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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옐로 플라워 * (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으로부터 )

  • 작성일 2006-05-14
  • 조회수 319

옐로 플라워 - 영원한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 하다. ( 만복사저포기,이생규장전으로부터 )

 

*햇살*

 

  밝은 햇살이 최의 눈꺼풀을 간질인다. 최의 눈은 비집고 들어오려는 햇살을 거부하려 하지만 역부족이다. 힘겹게 눈을 뜨고 시계를 본다.

 

  " wow! 8시가 넘었네! “

 

  최는 한숨을 푹 쉬며, 자기 쪽으로 누워 아직도 한 밤 중인 리를 바라본다. 엄지와 검지로 리의 감겨진 눈을 억지로 벌려본다.

 

  “ wake up! 지각이야. 지금 안 일어나면 또 저번처럼 후회할걸?”

 

  리는 게슴츠레 최를 한 번 바라보더니, 팔을 뻗어 최를 자기 쪽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겨 껴안는다. 그리곤 다시 눈을 감고 말한다.

 

  “ 오늘 쉬는 날. 좀만 더 자자 ”

 

  리는 최가 움직이지도 못할 만큼 그녀를 다시 꼭 안는다.

 

*Breakfast*

 

  최는 샐러드를 만들고, 리는 토스트에 땅콩버터를 바르고 있다. 최는 리를 한 번 훑어본다. 머리는 새집이 되어있고, 세수도 안하고, 일어나서 그대로인 모습이다. 최의 시선이 느껴졌던 듯 리가 최의 쪽을 본다. 그러는 동시에 소리를 내며 트림을 한다. 먹은 것도 없는데 아침부터 웬 트림인지, 최는 샐러드를 가지고 식탁에 가 앉는다. 같이 살고 한 동안은 귀엽게만 보였던, 그의 이런 모습들이 최는 이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거를 결정한 건 너무 서투른 판단 아니었을까. 최는 샐러드를 입 안에 넣다가, 리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말한다.

 

  “ Mr. Lee. 영원한 사랑이 있다고 믿어? "

 

  땅콩버터를 잔뜩 바른 토스트를 베어 물며, 리는 의아해 하며

 

  “ 글쎄, 너무 소모적인 질문이야 ”

  " 그럼,  Mr. Lee는 나를 영원히 사랑하지 않을 거야? “

  “ 그것도 역시 소모적인 질문이군.”

 

  가끔 리는 너무 말의 멋이 없다. 그것 때문에 최는 화가 날 경우도 더러 있었다. 턱 막히는 느낌이 치밀어 올랐지만 바로 진정 시킨다. 

 

  “ 설거지는 Mr. Lee가 해!”

 

  리는 소파에 앉아 신문을 보고 있다. 깨알 같은 영어들이 박혀있는 영자신문, 저런 타국 어로된 인쇄물을 읽는 리를 볼 때마다 최는 그가 異세계에서 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최는 소파로가 리의 무릎을 베고 누워 신문을 들고 있는 리의 팔목을 무의식적으로 긁는다.

 

  “ Mr. Lee. 난 가끔 우리가 너무 다른 세계의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어 ”

  " Mr. Lee 이 순신 알아? “

  “ 응 ”

  “ 신사임당은?”

  " 몰라 “

 

  Mr. Lee는 자기를 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최는 그 때 휴가차 동남아에 나가려고 공항에 있었고, 그런 최에게 한 남자가 다가오더니 유창한 영어로 감정이 복받친 듯 말을 하였다. 최는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고, 어메리칸의 외형까지 닮아버린 이 큰 남자의 눈에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최는 처음 본 이(異)세계의 낯선 남자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이 남자가 자기의 손수건을 돌려주기 위해 일주일을 공항에서 기다린 것을 미리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 Mr. Lee!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뭐라고 할 거야? "

  “ 귀신.”

  " 뭐? 무슨 뜻이야? “

  " 갑자기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서 나타나서, 이태까지 감당하지 못할 만큼 내 기운을 쏙 빼놓고 있잖아 “

  " 내가 무슨 기운을 뺀 다구 “

 

  리는 신문을 접어 옆에 놓은 후, 고개를 숙여 최에게 가벼운 입맞춤을 한다.

 

  “ 레이디. 오늘 시간이 있다면 나와 같이 어디 좀 가면 안 될까 ? "

 

  리는 운전을 못한다. 그래서 최는 가끔 운전기사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리는 꼭 차에 타면 이상한 인디언 음악을 틀곤 하는 것이었다. 그 음악은 마치 고대의 주문 같았다. 오늘도 최와 리는 고대의 주문을 들으며 드라이브 하는 것이다.

 

  “ Mr. Lee . 내가 어제 숙제하려고 고전 작품 읽다가 잠들어 버렸잖아 ”

  " 응 , 또 침대까지 나르느라 나만 힘들었지 “

 

  최는 리가 이렇게 이야기의 맥을 끊는 것이 싫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한 편으론 귀엽게 느껴진다.

 

  “ 근데, 내가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한 건 남자들이 모두 여자를 못 잊어서 은둔하거나 죽어버리거나 한단 말이야. Mr. Lee는 어때? 내가 떠나 버린다면? "

  “ 떠나지마. 달려가서 잡을 거야 ”

  " 잡을 수 없어. 왜냐면 여자들은 죽었거나 신선이나 다 그렇거든, Mr. Lee."

  " 다른 세계와의 러브 스토리군. 글쎄. 넌 어쩌길 바라는데? "

  “ 하하.  Mr. Lee는 가톨릭이지! 신부가 되어라!”

  " OK. 네가 원하는 데로 “

 

  인디언 음악의 트랙 8번이 끝나갈 때, 리와 치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리의 고고학을 전공하는 호주 친구의 집이었다. 드라마에나 나오는 집 같아서, 저번에 한 번 와보고 꼭 다시 오고 싶었었던 집이다. 리는 호주 친구를 만나니 알아들을 수 없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 다시, 다른 세계의 그가 돼 버렸다.

리의 호주친구 잭슨의 집은 아름다웠다. 정원은 깔끔히 손질되어 있었고, 봄이라 꽃들은 유채색으로 호흡하고 있었다. 노란 색 꽃들의 한 묶음은, 최의 발걸음을 멎게 만들었다. 최는 잭슨의 눈치를 본 후, 다른 곳을 볼 때 얼른 노란 꽃 한 송이를 꺾었다.  리와 잭슨은 아직도 외계어로 대화 중이었다. 무엇인진  잘 모르겠으나 리가 계속 부탁하는 듯 했고, 잭슨은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리는 최에게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고, 그들은 잭슨의 집 안 깊은 곳의 한 철문이 달려있는 방 앞까지 왔다. 잭슨이 비밀번호를 누르고, 철문을 스르르 열렸다. 역한 향의 냄새가 코를 지른다. 조금 지독한 소독약 냄새다. 철문 안 쪽은 오래된 유물들, 잭슨의 수집품들이 모여 있었다. 역시 재력가답게 박물관의 행색까지 갖추어 놓고 있었다. 수집품들은 유리관 안에 조명을 쐬며, 놓여있었고 그것들을 유지하기 위해 소독약 냄새가 나는 구나하고 최는 생각하였다. 신비로운 유물들의 아름다운 자태에 최는 어안이 벙벙해, 신나서 둘러보고 있었다.

 

  “ 오늘, 우리가 볼 건 더 놀라운 거야 ”

 

  리는 최의 팔을 잡아끌었다. 역한 소독약 냄새가 가장 많이 나는 곳으로 최를 잡아끌었다. 그곳엔 미라가 있었다. 옷도, 머리카락도 그대로인 미라가 말이다. 저고리를 입었으니, 한국의 조상의 미라인 것 같다. 바지저고리를 정갈히 입고 누워있는 남자 미라였다. 미라는 큰 체격에, 유난히 큰 발을 가지고 있었다. 최는 그 당시에도 굉장히 호남 형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최의 손을 꼭 잡으며, 리가 말하였다.

 

  “ 아까, 자기가 말한 영원한 사랑을 이 남자는 하고 있을까? "

  " 죽어서도, 잊지 못해서 이렇게 남아있는 걸까? "

  “ 그럼 자기가 떠남 난 신부님 미라가 되어야 하는 거야? "

  “ 굳이 그럴 필욘 없어! 근데, 오랜 시간이 지났으니 사랑하는 여자는 이미 죽어버렸을 텐데, 왜 이렇게 혼자 남아 있는 거지? "

 

  리가 최의 말을 듣더니, 하하 웃으며.

 

  " 그것도 그러네. 이분이 거기까지는 생각 못한 것 같아. 아마, 죽을 당시에 한 때문에 이렇게 남아있는 거  겠지? “

 

  리의 말을 들으면서, 미라를 자세히 살피던 최가 빙그레 웃으며 리에게 놀라 말하였다.

 

  “ Mr. Lee! 이 남자가 손에 쥐고 있는 걸 봐!”

  “ Wow! 잔을 쥐고 있네!”

  “ 진짜 한이 많긴 많았나보다. 저렇게 잔을 꽉 쥐고 있다니 "

 

  남자미라가 잔을 쥐고 있던 오른손은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 잔과 살이 얽혀 붙어 있었다. 그의 손에서는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그 한이 이 남자가 미라가 되게 만들은 것이라 최는 생각하였다. 그 잔은 이 남자에게, 일생에 있어서 어떠한 한 표상이었을 것이다. 결코 잊어지지 않고, 잊어서도 안 되는 하나의 표상. 그래서 죽는 순간까지 손에 꼭 쥐고 놓지않았을 것이었다. 이 잔을 잃어버리면, 다시는 그녀를 못 만날 것 같아 죽는 순간까지 잔을 놓지 못하는, 이 잔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그녀를 다시 만날 것 같다는 로맨틱한 희망을 가지고 잔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최는 생각하였다.

 

  " 소독약 냄새, 너무 오래 맡았나봐. 이제 나가자 “

  리의 말을 들으니, 최도 아까부터 코가 시큰 거려 오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리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다가 최는 문뜩 아까 꺾은 노란색 꽃이 떠올랐다.

 

  “ 잠깐만! 나 저 미라아저씨에게 작별인사 하고 올게 ”

 

  최는 혼자 미라 쪽으로 뛰어갔다. 그리고 여전히 아무 일 없는 듯, 평온히 누워있는 미라를 만났다. 잔을 잡은 손은 여전히 떨어질 줄을 몰랐다. 최는 주머니에서 노란 꽃을 꺼내어 잔 위에 살포시 올려놓았다. 그리고 미라에게만 들리게 읊조렸다.

 

  “ 아저씨. 영원한 사랑은 어쩌면 영원한 꿈일지도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