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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집배원

지나간 것들의 따뜻한 속삭임 | 조용우「세컨드핸드」

세컨드핸드 조용우 시장에서 오래된 코트를 사 입었다 안주머니에 손을 넣자 다른 나라 말이 적힌 쪽지가 나왔다 누런 종이에 검고 반듯한 글씨가 여전히 선명했고 양파 다섯, 감자 작은 것으로, 밀가루, 오일(가장 싼 것), 달걀 한 판, 사과주스, 요 거트, 구름, 구름들 이라고 친구는 읽어 줬다 코트가 죽은 이의 것일지도 모른다며 모르는 사람의 옷은 꺼림칙하다고도 했다 먹고사는 일은 어디든 비슷하구나 하고 웃으며 구름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구름은 그냥 구름이라고 친구는 답했다 돌아가는 길에 모르는 사람이 오래전에 사려고 했던 것들을 입으로 외워 가면서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여전히 조용하고 따뜻한 코트를 버려두고 이 모든 것을 살뜰히 접어 여기 안쪽에 넣어 두고 왜 나는 모르는 사람이 아닌 것일까 같은 말들이 반복해서 시장을 통과할 때 상점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바구니에 담아 넣을 수 있다 부엌 식탁에 앉아 시큼하기만 한 요거트를 맛있게 떠먹을 수도 있다 오늘 저녁식사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떠올리면서 놀라운 것이 일어나고 있다고 느끼면서 구름들 바깥에서 이곳을 무르게 둘러싸고서 매일 단지 다른 구름으로 떠오는 그러한 것들을 이미 일어난 일처럼 지나쳐 걷는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이름들을 하나씩 만지작거리면서 나는 오고 있다 - 시집 『세컨드핸드』(민음사, 2023)

2025.03.06 김언
문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햇빛 마중』 중 「북극의 여인들」

나는 여느 때처럼 카페 바 자리에 앉아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내가 아는 얼굴 하나가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는 사이 그 사람은 내가 있는 바로 그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딸랑, 문에 달린 종이 울리는 순간, 기억났다. 그녀는 나의 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으로 시를 썼다. 문구점에서 스프링이 달린 천원짜리 연습장을 사서, 거기에 생각나는 것들을 아무렇게나 적었다. 낙서 같기도, 시 같기도 한 문장들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미있었다. 수학 시간마다 숨기지도 않고 시집을 읽다가 선생님에게 등짝을 맞기도 했다. 수학 선생님은 한번도 누구를 때렸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없는, 아이들이 우습게 볼 정도로 순한 분이었다. 그런 선생님을 그렇게까지 화나게 했다니. 하지만 수업 시간에까지 시집을 읽었던 건 시를 향한 나의 열정 때문이라기보다는, 당시 내게 그것 외에는 흥미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국어 과목 숙제로 시를 써 가야 했다. 1학년 7반 담임이자 국어를 가르치던, 바짝 마른 몸에 단 한 번도 치마란 것을 입지 않았던 서른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그날 내가 숙제로 제출한 시를 나도 모르게 도 대회에 출품했다. 그 시는 최우수상을 받았고, 나는 상금으로 MP3 플레이어를 샀다. 그리고 선생님께 드릴 선물로는 동네 빵집에서 파는 7천 원짜리 롤케이크를 샀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대체 어떤 인간인 걸까? 아무튼 그때 내가 쓴 시는 새벽 4시의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 관한 시였다. 아무도 없는, 모든 게 정지된 듯한 밤거리에서 분명히 존재하고 흔들리고 있는 것들에 관해 적었다. 그녀는 그때 나를 교무실로 불러 ‘너는 앞으로도 계속 시를 쓰는 게 어떠니?’하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저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요, 그냥 심심해서 써본 건데요’하고 대답했다. 순간 그녀의 얼굴에 회한의 기미가 스쳤다. 나도 한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지. 그런 식의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후로 백일장에 나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시인 같은 것은 되지 않을 거야.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연습장에 낙서를 하고 있다. 마흔일곱 살 고영숙 선생님은 쟁반을 들고 잠시 카페 안을 둘러보더니, 내가 한쪽 끝에 앉아 았는 바 자리의 다른 한쪽으로 갔다. 자리에 앉아 머그 컵에 담긴 음료를 한 모금 마신 그녀가 문득 내 쪽을 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러고는 환하게 웃었다. 나도 웃었다. 그녀가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찻잔을 들고 다가와 내 옆에 앉았다. 어떻게 이렇게. 이렇게 정말 오랜만에.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했다. 가끔 내 생각을 했다고. 가끔 내 이름을 검색해보고, 신간이 나오면 사서 읽었다고. 나는 두 달째 이곳에 머물고 있다고 말했다. 선생님은요? 그녀는

2025.02.20 천운영
나는 단골이고 싶지 않아서 | 조해주 「단골」

단골 조해주 내가 다니는 회사는 종로에 있고 근처에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나는 단골이 되고 싶지 않아서 어떤 날은 안경을 쓰고 어떤 날은 이마를 훤히 드러내고 어떤 날은 혼자 어떤 날은 둘이 어떤 날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다가 나오는데 어떻게 차갑게, 맞지요? 주인은 어느 날 내게 말을 건다 커피를 받아들고 나는 어떤 표정도 짓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저어서 드세요, 빨대의 끝이 좌우로 움직이고 덜컥 문이 잠기듯 컵 안에 든 얼음의 위치가 조금 어긋난다 주인은 내가 다니는 회사 맨 꼭대기 층에 지인이 일하고 있다고 한다 혹시 김지현이라고 아나요? 나는 그런 이름이 너무 많다고 대답한다 그렇구나, 주인은 얼음을 깨물어 먹고 설탕처럼 쏟아지는 창밖의 불빛들 참, 내일은 어떻게 하면 처음 온 사람처럼 보일까 생각하면서 - 시집 『우리 다른 이야기 하자』(아침달, 2019)

2025.02.06 김언
전성태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여기는 괜찮아요』 중 「숲으로」

수아는 그 나무를 알아보았다. 마을에서 보자면 대숲 가운데에 꺼멓게 머리를 내놓은 나무가 한그루 있었다. 수아는 그들이 대숲 어디쯤에 와 있는지 가늠이 되었다. 바람 많이 타던 오른편 능선 중턱이었다. 할머니가 손전등을 왼편으로 돌렸을 때 재우리만한 빈터가 나타났다. 수아는 봉긋한 흙더미를 보았고 이내 그것이 묘라는 걸 깨달았다. 그렇지 않아도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잔뜩 긴장해 있던 수아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풀 한오라기 없는 묘지는 무덤이라기보다 정말 흙무더기 같았다. 할머니는 묘지 앞에다가 짚을 깔고 음식을 차렸다. 숙모에게 종지를 건네 술을 따르게 해서는 무덤 이쪽저쪽에 나누어 뿌렸다. 절도 없는 성묘는 금세 끝나고 이내 셋은 돌아섰다. 수아는 숙모에게 누구 무덤이냐고 숨죽여 물었다. 숙모는 강씨 할아버지 묘라고 말해주었는데 수아는 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기억에 없었다. 수아는 그 무덤의 내력을 집안 여자 어른들에게서 들었다. 여러 밤 제삿날의 부엌 담화를, 조각난 파편들을 꿰어 짐작하게 된 사연이었다. 증조할머니가 과부로 살다가 떠돌이 계절노동자를 만나 새살림을 차렸는데 그 할아버지는 성실하고 의붓자식들도 잘 돌보았다. 그가 혈육도 남기지 않고 늙어 죽자 의붓자식들이 장례를 치러줬다. 선산에는 못 가고 앞산에다가 묻었다. 세월이 흐르며 그 묘지는 남부끄러운 묘지가 되었다. 그래서 문중에서 묘지 주변에 대나무를 심었다. 온 산이 대숲이 되는 데는 십년도 걸리지 않았다. 수아는 그 이야기가 기묘하고 아름다웠다. 대숲이 조성된 사연이 기묘하고, 할머니들의 야행은 아름다웠다. 묘지 가에 대나무를 심은 집안 남자들의 용렬한 행태보다도 여자들이 밤길로 다닌 성묘가 인간적으로 보였고, 성인이 되어서는 관습에 대한 저항으로도 여겨져 마음으로 아끼게 되었다. 그 성묘가 얼마나 더 지속되었는지는 모른다. 수아는 어른들이 음식을 해서 대숲에 드는 걸 그 뒤로 목격하지 못했다. 금이가 재혼하고 몇 해 있다가 큰집 부엌에 발을 들이게 되고, 수아는 마치 교대하듯이 부엌에서 물러났다. 어린 딸들까지 부엌에 넣는다고 금이가 싫어했다. 아마 성묘는 집안 할머니들이 살아 있을 때까지 지속되지 않았을까? 큰어머니나 숙모들도 얼마간 성묘를 다녔을지 모른다. 이제 부엌의 여자 어른들이 대부분 세상을 등졌고 도회지로 나간 어른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일전에 대밭 매매 이야기가 나왔을 때 강씨 할아버지의 묘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궁금해서 금이에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처음 듣는 소리처럼 반응했다. 그러면서 금이는 도둑 제사가 동티를 피하려는 이 집 여자들의 욕심이 한 짓거리라고 혀를 찼다. 남자들보다 더 악랄하다고, 금이는 차갑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수아는 놀랐다. 모든 제사라는 게 산 자들의 발원에서 비롯한 행위이기도 하므로 그 일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로 금이가 보인 적의가 전에 없던 거라 당혹스러웠다. 뒤미처 수아는 재취로 들어온 금이의 피해의식이라든가 섭섭한 마음 같은 걸 새삼 헤아려보게 되었다. 수아로서는

2025.01.23 천운영
이자켓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복어 가요」

복어 가요 이자켓 합정까지 걸을까? 추운데 목도리 빌려줄게 너는? 난 추위 잘 안 타 추워서 머리가 멈췄나 봐 겨울이라 그런가 차디찬 골짜기인 거야 그곳에 도달한 생각들은 모두 얼어붙는 거지 그 골짜기 다 녹여주고 싶다 그럼 범람할 거야 아무 말이나 쏟아져 나올 거야 그건 안 돼 왜? 저거 들려? 뭐? 구세군 종소리 연말이긴 하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뭐 해? 요즘 살쪘나 봐 패딩 탓인가 나 부해 보여? 조금 떨어진 채 빗물 언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한적한 합정에는 이 거리 끝에도 저 거리 끝에도 담배 태울 곳이 없어서 ‘그런지’라는 카페를 지나고 솔방울식당 지나고 푸르게 칠한 건물과 목련이 자라는 주택 지나 어둑한 골목에 들어섰다 불을 붙이고, 신발 뒤축으로 얼어버린 물웅덩이를 부수었다 얼음 조각이 이리저리 튀었다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다 맥없이 나뒹굴었다 종소리가 한 번, 두 번 이편저편 맴돌았다 10번 출구가 보였다 목도리를 돌려받았다 조심히 가 너도······ 넌 뒤돌아보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통해 매끄럽게 사라졌다 점점 작아지는 뒤통수를 보다 돌아섰다 코트 주머니에는 킹 크룰의 앨범이 들어 있었고 움켜쥔 목도리는 방어 태세의 복어만큼 부풀어 올랐다 - 시집 『거침없이 내성적인』(문학과지성사, 2023)

2025.01.09 김언
안보윤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알마의 숲』

올빼미가 말하길. - 정어리를 먹어. 올빼미가 말했다. - 난 정어리에 대한 글을 쓸 작정이었다. 한 달 내내 정어리만 생각했지. 정어리, 정어리, 정어리, 매일 백 번씩 말했다. 아니, 이백 번은 말했겠군. 정어리통조림이나 정어리를 넣은 샌드위치를 생각하고, 정어리를 가공하는 공장과 정어리를 잡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정어리처럼 생긴 비쩍 마른 남자아이에 대해서도 생각했지. - 정어리를요. - 그래, 정어리다. 오로지 정어리였지. - 그래서 그건 어떤 이야기가 되었나요? 유쾌하고 흥이진진한 이야기? 건조하고 냉정한 이야기? - 못 썼다. - 왜요? - 난 정어리를 본 적이 없거든. 먹어본 적도 없다. 어느 책에선가 읽었던 정어리, 라는 단어에 빠져 있었던 거겠지. 아이들이 한 번도 보지 못한 공주나 왕자에 빠져드는 것처럼, 한 번도 보지 못한 마녀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나는 하필 정어리에 빠졌던 거다. 정어리에 대해 매일 생각했지만 그건 진짜 정어리가 아니었지. 내가 상상해낸, 정어리와는 전혀 다른 무엇이다. 그러니 내가 뭘 쓰더라도 그건 정어리에 대한 글이 아니게 되는 거다. - 무슨 소린지 모르겠어요. 알마가 가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건 아저씨 때문인가요? - 남 탓을 하다니, 정말이지 촌스럽기 짝이 없군. - 역시 아저씨 때문이었군요. - 됐다. 다시 정어리얘기로 돌아가자. 아니 더럽게 재미없고 지루한 네 얘기로 돌아가지. 너는, 그런 거다. 넌 네가 죽어야 할 만큼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말하지만 정작 네가 경험한 건 아주 짧은 단어 한 개, 순식간에 스쳐지나간 장면 하나에 불과한 거다. 내가 정어리, 라는 단어를 읽고 그것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처럼 너도 어디선가 고통이나 죽음 같은 단어를 보고 거기 동화되기 시작했겠지. 나는 정어리라는 단어밖에 모른다. 정어리에 대한 책을 백 권쯤 쓴다 해도 거기 진짜 정어리는 없지. 너도 마찬가지다. 넌 아직 삶도 죽음도 논할 자격이 없지. 어떤 것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정어리를 제대로 먹어보지 못한 내가 정어리가 비리다거나 기름지다거나 담백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너도 네 삶에 대해 한마디도 할 수 없을 거다. 넌 유 서를 쓰지 않은 이유가 네 엄마가 이유를 알지 못해 고통스럽길 바라서였다고 했지? 그건 거짓말이다. 너는 한 줄도 쓸 수 없었을 거다. 네가 왜 죽으려고 하는지, 뭐가 널 그리 힘들에 만드는지 너도 몰랐을 테니까. 그냥 죽어버릴까, 하고 쉽게 결심한 거지. 어린애답게 말이다. - 아저씨도 내가 어리광을 부리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 너는 그냥, 서툰 거겠지. 어린애들의 특권이다. 멍청하고 성급한 건. 어린애니까 가끔은 그런 식의 엉뚱하고 어리석은 결론을 내기도 하는 거다. 괜찮겠지, 그 정도는. 난 어설프고 서툰 것들이 싫지 않다. 그런 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채워지거든. - 숲에 떨어지는 동물들처럼요? - 그래, 멍청한 아이들이 성장하는 것처럼. - 난 멍청하지 않아요.

2024.12.27 천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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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원시도 근시도

도시에 살아서 산이 흐릿하다가까운 걸 너무 많이 봤나하얀색을 내비두지 못해 검정이 박힌 벽지, 손때가 타서 누렇게 물든 핸드폰나는 울음이 많은 성격인데, 가끔 왕따가 되지 그래서 슬픈가 벽지를 타고 흐르는 여릿한 신음 이불에 고개를 파묻고 나는 괴로워했습니다 이유를 찾으면 조금 가실까 한참 동안 괴로움을 바라보았습니다 역시나 산처럼 괴로움은 흐릿했다 문뜩 너무 많은 사람들이 라식을 했답니다한동안 아무것도 볼 수 없는데 그 한동안이 너무 많은 사람에게 긴데 우리는 너무 쉽게 실명을 선택합니다항상 가까운 곳을 보고 싶어서 제 눈을 뽑았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고 나조차 그런 사람이었다나는 괴로움을 보지 못했다 아무래도 라식 때문이다 수술대에 눕는다 얼음을 조금 깨고 나온 유속, 느린 번쩍임레이저가 쏘아진다 오대수 오늘만 대충 수습하며 살자 그러니 괴로움에 대강 이름을 붙이는 거지 아무도 세심한 것 따위 모르니까자신의 실명에 즐거워하고 피라미드에 깃발을 꽂고 등정을 선포한 이들웃긴 사람들이지 틀리지 않았지만 대충 사는 사람괴로움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준다 습관적으로 눈이 내린다 도시에서도……눈 산은 눈에 덮이고……그러면 저건 눈인 거야, 산인 거야 답을 아는 사람들은 실명 하거나 항상 가까운 것을 본다 우린 상자 속에서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운다어디에도 정답은 없었다

2025.04.09 김백석
인터내셔널

담벼락을 넘어보는 새눈망울에 부유하는횡단의 빛감나무 위에서 허상을 쪼아먹다가하늘에 깃을 세운다 나무는 머리칼을 정돈하며 씩 웃어넘기는그런 오후에는 인터내셔널.교차하는 과거와 통과하는 미래 속에서새는 날아가고———소음이.뿔을 세운 황소처럼 내닫기 시작한다혼자라는 말을 쪼아먹으려면 네가 필요해너와 나 사이그것을 가로지는 여러 선과선을 넘나드는 사슴과 새와그들만의 또다른 유역.나는 너를 놓고 싶지 않았으나새는 허공을 입에 물고우리 사이에 정확히 떨어뜨린다이것을 우리는 거리감이라 불렀다보호 구역 입니다오백 미터 앞 좌회전 입니다사고 다발 지역입니다덜컹거림 속에서도 보았지횡단의 눈망울을 뻐끔거리는한 마리의 새를

2025.04.09 옥상정원
명화(名畵)

그 속에 펼쳐진 세상이 탐나그림의 떡을 쳐다본 적 있을까손을 뻗어 만져지는 것은물감으로 칠해진 캔버스결코 닿을 수 없는 그런 세상 창문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에 홀려홀린 듯 창틀에 손을, 이윽고 창문을 넘어더 가까운 곳에서 그것을 바라본 적 있을까그림 같은 세상 속에 한 발 내딛고서 깨달은 것너 사는 세상이 한 장의 명화라는 것

2025.04.08 월운
감상&비평 세기말 빈의 예술가들(‘비엔나 1900’ 전시를 보고)

만일 당신이 어떤 한 문화 전체의 서사시적 저술을 보고자 한다면, 당신은 그것을 이 문화의 가장 위대한 인물들의 작품들 속에서, 그러니까 이 문화의 종말이 단지 예견될 수 있었을 뿐인 시대에서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는 그것을 기술할 어느 누구도 더 이상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이는 비트겐슈타인이 남긴 문구이다. 이를 인용한 까닭은 1900년대 당시의 예술이 이러한 가치의 종말에 대한 예언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2월달 말 무렵 서울 국립 중앙 박물관에서 전시한 그림 전인 ‘비엔나 1900’을 볼 수 있었다. 이 그림전은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에 활동하던 빈 분리파 예술가들의 작품을 주로 다룬 전시였다. 앞으로 서술하겠지만 나는 이 전시를 조금은 분석적으로 바라보며 빈 분리파의 화가들이 말하고자 했던 바가 무엇인지, 비트겐슈타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의 ‘예언’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수 있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유행했던 미술 사조에는 인상주의, 큐비즘 등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주로 활동한 화가들로는 이 전시의 중심 주제인 빈 분리파도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다양하고, 통일성이 없어 보이는 미술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나는 그들의 공통점이 그 통일성을 타파한다는 점 그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상주의는 세계의 단순한 묘사에서 예술가의 눈에 비친 세계로, 큐비즘은 표상적인 사물에서 사물의 본질로, 빈 분리파는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묘사하는 기존의 예술에서 추한 것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예술로의 변화를 꾀하였다. 가히 그들의 그림은 혁명적이며 기존의 화풍에서 탈피하고자 시도한다. 그러나 그들의 혁명은 프랑스 대혁명이나 르네상스의 문화혁명과는 달리 역동적이지도 화려하지도 않다. 그들의 혁명은 열정이기 보다는 체념이며 환희가 아니라 차라리 심연의 고뇌이다. 이러한 점에서 내게는 이런 미술의 변화가 기술에게 그 가치를 위협받는 예술의 처절한 노력이자 앞서 인용문에서의 ‘종말에 대한 예언’으로 느껴졌다. 먼저 당시 미술 사조와 특징을 어렴풋이나마 분석해보고자 한다. 먼저 인상주의는 절대적 세계의 사물 대신 상대적 인식된 사물을 말한다. 사물은 빛과 보는 각도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다르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상주의는 어차피 그것이 상대적이라면 눈에 포착된 바로 그 순간에 그리자는 발상에서 시작되었다. 한편 입체주의, 즉 큐비즘은 그 시작을 기술의 발달에 둔다. 왜냐하면 큐비즘은 그림의 사실 묘사의 기능은 발전된 기술의 산물인 카메라와 같은 기계가 더 잘 수행하므로 미술은 다른 목적, 즉 예술가의 자기 표현과 사물의 본질 파악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미술 사조가 예술가 자신의 눈에 비친 사물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는 점에서 예술가가 주체적인 실존자로서 세상의 복제품을 만드는데 만족하지 않고, 그림을 통해 세상에 자유를 행사하고자 한 실존주의적 철학이 담겨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꼭 미술 사조가 아니더라도 당시의 유명한 미술가들은

2025.04.08 Ted
서투른 용기

숨기고 싶은 것이 있다조금씩 새고 있는 물조금은 요란스러운 바람조금 쳐져 있는 꽃아무에게도 관심 없는 것들을말하기 전에는 누구에게나 감춰놓는 것들을조금씩 숨기고 싶었다하지만 밝히고 싶었다조금씩 새빨갛게 붓는 눈조금은 숨 막히는 가슴조금 아래로 떨어지는 고개아무에게도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말 한 후에야 누군가가 들춰보는 것들을조금은 밝히고 싶었다그래서 용기를 내어보고 싶었다용기라고 해봤자 서툴렀다관심을 끌지 못 할지언정말하지 못 할지언정조금 서투른 용기를 내어보았다

2025.04.07 선인장
모텔 노스탈자

케텔비의 페르시아 시장에서를 듣다 오랜만에 다시 모텔 노스탈자로 갔다 유령처럼 벽에 붙어 있는 담배연기 누런 벽지와 누런 전등과 누런 노스텔지어 노스텔지어와 노스탈자의 차이를 고민했다 바래진 노스텔지어가 노스탈자일까 사라진 노스텔지어가 노스탈자일까 테헤란로와 페르시아 시장의 차이를 고민했다 카펫을 산적도 없지만 사 보았고 적선을 해 본 적도 없지만 해 보았다 저글링하는 광대를 구경했고 흥겨운 음악에 춤을 췄다 그리고 침대에 몸을 파묻었다 모텔 노스탈자에는 존재한적도 없는 것들이 숙박했고 존재한 적도 없는 소리가 배관를 타고 올라왔다 영화 소리, 싸우는 소리, 우는 소리, 파도 소리, 새소리 금관악기와 타악기가 사그라들고 첼로 연주자의 선율이 흐른다 공주를 묘사하는 서정적 멜로디 모텔의 복도에 공주의 행렬이 지나간다 모텔은 증식하고 증식한다 우아한 첼로 선율에 공주를 맞자 수 많은 숙박객이 들어온다 수 많은 공주와 내가 들어온다 방이 꽉꽉차고 배관를 타고 소리가 들린다 울고 싸우고 얘기하고 맹세하고 놀고 나는 게걸스럽게 들었다 음악을 듣고 있는 나를 대신해 내가 울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도꼭지를 틀고 모든 소리를 토해냈다 음악이 끝나자 모텔을 나왔다 난 찬 의자에 앉아 있었다 다음 곡은 El bimbo라고 했다

2025.04.07 임세헌
산 아래 소리 내드립니다

프롤로그 자동이체 설정해두시고 오늘은 미세먼지가 많으니 샤인 온 유 크레이지, 더스트, 라든지 움직임이 없으면 불을 꺼버리는 센서에 지는 사람이 눈 감으려는 먼지의 도약과 먼지까지 훔쳐가려는 도벽증세가 아니라는 말에 어딘가에서 주워와 던졌다네요 시공간 원리 눈이 떠진 것은 알람을 알리는 기온에 의한 것 문제집은 낮은 기온에서 잠이 잘 온다고 서술한다 바람에 날리는 종이 줍는 사람은 알람의 가사에 드러난다고 예견된다 나타날 것이라고 알고 있었고 입에서는 증기가 나가지 않는 시대 잎에는 흑백 시험지에 인쇄된 스트로마가 있고 입 속에는 당연히 검은 배경이 있었다 증기를 내보내지 못하게 된 입은 검은 배경을 쏟아낸다 (서서히 일어나는 점등 등나무 엮은 소쿠리가 책상에 놓였고 전등 두 개가 지직거리고 있다) 나는 검은 배경이 좋아 문은 잠겼고 가방은 목에 대롱대롱 이루어졌다, 는 이럴 때 쓰는거라지 (실링팬부터 목까지 연장된 줄과 목 뒤편에 엉거주춤 달린 가방)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이 검은 봉다리는 뭘까 시커먼 방 안에 시커먼 봉지라니 얼마나 미감이 없는거야 (확실히 하자면 방 안은 불이 켜져 있기 때문에 전혀 시커멓지 않 아니, 방 안은 시커멓다 이제부터 괄호는 사용하지 않도록 하자 지시는 배우에 의하여 시커먼 방 시커먼 줄 시커먼 머리칼 시커먼 가방 시커먼 동공 보이는 검은 것은 보이는 것보다 멀리 있을지도 모르고 방문 밖에 있을지도 모르는 것이지만 방문에 가려 보이지 않는 흰 것보다 좋다 집회에 대한 경고는 일반 시민이 아닌 사람들을 지시한다 나는 그걸 누가 썼는지 알고 있다는 대사를 한다 그 후 작성자를 확인하고 놀라고 전등이 점등되며 전력이 공급된 실링팬 날에 한없이 말려올라가던 줄이 끊어진다 나는 아프다는 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입이 없지 않다 할란 엘리슨은 없단 말인가 있으면서 없다고 서술한 사람일 뿐이라고 외친다 목에 달린 가방이 떨어지지 않는다 불만스러운 표정 배경으로 들리는 화난 목소리 그것도 내가 녹음한 것이라는 대본을 외웠다 "그러게 가방을 좀 잘 끊어지는 걸로 샀어야지!" 회상이랍시고 넣은 음향이겠지만 못 써먹겠네, 대본을 읽는 말투와 대상 없는 대사라니 자동이체를 설정해둘 시 수수료가 부과되지 않아 편하게 돈이 나갈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 수수료가 없는 송금 서비스가 있다고 답하고 퇴장당한다 관객주제에 주저리주저리, 수정된 시공간 원리 기온이 낮은 것은 깊은 잠 깨우지 않으려는 집주인의 배려 물이 새는 문은 잘 가라는 말을 빠져나와 쓰레기장에서 주워온 기타 사실은 이렇습니다 내용에서 버려진 것은 버려진 것 스피커에서 나오는 것은 버려지기 전의 것 누가 모두 말해준다던 것은 주최자가 정해야 한다고 적혀있는데, 이것들 다 누가 쓴거지? 1장 검은 방 전등이 서서히 꺼진다, 밝아지는 눈 당신의 눈은 어둠에 적응하지 않는다 라이트모티프의 독어 알아듣지 못해 끔뻑 소리 죽인 독백 들려오지 않아 그럼 어떻게 전달하라는 거야? 이걸 듣고 있다면 귀가 좋거나 글을 읽고 있는 것 내 귀에 도청기가 있다! 던

2025.04.07 데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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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협성마리나G7)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호텔프린스)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2025년 문학레지던시(남이섬) 공고문

2025.03.12
공지사항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2025년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 2025년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추가공모 사업에 대한 공통 안내문입니다. 사전에 확인 후 세부 공고문 확인바랍니다. [해외레지던시참가지원] (문학)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참가지원 1. 사업개요 ○ 사업명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사업기간 : 2025. 10월 중순 ~ 11월 중순 (1개월) ○ 사업장소 : 일본(Japan) - 교토(Kyoto) ○ 주요내용 : 오프닝 포럼, 클로징 이벤트 등 교토작가레지던시 개최 프로그램 참여 및 작가 개인 창작활동 수행 ※ 사업 세부소개 • 해외협력기관 :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Kyoto Writers Residency) • 홈페이지 : https://kyotowriters.org/ • 기관/사업소개 - 교토에 있는 대학의 문학 학자들과의 연계를 통해 2022년에 설립된 국제 문학 레지던시 - 전 세계의 작가 및 번역가들이 교토에 머물며 창작활동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 • 세부 프로그램 - 레지던시 공식행사인 오프닝 포럼 및 클로징 이벤트 2회 ※ 모든 프로그램은 통역 없이 영어로 진행되며, 공개 행사에 한하여 영어-일본어 통역 진행 예정 2. 지원신청자격 ○ 문인(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시, 소설, 아동·청소년 문학 : 최소 1권 이상의 발간 실적이 있는 문인 ※ 그림책, 희곡, 비문학(에세이 등) 제외 -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는 자 ○ 선정자는 레지던시 공식 행사 필석 3. 지원규모 및 항목 ○ 참가 예술가 직접 지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 선정자 보조금 지급/지원신청서 내 예산 편성) 구분 선정 인원 지원규모 자부담 일본 교토작가레지던시 1인 (후보군 3~5인 내외) 100만원 내외 총 사업비(보조금+자부담)의 10% 이상 - 프로그램 참가를 위한 왕복 항공료(이코노미석 기준 실비 지원) ※ 비자 발급비, 현지 체재비 등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회계법인 회계검증수수료 ※ 회계검증수수료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신청 공통안내사항 내 가이드라인 참조 ○ 기타 지원항목(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번역가/제작업체 지급) - 문학 분야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시 15편, 소설 30페이지 내외) : 400만 원 ※ 작가키트 제작비 및 작품 번역비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해당업체, 번역가에게 직접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해외협력기관 지급) - 프로그램 참가비 : ¥430,000 ※ 숙박비, 일부 식사, 공식 행사 관련 통역료(영어-일본어), 프로그램 운영 등 각종 비용 포함 ※ 현지 체류 중 지급되는 현지 체재비 외 추가분은 참가자 개인 부담 ※ 해당 지원 내역은 해외협력기관과의 협의에 따라 조정될 수 있음 4. 제출서류 및 자료 (필수자료 총 3개) ※ 우편 및 방문 접수 불가 제

2025.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