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나비

  • 작성일 2006-06-06
  • 조회수 343

 

                         나비

                                                               강효정


  주전자가 삐익 소리를 내며 뚜껑을 들썩였다. 그 소리가 윗집 소프라노 여자의 목소리와 닮은 것 같아 한참을 듣고 서 있다가 이젠 씩씩 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주전자를 들어 커피 잔에 가만히 따랐다. 커피와 설탕알갱이와 프림의 미세한 입자가 흉측하게 일그러지며 갈색으로 변했다. 언니의 얼굴이 생각난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언니의 곱던 피부 결. 로션하나만 바르고 다녀도 생기 있게 빛났던 언니의 얼굴은 그대로 한 달 전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커튼을 친 창문에서 미세한 햇빛이 스며들어왔다. 햇빛 아래서 두 눈을 감고 환한 얼굴을 한 언니는 그 적당한 따사로움 속에서 세상을 다 가진 충만한 표정으로 음악을 듣는 것을 즐겼다. 나는 늘 그런 의식에 빠져있는 언니를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멀리했다. 그 순간만큼은 언니는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성스러운 사람이라고 느꼈던 나의 답답한 고정관념 내지는 환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언니는 그만큼 나에게 우월의 대상이었고 동경의 대상이었다. 언니는 나비를 수집했다. 한창 턱 끝까지 신발 욕심이 차 있던 나의 다섯 살은 무엇이든지 호기심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고 행동하기를 좋아하는 작은 아이였다. 언니는 그 시절 일곱 살 이었지만 일곱 살의 어린아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의젓하고 뭐랄까, 기품이 느껴졌다. 나와는 확연히 비교될 만큼. 언니는 가만히 앉아 동화책이나 볼 것 같은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산이나 들판에 나가 곤충이나 나비를 채집하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그 시절 언니의 관심사는 ‘나비’였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나의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는 이유가 금전적 여유라고 말하며 나를 소외시켰고 반면에 언니에게는 그런 요소가 소비되지 않아서 인지는 몰라도 엄마는 언니의 그런 고상한 취미에 적극 동참에 주었고, 곧잘 언니의 웃음소리가 넘치게 만들었다. 언니가 웃을 때는 행복한 기운이 넘쳤으며 그런 언니를 보고 있는 나는 언제나 우울했다. 언니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마력이랄까. 사람을 기쁘게 하는 그 무언가가 몸속 가득 생식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못한 나는 점점 성격이 바뀌어 갔고, 언니를 보며 나를 보며 언니만큼의 모든 것을 소유 할 수 없음에 대해 스스로 면역을 잃어갔고 종종 혼자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언니에 대한 열등감에 휩싸여 어지러웠던 나와는 달리 언니는 나에게 상냥했다. 언니는 그야말로 날개 잃은 천사 같았다. 언니는 식탁에서도 그 진가를 발휘했다. 언니가 가장 좋아하는 콘 샐러드를 나에게 더 많이 덜어주는가 하면 나의 그릇 하나하나 까지도 세심하게 신경써주고 배려해주는 언니였기 때문에 그런 언니의 웃는 얼굴에 검은 욕심이 담긴 비수들을 꽂을 수는 없었다. 언니는 그렇게 잘 성장해 갔다. 나는 모든 것에 항상 행운이 따르고 정당화 되는 언니의 곁에서 지내다 보니 그 정기를 받아서 인지는 몰라도 그럭저럭 무난한 학창시절을 보냈다. 언니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초등학교 때에는 반 친구들의 성화에 힘입어 반장 부반장을 학년마다 맡게 되었고 중학교 때에는 우등생 상장을 한 학기 씩 타오는 등 아주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언니는 미련하게 착했다. 자신이 맡은 일은 자신의 몸 상태가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떠맡았다. 고등학교 때였나, 학교 축제 때문에 연극 의상을 언니가 맡은 적이 있었는데 전날 비를 맞고 돌아다닌 탓에 감기몸살에 걸려 온 몸이 고열로 펄펄 끓는데도 언니는 손에서 천 쪼가리를 놓지 않았었다. 언니는 미련하다 못해 바보 같을 정도로 심성이 고왔다. 하늘에서 천국으로 가는 사람을 꼽는다면 언니는 당연히 영순위 일 것이라고 나는 그런 당연한 이치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한 적 이 없었다.

  언니는 아주 성실하게 공부한 덕에 원하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언니는 여대에 진학하게 되었는데 언니의 바람대로 언니는 생물 쪽 공부를 하며 언니의 최대 관심사인 ‘나비’를 더욱 더 심도 있게 공부 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대학에 들어와 이사를 하게 된 우리 집은 구조가 많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생기 있고 행복이 넘치는 분위기는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 하나 바뀐 것이 있다면 언니와 나의 방 분리였다. 자석의 엔극과 에스극처럼 붙어 생활하던 우리에게 각방 사용 이라는 것은 막 혼자 자기 시작한 어린 아이가 느끼는 두려움과 흥분이기도 했다. 나는 언니와 떨어져 잔다는 것에 큰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옆에 언니가 있다는 안정감과 언니의 규칙적인 고른 숨소리가 들리곤 하던. 어두움 속에서 악몽에 시달려도 금세 안정을 되찾을 수 있게 하던 언니의 숨소리를 들을 수 없고, 오직 그 캄캄한 공간 속에 공허한 내 숨소리만 울려 퍼질 것을 생각하니 손발이 차가워졌다. 하지만 나와는 달리 언니의 표정은 잔뜩 흥분 되어 있었다. 언니는 오히려 신나 보였다. 난생처음 내 공간이 생겼다는 것에 대한 기쁨 때문인지 아니면 나와 더 이상 부대끼지 않아도 된다는 그런 어떤 것이 언니를 들뜨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절대적으로 전자 쪽을 믿고 있었기에 아쉽지만 언니와 나의 공간이 분리 되는 것에 대해 점점 수긍해 나가야만 했다. 나와 언니는 정말 믿기지 않겠지만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다. 언니보다 고집이 센 나는 무엇이든지 탐하는 것을 좋아했고 그런 심술을 다 받아주는 언니는 장난감을 가지고 놀더라도 나에게 먼저 양보하며 내가 싫증이 나서 더 이상 탐내지 않는 장난감들만 그제 서야 조금씩 만지곤 했던 것이다. 그런 언니가 답답하고 재미없어 일부러 더 심술을 부리며 언니가 가지고 있는 것은 다 빼앗았던 내 심술을 언니는 그때마다 현명하고 합리적이게 받아주었고 양보해 주었다. 그랬기에 당연히 주변사람들은 우리 자매에 대한 칭찬을 혀를 내두르며 입이 마르도록 했다. 친척들이며 동네 아줌마들 까지도 우리 자매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고 자신의 자식에 대한 본받음 케이스로 우리를 내세우곤 했다. 엄마와 아빠는 순식간에 자식교육을 잘 시킨 아주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모두 엄마 아빠를 부러워했다. 그것이 다 언니의 착한 심성 때문인지는 모르고 덕분에 나도 선한 이미지로 고정되어 버려서 거짓말이나 나쁜 일을 꾸미는 것에 대해서도 한 번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을 만큼 주변인 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상당히 비중이 컸다. 언제나 사이좋게. 언제나 웃으며. 언제나 모범적이게 지내길 바라는 그런 눈초리 들은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 까지도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사 온 뒤 한달. 언니의 방에 들어갈 일이 적었던 만큼 언니의 비밀스런 방에 대한 호기심은 어느덧 나를 염탐자로 만들었다. 언니가 잠깐 외출한 어느 날 저녁 아무도 없는 빈 집을 지키고 있던 나는 언니의 방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언니의 방엔 꽃 냄새가 났다. 나비의 잔해 냄새라고 할까. 한 번쯤 맘에 드는 꽃에 다가가 입을 축인 적이 있는 나비들의 잔해들은 액자에 갇혀 방 곳곳에 진열되어 있는데도 그 액자사이로 새어나오는 강렬하고도 미세한 꽃향기들은 내 코에 제대로 스며들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런 꽃향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새삼스레 언니의 방은 단조롭고 차가워 보이는 내 방과는 달리 무척 따뜻하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언니의 방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무척 꼼꼼한 성격의 언니라 그런지 어디에도 흠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같은 한집에 사는데도 지저분하고 흠투성이인 내 방과는 달리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에 대해 나는 묘한 흥분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런 내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는지 언니의 책상서랍이며 언니의 일기장이며 언니의 옷가지들이며 죄다 풀어놓고 뒤지기 시작했다.

  “지우야. 너 뭐하는 거야?”

  한참 열중해 있던 나의 행동을 멈춘 것은 언니의 차가운 입김이 서려있는 목소리였다. 흠칫 놀라며 돌아본 언니의 얼굴에 담겨 있던 것은 추운 날씨에 발갛게 볼이 언 언니의 추위와 조금은 화가 난 것도 같은 언니의 미간에 곱게 자리 잡은 주름이었다. 나는 충분히 둘러댈 거짓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니의 방에 침입한 목적을 말해야겠다는 순간적인 생각에 입을 열었다.

  “도대체 언니 방에......”

  “아...... 뭔가 찾을 게 있었니? 나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아니 그게......”

  “내가 찾아줄 수 있는 거야? 아, 혹시 저번에 빌려간 씨디 찾는 거니?”

  더 이상 이야기 할 수 없었다. 언니는 다 알고 나를 감싼 걸까. 한 번도 어긋나지 않은 우리의 사이를 한 번쯤 날이 잘 선 칼로 갈라보고 싶은 나의 낌새를 알아채고 그런 것이었을까. 언니는 더 이상 그 광경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그 사실을 엄마나 아빠에게 말하는 법도 없었다. 언니는 언제나 나와 관련된 어색한 일은 머릿속 어디에다가 가두어 놓는지. 언니는 그것을 깨지 않으려는 대단한 사명을 지니고 태어난 일종의 여신 같았다. 언니에게는 무언가 열쇠가 있어야만 열 수 있는 성스런 것처럼 그것에 대해 묵인했으며 어떤 것으로 꽁꽁 봉인해 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커갈수록 답답했다. 그것에 대해, 언니와 나의 사이에 존재하는 불편한 그 무엇이 내가 언니를 달리 생각하게 하고 우러러 보는 이유였기에 나에게 있어 그것을 깨버리는 것은 중요한 목적이 되었다. 손대지 말아야 할 에덴동산의 탐스런 사과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이브의 눈처럼 나는 점점 탐욕스러워져 갔다. 언젠가 신이 나에게 크게 호통을 친다 해도 두렵지 않았다. 내 안에 잠재되어 있는 무서운 기운이 나를 점점 지배하게 된다 해도 신이 인간에게 주기 꺼려했던 가장 추악한 것 중 하나. 호기심이라는 것이 나를 점점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그것과 대적하여 이겨야만 내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나의 일방적인 생각 때문에 그것은 나를 점점 추악하기 짝이 없는 인간으로 변모하게 만들었다.

  언니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이라도 하듯 성적이 만족스럽게 나오지 못한 나는 원하지 않는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불만족스런 캠퍼스 생활을 하게 되었다. 늘 즐거운 표정으로 생활하는 언니의 모습은 그야말로 청아한 여대생의 모습이었으며 그런 언니를 따라하려 똑같은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도 늘 나에게는 백 퍼센트를 충족시키지 못할 부족한 일 퍼센트가 내 발목을 붙잡았다. 거울 앞에선 언니는 늘 자신 있었다. 대중목욕탕에 갈 때면 더 느끼게 되는 열등감은 심성은 말할 것도 없고 외모까지도 언니에게 뒤쳐진다는 생각에 대중목욕탕 안에서도 언니와 나란히 앉지 않고 등 돌려 앉는 다든지, 언니가 탕에 들어가 있을 때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다든지 하는 것은 늘 당연한 나의 행동이었지만 젊은 몸뚱어리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눈 여겨 보던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역시 자매라 닮은 우리들의 관계를 금방 눈치 챘고, 언니에 비해 무언가 부족하다는 나에 대한 인식도 빨리했다. 그런 것이 싫어 움츠리고 다니는 나. 거리낄 것이 없음에 당당한 언니는 늘 가슴을 곧게 펴고 다녀 그런지 나에 비해 가슴이 봉긋했고 등도 곧았다.

  어느 날, 언니에게 저녁을 먹으라고 전하러 언니의 방에 들어갔었는데 방문을 염과 동시에 나던 꽃향기와 언니의 행복한 뒷모습이 나를 그 자리에 서 있게 만들었다. 언니는 책상에 앉아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내가 방에 들어온 것을 모르는 듯한 언니는 이따금씩 작게 어깨를 들썩거렸고 그것이 조용히 우는 모습 같기도 했고 조용히 웃는 모습 같기도 했다. 언니의 어깨 너머로 몰래 훔쳐 본 것은 분홍색 편지지에 빼곡히 찬 글씨였다. 언니는 여전히 자신의 얼굴빛을 닮은 분홍빛 편지지에 세 줄에 한 번 꼴로 보이는 어떤 이름을 적으며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것은 남자 이름 같았다. 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것이라 짐작하고는 나도 모르게 ‘킥’ 하고 웃어버렸다. 흠칫 놀라 재빨리 분홍색 종이를 가슴팍에 숨기는 언니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어버렸고, 노크 없이 들어온 나에 대해 당황스런 어조로 다그쳤지만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런 언니의 얼굴을 보며 부럽기도 했으나 화가 나는 것은 나의 즉흥적인 감정이었을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화가 났다. 언니가 저 정도로 활짝 핀 나이엔 남자친구가 있다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느껴질 듯 한데도 나의 심술은 극에 달했고 이내 내 방에 들어와 씩씩거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언니에게 접근한 남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집과 동성친구와 나 밖에 몰랐던 언니가 본격적인 사랑을 시작한다는 것에 대한 괜한 심술이 왠지 늘 똑같은 아이스크림만 고르던 아이가 어느 날 새로운 아이스크림을 집는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닌데도 화가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책상에 나 있는 나무 결을 따라 눈동자를 굴리고 있을 무렵 문득 창문을 쳐다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발갛게 노을이 지는 하늘은 꽤나 아름다웠다. 방금 본 언니의 볼이 꼭 저랬었지 하는 생각에 무의식적으로 커튼을 쳐 버렸다. 질투라고 하기엔 너무 무서운 내 안에 발정 난 뱀처럼 꿈틀대는 그 무엇 때문에 찬물을 가득 따라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언니는 어느새 식탁에 와 앉아 있었다. 그리고는 옆에 와 앉으라는 듯이 다정하게 손짓을 했다. 나는 언니를 보며 최대한 상냥하게 얼굴근육을 움직여 웃어 보였다. 

  대학생활을 하며 친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다가와 이따금씩 말을 걸거나 관심의 표현을 해 왔지만 솔직히 별 감정이 가지 않는 사람들과 희희낙락거리는 것에 흥미가 없던 나는 사교에 있어 무엇이든지 ‘적당히’의 방법을 취하고 있었고 사람들도 그런 나의 성격을 알아차린 건지 나에게 말을 걸 때에도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다가오는 쪽이 더 많았다. 오랜만에 과 사람들과 모임이 있어 적당히 한 잔 두잔 술이 오갔고 그렇게 어울리다가 집에 오는 길 이었다. 어둑어둑한 골목길에서 조금 거리가 있게 내 앞으로 한 쌍의 남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몇 잔 마시지 않았는데도 워낙에 술과 일가견이 없는 터라 몇 잔에 곧잘 몽롱하게 되곤 하던 나는 앞에 걸어가는 그 남녀의 마주잡은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걸었다. 점점 눈이 그 남녀의 동선을 따라가던 찰나, 오늘 아침에 언니가 입고 집을 나서던 색깔의 원피스와 똑같은 옷을 입은 여자가 바로 언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남자와 언니는 뭐가 그렇게 우스운지 연신 희죽거리며 걷고 있었다. 가끔씩 언니가 입을 가리고 웃었으며 남자를 살짝 때리는 모션을 취하는 등 무척이나 사이가 좋아보였다. 왠지 지금 언니를 부르면 언니의 당황스런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좀 더 지켜보기로 했다. 어느새 집 앞까지 다다랐다. 언니라는 것을 알아채고선 더 거리를 넓혀 걷던 나는 집 앞에서 언니와 그 남자의 미묘한 분위기를 알아차렸으며 곧 입술을 포개는 두 남녀 중 내가 아는 그 여자가 바로 언니라는 사실에 크게 놀랐다. 전봇대 뒤에 숨어 숨을 가다듬던 나는 언니의 저런 행동이 무척이나 새롭게 다가왔으며 또다시 부러워하기보다 그 이상을 넘어선 질투라는 감정에 휩싸여 스스로를 자제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막 언니에게 무안을 줄 심상으로 집 앞으로 전진 하고 있을 때는 이미 그 남자가 사라진 후였다. 나는 성립되지 못한 내 욕구 때문에 괴로워했으며 이미 집으로 들어가 버린 언니는 한 번 더 나를 화나게 했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집안은 아로마 차 향기가 훅 끼쳐 가습기를 틀어놓은 것처럼 습기가 가득 차 있었다. 언니는 방안에서 옷을 갈아입는지 보이지 않았고 식은땀을 흘리는 나를 보며 엄마가 아프냐고 물었다. 엄마는 우리들의 사이를 아주 잘 아며 또는 아주 모르는 사람 중 한 명 이었다.

  “지우야 너 들었니? 언니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구나. 우리 순둥이도 드디어 연애라는 걸 하는 걸까? 하긴, 이제 어린애가 아니니까. 호호 왠지 엄마는 너무 기분 좋다.”

  엄마는 잔뜩 흥분해서는 앞치마를 움켜쥐며 온갖 상상에 빠져있는 듯 했다. 엄마의 그런 이야기가 나에겐 ‘너도 언니처럼 연애를 해야지.’ 라는 소리로 밖엔 들리지 않았으므로 기분이 언짢았다. 엄마에겐 적당히 동조를 해주며 문을 닫고 들어온 내 방 안에는 거실에서 난무하던 아로마 차 향기가 문을 연 순간 조금 들어와 흩어지고 있었다. 머리가 띵해지던 나는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하기 시작했다. 가만히 맡고 있으면 기분 좋은 냄새인데도 이렇게 싫어하는 것을 보면 나는 저들과 어울릴 수 없는 무언가를 몸에 지니고 태어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용히 언니를 부러워하며 나의 어릴 적처럼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나 나름대로 언니보다 우월한 것을 찾으려 애 쓰며 살 수도 있었는데 굳이 이렇게 까지 언니를 미워하게 된 것은 아마 언니가 너무 착한 것 때문이리라. 자매를 똑같이 착하게 만들기엔 재미없게 느낀 신이 발칙한 장난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한 가지씩 시한폭탄을 지니고 산다. 그것이 째깍째깍 하고 초침을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도록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크게 건드렸다면 그것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 안에 내제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 묵인하려 하고 은폐하려 든다. 자신은 마치 그런 것에 관심 없다는 듯. 상대방에게 늘 진실하다는 듯. 최선을 다 한다는 듯. 내가 그런 척을 하고 있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내 안의 그 무서운 시한폭탄을 덮고 있는 상자라는 두께가 아마도 내 것은 지나치게 두껍지 않을까 생각했다.

  언니는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나비에 관한 일종의 환상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비를 바라보고 있는 언니의 눈은 ‘저 사람의 관심사가 저것이구나.’ 하는 느낌을 첫눈에 받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언니는 휴일이면 산으로 들로 나비를 수집하러 다녔다. 언니의 방에 한가득 쌓여있는 나비에 관한 전문서적과 각종 화보집만 하더라도 언니가 나비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다. 덕분에 나는 웬만한 나비의 종류는 다 알 수 있었고 언니의 친절한 설명과 관심 덕에 어렸을 때부터 나비를 보고 자랐다. 나는 워낙 곤충류를 좋아하지 않던 터라 그다지 정을 주고 있진 않았지만 나비에게는 뭔지 모르게 풍기는 신비로움이 있다고나 할까. 얇디얇은 날개를 팔랑이며 고공을 뚫고 다니는 수수하면서도 화려한 나비는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니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역시 좋아하는 대상과 주체는 닮아가는 걸까. 언니의 관심사가 나비라는 것에 대해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람들은 그런 언니의 모습을 오히려 동경의 눈길로 쳐다보는 듯했다. 저런 사람에게 딱 맞는 아주 고상하고도 신비로운 관심사라고 말이다.

  언니가 이번 대학교 축제 때 맡은 것은 나비 전시라고 했다. 그 때문인지 언니는 어느 때보다 열심이었고 특히, 봄이라 휴일엔 나비를 잡으러 멀리까지 가는 터에 밤늦은 시간에 들어와 피곤에 지쳐 쓰러져 자기 일쑤였다. 나는 언니가 느끼는 피로함에 묘한 희열을 느끼고 있었고 피곤함 때문인지 기운이 없어 보이는 어깨를 보고 있노라면 콧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요즘은 왠지 언니보다 내가 더 예뻐 보인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언니가 많이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언니를 완벽하게 따라가지 못하는 그 일 퍼센트가 아직도 나와 언니는 다르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전날 과음한 탓인지 아침에 눈을 뜨기가 다른 날보다 힘들었다. 닫힌 눈꺼풀 안으로 언니의 얼굴과 방안의 광경이 떠올랐다 사라지고, 사라졌다가 떠오르고는 다시 사라졌다. 조금 있다가 다시 언니와 그 남자. 그리고 방의 광경이 점점 뒤섞이더니 엄마가 하는 것을 딱 한 번 본 적이 있는 퀼트처럼 얼기설기 이어져서 천천히 멀어지고 어두워지더니 또 다시 나타났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상체를 일으켰다. 발치에는 듬성듬성 숱이 빠져있는 방청소 빗자루와 나를 닮은 여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그게 거울속의 나라는 것을 까맣게 인지하지 못한 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던 나는 추악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속이 더럽다는 느낌이 들었다. 거울속의 나는 더러운 오물을 가득 담아가지고 다니는 커다란 비닐봉지에 불과했다. 조금씩 주둥이를 비틀어 쏟아내면 주변까지 더렵혀지는 그런 불결하고 불쾌한 냄새가나는 오물을 담은 생물체.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희미하게 아로마차 향이 나는 것을 보니 누군가 내 방문을 열었던 모양이다. 식탁의자에 반쯤 엉덩이를 걸치고 멍 하니 아침 뉴스를 보고 있었다. 뉴스에는 한참 지난 밤 살인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중 이었다. 용의자는 놀랍게도 피해자의 형 이었고 원인은 유산 상족이라고 지껄이는 앵커의 따분하리만큼 올바른 목소리와 어조 때문에 전날 마신 술과 같이 신물이 올라오려 했다. 언니는 지금 막 머리를 감고 나에게 생긋 웃어 보이며 옆에 와 앉았다. 싱그러운 샴푸냄새와 아직 덜 마른 언니의 머리카락에서 아침 이슬보다 더 상쾌한 기분이 들게 했다. 언니는 술을 많이 마셨냐며 나를 걱정했고 나는 엄마와 아빠와 그리고 상쾌한 언니의 걱정을 받으며 달 디 단 꿀물을 들이켰다.

  “나 오늘 축제 준비 때문에 많이 늦을 것 같아. 엄마, 나 새벽녘에 올지도 모르니까 먼저 자. 나 걱정하지 말구.”

  언니는 당장 내일 모레로 다가온 축제 준비에 여념이 없는 듯 보였다. 젓가락으로 밥을 깨작거리며 연신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던 언니는 덜 마른 촉촉한 머리카락을 손으로 한 번 쓸고는 집을 나섰다. 다녀오겠다는 친절한 언니의 음성이 집안 곳곳에 울려 퍼졌고 엄마는 웃으며 화답했다.

  “우리 예쁜 딸. 착한 딸. 잘 다녀와.”

  살짝 손짓을 하던 나는 다시 앵커의 따분한 목소리를 들으며 생선을 발라먹기 시작했다. 어느덧 식탁에는 밥 한 그릇이 뚝딱 비워져 있었고 생선 한 마리는 머리만 남은 채 하얀 접시에 차가운 뼈만 남겨두었다.

  마침 토요일이라 수업이 없던 나는 집에서 대강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빠는 출근을 하고, 엄마는 외출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집안에는 또 나 혼자 남게 되었다. 한참 코미디 프로그램에 정신이 팔려 웃는 둥 마는 둥 하고 있다가 문득 언니 방 쪽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변함없는 꽃향기가 날 것이고, 곳곳에 붙어있는 나비들의 눈동자가 일제히 나를 바라 볼 것을 생각하니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지기도 했지만 나는 어느새 언니 방문의 손잡이를 돌리고 있었다.

  언니의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어제 언니의 입술을 빨던 그 남자의 웃고 있는 사진을 보기도 하였으며 언니가 그 남자에게 전해 줄 편지 내용도 몰래 훔쳐보았다. 내용은 지극히 유치했으며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꼭 어린시절 동화책을 읽는 기분이 들어 원래대로 접어 책상서랍에 고이 놓아두었다. 언니 안에 담긴 모습 중에 저런 것도 있나 싶어 이따금 고개를 갸웃거리며 히죽거리고 있을 무렵 티비 속의 개그맨이 떠드는 소리와 함께 전화벨이 집안에 울려 퍼졌다. 순간 들고 있던 언니의 일기장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반자동으로 거실 한구석에서 우는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언니였다. 언니의 목소리는 활기가 넘쳤다.

  “지우니? 언닌데, 언니가 전시해야 할 메인 액자를 두고 와 버렸어. 거기 얼마 전에 내가 채집한 유리창 나비라는 건데 그게 메인인데 제일 중요한 걸 두고 왔지 뭐야. 혹시 가져다 줄 수 있어? 부탁 좀 할게. 언니, 너 올 때 까지 기다릴 테니까. 늦더라도 꼭 와줘. 응?”

  언니의 목소리는 언제나 부탁을 하든, 용서를 구하든, 무얼 말하건 간에 호소력이 짙다. 부탁을 하면 다 들어줘야 할 것 같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를 해줘야만 할 것 같은, 언니는 나에게 몇 번 한 적 없는 부탁을 하고 있었다. 뭐든지 스스로 잘 하는 언니가 부탁을 하는 일은 매우 드물었으므로 나는 그런 언니의 목소리가 전화기상이라 그런지 몰라도 대단히 새롭게 느껴졌다. 나는 대충 알았다고 얼버무린 후 전화를 끊었다. 오랜만에 언니의 빈틈이 나에게 이렇게 희열을 안겨 줄 줄이야. 유리창에 비친 나의 얼굴은 비열하고 치사해 보였다. 언니의 방안에 많은 액자들 사이에 유난히 예쁘게 장식된 액자가 있었다. 그 밑에는 ‘유리창 나비’ 라는 네임텍이 붙여져 있었고 나는 그것을 언니 방에서 가지고 나와 가만히 품에 안았다. 이것 때문에 언니는 나를 목 빠지게 기다리게 될 것이고 사람들에게 질타를 받겠지. 이것만 없으면 언니가 공들여온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가슴 한 구석에서 튀어나오려 하는 양심이라는 것은 이미 철저하게 짓밟힌 지 오래였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둘 사이에 존재한 그 어색한 그 무엇을 가를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하니 절로 신이 났다. 언니가 설마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내가 망쳐놨다는 것에 화를 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이것으로 해방이라고. 언니와 나 사이에 내가 불편해야 했던 모든 것이 바뀔 거라고. 그런 생각들이 뒤엉키다 보니 별로 웃기지도 않은 티비 속 개그맨의 멘트 하나에 크게 웃었다.

  나는 액자를 열어 곱게 표본 되어있는 나비의 양 날개를 뜯어버렸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이것을 잡기 위해 애썼을 언니의 모습이 겹쳐지며 나비의 날개가 보기 싫게 떼어졌다. 언니의 반응이 궁금한 건 지금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발상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 졌다. 그 동안에도 집으로 전화가 왔지만 그 중에 언니의 다급한 전화가 섞여있을 것을 예감하고는 받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전화를 받지 않았냐고 물으면 외출했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었다. 저녁시간이 되자 엄마가 돌아왔다. 엄마는 싱싱한 오징어를 반값에 샀다며 들어올 때부터 싱글벙글 이었고 나는 언니가 전화한지 정확히 여섯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였다. 한동안 잠잠했던 전화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마침 전화기 옆에 있던 엄마는 그 전화를 받았고 한 동안 멍한 표정으로 일관하며 대답만 하던 엄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수가......지수가...... 병원에 있대.”

  “병원이라니? 왜?”

  “학교에 불이 났대. 화상을 심하게 입었다는데 어떡하니.”

  엄마는 생 오징어를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도 잊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는 막상 실감이 나지 않아 무작정 엄마를 따라나서긴 하였으나 언니의 사고 소식에 오히려 무덤덤했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 가족에게 한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낯설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도착한 곳은 언니가 누워있는 어느 병실 안이었다. 언니는 자그마한 얼굴에 흰 붕대가 친친 감긴 채로 누워 있었고 손에도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그런 언니의 모습이 고대의 미이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언니라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지만 한숨을 쉬는 의사가 들고 있던 차트지에 쓰인 언니의 이름은 보고는 눈앞에 누워있는 사람이 언니임을 알 수 있었다.

  “얼굴에 화상을 심하게 입었습니다. 성형수술을 한다 해도 예전의 얼굴은 복구가 불가능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금지옥엽 기른 착하디착한 딸이 이런 재난의 희생자가 되었다는 사실이 엄마를 더 힘들게 했다. 언니 침대 주변에 하나 둘 모여 있던 언니의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은 흐느끼며 말했다.

  “지수가 그 강의실에서 자고 있지만 않았더라면 괜찮았을 거 에요. 동생이 액자를 갖다 주기로 했다면서 피곤하다며 눈이라도 잠깐 붙이겠다면서 잠들었거든요. 저희보고는 먼저 가라구 마무리 하고 갈 테니 염려 말라구. 근데 하필이면 불덩이가 지수 얼굴로 덮치는 바람에 이렇게......”

  엄마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나라고 온전하지는 않았다. 언니가 나를 기다리다가 난 사고였기 때문에 나는 그 자리에서 땅이 폭삭 꺼질 것 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땅을 깊게 파서 그 속으로 들어가 몇 년이 흐르던 간에 나오면 안 될 것 같았다. 눈만 간신히 나와 있는 언니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언니가 이젠 나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얼마나 사악한 짓을 했고,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했던가. 남부러울 게 없었던 언니가 아니었다. 내 눈에 부러움과 사기로 가득 찬 그런 언니의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 것인지에 대한 자각이 쉽게 깨우쳐 지질 않았고, 내 사사로운 이기심이 불러온 너무나 감당 못할 현실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언니의 하얀 붕대위로 눈물을 떨어뜨렸다.

  “언니, 미안해. 언니, 미안해. 언니, 내가 정말 미안해.”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잠깐 잠이 든 것이라고 했다. 힘없이 축 늘어져 있는 언니의 몸과 형체를 알 수 없이 흉측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대해 언급하던 의사에 말에

나는 더욱 오열했다. 사과를 따먹은 것이 이런 죄 값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당장 그만두었을 것이다. 언니가 아무리 미워도 언니의 모습이 변하는 것은 조금도 원치 않았다. 언니는 나에게 언제나 우월하고 예쁘고 당찬 그런 사람이어야만 했다. 언니가 가장 사랑하는 것까지 빼앗으려 했던 나의 사악하고 사악한 이기심과 욕심 때문에 언니가 그것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나는 며칠을 앓아누웠다. 병원 신세를 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괴로움으로 가득 찬 방안에서 혼자 끙끙 앓았다. 내겐 언니가 늘 부러웠던 것이다. 그런 언니를 부러워 할 줄만 알았지 정작 나는 내 자신에 감춰져 있는 수많은 그 무엇들을 찾아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평생 언니에게 갚고 살아야 할 큰 빚이 생겨버린 나는 그것이 싫다고 떨쳐 낼 수도, 좋다고 안고 갈 수도 없었다. 그저 예전만큼 못한, 내가 빼앗은 언니를 사랑하는 것 뿐. 염치없는 기침이 방안을 울렸고 주위에선 ‘이제야 속 시원하니?’ 라는 정체모를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어왔다.

  언니는 그 일이 있고 난 후 예전의 자신감을 잃었고 방 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다. 큰 충격으로 잠깐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우연히 언니의 약을 가져다주다 열어본 언니의 방에서 언니는 내가 부순 나비의 잔해들을 촘촘히 이어 붙이고 있었다. 언니는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 끝내 나는 그 무엇을 갈라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그것을 가르려 하지도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것은 언니와 나 사이에 평생 묵인해야만 하는 일종의 묵계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 일로 언니를 볼 수 없다는 나의 일관된 생각에 작은 방을 얻어 독립을 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만에 간 집에는 한달사이 몰라보게 건강해진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약을 들고 있는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언니가 웃었다. 예전에 코가 있던 자리에 힘없이 문드러진 살덩이와 흘러내릴 것만 같은 입이 씰룩거리는 것이 웃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몇 가닥 안 남은 머리카락 사이로 언니의 눈동자가 보였다. 언니의 눈동자에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나비가 들어있었다.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가장 아름다운 나비가.


  식은 커피 잔을 손에 들고 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밖에서는 줄기차게 울어대던 벌레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밤의 정적뿐이었다. 창 밖으로 보이는 짙은 감색 밤하늘에 들러붙은 얼마 안 되는 별들이 하나 둘씩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 별들 사이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팔랑이는 날개와 화사하고도 여린 몸짓. 어디서 본 나비였더라 하고 생각하던 중 언니의 눈에서 보였던 그 나비가 생각났다. 언니가 웃을 때 내가 보았던 나비. 언니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나는 언니가 하는 말을 들을 수가 있었다. 

  “난, 너에게 가장 예쁜 나비를 선물할거야.”

  그날 밤 나는 별을 새며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