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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어내다가

  • 작성일 2011-05-19
  • 조회수 274

떼어내다가

                          허태범

 

1.

 

그글피 가장귀에서 시작된 거미의 고팻줄에

이마가 당겨지다

생의 치열한 흔적들이 고상고상하다

거미가 비대칭한 몸집을 찌그러뜨린다

이제는 손길이 무서운가 보구나

때로 굶주린 것들은 한쪽을 떼어먹는다고 한다

갈매나무 잎같은 한(恨)이 또르르 떨어진다

어찌하나

잠자리는 무심코 먼 길을 떠났건만

 

삶을 흔드는 가을바람

잠자리를 허공에 던진 자리로 불어와도

갑시지 않고 싶다

 

 

2.

 

본능적으로 떼어냈다

잠자리를 허공으로 던져낸 자리

진동이 간지게 걸렸다

하나는 얻고 또 하나는 잃은 그 미묘의 떨림

거미의 잔털이 부스러졌다

 

숨바꼭질이라고는 장난이 없구나

흥정의 밖에서 이루어진 일상

점액마냥 묻어나는 손끝의 깜냥

둘의 무게가 가을바람보다 가볍다니

 

......................................................................끄적이면서

군대에서, 연못에 있는 잉어를 구경하다가 연못 옆에 있는 큰 나무의 옆가지에서 거미줄이 보였다.

먹이가 걸리기를 대기하고 있던 거미는 상당히 몸집이 컸다.

앗뿔사... 거미줄에 잠자리가 걸렸다.

순간 나는,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보기 좋게 떼어내고야 말았다.

거미가 먹이가 걸린 위치로 잽싸게 달려오기도 전에 말이다.

거미는 깜짝 놀라서 나뭇가지 위로 몸을 숨겼다.

정말 잠자리만큼이나 컸던 그 거미는 사람의 손길을 무서워하지는 않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거미가 많이 화가 났는지, 거미줄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니 이제는

다시 달려와 물 기세였다.

거미는 자신을 위협하는 대상이 거미줄의 떨림에 느껴지면, 몸을 흔들어 대서 거미줄에 진동을 일으킨다.

이 진동으로 인해 거미는 상화좌우로 움직이게 디고, 몸집이 비대해 보인다. 이것을 자신의 위협에 대한 반항의 기술로 갖고 있다고 알고 있었던 나였는데, 이 거미가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린 먹잇감을 송두리째 앗아간 범인에게 항의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2~3일 뒤에 잉어에게 먹이를 주러 갔는데, 잠자리르 거미줄에서 떼어낸 위치에서 바로 그 거미를 보았다.

그런데 몸집 모양이 이상해서 한번 자세히 보았더니, 좌측 다리가 3개였다.

분명 거미의 다리는 8개일 텐데, 그 거미는 다리가 7개로 바뀌어있었다.

거미 몸집이 결코 작지 않아 다른 곤충들에게 쉽게 공격당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배고픔을 못이겨 자신의 몸 중에서 가장 소용이 닿지 않는 세번째 작은 다리를 떼어내어 섭취하였던 것일까.

무슨 연유에서인지 갑자기 거미에게 죄책감이 들었다.

잠자리를 떼어낼 때에는 잠자리에게 가을 하늘로 자유를 되돌려준 내가 참으로 기특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리가 하나가 없어진 거미를 보니, 이제는 먹이 하나 제대로 걸려 있지 않은 거미줄에서

허기를 달래고 있는 거미가 가엾어졌다.

하늘을 마음껏 노니는 잠자리에게는 잘못이 없다.

자신이 힘들여 집을 짓고, 생을 이어나가기 위해 사냥을 하는 거미에게도 잘못이 없다.

다만, 우연한 시간에 우연한 손짓으로 거미와 잠자리의 사연에 개입했을 뿐인데

한 마리는 이 일을 기억을 할지 안 할지도 모르게 날아가 버렸고,

나를 야속하게 여길 것만 같은 거미는 소중한 다리를 잃고 말았다.

잠자리를 살려주었지만, 거미에게는 상실의 아픔을 안겨준 내가 잘못인가.

그렇지만 나를 변호하자면 잠자리를 살려줌으로써 아직까지는 두 개의 생명 모두 살아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덜고 싶었다.

거미의 입장에서 잠자리가 걸린 것은 행운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럼, 잠자리의 입장에서 거미줄에 걸린 것은 불운으로 여겨야 하겠지.

이것은 선택할 수 없는 그들의 입장이건데

나는 이 이치에 개입함으로써 그 둘의 예상하지 못했던 말로를 결정한 것이다.

내 삶도 단지 운으로 치부하기에는 어렵고,

우연성과 변수라는 아이가 삶의 중간에서 항상 버티고 있기에

지금의 형상을 굳이 평가하는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소리가

왜 이리 가슴 시리게 다가오는 것일까.

그래, 삶은 흥정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

잠자리의 엿애을 거미의 한쪽 다리와 바꾼 값만큼 얻은 깨달음이

적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에서인지,

내 얼굴을 스치는 가을바람의 무게가 무겁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