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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전

  • 작성일 2010-10-30
  • 조회수 576

 

서생전 (鼠生戰)


아침 일찍

민족통일 빌딩 앞에

새끼를 밴 듯한 퉁퉁한 쥐가

꿈적하지 않고 숨을 고르고 있다


어린시절 

뒷간에서 나를 노려보았던,

죽음의 깊이처럼 새까만 눈을 차마 보지 못하고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그를 훔쳐 보았다

생의 기억을 잊어버린 듯  

길거리 한 가운데를 점거하고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아니, 숨을 멈춘 듯 움직이지 않았다

 

털이 군데군데 뭉친 것이

지옥같은 생존의 시간을 바로 지나왔다


바닥으로 짓밟힐 마지막 생이

다가오고 있는 동안

새끼가 있을 듯한 아랫배는

숨을 고르고 있다 


시위 바리케이트를 치며

웅크리고 있는 그 곁을 나는 좀처럼 떠날 수가 없다


털은 아직도

아침의 평온함을 송두리째 깨는 폭팔력이 있다

쥐는 숨을 멈추고

하수구를 빌빌 기는,

치욕의 삶에 저항하고 있다

꼬리는 털을 거부하는 삐딱함으로 똘똘 뭉쳐 있다  

더 이상 서민의 월급봉투 비유로 놀아날 판이 아니다

쥐는 생존을 무시하고 혐오감으로 맞서고 있다


불룩한 혐오 속을 무엇으로 채웠을까

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으므로

오히려 움직이는 생이 그를 피해 주춤거린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꽂고 

무자비한 구둣발이 늘어나면

이 시위의 바리케이트는 무너질 것이다  

그리고 

민족통일빌딩 수위 아저씨가

신고를 받고 출동하기 전에 

그는 마지막 숨 마저 버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