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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munjang

문학집배원

최은미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마주』

나는 수미를 만나러 갔다. 오로라와 나비가 생긴 발로 내가 만나러 간 사람은 2031년의 수미는 아니고 2022년의 수미였다. 2022년이 막 시작된 겨울에 수미가 내게 어떤 협곡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수미가 일러준 협곡 입구로 가서 표를 끊었다. 그곳은 남한 최북단 마을에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자 까마득한 암반 절벽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자신이 일이 끝나는 시간대와 얼추 맞을 거라고 수미가 말했다. 나는 주상절리의 무늬들을 건너다보면서 절벽에 긴 선반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걸었다. 벼랑길 밑으로 하얗게 언 강이 이어졌고 그 위를 사람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강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가끔씩 멈춰 서서 이쪽 벼랑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절벽 위를 한 시간 남짓 걷고 나서야 나는 넓은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공원 한쪽에 빨갛고 기다란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방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의 줄 끝에 서 있다가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누군가 이미 앉아 있어 대각선 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협곡 탐방객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나는 룸미러로 버스 기사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마스크를 더 올려 써야 했다. 구독자가 2,01만명인 한 여행 유튜브 채널에 수미가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개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수미는 버스가 설 때마다 승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트레킹 코스가 엉켜 헤매는 사람들한테 막힘없이 대안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더 거쳐 내가 표를 끊었던 협곡 입구로 왔다. “끝났다, 일.” 그렇게 말하고 수미는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는 걸었을 테니 얼음 위를 걷자고 하면서. 나는 수미를 따라 강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금세 얼음 트레킹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 틈에서 운동화를 신은 건 수미와 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또 금세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양옆으로 현무암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마치 하늘이 보이는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미와 나는 눈이 희끗희끗하게 덮인 얼음 위를 걸어서 암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며 좁은 협곡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벗었고, 곧이어 양말도 벗었다.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 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

2024.08.22 천운영
남지은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혼자 가는 먼 집」

혼자 가는 먼 집 남지은 일곱 살처럼 살라고 엄마는 말하고 뭐든지 서서히 하라고 아빠는 말한다 삼 년 안에는 첫 시집을 내야지 선배가 조언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해요 치료사가 당부한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언니가 혼잣말처럼 물어오고 시를 몇 편 쓰면 시인이 되나요 시인은 시만 쓰나요 시가 아니면 안 되나요 글쓰기 수업 학생들이 열띠게 질문한다 덜 핀 작약을 안아든 귀갓길 울 데가 필요해서 찾아왔다고 뵌 적 없는 시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니 여기까지 잘 왔네, 하신다* 사랑 많은 손을 붙들고 나는 여기 무어든 받아 적는다 포장을 끄르면 사라질 신비 같은 * 2020년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의 2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북한산을 내려오는 길에 김민정 시인이 건네준 말. “수경 언니는 틀림없이 지은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시의 제목은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에서 가져왔다. 『그림 없는 그림책』 (문학동네, 2024)

2024.08.08 김언
최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단 한 사람』

이제 목화에게 그분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알 필요가 없다. 우주에 마음이 있는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목화는 선하면서 악한 사람을, 의롭고도 불의한 이를,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동안 목화는 줄곧 나무에게 질문했다. 대답은 없었다. 목화는 나무를 느꼈다. 나무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시를 바랐다. 그 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목화는 나무를 찾으려고 했다. 없애고 싶었다. 나무를 없애면 온전한 자기 의지로 자기만의 삶을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무는 정말 나무로서 존재하는가? 목화는 그 나무가 자기 숨통을 쥐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구할 때도, 구토에 시달릴 때도 자기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사람을 구하는 순간에도 나무의 명령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 나무는 대체 무엇인가? 나무에게 집중할수록 나무의 의미는 비대해졌다. 나무에게 호소할수록 나무의 힘은 강해졌다. 목화의 질문과 호소에 개의치 않고, 고통스러워하거나 안도하거나 상관없이, 악하든 선하든 관심 없이 나무는 영원히 거기 있다. 그 나무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존재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물이 나타났다가 멸종했고 진화했으나 도살되었다. 돌로 만든 무기로 동물을 사냥하고 무리 지어 이동하며 빠른 소도로 다른 생물을 몰살시키던 인류는 순식간에 핵폭탄과 우주선을 만들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면 과연 인류라는 종을 돕고 싶을까. 살리고 싶을까. 나무가 주는 생명은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이라는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도.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죽음을 바라보는 일을 거부하고 싶었다. 사람을 구하고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피하고 싶었다. 구한 자가 악인 같을 때는 마치 한통속인 것처럼 괴로웠다. 중개 때문에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목화를 지배하는 것은 나무였다. 나무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구한 사람들처럼 단 한 명인 목화는,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오직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신목화는 임천자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며 마침내 운명을 수긍했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목화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상, 온전히 자기 것으로 거둔 이상 이제 그것은 목화의 것이었다.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 목화는 생각했다. 그건 바로 지금의 삶. 목화는 원하는 삶 속에 있었다. 다시, 목화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죽음. 임천자가

2024.07.25 천운영
숙희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봬요」

봬요 숙희 내일 봬요 그래요 내일 봬요를 처리하지 못해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내일 뵈요 라고 썼다가 그건 또 영 내키지가 않아 그럼 내일 뵐게요 라고 적어보니 다소 건방진 듯해서 이내 그때 뵙겠습니다 라고 고치자 너무 거리를 두는 것 같고 내일 봐요에 느낌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두 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갈팡질팡하는데 가벼운 인사를 가벼운 사람으로 당신이 나를 오해할까 잠시 망설이다 숨을 고르고 다시 봬요로 돌아온다 그런데 봬요를 못 알아보고 세상에 이렇게 한글을 이상하게 조합하는 사람도 있네 라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봬요는 청유형 존대어라 어색한 걸 모르냐고 되물을까 봐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져 내일 봅시다 라고 따따따 찍어보니 참나 이건 정말로 더 아니다 싶어 결국 내일이 기다려져요 라고 보내버리고는 손목에 힘이 풀려 폰을 툭 떨어뜨렸다 『오로라 콜』(아침달, 2024)

2024.07.11 김언
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덩그

2024.06.27 천운영
강우근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환한 집」

환한 집 강우근 나의 어린 조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누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너의 그 칙칙함을, 무표정을 좋아해” 가족 모임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부기라는 옆집 아저씨를 닮았다고 많은 것을 무서워해 바깥을 안 나가는 부기 아저씨를 소피라는 꼬마가 매번 불러내어 모험이 시작된다고 나는 그런 조카를 하루 맡아주기로 하고 “나는 하얀 집에 살고 싶어” 조카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집을 꺼낸다. 여름에는 태풍이 오고, 가을에는 은행이 터져 나가고, 겨울에는 폭설이 떨어질 텐데. 하얀 집은 금세 검어질 것이다. 우리의 테이블에 놓인 생크림 케이크는 작아질수록 포크 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삼촌은 어떤 집에 살고 싶어?” 나는 검은 집이라는 말을 삼키고 환한 집이라고 대답하며 애써 웃는다. 조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환한 집은 어떤 집일까, 생각에 잠기는 사이 생크림 케이크에는 검은 파리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나는 서둘러 케이크를 치우고 조카가 돌아온 테이블에는 새롭게 놓인 생크림 케이크 “······삼촌이 배가 고파서” “삼촌에게 추천해 줄 케이크의 맛이 아주 많아.” 환한 빛이 우리를 비추는 동안 우리는 생크림 케이크를 아무런 근심 없이 나눠 먹는다. 『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

2024.06.14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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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이젠

이제는 더 이상 안돌아가 그때로날 감싸던 그 찢어진 종이는 다버렸어 어제무너지려는 두 다리를 붙들고헌 집을 떠나려해 이젠상처가 베인 두 팔로날 감싸안을꺼야, 따뜻해지게봄은 갔고, 여름이 오네 이젠너무 긴 시간을 겨울에 머물렀나해

2024.09.21 류성민
멍 지우기

신과 함께 공원을 걸었어*도깨비 출현을 기대하면서도깨비는 문을 가지고 구경하니까우리의 내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신과 함께 꿈꿨지신은 자연적인 것에 붙어 있어돌, 나무, 호수연이 이어져 있다고 하네연꽃에는 도깨비가 있는데드라마 촬영을 여기서 했나 봐신은 연에 들어있는 멍에 집중하고나는 내 발에 녹은 아이스크림 자국을 보고신은 호수에 핀 연근의 심문 연기를 보고나는 내 발에 붙은 녹은 껌 기록을 보고우리는 도깨비에 집중할 수 없었다자연의 도깨비는 저리 잘생기지 않아일반 도깨비는 저리 로맨틱하지 않아문을 돌리면 침대에 붙어 있을걸신은 자기가 연기되는 것이 싫어연근 뿌리에 앉았다아이, 뭐야 신에게넌 모두를 마음에 담는다면서내 그릇에는 눅눅한 팝콘을 담아?신은 아무 말이 없었고나는 멍을 긁었다멍은 오랜 시간 몸에 붙은 것이라딸 수 없는 것신이 와도 도깨비가 와도신은 내 멍에 연꽃을 붙여드라마 여주인공으로 만들어 주고 싶었지만도깨비에 나오는 여주처럼 완벽하지 않으니나는 그를 던졌다지나가던 연인이 멍이 자란 내 얼굴을 보고데이트 폭력 아닌가 하고 말을 건넸지만나는 천성이 소심해서 아무 말 하지 않고 건너갔다붙어있던 연꽃이 떨어진다자연적이지 않은 신의 마음나 역시 자연스럽지 않으니까문을 열고 침대에서 일어나 욕실로 갔다나는 치약을 누르면서 눌어붙은 이빨에 멍을 붙이고드라마와 먹었던 신과의 팝콘을 쓰래기통에 버렸다내 멍은 이빨에 치석으로공원에 남겨져 있고신은 나의 멍을 밟았다반짝인 연이었다

2024.09.20 송희찬
학원 계단을 내려가면서

재수 학원 마지막 날 계단을 내려가가다 털썩 주저앉았다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들어온 학원은 학교와 똑같은 교시제였다 1교시가 끝나면 종이 울리고 쉬는 시간이 끝나면 종이 울리는 이제부터 거길 학교라고 생각하렴 50분짜리 인강 속 담임선생님은 내 이름도 몰랐고 숨소리조차 소음이 되곤 했다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지? 자퇴 서류를 건네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대학의 이름은 고등학교 추억보다 가치 있는 것 절대로 후회하지 말아라 아빠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아빠, 나는 농담처럼 자퇴하고 정시 볼까라고 말했던 게 후회돼요 선생님께 “네”라고 대답한 게 후회돼요 이 계단을 내려가면 졸업 지금 이 순간을 졸업식이라고 생각하자 교장선생님도, 친구들도, 졸업장도 아무것도 없이 여기 나 혼자 있지만 이곳을 강당이라고 생각하자 올라가는 마음들을 내려놓고 가자

2024.09.20 카페라떼
소설 울타리를 넘어뜨린 학자

운자(雲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춘추전국시대의 학자다. 그 정도가 심해 관련 전문가라도 모르는 경우가 간혹 있다. 그는 성무선악설을 주장한 고자의 제자로, 오늘날에서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상과 행동으로 주변인들을 자주 놀라게 했으며 무시당하였다. 그래서 때론 어리석을 치(癡)자가 붙여져 운치(雲癡)라고 불리우기도 하였다.그는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고 전해진다. 작은 것을 대하더라도 항상 진지했으며 그 나이 또래와는 다르게 홀로 산이나 강가에 앉아 사색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운자는 사내아이답지 않게 소심했지만 예의 없는 상대를 대할 때만은 엄해 물의를 빚었는데, 이에 관해 전해져 내려오는 일화가 수두룩하다. 밑은 일화 중 일부이다.어느 날은 운자가 도시락을 싸 강가로 놀러 갔는데,주변에 있던 매춘부의 아들과 시비가 붙었다.그는 곧 운자를 쓰러뜨리고 도시락을 게걸스럽게 뺏어 먹기 시작했다.운자는 옷을 털며 말했다.“그러다 니 어미까지 먹겠다”하루는 운자가 시장을 거닐고 있었다.갑자기 목줄을 한 개가 튀어나와 모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는데,이는 운자도 마찬가지였다.그는 분한 나머지 곧장 일어서 개를 물었다.엎치락덮치락 하는 것을 주인이 겨우 떼어 내 발길을 돌리게 했는데,운자는 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짖어댔다.지나가던 노인이 타이르자 그는 말했다.“제가 이겼습니다” 언뜻 보면 운자의 기행 중 하나일 수 있으나, 현대 학자들은 이를 생명평등주의 사상에서 기인했다고 추정한다. 운자가 길을 피하지 않고 개에게 덤빈 것은 동물 대 동물로서의 벌인 싸움이었다고 말이다. 개를 혼낼 목적이었다면 시장 바닥에 널린 돌멩이를 던져도 됐으나, 굳이 개처럼 물거나 할퀴었다는 것은 이상하다. 게다가 행동이 사상과 일치하기까지 하다. 이를 두고 학계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언젠가는 여자아이가 운자를 불러 같이 소꿉놀이를 하였다.여자아이는 틈을 타 좋아하는 그의 뺨에 입을 맞추었는데,되려 뺨을 맞게 된다.여자아이는 놀이라 항변했지만 이에 운자가 말하기를.“어찌 계절 없이 수확했는가. 나는 말라 죽은 것일 뿐이다”성인이 된 운자는 고자를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 가르침을 받은 지 4년째 되던 날, 그는 스승에게 작별을 고하고 도시의 광장으로 가 그곳에서 살며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가 주장한 학설 중 유일하게 밝혀진 것은 만물유수(萬物流水)설로, 만물은 흐르는 물처럼 자연스럽게 행하고 그 행함에는 선과 악이 없다는 뜻이다. 언뜻 보면 스승인 고자의 성무선악설 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고자는 인간의 본성적인 욕구들은 옳고 이를 억압하는 반대의 것들을 그르다고 보았지만, 운자는 모든 것을 옳다고 보았다. 인간이 욕구에 따르려는 것도, 억압하려는 것도, 이 주장에 반대하는 것도, 찬성하는 것도. 누가,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행하든 모두 옳다고 주장했다. 그는 살아생전 만물유수설을 설명할 때마다 ‘누군가가 약탈하거나 살해하여도 되고, 이를 방해하거나 처벌하는 것도 괜찮다. 만물은 단지 원하고 행할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만물유수설은 법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2024.09.20 NUAE
뒷골목

소금 냄새나는 뒷골목 속보라색 천을 덕지덕지 바른 소녀난 그가 모글리라는 사실을 직감했다아스팔트와 대지가 교차하는 사이황갈색 눈을 부라리며넘겨진 십자가그건 목 잘린 옷이었으며월계수관에서 내려온 덩굴이었다비단을 풀고 내려앉은 동공 소녀가 옷을 흙바닥에 비비고비벼보라색 천을 드러내기 시작할 때살을 가리는 옷들뒤를 따라가자더 이상의 접근을 금지라는 듯 표지판이 길을 막았다가정보호구역단 여섯 글자다만 닳고 닳은 표지판은 제 색을 잃은지 오래였고곰 발자국 넘어 다가간 집 안늑대가 입 벌리고 있었다시간이 흘러 사냥꾼들이 다가오고침범벅이 된 소녀텅 빈 지갑을 보곤 웃고 있었다

2024.09.20 낭죽
동어반복

오늘은 어떠한 일들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고 저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어제의 일기를 떠을려보는데 그것이 어제의 것인지 오늘의 것인지 한 달 전의 것인지 알 수 없도록 일기들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ㅡ맞물려 돌아간다고 그것이 톱니 모양을 가진 것은 아니리라 믿지만 이 일기들의 경우는 조금은 뾰족하고 찝으려 드는 것 같기도 하다. 맞물려있다는 것도 겉으로 보기에 그런 것 같다는 말이고 내외하는 사이이거나 모르는 사이일 수도 있겠다. 돌아가는 일기들이 각기 쓰여진 시기를 고려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을 보면 모르는 사이로도 보이고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것으로도 보인다ㅡ그러나 근 한 달 간의 일기들 만이 돌아가는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일기 사이에도 세대차이가 난다는 것일까? 낡은 일기는 같은 내용물을 몸에 두르고 있더라도 흐르는 물에 씻기는데 그때만은 일기들의 연대가 구별되는 것이었다. 일기의 연대가 구별되고 정렬된 모습은 격식이 있어 토를 하고 싶어진다. 창발하는 일기는 그 내용을 비웃는 듯 하기에. -참 잘했어요- 내일은 어떠한 일들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겠고 저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겠다. 그제의 일기를 떠올려보는데 그것이 그제의 것인지 어제의 것인지 내일의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어제의 일기는 그제와 오늘을 지시하고 오늘의 일기는 내일과 어제를 지시하는 탓이다. -참 잘했어요- 어제는 어떠한 일들을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했었고 저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었다. -참 잘했어요- 선생님 일기 확인 안 하죠? -참 잘했어요-

2024.09.20 데카당
자아상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순간타들어가는 이 작열감아등바등 붙잡던 달은 떨어지고커다란 해마저 나를 비추는데한없이 빛나는 나는한없이 모래알만도 못하게 작아지고나를 비추던 것들은 점차 시들어가고남은건 나에게 무엇인가나는 그대들이 바라던 바를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네그러나 나는 잃은 것 밖에 없으니……우물이 비춘 내 모습은 잘도 보이는데바다에 비친 내 모습은 존재하는가나는 영차영차 달을 붙잡고달빛에 비친 내 모습을 찾는다

2024.09.20 도래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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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초대] 김언 시인 · 천운영 소설가의 문학집배원 공개 낭독회

[초대] 김언 시인 · 천운영 소설가의 문학집배원 공개 낭독회 문학광장 문학집배원 김언 시인과 천운영 소설가가 문학주간 2024에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조성래 시인의 『천국어 사전』과 윤이안 소설가의 『온난한 날들』을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며 문학집배원 두 분과의 대담까지, 모두 9월 27일 금요일 오후 2시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신청링크 바로가기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1227217/items/6152716

2024.09.19
공지사항 [이벤트] 제4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글제찾기 이벤트 개최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글제를 찾습니다! 글제는, 순우리말 '글'과 한자 '題(제목 제)'가 합쳐진 말고 글의 주제 및 제목을 뜻합니다. 접수된 글제는 중복 글제와 백일장 성격과 상이한 글제를 제외하고 글제 추첨 대상이 되며, 글제는 행사 당일(10/8) 개회식을 통해 추첨할 예정입니다. 글제 이벤트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백일장 글제로 선정되신 4분에게는 3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글제 작성 시 지난 10년 동안의 글제와 중복되지 않는 글제로 접수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일 글제 접수 시 가장 먼저 접수한 사람에게 상품이 지급됩니다. ㅇ 이벤트 기간 : 2024. 9. 11.(수) ~ 9. 30.(월) ㅇ 접수방법 : 위 이미지 내 QR 접속 또는 링크(https://moaform.com/q/bGpTzT) 클릭 후 글제 입력 ㅇ 당첨선물 : 글제 선정자 4명에게 3만원 상당의 상품권 증정 ㅇ 당첨자 발표 - 10/8(화) 오전 10시,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개회식에 발표 - 선정된 글제를 접수해주신 분에게는 개별연락 예정 ㅇ 참고사항 - 중복 글제는 가장 먼저 해당 글제를 접수해주신 분만 인정됩니다. - 글제는 1인당 1개, 지난 10년 동안의 글제와 중복되지 않는 글제로 제출 필수 ㅇ 관련문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 plain@arko.or.kr

2024.09.11
공지사항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사전접수 안내

안녕하세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여성 문학인 발굴을 위해 1983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수석문화재단, 동아제약, 동아ST가 후원하는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어느덧 제42회를 맞이하는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이 올해도 여성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대회 취지상 '여성'만 참여가 가능합니다.) 2024년에는 10월 8일 화요일,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사전 접수를 통해 미리 참여 신청해주세요. [사전접수 기간] 2024.9.6.(금) 18:00 ~ 9.27.(금) 24:00 [사전접수 혜택] ① 행사 당일 신속한 본인확인 ② 행사 관련 다양한 알림 수신(*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동의 필요) ③ 선착순 접수 인원 대상 기념품 증정 [사전접수 방법]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사전 접수 바로가기 ☎ 문의사항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061-900-2325)

2024.09.06
공지사항 제20회 문장청소년문학상 공모 안내

1. 공모부문 - 시, 소설, 수필, 감상&비평 2. 공모대상 - 만 13세~18세 청소년 3. 공모기간 - 상시모집 (~2024. 12. 31) 4. 참여방법 및 당선작선정 - 응모 : 글틴 '쓰면서 뒹글'에 창작 작품 게재 (문학광장 회원가입 후 가능) - 예심 : 매월 월 장원 선정 ※ 장르별 멘토의 판단에 따라 월 장원 선정작이 없거나, 추가될 수 있습니다. - 본심 1차 : 월 장원 대상으로 글틴 멘토의 심사 - 본심 2차 : 본심 1차를 통과한 작품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에서 위촉한 심사위원의 심사 - 당선 : 당선자 개별 연락 및 시상식 개최 5. 권리 및 유의사항 - 출품된 작품의 저작권은 응모자에게 있습니다. - 글틴 '쓰면서 뒹글'에 게재하는 모든 작품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 표절·모작·AI창작·타 백일장 및 공모전 수상작은 월 장원 선정 및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이 불가합니다. - 위반 시, 수상 취소 및 상금 회수와 더불어 글틴 이용 패널티로 '쓰면서 뒹글' 게시판 이용이 1년 간 제한됩니다. - 주최자는 비영리·공익적 목적으로 입상작을 복제 및 전송할 수 있습니다. - 입상자와 별도의 협의를 통한 이용허락을 얻어 2차적저작물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ex. 비매품 수상작품집 출간 등) - 심사 진행 과정에 관한 문의는 받지 않습니다. 6. 문의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 글틴 담당자 (061-900-2337, 2325 / munjang@arko.or.kr)

20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