨어뜨리고강의 표면을 얇게 베어내어한 장을 들고 펄럭이면바람이 사이를 빠져나오듯이 숨을 내쉬자눈을 감았을 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마주할 또 다른 세상이 두렵다면일단 지금은 너와 손을 맞잡고 리모콘을 쥐자노래방 문을 열고 빠져나와힘들게 찾은 보물을 꽉 끌어안고학자들이 가득한 공간에서 계단을 뛰어내려 달리는 거야.이상한 물고기가 사는 연못도 잊어버리고사람을 집어먹는 괴물도 없고흩날리는 악보들을 주워던지는 풍경과좁은 집에서 여러명이 공포에 떨지도 않고할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바닥을 쳐다보지 말고나를 쫒는 쌍둥이 형제도수신인이 누군지 모를 서류봉투와다른 세계로 인도하는 오토바이 두 대도비치볼이 천장에 달린 끔찍한 백화점의 미로도옷에 적힌 소원도작아지는 케이크도무거운 가방도답답한 말을 하는 친구도마주할가끔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 할 때가가장 초조하고 눈물이 나지만어떻게 해서든 살아보자일단 장소를 벗어나는 거야죽을 힘을 다해 뒤집개를 휘둘러 보자죽을 힘을 다해 이 놀이방에서 벗어나자정오의 햇살이 산란하며눈부시게 찬란하게 비치는 도서관에서잠시 숨을 돌리고짐을 챙긴 뒤에 정글을 건너자바다에 빠져도 그네 앞에 줄을 서자걸어가는 죽음이 가득한 거리도 태연히 돌아보며분홍 간판이 인상적인 상가 거리를 둘러보는거야 왜냐면 수행평가가 아직 남아있잖아미끄럼틀 아래에 무언가를 파묻고황홀하게 부서지는 은하수의 쏟아짐과홀로 서게 될 상황에서도 친구들이 있었던 때는 마음이 편안했던 것 같아.자 이젠 손가락이 잘려도계속해서 버스를 갈아타는 거야원하는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괜찮아정말 힘들어 숨이 벅찰 땐 눈을 감으면 되잖아되돌리는 거야 원하는 때로그리고 다시 시작하자다시...포기하기 어렵고 현실과 헷갈리더라도 괜찮아출구를 찾을 수 있을 거야어린아이에서 벗어나면 더이상 악몽을 꾸지 않는대귀여운 미라 꿈에 엉엉 울던 다섯살 때보다더 목이 죄여오지만숨을 돌리고어른이 되기 위해서

2024.11.26 방백
개미와 나 사이

개미와 나 사이 공란같은 사랑을 해서,산에 걸린 사람을 발견해요 무당이 흘린 색동 저고리와 그걸 입은 내 사람, 수많은 나무에 옷감을 박아 놓으면 내가 기도 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나무 위를 기어가는 개미와 그들과 나의 빈틈나는 평생 어리더군요, 달을 바가지에 담으면 사랑이 이루어지는 줄 알았어요분홍색 지우개를 몽땅 낙서해서 길을 걷고,부슬부슬 떨어지는 나, 개미가 기어가네요 해가 졌는데 검정을 못본듯,막차는 오지 않아야 해요 야간 할증에 붙은 이름을,주머니에 뒹글거리는 지우개산은 자랍니다 연두색 자켓은 이파리가 되었고 손바닥에 붙은 작은 운을 옹기종기 모았습니다. 마지막 색은 이제 떠나야 할때 엔터를 누르면 보내지지 않습니다우리는 조금 밀려날 뿐그 조그만 공란에서 나는 움츠리며,몸을 둥글게 말아서, 아직도 오지 않은 겨울을,

2024.11.26 김백석
비웃음

내가 널 좋아한다는 사실이 널 웃게 해주는 일이라면,내 마음의 쓰라림은 그 웃음 속에 남겨진 내가 없어서일까.너의 웃음 속에 남겨진 내 슬픔은 아무도 알지 못할 거야.

2024.11.26 김밥
ㅇㅅㅇㅁ, ㅇㅅㅈㅇ

앞으로 자기 인생에 과학은 없다며 방방 뛰던 너와더이상의 암기과목은 없다며 웃던 나는아마도 삶의 거의 모든 것에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고아마도 삶의 거의 모든 것이 기억할 것 투성이인 것을 느꼈을 것이다그러니까 아마도 아마도이상이몽인 우리는 더이상 교차점이 없다지?우리는 이미 교차로를 지나서로를 지나갔으니까 말이야그래도 시라는 교점은 좋았어비록 내가 지나치고 있지만,매일 그리 말하니까 365일 폐업정리에 90% 할인세일하는 매장과다른 점이 뭔지 생각하고 있어너는 들어온 적도 없을 생명과학실에서학습지를 빤-히 들여다보다ㅇㅅㅈㅇ 초성을 보고암실정원? 왕실자연? 정원? -정원? —정원?오답과 땡땡땡 실로폰 소리가 엇갈리며 교실 전체에 울려 퍼지다가옥상정원,서준이와 나 두 명만 속발음할너를 생각한다네가 원자의 출생을 더듬을 때잘근잘근 쪼개어 생각하다과연 너는내가 떠올랐을런지 싶다만은 ‘나’와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닌데화자와 필자는 같은 사람이 아닌데내 시는 가끔 너무 솔직하다고,그래서 진짜인 줄 속겠다고 말하는 너를 떠올리려다가그래, 사실이야라고 입을 떼려다 만 내가 떠올랐다책 모서리를 접으려다가가름끈으로 종이 사이를 갈라놓는다그럼에도,아무쪼록 너의 마루*가이슬에 덮여 반짝이길 바란다이상이몽, 옥상정원마루*: 등성이가 진 지붕이나 산 따위의 꼭대기나 치솟은 파도의 꼭대기

2024.11.26 쿼크
오래된 가끔

퇴근길 차들이 몇 안 남은 공단 입구 버스 정류장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는 가끔 의자에 앉아 운다 화장한 얼굴로 핸드폰을 잡고 울기도 하고 눈물 자국만 가득한 채 조용히 앉아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본다 그럴 때면 나도 멜랑콜리를 느낀다 그러나 멜랑콜리라는 말은 너무 말랑하다 마치 이 감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우릴 쳐다보지도 않는 자동차들처럼 지나면 잊을 감정이라며 무시할 것 같은 말랑함 우스꽝스럽지만 쓸쓸한 단편 소설 같다 그녀의 울음은 오래된 가끔일 것이드 내가 이 길을 지나지 않았던 때에도 더 이상 이 길을 지나지 않을 때에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가끔 묻고 싶다 멜랑콜리라는 말이 말랑해서 다행이지 않아요?

2024.11.26 카페라떼
잔해

심장의 떨림으로 내 기분을 미루어볼 때마다 죽을 것 같다 그것은 가끔 사랑인 것 같기도 하고 밀려 나오는 헛구역질이거나 결벽적 강박 혹은 강박의 심사인 것 같은데 있지 나는 음악 볼륨을 높이는 행동 하나에도 불안을 느껴 귀가 터지도록 음악을 듣다가 정말로 고막에서 붉은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장면을 상상해 서랍에는 하트 모양 블러셔가 들어 있고 책상에는 커피 한 잔 어쩌면 그런 것들이 심장을 뛰게 만들었을지도 몰라 제가 멀쩡하다고요 그러면 좋겠다 나는 어리숙한 연기를 하며 모든 것을 내팽겨치고 마음을 녹여버렸어 아직도 네 이름을 외면서 저주를 내뱉어 네가 행복하지 않길 바라 아니 사실 그것은 거짓말 다시 속이 울렁거리고 소매에 붙은 먼지가 신경이 쓰이는데요 왜 떼어지는 종류의 불안은 많지 않은가 그래도 걱정마세요 이불을 뒤집어 쓸 망정 살결을 스치는 날붙이나 정제된 알약을 소분하여 털어넣는 일은 없을 거라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고 나의 이기심과 타인의 이타심 그리고 당신의 이기심 속에서 새아나오는 웃음소리를 느낄 때 나는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을 중얼거릴 수 있나 내가 웃을 수 있는 것은 필통 속의 노란 먼지와 두고 나온 샤프심 중 어떤 것의 물성에 더 가까운가 죄송해요 저는 아직도 계속해서 심장에서 비롯되는 결벅적 구토감을 느낍니다 제 속을 들어내어 경멸하고 가세요 나는 아직도 우습지 않은 당신의 천재성을 부러워하며 아무렇게나 헛소리를 지껄인다 아직 시간이 너무 길어요 어지러워서

2024.11.26 눈금실린더
수필 바람의 방향

언젠가부터 바람의 방향이 변했다.너와 함께 걸었던 길 위에 늘부드럽게 불던 바람은 이제 거칠고 냉담하다.그 바람 속에서 나는 자꾸만 뒷걸음 친다. 돌아보면, 자꾸만 네가 있을 것만 같아서.하지만 너는 그 자리에 머물러있지 않았고 오직 빈 하늘만이 펼쳐져 있다.너무나도 푸르러서 가슴이 아려오는 그런 하늘.너와 나란히 걸었던 시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아니면 얼마나 짧았는지 조차 내가 확답할 수는 없지만시간은 언제나 그렇게 모호하고 불친절하다.내게 남은 것은 단지 몇 가지의 장면이다. 유일하게 너와 내가 주인공으로 남아있는 장면.너의 웃음, 걸음걸이, 그리고 가끔씩 나를 바라보던 좋아죽겠다는 그 눈빛.그 마저도 이젠 특별하지만 되찾을 수 없는 것들임을 나도 안다.네가 떠난 후에는, 아니 내가 너를 보낸 날인가.나는 쓸쓸함과 적적함의 다른 이름들을 배웠다. 적막, 허전함, 그리고 공허.외로움. 사랑.그것들은 매일 밤 나를 찾아와 아무도 없는 방을 가득 채운다.나는 그 속에서 너를 붙잡지만 바람은 대답 대신 나의 외로운 소리만을 남긴다.가끔씩은 너를 다시 만나는 그런 꿈을 꾼다.그곳에서 너는 여전히 따뜻하고, 여전히 나를 보며 웃는다.하지만 여전히 꿈일 뿐. 나의 눈 깜빡임 하나로 인해 너는 사라지고, 나는 다시 이곳에 남는다.돌아갈 수 없는 곳을 그리워하며.나는 이제 안다. 아니 어쩌면 너에게 가라고 한 그 순간부터.어쩌면 니가 날 버린 게 아니라. 내가 널 버린 걸까.희미한 바람 한 줄기에도 니 향기가 나는 것 같고,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에도 혹시나 너일까. 주위를 살피곤 한다. 어쩌면 난 평생 그 길에 서 있을 것 같다.너의 향기가 나고, 너의 발자국 소리가 나지만, 너는 존재하지 않는,그런 길.그 길 속에 네가 돌아올 길은 없다는 걸 알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너의 향기를 따라, 눈을 가고 너의 발자국 소리가 나는 곳으로.

2024.11.25 은유
바로가기
munjang
공지사항 2024년 문학광장 누리집 이용자 만족도 조사 (기프티콘 5천원권 증정)

여러분과 함께 더 나은 문학광장을 만들고 싶어요! 문학광장 누리집 이용자 만족도 조사에 참여해주시면 여러분의 소중한 의견이 더욱 반영될 수 있습니다. 참여해주신 분들께는 추첨을 통해 깜짝 선물도 준비되어 있으니 놓치지 마세요! ㅇ 조사기간 : 2024. 11. 11(월) ~ 20(수) ㅇ 설문링크 : http://isurvey.panel.co.kr/?Alias=9256906499

2024.11.13
공지사항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결과 안내

안녕하세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수상 결과를 안내드립니다.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시)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시 장원 김ㅇ언 지우개의 행방 우수상 김ㅇ림 볼풀장 장려상 정ㅇ영 뜨개질 장려상 이ㅇ민 지우개 인간 장려상 주ㅇ영 지우개 입선 박ㅇ희 기다림 입선 정ㅇ연 영구임대 입선 박ㅇ원 공연 입선 박ㅇ정 기다림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산문)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산문 장원 김ㅇ애 매실의 시간 우수상 박ㅇ연 지우개 장려상 전ㅇ희 지우개는 그곳에 두고 왔다. 장려상 장ㅇ현 기다림의 순환 장려상 김ㅇ연 나는 오늘도 내일의 나를 기다립니다. 입선 박ㅇ선 그런 기억도 소중하다고 당신에게 배웠습니다. 입선 손ㅇ선 겨울 준비 입선 조ㅇ옥 두번 심은 고추(모종) '기다림' 입선 김ㅇ연 얀의 선물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아동문학) 분야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아동 문학 장원 고ㅇ성 특별한 청설모 우수상 임ㅇ정 회색 꼬마 공룡 지우개 장려상 지ㅇ순 안젤라 누나 장려상 이ㅇ민 한 줄 두 줄 엮이더니 장려상 한ㅇ비 나와 너의 기다림 약속 입선 이ㅇ지 커다란 지우개 입선 김ㅇ영 당근 김밥 입선 이ㅇ희 기다림 입선 한ㅇ숙 D-15 누나가 나타났다. □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특별상) 상훈 수상자명 작품명 특별상 오ㅇ원 나와 타인 특별상 김ㅇ희 지우개

2024.10.11
공지사항 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결과 안내

안녕하세요. 제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수상 작가님을 다음과 같이 안내드립니다.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은 올해 2회차를 맞이하였으며, 올해 297명의 작가님께서 참여해 주셨습니다. 참여해주신 모든 작가님께 감사드리며 차년도에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인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대상(1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대상 이*숙 0691 □ 공감상(5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공감상 한*희 6220 방*의 8596 장*교 3370 김*아 7073 정*선 5498 □ 소통상(15명) 상훈 성명 연락처(뒷 4자리) 소통상 김*선 9218 유*하 0913 박*영 0631 장*현 5963 김*언 8675 이*령 7811 조*숙 0875 박*롱 7714 최*숙 4557 권*현 8068 이*지 0691 정*숙 7863 최* 5552 강*은 0694 이*님 3413

2024.10.08
공지사항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참여(등단/미등단) 관련 안내

안녕하십니까,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에 관심가져 주심에 감사합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의 등단(미등단) 작가님들의 참여와 관련하여 안내드립니다.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여성 문학인 발굴을 목표로 미등단 여성 작가님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계의 흐름과 다양한 의견을 반영하여, 등단 이력이 있는 작가님도 본인이 등단하지 않은 장르(시, 산문,아동문학에 한함)에 참여하실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내용을 참고하시어 참여 가능 여부를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ㅇ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참여 가능여부 안내 -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여성 누구나 참여 가능합니다. 단, 등단 여성 작가님은 등단하신 장르로 참여는 불가하나, 다른 장르로는 신청이 가능합니다. -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신청 예시 1. 산문(소설) 분야 등단 작가님 → 산문 부문 신청 불가(아동문학, 시 부문 참여 가능) 2. 아동문학 분야 등단 작가님 → 아동문학 중 세부 장르의 등단 분야 신청 불가(시, 산문 참여 가능) (예시 : 아동문학_동화 등단일 경우 동화 신청 불가, 동시로는 가능 / 반대일 경우도 동일) 3. 시 분야 등단 작가님 → 시(시조) 부분 신청 불가(소설, 아동문학 참여 가능) 4. 등단 이력은 없지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동일 장르 수상 이력이 있을 경우 참여 가능 여부 → 장원 수상 이력 외 참여 가능 위와 같이 안내드립니다. 추후 사업의 경우 현재보다 더 개선된 방향으로 준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성 작가님들의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4.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