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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의 소리

문학광장 〈문장의소리〉는
2005년부터 시작된 문학 라디오입니다.
2024년 새롭게 개편된 〈문장의소리〉는
연출 유계영 시인, 진행 우다영 소설가, 구성작가 문은강 소설가가 참여합니다.

munjang

문학집배원

최은미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마주』

나는 수미를 만나러 갔다. 오로라와 나비가 생긴 발로 내가 만나러 간 사람은 2031년의 수미는 아니고 2022년의 수미였다. 2022년이 막 시작된 겨울에 수미가 내게 어떤 협곡으로 오라고 했다. 나는 수미가 일러준 협곡 입구로 가서 표를 끊었다. 그곳은 남한 최북단 마을에 있는 곳이었다. 매표소를 지나 들어서자 까마득한 암반 절벽 위로 길이 이어져 있었다. 그 길을 천천히 걸어서 나오면 자신이 일이 끝나는 시간대와 얼추 맞을 거라고 수미가 말했다. 나는 주상절리의 무늬들을 건너다보면서 절벽에 긴 선반처럼 매달려 있는 길을 걸었다. 벼랑길 밑으로 하얗게 언 강이 이어졌고 그 위를 사람들이 일렬로 걷고 있었다. 강 위를 걷던 사람들이 가끔씩 멈춰 서서 이쪽 벼랑 위를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절벽 위를 한 시간 남짓 걷고 나서야 나는 넓은 공원이 보이는 곳으로 나갈 수 있었다. 공원 한쪽에 빨갛고 기다란 버스가 한 대 서 있었다. 방한 아웃도어를 입은 사람들의 줄 끝에 서 있다가 나는 버스에 올라탔다. 운전기사의 바로 뒷좌석에 앉고 싶었지만 누군가 이미 앉아 있어 대각선 쪽 좌석에 가서 앉았다. 버스가 몇 개의 정거장을 거치며 협곡 탐방객들을 내리고 태우는 동안 나는 룸미러로 버스 기사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때마다 웃음을 참느라 마스크를 더 올려 써야 했다. 구독자가 2,01만명인 한 여행 유튜브 채널에 수미가 ‘친절한 기사님’으로 소개된 것이 떠올랐던 것이다. 과연 수미는 버스가 설 때마다 승객들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고 트레킹 코스가 엉켜 헤매는 사람들한테 막힘없이 대안을 얘기해주었다. 버스는 몇 정거장을 더 거쳐 내가 표를 끊었던 협곡 입구로 왔다. “끝났다, 일.” 그렇게 말하고 수미는 나를 강으로 데리고 갔다. 절벽 위는 걸었을 테니 얼음 위를 걷자고 하면서. 나는 수미를 따라 강으로 내려갔고 우리는 금세 얼음 트레킹 대열에 합류했다. 하지만 등산화에 아이젠을 착용한 사람들 틈에서 운동화를 신은 건 수미와 나뿐이었으므로 우리는 또 금세 대열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걷다보니 어느새 폭이 좁아지는 협곡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는 거기서 걸음을 멈췄다. 양옆으로 현무암 절벽이 가파르게 서 있어 마치 하늘이 보이는 동굴 속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수미와 나는 눈이 희끗희끗하게 덮인 얼음 위를 걸어서 암벽 밑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나오며 좁은 협곡 안을 빙빙 돌았다. 그러다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운동화를 벗었고, 곧이어 양말도 벗었다. 맨발인 채로 얼음 위로 올라서자마자였다. 수미와 나는 뜨거운 불을 딛고 선 것처럼 비명을 지르며 양 발을 번갈아 들어 올리다 신발을 벗어놓은 바위 위로 뛰어올라갔다. 참을성이 조금도 없는 서로가 웃겨서 한참을 웃다가 다시 맨발로 얼음 위를 디뎠고, 몇 걸음을 걷다가 또 비명을 지르며 언 강과 바위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우리는 누가 더 오래 서 있는지 내기라도 하듯 얼음 위에 맨발을 고정하고 섰다. 일초가 지나고 이초가 지나

2024.08.22 천운영
남지은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혼자 가는 먼 집」

혼자 가는 먼 집 남지은 일곱 살처럼 살라고 엄마는 말하고 뭐든지 서서히 하라고 아빠는 말한다 삼 년 안에는 첫 시집을 내야지 선배가 조언하고 잘 먹고 잘 자는 것이 중요해요 치료사가 당부한다 중요한 것과 소중한 것은 어떻게 다를까 언니가 혼잣말처럼 물어오고 시를 몇 편 쓰면 시인이 되나요 시인은 시만 쓰나요 시가 아니면 안 되나요 글쓰기 수업 학생들이 열띠게 질문한다 덜 핀 작약을 안아든 귀갓길 울 데가 필요해서 찾아왔다고 뵌 적 없는 시인의 손등에 입을 맞추니 여기까지 잘 왔네, 하신다* 사랑 많은 손을 붙들고 나는 여기 무어든 받아 적는다 포장을 끄르면 사라질 신비 같은 * 2020년 10월 3일 허수경 시인의 2주기 추모제를 지내고 북한산을 내려오는 길에 김민정 시인이 건네준 말. “수경 언니는 틀림없이 지은에게 이렇게 대답했을 거다. 여기까지 잘 왔다고.” 시의 제목은 허수경 시집 ⏉혼자 가는 먼 집⏊(문학과지성사, 1992)에서 가져왔다. 『그림 없는 그림책』 (문학동네, 2024)

2024.08.08 김언
최진영 소설가의 목소리로 듣는 『단 한 사람』

이제 목화에게 그분의 마음은 중요하지 않다. 알 필요가 없다. 우주에 마음이 있는가? 그저 존재할 뿐이다. 목화는 선하면서 악한 사람을, 의롭고도 불의한 이를, 그러므로 완전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동안 목화는 줄곧 나무에게 질문했다. 대답은 없었다. 목화는 나무를 느꼈다. 나무의 목소리를 들었다. 지시를 바랐다. 그 나무는 어디에 있는가? 목화는 나무를 찾으려고 했다. 없애고 싶었다. 나무를 없애면 온전한 자기 의지로 자기만의 삶을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나무는 정말 나무로서 존재하는가? 목화는 그 나무가 자기 숨통을 쥐었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구할 때도, 구토에 시달릴 때도 자기 수명이 줄어드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사람을 구하는 순간에도 나무의 명령 때문이라고 믿었다. 그 나무는 대체 무엇인가? 나무에게 집중할수록 나무의 의미는 비대해졌다. 나무에게 호소할수록 나무의 힘은 강해졌다. 목화의 질문과 호소에 개의치 않고, 고통스러워하거나 안도하거나 상관없이, 악하든 선하든 관심 없이 나무는 영원히 거기 있다. 그 나무는 너무나도 오랜 세월 존재했다. 그동안 엄청나게 많은 생물이 나타났다가 멸종했고 진화했으나 도살되었다. 돌로 만든 무기로 동물을 사냥하고 무리 지어 이동하며 빠른 소도로 다른 생물을 몰살시키던 인류는 순식간에 핵폭탄과 우주선을 만들었다. 전쟁을 일으키고 서로를 학살하고 자연을 파괴했다.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면 과연 인류라는 종을 돕고 싶을까. 살리고 싶을까. 나무가 주는 생명은 은총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이라는 고통을 주려는 것인지도. 그러나 삶은 고통이자 환희. 인류가 폭우라면 한 사람은 빗방울, 폭설의 눈송이, 해변의 모래알. 아무도 눈이나 비라고 부르지 않는 단 하나의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그것은 금세 마르거나 녹아버린다.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그저 알려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보고 있다고. 생명체라는 전체가 아니라, 인류라는 종이 아니라 오직 너라는 한 존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죽음을 바라보는 일을 거부하고 싶었다. 사람을 구하고도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기에 피하고 싶었다. 구한 자가 악인 같을 때는 마치 한통속인 것처럼 괴로웠다. 중개 때문에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아가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목화를 지배하는 것은 나무였다. 나무의 명령이었다. 그러나 자기가 구한 사람들처럼 단 한 명인 목화는, 세상의 모든 사람처럼 오직 단 한 번의 삶을 살아가는 신목화는 임천자의 죽음과 장례를 지켜보며 마침내 운명을 수긍했다. 기꺼이 받아들였다. 목화가 인정하고 받아들인 이상, 온전히 자기 것으로 거둔 이상 이제 그것은 목화의 것이었다. 임천자의 단 한 명은 기적. 장미수의 단 한 명은 겨우. 신목화의 단 한 명은, 단 한 사람.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이었다. 내가 원하는 삶. 목화는 생각했다. 그건 바로 지금의 삶. 목화는 원하는 삶 속에 있었다. 다시, 목화는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죽음. 임천자가

2024.07.25 천운영
숙희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봬요」

봬요 숙희 내일 봬요 그래요 내일 봬요를 처리하지 못해 그냥 평범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서 내일 뵈요 라고 썼다가 그건 또 영 내키지가 않아 그럼 내일 뵐게요 라고 적어보니 다소 건방진 듯해서 이내 그때 뵙겠습니다 라고 고치자 너무 거리를 두는 것 같고 내일 봐요에 느낌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두 개를 붙였다가 떼었다가 갈팡질팡하는데 가벼운 인사를 가벼운 사람으로 당신이 나를 오해할까 잠시 망설이다 숨을 고르고 다시 봬요로 돌아온다 그런데 봬요를 못 알아보고 세상에 이렇게 한글을 이상하게 조합하는 사람도 있네 라고 하면 어쩌지 아니면 봬요는 청유형 존대어라 어색한 걸 모르냐고 되물을까 봐 아무래도 이건 안 되겠다 싶어져 내일 봅시다 라고 따따따 찍어보니 참나 이건 정말로 더 아니다 싶어 결국 내일이 기다려져요 라고 보내버리고는 손목에 힘이 풀려 폰을 툭 떨어뜨렸다 『오로라 콜』(아침달, 2024)

2024.07.11 김언
손경숙 배우의 목소리로 듣는 김숨 소설가의 「벌」

봄을 세 번 나는 동안 벌통들에서 차례로 벌들이 부활했다. 벌들로 들끓는 벌통들을 바라볼 때마다 나는 죽은 아버지가 되살아난 것만 같은 흥분에 몸을 떨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온갖 여름 꽃들이 피어날 때,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마씨는 벌들이 날아가지 못하게 벌통을 흰 모기장으로 감싸고 지게에 져 날랐다. 마씨의 뒤를 따르는 내 손에는 해숙이 싸준 김밥 도시락이 들려 있었다. 그날따라 너무 깊이 드는 것 같아 주저하는 내게 그가 재촉했다. “꽃밭을 찾아가는 거야. 조금 더 가면 꽃밭이 있지.” 정말로 조금 더 가자 꽃이 지천이었다. 토끼풀, 개망초꽃, 어성초꽃, 싸리나무꽃··· 홍자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싸리 나무 아래에 그는 벌통을 부렸다. 벌통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마씨와 내가 알몸으로 나뒹구는 동안 벌들은 꿀을 따 날랐다. 고슴도치 같은 그의 머리 위로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나는 꿈을 꾸듯 바라보았다. “당신 아내가 그러데, 나비를 기르면 좋을 거라고. 나는 나비가 벌보다 무서워. 우리 할머니가 나비 때문에 눈이 멀었거든. 도라지밭을 날아다니던 흰나비의 날개에서 떨어진 인분이 눈에 들어가서···” “해숙은 착한 여자야.” “착한 여자는 세상에 저 벌들만큼 널렸어!” “널렸지만 착한 여자와 사는 남자는 드물지.” 여름내 마씨와 내가 벌통을 들고 산속을 헤매는 동안 해숙은 아들과 집을 보았다. 우리가 돌아오면 그녀는 서둘러 저녁 밥상을 차려내왔다. 먹성이 좋은 마씨를 위해 그녀는 돼지고기와 김치를 잔뜩 넣고 찌개를 끓였다. 그녀에게 나는 산속에 꽃밭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이. “우리도 데려가면 안 돼?” 그녀는 꽃밭을 보고 싶어 했다. “꽃밭까지 가는 길이 험해서 안 돼. 가는 길에 무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무덤들 중에는 내 아버지 무덤도 있지.” “근데 읍내 정육점 여자가 내게 묻더라.” “뭘?” “사내 하나에 계집 둘이 어떻게 붙어사느냐고.”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야. 내가 살코기하고 비계하고 반반씩 섞어 달라고 했는데, 순 비계로만 줬지 뭐야.” 눈치챘던 걸까. 아니면 벌과 나비가 어울려 날아다니는 꽃밭을 보고 싶었던 걸까. 그날도 마씨와 나는 벌통과 함께 산에 들었다. 해숙이 우리를 몰래 뒤따르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나는 모르는 척했다. 해숙은 산벚나무 뒤에 숨어 마씨와 내가 토끼풀밭 위에서 알몸으로 나뒹구는 것을 지켜보았다.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을 때 아들은 마당에서 혼자 울고 있었다. 부엌 도마 위에는 해숙이 정육점에서 끊어온 돼지고기가 덩그

2024.06.27 천운영
강우근 시인의 목소리로 듣는 「환한 집」

환한 집 강우근 나의 어린 조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다. 누나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너의 그 칙칙함을, 무표정을 좋아해” 가족 모임에 불편하게 앉아 있는 나의 모습이 만화에 나오는 부기라는 옆집 아저씨를 닮았다고 많은 것을 무서워해 바깥을 안 나가는 부기 아저씨를 소피라는 꼬마가 매번 불러내어 모험이 시작된다고 나는 그런 조카를 하루 맡아주기로 하고 “나는 하얀 집에 살고 싶어” 조카는 가방에서 스케치북에 그린 집을 꺼낸다. 여름에는 태풍이 오고, 가을에는 은행이 터져 나가고, 겨울에는 폭설이 떨어질 텐데. 하얀 집은 금세 검어질 것이다. 우리의 테이블에 놓인 생크림 케이크는 작아질수록 포크 자국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삼촌은 어떤 집에 살고 싶어?” 나는 검은 집이라는 말을 삼키고 환한 집이라고 대답하며 애써 웃는다. 조카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고 환한 집은 어떤 집일까, 생각에 잠기는 사이 생크림 케이크에는 검은 파리 한 마리가 죽어 있다. 나는 서둘러 케이크를 치우고 조카가 돌아온 테이블에는 새롭게 놓인 생크림 케이크 “······삼촌이 배가 고파서” “삼촌에게 추천해 줄 케이크의 맛이 아주 많아.” 환한 빛이 우리를 비추는 동안 우리는 생크림 케이크를 아무런 근심 없이 나눠 먹는다. 『 너와 바꿔 부를 수 있는 것』 (창비, 2024)

2024.06.14 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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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틴

계절 요리

봄 꽃잎 한 스푼에 미지근한 바람을 곁들여 여름 더위 한컵에 시원한 바다를 들이켰다. 가을 낙엽 한 동이째 가득 담아 따뜻한 색을 물들였는데 겨울 구름 이르게 오자 서리가 눈치없이 껴버렸더랬다.

2024.09.22 해령
비오는 날에 대한 소망

나는 늘 땅을 보며 걷는다. 고개를 들기가 귀찮다. 사람들은 이런 내게 하늘을 좀 보라고 늘 말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이 비오는 날이었으면, 길이 물웅덩이로 가득했으면 좋겠다.

2024.09.22 별별
이젠

이제는 더 이상 안돌아가 그때로날 감싸던 그 찢어진 종이는 다버렸어 어제무너지려는 두 다리를 붙들고헌 집을 떠나려해 이젠상처가 베인 두 팔로날 감싸안을꺼야, 따뜻해지게봄은 갔고, 여름이 오네 이젠너무 긴 시간을 겨울에 머물렀나해

2024.09.21 류성민
소설 절규

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다리는 도무지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두 명의 사도(使徒)는 나의 뒤를 천천히 쫓아옵니다. 나는 그들이 내게 내릴 벌이 두려워 앞으로 계속 걸을 수 밖에는 없는 슬픈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붙잡히고 싶지 않지만 그렇지만 난 이미 너무나 오래 걸었습니다. 다리는 도무지 끝나지 않고 나는 차라리 이 다리가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다리가 끝나면 그들에게 붙잡힐 테지만 나는 그들에게 붙잡혀 끝없이 걸어가는 굴레를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멈춰서는 그런 바보 같은 짓 또한 하고 싶지 않습니다.흐릿한 안개 속에 일렁이는 강의 풍경 사이로는 새파란 물결을 자르고 빛의 파란을 일으키는 조각배가 간간히 지나갑니다 그것들은 내가 걷는 길 반대로 반대로 점점 멀어지며 하는 수 없이 내가 걷는 방향이 어찌할 수 없는 파멸임을 알지만 나는 멈출 수 없습니다.하늘 위로 장막 진 새빨간 노을의 모습은 앞을 향해 걸어가는 나의 시야를 방해하며 걷는 다리에 힘이 빠지도록 만듭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일렁이는 것들은 마침내 내가 걷고 있는지 멈춰선 건지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이는 아주 중요한 사항이고 나는 잠시 멈춰서 이에 대한 것을 생각해보려고 우뚝 섰습니다.저는 두렵습니다. 왜냐하면 다리는 도무지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리는 도무지...... 다리는 도무지 끝나지 않고...... 두 명의 사도(使徒)는 나의 뒤를 천천히 쫓고...... 시지푸스의 형벌 속에 간힌 채 저 일그러지는 풍경 안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는 나는 깨닫습니다. 내가 바보 같은 짓을 했다는 것을! 나는 이제 그들에게 닿을 수 없는 허상이 되었습니다. 이 다리를 계속해서 걸어도 일그러진 나는 더이상 어떤 곳에도 닿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나는 천천히 멀어지고, 틀에 갇힌 내가 보입니다. 남은 현실은 일그러지지 않은 다리와...... 두 명의 사도(使徒)......내 얼굴을 덮은 가면 때문에 당신은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가련하게 다리를 걸어가는 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가?

2024.09.21 방백
아버지의 하늘

아버지어째서 아버지의 등은초라해지신 겁니까하늘과 같던 아버지가이제는 저무려하나봅니다그러나 아버지,아버지 품 속의 햇빛을저는 잊을 수 없습니다아버지의 등에 붉은빛 노을 드리우면달님 데려와 별을 띠우겠습니다

2024.09.21 김윤지
거미의 비행운

길을 걷다 입 속으로 무언가 들어갔다 우물거리다 침을 뱉으면 땅바닥에서 버둥거리고 있는 거미 한 사람은 일평생 열 마리 이상의 거미를 먹는다던대 오늘 운이 나쁜 건 나였을까 아니면 저 거미였을까 거미가 가로수 사이를 이동할 땐 거미줄로 이동한대 그러다 바람이 불면 그제야 시작되는 거야 거미줄 하나에 의지해서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가로수에 떨어지기도 하고 길바닥에 떨어지기도 하고 심하면 누군가의 입 속으로 길 가다가 팔에 서늘한 감각이 느껴지면 그건 아마 거미줄일 거야 바람에 나부끼다가 사라져 버린 거미의 비행운일 거야 아직도 다리를 멈추지 않는 거미의 다리 거미는 알고 있었을까 누군가에게 먹힐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무릎을 굽혀 거미를 바라보다 거미를 가둔 저 커다란 물웅덩이 내가 만들었다는 게 기억난다 일어나 반대 방향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2024.09.21 카페라떼
감상&비평 김사량, 빛 속으로

작가 김사량 소설집 “빛 속으로”를 읽으며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그의 배경을 알아서일까, 친일파의 자식이 침략당한 조선을 안타까워하며, 조선 백성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듯하다. 이 부분은 특히 “풀이 깊다”에서 가장 강하게 드러난다. 자신의 중학교 시절 조선어를 가르치던 코풀이 선생과 백백교의 희생자들. 화자는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젊은 선생들에게 무시당하는 코풀이 선생에게 연민을 느낀다. 표지작인 “빛 속으로”에서는 조선인이지만 일본에서 영어 선생을 하고 있는 화자의 이야기이다. 본래 남 선생이라 불러야 하지만, 미나미 선생이라고 불리는 화자는 일본인과 조선인 혼혈인 야마다 군에게 애정을 느낀다. 그는 조선인 어머니를 부정하지만, 어머니와 같은 조선 출신의 화자에게 장난을 치는 등 관심을 구한다. 어머니를 부정하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애정을 바라는 야마다. 그는 가족들을 학대하는 아버지의 밑에서 어머니를 싫어해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했을 것이다. 조선인이지만 일본어로 글을 썼던 김사량은 그의 뛰어난 작품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 문학이 한글로 쓰인 글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조선을 사랑하고 큰 애정을 가졌지만, 일본어로 썼던 김사량을 한국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마 아니라고 할 순 없을 것이다. 그는 조선인이었고 조선의 문학을 썼다

2024.09.21 카페라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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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초대] 김언 시인 · 천운영 소설가의 문학집배원 공개 낭독회

[초대] 김언 시인 · 천운영 소설가의 문학집배원 공개 낭독회 문학광장 문학집배원 김언 시인과 천운영 소설가가 문학주간 2024에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조성래 시인의 『천국어 사전』과 윤이안 소설가의 『온난한 날들』을 작가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며 문학집배원 두 분과의 대담까지, 모두 9월 27일 금요일 오후 2시 예술가의집 라운지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신청링크 바로가기 https://booking.naver.com/booking/12/bizes/1227217/items/6152716

2024.09.19
공지사항 [이벤트] 제42회 마로니에온라인백일장 글제찾기 이벤트 개최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글제를 찾습니다! 글제는, 순우리말 '글'과 한자 '題(제목 제)'가 합쳐진 말고 글의 주제 및 제목을 뜻합니다. 접수된 글제는 중복 글제와 백일장 성격과 상이한 글제를 제외하고 글제 추첨 대상이 되며, 글제는 행사 당일(10/8) 개회식을 통해 추첨할 예정입니다. 글제 이벤트는 남녀노소 누구나 참여 가능하며, 백일장 글제로 선정되신 4분에게는 3만원 상당의 상품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글제 작성 시 지난 10년 동안의 글제와 중복되지 않는 글제로 접수해주시기 바랍니다. 동일 글제 접수 시 가장 먼저 접수한 사람에게 상품이 지급됩니다. ㅇ 이벤트 기간 : 2024. 9. 11.(수) ~ 9. 30.(월) ㅇ 접수방법 : 위 이미지 내 QR 접속 또는 링크(https://moaform.com/q/bGpTzT) 클릭 후 글제 입력 ㅇ 당첨선물 : 글제 선정자 4명에게 3만원 상당의 상품권 증정 ㅇ 당첨자 발표 - 10/8(화) 오전 10시,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개회식에 발표 - 선정된 글제를 접수해주신 분에게는 개별연락 예정 ㅇ 참고사항 - 중복 글제는 가장 먼저 해당 글제를 접수해주신 분만 인정됩니다. - 글제는 1인당 1개, 지난 10년 동안의 글제와 중복되지 않는 글제로 제출 필수 ㅇ 관련문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 plain@arko.or.kr

2024.09.11
공지사항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사전접수 안내

안녕하세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입니다. 한국 문학의 저변 확대와 여성 문학인 발굴을 위해 1983년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고 수석문화재단, 동아제약, 동아ST가 후원하는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어느덧 제42회를 맞이하는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이 올해도 여성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은 대회 취지상 '여성'만 참여가 가능합니다.) 2024년에는 10월 8일 화요일, 마로니에 공원 일대에서 개최할 예정입니다. 사전 접수를 통해 미리 참여 신청해주세요. [사전접수 기간] 2024.9.6.(금) 18:00 ~ 9.27.(금) 24:00 [사전접수 혜택] ① 행사 당일 신속한 본인확인 ② 행사 관련 다양한 알림 수신(*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동의 필요) ③ 선착순 접수 인원 대상 기념품 증정 [사전접수 방법] 제42회 마로니에여성백일장 사전 접수 바로가기 ☎ 문의사항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061-900-2325)

2024.09.06
공지사항 제20회 문장청소년문학상 공모 안내

1. 공모부문 - 시, 소설, 수필, 감상&비평 2. 공모대상 - 만 13세~18세 청소년 3. 공모기간 - 상시모집 (~2024. 12. 31) 4. 참여방법 및 당선작선정 - 응모 : 글틴 '쓰면서 뒹글'에 창작 작품 게재 (문학광장 회원가입 후 가능) - 예심 : 매월 월 장원 선정 ※ 장르별 멘토의 판단에 따라 월 장원 선정작이 없거나, 추가될 수 있습니다. - 본심 1차 : 월 장원 대상으로 글틴 멘토의 심사 - 본심 2차 : 본심 1차를 통과한 작품을 대상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에서 위촉한 심사위원의 심사 - 당선 : 당선자 개별 연락 및 시상식 개최 5. 권리 및 유의사항 - 출품된 작품의 저작권은 응모자에게 있습니다. - 글틴 '쓰면서 뒹글'에 게재하는 모든 작품은 순수 창작물이어야 합니다. - 표절·모작·AI창작·타 백일장 및 공모전 수상작은 월 장원 선정 및 문장청소년문학상 수상이 불가합니다. - 위반 시, 수상 취소 및 상금 회수와 더불어 글틴 이용 패널티로 '쓰면서 뒹글' 게시판 이용이 1년 간 제한됩니다. - 주최자는 비영리·공익적 목적으로 입상작을 복제 및 전송할 수 있습니다. - 입상자와 별도의 협의를 통한 이용허락을 얻어 2차적저작물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ex. 비매품 수상작품집 출간 등) - 심사 진행 과정에 관한 문의는 받지 않습니다. 6. 문의처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지원팀 글틴 담당자 (061-900-2337, 2325 / munjang@arko.or.kr)

2024.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