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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눈 뜨는 밤

  • 작성일 2006-01-24
  • 조회수 524

 

 




달이 눈뜨는 밤


정태혁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아내는 죽어있었다. 비릿한 냄새에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나의 왼쪽 볼에 끈적하고 미끈거리는 피가 느껴졌다. 검붉은 피는 마룻바닥의 약 1/4 가량을 뒤덮고 있었고 여기저기 굳어서 엉켜 붙어 있었다. 

  흐릿한 눈을 비비고 안경을 찾아 쓰니 마룻바닥 한 귀퉁이에 몸집이 비대한 여자가 엎드려 있었고 그 여자의 배 밑으로 피가 흥건히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내였다. 내 두 손을 내려다보니 피로 물들어 있었고 팔뚝에서 팔목까지 길게 손톱으로 긁힌 자국이 있었다. 설마, 내가 아내를 죽였단 말인가? 

  어제 밤 아내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것, 저것 손으로 가리키며 나를 트집 잡았고 나는 잔소리 듣는 아이처럼 몸을 비비 꼬고 있었다. 아내의 트집은 최근 몇 달간의 잠자리에서 오는 문제에 비롯된 것이었다. 아내의 비대한 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상상 이상의 고문이었다. 잠자리를 가진 날 밤에는 난 극심한 체력소모에 탈진하듯 잠이 들었고 꿈에서는 아내에게 짓눌려 숨 막혀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바라보곤 했다.

  

  보름 전, 그날 밤 난 학교 앞 저수지로 향했다. 금방이라도 비가 흩뿌릴 것 같은 날씨였다. 다행히 밤낚시를 하는 낚시꾼은 보이지 않았다. 무성하게 자란 풀잎들은 몸을 숨기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동안 번번이 실패를 했기에 그때만큼은 성공을 해야만 했다. 더 이상 이런 상태로 시간이 흐르면 나도 모를 일들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날 괴롭혔다.

  한 시간 가량을 숨죽이며 뚝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 시간여 동안 지나간 사람들은 대부분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있거나 그도 아니면 남자 혼자 걸어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워낙 조용하고 으슥한 곳이라 여자 혼자 이 길을 걸어가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때였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비틀대며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술에 취한 듯 했다. 보름달 때문인지 여인의 모습이 마치 나체 인 듯 느껴졌다. 여인의 모습에 내 몸의 털이 하나, 하나 빳빳하게 곤두섰고 머리의 표피를 뚫고 수 만개의 가시들이 뾰족하게 튀어 나올 것만 같았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여인은 훌륭한 굴곡을 지니고 있었다. 뒷목에서 어깨선을 지나 허리선을 타고 골반을 지나 새하얗게 빛나는 발목까지 그녀의 몸은 섬세했다. 비치는 하얀 원피스 속 그녀의 적나라한 실루엣 때문이었을까? 나의 그곳은 그날따라 유독 부풀어 올랐다.

  나는 여자의 뒤를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뒤따라갔다. 여자는 술에 취해 나를 알아차리고 있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좀 더 간격을 좁혀 여자가 나를 느낄 수 있도록 휘파람 소리를 내었다. 휘파람 소리는 일정한 멜로디 없이 여름밤의 끈적한 바람을 타고 여자의 귓가에 전해 질것이었다.

  드디어 나의 존재에 불안함을 느꼈는지 여자는 뒤를 힐끔 쳐다 보고는 발걸음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이에 나는 재빨리 여자의 앞으로 달려 나가 바지를 내렸다. 내 몸의 모든 피가 한 끝으로 쏠렸다. 여자는 귀가 저릿할 정도로 비명을 질러 대었다. 여자의 비명 소리에 운동화 속 갇혀있던 새끼발가락까지도 꿈틀거렸다.

  간만의 흥분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고 결국 집에 도착한 난 샤워실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손이 나의 아래께로 갔다. 샤워호스에서 쏟아지는 뜨거운 물줄기 속에서 다시 한번 하얀 원피스의 그녀를 생각하니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

  하지만 난, 너무 도취된 나머지 인기척을 느끼지 못했고 아내에게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아내는 심한 굴욕감과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난 엄마에게 빨간 비디오를 보다가 들킨 사춘기 소년 마냥 고개를 돌려 숙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이후, 아내는 나에게 더 이상의 관계는 요구 하진 않았지만 예전보다 더욱 히스테리는 심해졌다. 물론, 난 그날 밤만큼은 아내의 요구에 응할 자신이 있었다. 하얀 원피스의 여인을 상상하면 얼마든지 하마 같은 아내의 몸도 마릴린 몬로와 같은 육감적인 몸매로 변신 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내가 쓰러진 자리를 바라보며 두 손을 쭉 뻗어 보았다. 두 손을 한번 움켜 줬다 펴 보니 저릿하게 손이 떨려왔다. 그리고는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정말 이 손으로 그랬단 말인가? 하지만 어제 밤 일이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평소부터 쭉 바래왔던 일이지 않아?  

  어제 저녁, 아들은 로봇이 등장하는 만화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들이 유독 좋아하는 만화 프로그램이었다. 아들은 만화영화의 방영 시간에 맞춰 거실 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자못 진지한 표정으로 티비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아들은 만화 영화의 주제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신나고도 장엄하게 따라 불렀다. 일곱 살짜리 아들이 유일하게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여느 로봇 만화영화와 마찬가지로 만화 속에는 선과 악으로 나눠진 이분법적인 세계가 존재하고 있었다. 만화영화의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는 악의 세력에게 주인공인 듯한 로봇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악의 세력 대표로 나온 로봇은 온몸에 가시가 돋고 어떤 뚜렷한 형체가 없는 흉측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 그것은 어렸을 적 즐겨보던 만화책 속에 나오는 가시악마와 닮아 있었다.  

  난 온몸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가시들에게서 매력을 느꼈는데 그것은 흉측한 그들의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가시의 아름다움은 집안 서재에서 몰래 키우고 있는 악어거북에게서도 늘 느끼던 것이었다. 티비에서 처음 악어거북을 보았던 날 난 그 흉측하고도 강인한 모습에 하마터면 오줌을 지릴 뻔 했다. 등딱지에 솟아 나 있던 뾰족한 뿔과 먹이를 향해 입을 벌렸을 때 보이던 튼튼한 가시 같은 이빨. 성체를 구하긴 힘들었지만 그 녀석을 볼 때마다 느껴지는 흥분에 비하면 그 수고쯤이야 별거 아니었다. 평소에는 쥐 죽은 듯 가만히 엎드려 있다가도 먹이 감을 던져주면 천천히 유인하다가 순식간에 입속으로 가져가는 모습이란 정말로 흥분되는 일이었다. 내 손목을 그 녀석의 먹이 감으로 바치고 싶을 정도니 말이다.

  악의 로봇에 달린 가시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 몸에 돋아 나 있는 모든 털들이 꼿꼿이 서는 듯 했다.

  아들은 제 엄마를 닮아 몸집이 비대했고 성격 또한 난폭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저기 티비 속에 나오는 흉측한 로봇같이 보였다. 하지만, 아들은 주인공 로봇과 자신을 동일시하여 주인공 로봇이 괴롭힘을 당하면 아들도 똑 같이 괴로운 표정을 짓고 신음소리를 내었다.

  흉측한 로봇들이 거의 주인공 로봇을 파괴시킬 즈음 주인공 로봇은 갑자기 비장의 무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아들은 고개를 끄덕 거리며 주인공 로봇과 똑 같이 행동을 취했다. 로봇의 손에는 황금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칼이 쥐어져 있었다. 아들은 그와 똑같이 근처에 있는 막대기를 손에 쥐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아들의 눈에는 내 모습이 흉측한 악의 로봇처럼 보인 것 같았다. 주인공 로봇이 흉측한 로봇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순간 아들 또한 나를 막대기로 때리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흉측한 로봇의 고통스러운 표정을 따라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이리저리 뒹굴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아들은 또 울며불며 내 손목을 물어뜯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들의 이빨은 비대한 몸과는 달리 날카로웠고 그것에 물리는 일은 대단히 무서운 일이었다.

  만화가 끝난 후 내 심장은 급격하게 뛰기 시작했다. 뻐꾸기시계가 여섯 번을 울었다. 나의 몸 밖으로 솟아난 털들은 뾰족하고 딱딱한 가시로 변해 있었다. 오늘은 보름달이 뜨는 날이다. 

  처음 내 몸에 가시가 돋았던 날, 삐그덕 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하지만 내가 그 날 잠에서 깨어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그 소리 자체가 꿈이었는지 지금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분명한 것은 그 삐그덕 거리는 소리에 간간이 고양이 울음소리가 뒤섞여 묘한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는 것과 그 소리가 자꾸만 내 가슴을 요동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양이 울음소리는 짧아 졌다 길어졌다 혹은 신경질적이면서도 날카롭게 혹은 간드러지게 들려 왔고 그 소리들은 어둠을 타고 내 가슴으로 파고들어 왔다. 나는 그 소리들을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그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기어갔다. 그 소리들의 근원지는 안방이었다. 나는 안방 문에 귀를 바짝 붙이고 숨을 죽였다. 하지만 자꾸만 요동치는 가슴은 숨을 더욱 가쁘게 만들었고, 내 가쁜 숨소리는 문 너머의 소리들과 어울려 일종의 협주곡을 만들고 있었다.

  문 너머에는 고양이 울음소리 이외에도 또 하나의 소리가 엉켜 있었다. 그 소리는 마치 먹이 감을 앞에 두고 자세를 낮추어 흥분과 함께 숨을 고르고 있는 수컷 사자의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숨소리와 같았다. 그 숨소리에 내 가슴도 뜨거워져 나는 나도 모르게 문손잡이를 살짝 돌리고 말았다. 문 너머에는 창가로 들어온 달빛 아래로 두 마리의 짐승이 서로 엉켜 붙어 있었다. 그랬다 그것은 도무지 아버지의 몸뚱이라고 말할 수 없는 사나운 짐승의 몸뚱이였다. 아버지는 늘 심하게 기침이나 해대는 뼈대마저도 없이 흐물흐물 거리는 연체동물 같은 존재였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그 가느다란 팔로 새엄마의 어깨를 누르고 먹이 사냥에 성공한 육식동물처럼 재빨리 숨통을 조여 갔다. 아버지는 들소 같이 비대한 새엄마의 목을 정확히 물었다. 분명히 난 달빛에 비쳐 반짝이는 아버지 입 속의 가시들을 보았다. 그 가시들은 새 엄마의 목에 박혔고 새엄마는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을 치며 비명을 질러 대었다. 아버지는 새 엄마의 모습에 그저 잔인한 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숨통을 끊은 아버지는 천천히 새엄마의 육체를 뜯어먹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빛나던 아버지의 눈빛, 입속에 뾰족하게 솟은 가시들, 흘러내리는 침, 어깨에서 손가락까지 이어지던 힘줄, 허리의 역동적인 움직임, 몸부림치는 새엄마의 비대한 몸, 살려 달라는 듯 질러 대는 쇳소리, 바람을 타고 전해지던 비릿한 피 냄새, 그리고 창가에 비친 거대한 만월.

  내 눈에 마지막으로 만월이 들어오자 갑자기 내 잇몸을 뚫고 송곳니가 뾰족하게 솟아나기 시작했고 등으로부터 뾰족하고 딱딱한 긴 가시들이 돋아나 온 몸을 뒤덮기 시작했다. 나는 당장이라도 달려가 아버지의 곁에서 새 엄마를 뜯어먹고 싶었다. 나의 뺨을 때리던 손바닥, 쉴 세 없이 날름거리던 빨간 혀, 무섭게 노려보던 눈, 날 걷어차던 두꺼운 허벅지와 발. 아버지 저에게 한 덩어리의 살점을 던져 주시겠어요? 제 날카로운 송곳니로 뜯고 찢어, 잘근잘근 씹어 먹고 싶어요. 큭큭.


  거실에 있는 뻐꾸기시계가 울기 시작했다. 정확하게 뻐꾸기는 아홉 번을 울었다. 그러고 보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시간이었다. 아이가 깨기 전에 아내를 치워야만 했다. 오늘이면 장모도 금강산에서 돌아 올 텐데 빨리 수를 써야만 했다.

  우선, 피부터 닦아낸다 하더라도 그럼 아내는 어디로 치우는 것이 나을까? 땅에 묻기에는 날이 너무 밝아. 호수에다가 던져 버리면 언젠가는 떠오르겠지? 아니야, 기억이 나질 않으니 내가 꼭 죽였다고는 할 수 없지 않아? 그러니까 어제 밤에 아이와 만화 영화를 보고 난 후 밥을 먹고 아이를 재운 후에 아내가 들어 왔고, 그리고는 기억이 흐릿하다. 심장은 과도하게 펌프질을 해대었고 온 몸의 피는 혈관을 뚫고 나올 듯 했었다.

  어젯밤 아내는 아이와 함께 시켜먹은 중국집 음식에서부터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또, 중국집 음식 시켜 먹은 거야? 당신은 집에 돈이 썩어 도는 줄 알아? 집에 밥 있는 거 몰라? 누구는 먹고 살라고 뼈 빠지게 일하는데 할 일 없음 청소나 하던지 말야. 집안 꼴은 이게 뭐야? 너는 집구석에서 도대체 하루 종일 뭐하니? 가게에는 한번 나와 볼 생각도 안하고 이 화상아. 나가 죽어라 죽어. 낮일을 못하면 밤일이라도 잘해야지. 왜 또 혼자하게? 어이구 저것도 남편이라고.”

  아내는 곧이어 옆집 남편들을 하나, 하나 열거 해가며 나의 무능력함을 비꼬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낮에 동네 아줌마들과 한바탕 떠든 모양이었다. 아내의 모든 트집은 결국 나의 성적 무능력과 결부 되어 있었다.

  아내와 결혼하게 된 것은 순전히 새엄마의 계략 때문이었다. 장모와 고교 동창이었던 새엄마는 이미 내가 선을 보러 나가기 전에 나와 아내를 결혼시키는 것에 합의를 끝낸 상태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새엄마는 장모에게 나를 소개 시켜주는 대가로 어느 정도의 돈을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선을 보던 날 새엄마와 장모와 아내는 마치 한 가족처럼 보였다. 족히 팔, 구십 킬로는 나가 보이는 세 명의 거구가 나를 둘러쌌을 때의 느낌이란 햄버거 속에 끼어있는 피클과도 같았다. 그 느낌이란 새엄마가 처음 날 안았던 날의 느낌과 같았다. 새엄마를 처음 만나던 날 아버지의 마른 모습과는 다른 비대한 그녀의 모습에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그리고 새엄마가 예쁜 아이라며 날 안았을 때 누군가가 나의 목을 힘주어 조르는 듯 했다. 이러다가 숨이 막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오줌을 지렸던 걸로 기억 한다. 그날 이후, 난 새엄마를 보면 도망을 쳤다. 그런 나의 모습이 새엄마의 눈에 곱게 비춰 질 리 만무했다. 새엄마와 나는 자연적으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새엄마 앞에 서면 뱀 앞에 얼어붙은 개구리 같았으니 말이다.    

  선을 보러 나온 여자는 새 엄마가 보여준 사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거친 피부와 찢어진 눈매, 매부리코에 두터운 입술. 무엇보다도 육중한 몸과 다섯 살이나 많은 나이. 아내는 나를 보자마자 말을 놓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세 명의 여자들 틈에서 도저히 꼼짝할 수 없었다. 그날 아마 난, 무슨 음료를 먹고 기절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나와 아내는 한 침대에서 나란히 이불을 덮고 있던 중이었다.

  결혼한 이후 아내는 자기의 마음에 내가 조금이라도 안 들면 욕을 해대며 심지어는 여러 가지 물건을 이용해 날 때렸다. 아무래도 새엄마가 말해 준 것 같았다. 저 녀석이 말을 안 듣거든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냥 때리라고 말이다. 때리면 말을 잘 듣는 다고도 말이다.

  아내가 나에게 손찌검을 할 때면 아내의 머리를 돌로 내려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었다. 하지만 늘 꿈에서나 실현되던 일이 실제로 이렇게 평소 생각대로 돼버리라고는 생각 치 못했다. 어렸을 적부터 내가 평소 상상하던 일이 곧 잘 꿈에서 실현되곤 했었다. 꿈에선 누구 하나 나를 때리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내가 그들의 돈을 뺐고 배를 걷어차고 뺨을 때렸다. 하긴 꿈속에서 나는 항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 나오곤 했다. 그랬기에 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나대신 복수를 해주는 거라고 생각 했다. 가시악마나 아수라 백작 그도 아니면 가면라이더와 같은 것들이 많이 등장하곤 했다.

  다시 아내를 바라보며 담배를 태웠다. 이번에도 다른 누군가가 나대신 아내를 죽였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선 아이나 장모가 보기 전에  시체를 치워야만 했다.

  시체가 누워 있는 자리로 걸어갔다. 이왕 이렇게 돼 버린 거 확실히 티 나지 않게 처리해야만 했다. 이 무거운 시체를 들쳐 업고 밖으로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선 난 아내의 시체를 하나, 하나 토막을 내어 호숫가로 나가 처리하기로 결심 했다. 토막을 내기 위해서는 식당에서 이용하는 고기 써는 큰칼이 필요 했다. 그래, 우선 식당에서 큰칼을 가져오자. 그러기 전에 아내를 우선, 서재로 옮겨 야겠어. 아들이 깰 시간이 다 되었으니.

  아내를 서재로 옮기려 아내의 몸을 뒤집어 끌었다. 아내의 이마 부분은 어떤 딱딱한 것으로 수차례 가격 당했는지 움푹 패어 있었다. 그때였다. 아내를 끌던 중 아내의 발에 부딪쳐 무언가 아내의 옆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은 뾰족하고도 뭉툭한 수석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수석을 주워 드는 순간 수석에 묻어있는 핏자국이 눈에 들어 왔다.

  그 순간 모든 것이 기억이 나기 시작했다. 어제 밤 아내는 이것, 저것 트집을 잡다가 제 분에 못이 겨 거실에 놓여 져 있던 수석을 나에게 던졌다. 각성상태에 있던 내 몸은 수석을 맞음과 동시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내 몸을 뚫고 수천 개의 가시들이 튀어 나왔다. 난 바닥에 떨어진 수석을 들고 아내에게로 다가갔다. 아내는 마치 딴 사람을 보는 것 마냥 나의 행동에 당황해 했다. 아내는 순간, 강한 살기를 느꼈는지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난 조금씩 육식 동물이 먹이 감을 사냥 하듯 아내에게 접근해 갔다. 아내는 더 이상 물러 날 곳이 없음을 알고  벌벌 떨며 미안 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랑곳 하지 않고 난 수석을 높이 들고 천천히 아내의 머리를 향해 내려치기 시작 했다. 아내는 마지막 몸부림을 치며 내 팔을 잡고 늘어졌다. 나는 곧이어 연속적으로 아내의 이마를 향해 수석을 내려쳤다. 쿵쿵 거리는 소리와 검붉은 피에 온몸이 전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아내의 이마를 내려치고 얼굴을 돌렸을 때 내 얼굴에 뭔가가 덮여 있었던 것 같다. 마치 가면이 씌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아내를 죽인 사람은 내가 아니라 가면라이더였단 말인가?

  아내를 죽인 게 가면 라이더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 지기 시작했다. 아내를 서재로 다 옮기니 다시 피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남자는 호숫가를 향해 물수제비를 뜨고 있었다. 몇 일째 계속된 폭우로 인해 호수는 물이 많이 불어 나 있었다. 구름떼는 달을 가리고 있었지만 간간이 달빛이 구름 틈으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 호수는 수백 수천의 물결을 이루어 남자를 집어 삼킬 듯 다가 왔고 나뭇잎들은 제 몸을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남자의 돌은 세 번 을 넘기지 못하고 계속해서 물에 빠지고 있었다. 물살이 세어 번번이 세 번 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평소와 달랐다. 평소 같았으면 제풀에 지쳐 다른 놀이를 찾아 나섰을 테였지만 남자는 꼭 네 번의 물수제비를 뜨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는 적당한 무게의 돌을 찾아 자세를 잡았다. 바람이 심하게 불어왔고 물살이 거세었지만 남자는 돌을 꼭 움켜잡고 있었다. 남자는 입을 벌리고 자신을 삼키려고 하는 시커먼 물살을 향해 힘차게 돌을 던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그리고 네 번째로 돌이 튕겨 넘을 때였다. 남자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자랑스럽게 여겨져 한번 도 지어 본적 없던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이던 바로 그때였다.

  “야! 병신 아들. 엄마가 빨리 들어오래. 너 또 오줌 쌌다며? 오줌 싼 것 네가 안 빨면 너 빨개 벗겨서 집에서 쫓겨 날줄 알래.”

  남자의 이복누이였다. 남자는 항상 이복누이에게 먹을 것을 빼앗기거나 뺨을 맞거나 배를 걷어차이거나 했다. 이복누이는 제어미를 닮아 덩치가 컸고 성격도 드셌다. 평소 같았으면 이복누이의 말에 벌벌 떨며 무릎을 꿇거나 했을 테지만 남자는 지금, 방금 전 이룬 성취감에 도취되어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야 이 새끼야!  내말 안 들려? 저게 죽을 라고 환장하나. 맞을래? 빨리 안 올라 와?”

  하지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 누구에게도 이 성취감을 빼앗기기 싫었다. 평소와는 달랐다. 남자는 마치 다른 사람처럼 그저 호수를 바라보며 웃고만 있었다.

  남자의 이복누이는 자신의 말을 들은 척 만 척 하는 남자의 모습에 화가나 방죽아래 호수가로 달려 내려갔다. 이복누이는 남자의 정강이를 걷어 차 남자를 쓰러뜨린 뒤 주먹을 쥐어 남자의 얼굴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남자는 아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픔이 즐거운 듯 이복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 때였다. 그동안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이복누이의 얼굴 너머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달은 얼마 전 남자의 가슴을 뜨겁게 만들었던 거대한 만월과 닮아 있었다. 남자는 만월이 떠올랐던 그 밤처럼 자신의 몸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잇몸을 뚫고 송곳니가 솟아났고 손가락에는 손톱이 날카롭게 자라나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옆에 있는 돌을 움켜쥐고 이복누이의 얼굴을 향해 던졌다. 돌은 정확하게 이복누이의 눈을 맞추었다. 이복누이는 고통스러운 듯 눈을 감싸고 뒹굴기 시작했다. 남자는 연이어 뾰족한 돌로 이복누이의 머리를 내려 찧기 시작했고 자신의 날카로운 송곳니로 이복누이의 목을 물어뜯었다. 이복누이는 공포와 고통에 비명과 함께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고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듯 먹이 감의 고통스러운 몸부림에 쾌감을 느끼며 천천히 이복누이의 온몸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이복누이의 몸부림과 비명이 잦아 질 때 쯤 남자는 힘 빠진 이복누이의 몸을 불어난 호숫가를 향해 굴러 떨어뜨렸다.

  남자는 고개를 들어 만월을 바라보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남자의 그림자가 달빛에 비춰 호숫가에 일렁거리고 있었다. 수백 수천의 물결 탓인지 남자의 그림자는 마치 으르렁 거리는 한 마리의 짐승 같이 보였다.

  바람이 좀 더 세게 불자 물결은 더욱 심하게 일기 시작했다. 달빛에 비친 물결들은 스물 스물 거리며 남자에게 다가 오고 있었고 그 물결들은 저마다 한 마리의 뱀들로 변해 입을 벌리고 있었다. 남자는 뒷걸음을 치며 방죽위로 올라가려 했으나 목 아래로 나뭇가지들이 내려와 몸을 휘감고는 꼼짝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은 풀어 헤쳐진 여인네들의 머리칼과도 같았고, 그것들은 울부짖거나 혹은 귀가 찢어질 정도로 웃고 있었다.

  수천마리의 뱀들은 남자의 몸을 기어올라 소년의 몸을 새카맣게 뒤 덮기 시작했다. 뱀들은 저마다 남자의 몸을 물어 댔고 뱀들이 문 자리마다 남자의 피부는 생기를 잃고 바짝 말라 갔다.     


  눈을 떴을 때는 아내가 나를 깨우고 있었다. 거실에서 뻐꾸기소리가 정확하게 아홉 번 울렸다. 몸이 뭔가에 맞았는지 심하게 부어 있었고 여기저기 시큰하게 쑤셔 왔다. 몸을 일으켜 세우니 침대 위로 달빛이 가늘게 빛나고 있었다. 커튼 틈으로 스며든 달빛은 날이 선 황금 칼과 같았다. 황금 칼은 침대와 내 몸의 정중앙을 가르고 있었다.

  아내는 웬일인지 내 몸을 쓰다듬으며 나에게 수석을 던진 일을 사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좀 덥지 않느냐며 커튼을 걷은 후 창문을 열었다. 아내는 곧이어 내 몸을 누르고는 휘감기 시작했다. 아내의 등 뒤로 달빛이 쏟아져 내렸다. 보름달이었다. 보름 달 표면에는 파랗게 줄들이 가 있었다. 내 몸 속의 실 정맥들이 갑자기 꿈틀 거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니 침대 밑으로 수석이 떨어져 있었다. 수석은 달빛을 받아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시 아내를 바라보았다. 오늘 따라 유난히 목 부분의 파란 정맥들이 도드라져 보인다. 입속에서 가시가 돋아 나왔다. 얼굴의 근육들이 실룩 거리며 움직였다.

  ‘오랜만에 아내의 신음 소리를 듣는 것도 괜찮은 일 인 것 같은데. 큭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