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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소감

  • 작성일 2006-08-05
  • 조회수 867

 

                             당선소감

 

 

 

신춘문예의 계절이 성큼 다가왔다. 만한 신문사들은 일찌감치 신춘문예 공고를 내고 각자의 명성에 맞는 당선금을 내걸었다. 뿐만 아니라 주최측들은 권위 있는 심사위원들을 모시기 위해 혈안이 되 있었고 그들의 심사위원 쟁탈전을 보고 있노라면 공모전의 권위가 심사의 대상인 문학에서원천이 파생된다기보다는 심사자의 권위에 있는 것으로 믿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었다. 주최측들의 분주함이야 어쨌든 겨울이 오는 것이 새로운 일이 아니 듯 글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신춘문예의 시작은 그저 장롱 속에 넣어 둔 겨울옷을 꺼내어 먼지를 털어 내고 입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었다. 작가시절과  평론가 시절이 크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관음증 환자가 누군가의 치부를 들여다보듯 묘한 긴장감과 설레임으로 신춘문예를 기다리게 되었다는것이다. 정초에 각 신문사들이 선정한 수상작들을 읽노라면 오래동안 억눌려욕망은 고통이라는 자궁을 통해 잉태한 생명체를 목도함으로서 분출되는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었다. 이것도 일종의 중독이 되었고 각 신문사 별 발표 일을 미리 챙겨 놓고 일일히 모든 작품들을 정독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습관은 글로 밥을 먹고사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직업적 유희일 것이다. 당선작을 읽은 후에는 언제나 깊은 쾌락의 대가로 주어지는 상대적 박탈감으로 혼란스러웠지만 신춘문예가 주는 쾌락에 빠질 수 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당선소감이었다. 당선소감은 당선작을 읽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재미와 쾌락을 주었다. 추측컨대, 그 쾌락의 근원은 강 건너 불구경을 하는 구경꾼이 타인에게 벌어진 중대한 사건을 한 걸음 빠져 봄으로서 얻을 수 있는 관찰자로서 누릴 수 있는 심리적 안정감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겉으로는 진심으로 그들의 일을 걱정하며 감정적 유대관계를 유지하지만 그들이 처한 비극적 상황이 주는 묘한 매력이 있기 때문인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각종 신문사 및 출판사, 문예지에서 주최하는 문학공모전을 통해 쏟아져 나오는 신인작가와 그들의 작품을 어느 정도 숙지는 하고 있어야 하는 직업적인 필요성 때문이라는 것이 더 솔직한 이유일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작가지망생부터 원로 작가까지 글이라는 도구로 밥을 먹고사는 모든 이들에게 신춘문예는 조용하지만 의미 있는 그들만의 연대의식이었다. 신춘문예를 통해 새로이 배출 된 작가들이 있어야만 중견작가도 그 존재와 역할이 주어질 것이고 그렇게 오래 된 것과 새로운 것이 자연의 순리처럼 맞물려 사라지고 태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몇몇 부지런한 작가들은 시대의 흐름에 뒤쳐지지 않기 위해 매년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한편도 빼놓지 않고 읽음으로써 작가로서의 자신을 채찍질하여 더욱 정진하는 계기로 삼는다고 하니 신춘문예는 문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축제인 것이다.


하루하루가 자신과의 싸움이며 온도가 잘 맞춰진 목욕물처럼 세상과 인간에 대해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항상 유지해야 하는 어려운 직업을 애써 가지려는 이들에게 주최 측들은 창작지원금 혹은 당선금이라는 명분으로 최소한 1~2년 간 일용할 양식이 될 달콤한 보상을 내걸었고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장르별 응모편수는 매년 갱신되는 코스닥지수처럼 가파르게 치솟았다. 물론, 양이 질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어서 어떤 신춘문예에서는 대상작이 없어 가작만이 선정되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에는 뜨거운 성원을 보낸 작가지망생들의 따가운 원성을 사기도 했다. 하지만, 냉정히 보자면 빈 수레가 요란하듯 대부분의 응모작들은 그저 취미로 쓴 글이거나 문학적 소양이 전혀 쌓여 있지 않은 수준의 글들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잡문들뿐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꽤 권위 있는 신춘문예 심사위원장으로 참가한 한 원로작가는 전체 심사평에서 '문학적 토대 없는 상상력에만 의존한 글쓰기는 우리 문학을 영양실조에 걸리게 만들 것'이라며 점점 가벼워지는 한국문학에 대한 우려와 걱정을 토로 했던 것이다. 원로작가의 걱정이 아니더라도 이런 저런 작가모임이나 문학과 사돈에 팔촌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두셋만 모여도 어김없이 한국문학전체가 위기라는 탄식과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당선자들도 이러한 문학계의 우려를 간파했는지 당선소감에서 자신의 글이 부족함을 시인하고 미천한 글을 뽑아 준 심사위원들의 격려에 고개 숙여 감사를 표시했다. 하지만, 그건 문학이 위기에 처해서라기보다 자신의 작품을 뽑아 준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이자 작가로서 더욱 정진하겠다는 일종의 상징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래서 당선작의 선정이유가 결국은 칭찬일변도라면 수상소감은 겸손일변도로 그 화답을 하는 것이 뻔한 일이기는 하지만 선후배간에 모양새는 나쁘지 않았고 문학계의 총체적 위기는 알아서 처신하는 영리함으로 그 위기를 여러 번 넘길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 시점이 모두가 새로운 마음으로 한 해를 시작하는 정초라면 더욱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문학계에 형성 된 보이지 않는 오래 된 암묵적인 카르텔은 한 신인작가에 의해 보기 좋게 깨어졌다. 


그를 처음 알 게 된 건 5년 전 제법 권위 있는 신문사의 신춘문예 당선소감을 통해서였다. 대부분의 신인작가들의 당선소감이 그렇듯 이구동성으로 앞으로 작가로서의 책임감과 포부를 조금은 과장된 느낌으로 진술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당선소감은 심사위원들이 해당 작품을 선정한 이유와는 다르게 과거를 답습해야 하는지 답답한 생각이 들 무렵, 가시에 찔린 듯 따끔한 글이 눈에 박혀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뽑아 준 심사위원들에 대해서 다른 신인들과는 달리 비아냥거리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글로 감사의 글을 대신하고 있었다. 문장 그대로 보자면 어찌됐든 간에 자신의 미천한 글을 뽑아줘서 고맙다는 뜻으로 해석되겠지만 조금이라도 행간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가 심사위원들을 농락하고 있다는 것쯤은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뭐하는 작자야. 초저녁부터 시작 된 평론가협회 신년회는 첫 차가 다니기 시작할 무렵 끝이 났다. A신문사 신춘문예 발표가 있다는 사실 때문인지 몇 시간 눈을 붙이지 못하고 잠이 깨었고 불쾌한 상태로 글을 읽던 나에게 알 수 없는 전투의식이 울컥하며 솟아올랐다. 목이 말랐지만 주전자의 물은 목욕물처럼 미지근했다. 당장의 갈증보다는 이 작자의 정체가 궁금해 견딜 수 없었다. 그가 쓴 당선소감을 꼼꼼히 읽기 시작했다. 그의 기고만장한 태도는 제 3자가 봐도 어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그것도 고작 가작에 뽑힌 소설가 지망생, 아니 이제 갓 소설가 명함을 달은 자가 어떤 이유로 이렇게 무모하고도 대책 없는 당선소감을 썼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당선소감을 요약하자면 자신의 작품을 뽑은 것은 실수이며 한국문학이 갖고 있는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평가도 솔직히 이해할 수 없을 뿐더러 황당한 건 내놓라하는 심사위원들조차도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완곡히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한 마디로 심사위원 뿐만 아니라 신춘문예의 공정성에 대한 근원적인 이의 제기와 함께 한국문학 전체를 우롱하고 신춘문예를 글쟁이들의 형편없는 이벤트 정도로 평가절하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당선소감이 데스크를 통과해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당장 해당 신문사에 있는 선배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싶었지만 정초에 실례가 될 것 같아 일단 참기로 했다. 자세를 고쳐 않아 그의 당선작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소설은 기본이 되 있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읽는 이를 끄는 마력이 있었다. 심사평에 언급됐듯이 그의 문체는 아직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익숙하지는 않지만 그 이유 없는 당당함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독특한 문체였다. 가작으로 선정된 이유는 - 이 역시 지겹도록 들은 이야기이지만 - 현재로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으나 신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많은 발전이 기대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평론가의 입장으로 냉정하게 보면 아직은 서툰 이야기 전개와 미숙한 인물 묘사, 거기다 소설에 대해 기본적인 공부도 하지 않은 아마추어였다. 그럼에도 그의 소설은 읽는 이로 하여금 무언지 알 수 없는 매력을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의 무례하고 오만방자한 당선소감을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는 역부족이었다. 매년 반복되는 신춘문예와 정형화 된 선정이유, 그보다 통속 소설에 가까운 당선소감에 질려 있던 나였지만 막상 이런 일을 닥치고 보니 박수를 치는 입장이 되기보다는 방어적 본능이 더 앞섰다. 한 마디로 글을 쓰는 모든 이들에 대한 모욕이었고 그들이 뿌리를 내리고 삶을 영위하는 영역에 대한 침범을 당한 것 같아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담배를 피워 물자 속이 울렁거렸다. 위장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과음 때문에 되새김질 되는 오바이트와는 달랐다. 그보다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불쾌감이었다. 아직 배워야 할 자가 겸손하지는 못할망정 자신이 마치 심사위원이라도 된 듯 자신의 글을 평가하고 심사위원들의 선정기준에 문제가 있다는 듯한 그의 되먹지 못한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상했던 건 누구도 그 작가의 당선소감에 대해 문제를 삼지도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였는지 무례한 작가에 대한 궁금증은 더욱 강해졌고 연줄을 통해 심사위원들로부터 그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해보았지만 그에 대해 이렇다 할 정보는 얻지는 못했다.


한 해가 지나자 다시 신춘문예를 통해 수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고 뻔하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축제는 예전의 모습대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정초부터 신경을 건드렸던 작가와 그의 당선소감에 대한 기억도 희미하게 잊혀져갔다

그 작가를 다시 만나게 된 건 지방대학 강사자리를 소개해 준 대학원 담당교수의 오랜  친구인 M출판사 사장님의 일방적인 부탁을 받게 되면서였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 가파른 계단을 뛰어 올라 곧장 사장실로 향했다. 출판사 사장은 이미 외출한 뒤였다. 강의를 마치자마자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과속 딱지 까지 끊어가며 달려 온 내 자신이 순진했다는 생각을 할 무렵 편집장은 올해의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한 소설가의 원고를 내밀었다. "요즘 잘나가신다면서요?" 편집장의 말과 표정은 다른 언어를 담고 있었다. 편집장이 내민 원고는 눈짐작으로 보기에도 A4용지로 400장은 족히 되고도 남을 분량이었다. 평론가로서 내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요새 몇 달간은 차에서 쪽잠을 자가며 이리 뛰고 저리 뛰느라 만성위염에 변비까지 걸려 있던 터라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올라오는 길에 출판사 사장과 통화한 바로는 내일 모레는 인터뷰를 해야 된다고 했다. 좀 이상했다. 보통 당선작이 정해지고 출판을 하기까지는 충분한 시간이 있음에도 왜 이제서야 일을 맡기는 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황스런 표정의 나에게 편집장은 누리끼리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햇살이 드는 창가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았다. 편집장의 얼굴에는 조금 전 자신이 뱉은 말이 그대로 쓰여 있었다. 요즘 잘나가신다면서요. 편집장은 여전히 내가 수긍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자 그제서야 자세를 풀고 담배를 피워 물었다. 편집장은 무언가 말을 할 듯 하다가도 망설이며 시선을 어지럽게 돌렸다. 담배 한대를 다 피고 나서야 편집장은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그게...나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서.." 사무실은 볕이 잘 들어 먼지하나까지도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다른 사람이 하려다가 무슨 이유인지 못하겠다고 해서.." 편집장은 조금 전 기고만장한 표정을 거두고 도움을 요청하는 자세를 취했다. "김선생..아니 김교수도 잘 알겠지만 말이야..." 편집장이 나를 교수라고 부를 때는 뭔가 부탁할 게 있을 때만 그랬다. "그러니까..당선작 작가가 말이야...자기 인터뷰는 꼭 김교수 당신이 했으면 한다고 해서 말이야..." 난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소설을 쓴다고 한지 10년, 대학원을 거쳐 강사로 자리를 얻는데 10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지만 소설가가 평론가를 지명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무슨 말씀인지.." 편집장은 길게 얘기할 게 아니라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 "뭐 자세한 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작품을 읽어 봐요. 근래 보기 드문 수작이니까. 그리고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결정됐어요. 김교수도 잘 알겠지만 우리 출판사가 올해 창립 10주년이고 창간 특집호을 발행하려면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단행본도 발행해야 되고. 여기 작가 연락처가 있으니까 빨리 만나보세요" 편집장은 급히 볼 일이 있다며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 나갔다. 사무실에는 채팅을 하는 여직원 하나만이 멍청한 얼굴의 나를 보며 고거 쌤통이다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편집장이 놓고 간 원고를 들어 훓어 보았다. 작가의 이름이 왠지 익숙하게 느껴졌다. 김억새.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름이었다.


편집장의 기대와는 다르게 그와의 인터뷰는 일주일 뒤로 미루어졌다. 그것 또한 일방적인 통보에 의한 것이었다. 출판사에 갔다 온 다음 날 새벽같이 편집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김교수, 김작가님이 시간이 안 될 것 같다고 하니까 다음 주에 해야 될 것 같은데" 편집장은 이렇다 할 이유도 대지 않고 인터뷰를 연기했다. 그렇게 급하다던 인터뷰 일정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창간 10주년 기념호를 내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다고 완곡하게 얘기하던 편집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왠지 모를 짜증이 밀려왔다.  그것보다 어두운 커튼 뒤에 숨어 편집장과 출판사 사장의 비호를 받으며 사람을 부리는 그의 정체가 더욱 궁금했다. 어쨌든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생겼고 제대로 된 인터뷰를 하기위해서는 해당 작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견고한 장막 속에 숨어 있었다. 편집장에게 건네받은 그의 이력은 단 세줄 이었다. 그의 출생년도와 출신대학과 고향.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알 수 없었다.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1년 전 그가 자신의 작품을 뽑아 준 심사위원들을 비웃듯 나를 비웃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 뒤로는강의 준비를 할 때도 심지어 운전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의 출신대학에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졸업생 명단 어디에도 그의 이름을 찾을 수 없었고 그 때부터 서서히 그에 대한 이유 없는 불신과 원망이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왜 내가 작자와의 인터뷰때문에 긴장해야하는지 스스로도 의아했지만 그는 이미 돈으로 바꿀 수 없는 피해를 나에게 준 셈이었다. 출신대학이야 그렇다 쳐도 그가 쓴 소설은 단 두 작품에 불과했다. 1년 전 신인작가로 등단하게 해 준 단편과 그를 인터뷰하게 만든 장편. 하지만, 한 작가에 대해 평론가로서 그의 글이 이렇다 저렇다 하기에는 턱없이 적은 분량이었다. 물론, 양이 질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그것보다 그의 작품을 몇 번이나 정독했지만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을 가진 인물인지 도통 파악하기 어려웠다. 구태여 그에 대한 평가를 하자면 그는 아직 소설가라는 명함을 갖기에는 부족한 필력과 자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준이라면 그와의 인터뷰는 무의미한 일이 되 버리는 것이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다 지인을 통해 남자를 작가로 등단시킨 심사위원장을 찾아갔다. 바쁘다며 전화로 물어보라는 것을 겨우 설득하여 삼십분의 시간을 낸 원로작가는 술자리에서 몇 번 인사를 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찾아 온 이유가 김억새라는 작가라는 사실을 듣자마자 그의 태도는 이상할 정도로 냉담하게 돌변했다. 원로작가는 왠지 그에 대한 언급을 꺼려했다. 물론, 심사위원장으로서 김억새의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한 기준 대해 사후검증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들어 불편했겠지만 원로작가는 필요이상의 경계심을 내 비췄고 그를 보호하려고 한다는 느낌조차 들었다. 결국, 원로작가를 통해 그에 대해 얻어 낸 것은 거의 없었다. 성과라면 김억새라는 작자는 시상식에 오지도 않았고 상패와 상금은 친척이라는 노인네가 와서 받아갔다는 것만 듣게 되었다. 그에 대한 이미지는 오해가 부른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다. 그는 모든 것이 마음대로였다. 시험에 쫒기는 수험생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지만 결국, 그에 대해 아무 것도 알아 내지 못했고 그와의 결전의 날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전날 밤, 꿈속에서 그를 만났다.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까. 그는 아무 것도 준비하지 못한 나에게 M신문사 편집장처럼 누리끼리한 미소를 띠우고 있었다. 나는 시험지를 받아들고 나서야 시험범위를 잘못 알았다는 것을 눈치 챈 아둔한 학생의 표정을 짓고 있었고 그는 그런 나를 한심하다는쳐다보고 있었다. 꿈속이었지만 그는 거대한 힘에 의해 비호를 받는 권력의 실세처럼 자신감에 넘쳤고 나는 검은 양복을 입은 비밀요원들에 의해 차에 실려 어디론가 끌려갔다. 그의 얼굴이 하도 생시처럼 또렷해서 꿈에서 깬 뒤에도 잊혀지지 않았다. 아마 낮에 한 그와의 통화 때문이리라. 그의 목소리는 이유 없는 자신감으로 넘쳐 있었고 일주일 동안 내가 벌인 촌극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 느껴졌다. 만약 그가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했죠?’라고 물어봤다면 그대로 자백했을 것이다. 결국 인터뷰를 위한 한 줄의 질문도 준비하지 못했고 무장해제를 당한 채 전쟁터로 나가는 병사의 마음으로 다시 잠에 들었다.


그는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편집장이 가르쳐 준 그의 집 전화는 수화기를 잘못 내려놓았는지 뚜뚜하는 신호음만 갈 뿐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으니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라고 했지만 편집장은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며 나를 설득시켰고 세 시간이 지나도록 그가 나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이해할 수 없는 선의를 보였다. M출판사의 특집창간호는 그와의 인터뷰 기사만을 기다리며 인쇄소 윤전기에 걸려있었음에도 편집장은 끝내 그에 대해 한 마디의 불만도 토로하지 않았다. 오히려 내 인내심이 부족함을 탓했고 약속장소를 그 작가가 정했다고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혹시 내가 약속 장소를 잘못 얘기해 김작가가 다른 곳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걱정을 했다. 마지막 담배 한 개피까지 다 피우고 자리를 뜨려고 하는 순간 까페 여주인이 불쑥 편지 한 장을 들고 왔다. 김억새작가가 피치 못할 사정으로 만날 수가 없어서 이 편지를 대신 나에게 꼭 전해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여주인은 작자의 편지를 탁자위에 놓고 사라졌다. 세 시간을 넘게 기다리게 만든 그 작자의 행동이 어이없었지만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 지 그의 당선소감만큼이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더 이상 그 작자에게 단 1초의 시간도 뺐기고 싶지 않았지만 대학은사와 M출판사 사장과의 관계를 고려해 울며 겨자먹기로 편지를 가방에 챙겨 넣었다. 들이키다시피 마신 세 잔의 커피 값을 카운터에서 계산 하려는 순간 까페 여주인의 말에 벼락을 맞은 듯 정신을 잃을 뻔했다. 여주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작자가 이미 계산을 하고 갔다고 했다. 여주인의 말이 금방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그 작자는 내가 기다리는 것을 뻔히 보고도 나타나지 않았다는 말인가. 여주인의 말을 정리하면 김작가라는 작자는 나보다 먼저 까페 구석에 자리를 잡고 내가 안절부절하며 편집장과 통화를 하고 연신 줄담배를 피는 안쓰러운 모습을 무려 세시간 동안 태연히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여주인은 그 작자에게 작가선생님이라는 칭호를 썼다. 작가선생님이 편지를 읽어보시면 알 거라고 말씀하시던데요. 곧바로 까페를 나와 혼미한 정신으로 택시를 집어탔다. 택시 안에서 그 작자가 꼭 읽어보라고 했다는 편지를 찢어 창밖으로 내 던져버렸다. 기본이 안 된 인간은 처음부터 알 수 있는 것이다. 그 작자의 무례한 당선소감을 보고  잠시나마 동질감을 느꼈던 내 자신이 한 없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세상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구역질나는 일이라도 그렇게 해야 되는 이유가 있고 그래야만 세상의 질서는 유지되는 것이다. 작가들은 온갖 부조리로 가득 찬 세상과 그런 세상의 규칙 속에서 왜곡된 인간의 본질에 대한 주장을 자신의 작품을 통해 조금이라도 바꾸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아닌가. 그 작자의 무례한 당선소감이 그래도 신선하게 느껴졌고 호기심이 들었던 이유는 마땅히 그래야 되는 작가들조차 철저히 세상의 규칙에 적응해 갔고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 다는 것이 내심 답답하게 느껴졌었기 때문이었다. 

 

그날 밤, 예상한 대로 대학은사로부터 전화가 왔다. 편집장에게는 도저히 그의 작품에 대한 평을 쓸 수가 없으니 다른 사람을 알아보라고 통보했다. 편집장은 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할 수 있냐며 내 속을 건드렸지만 그 따위 사회적 책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통보는 원래 일방적인 것이니까. 하지만, 대학원 은사이자 내게 소설가의 길을 열어 준 칠십 노인의 간곡한 부탁은 차마 저버릴 수가 없었다. 도저히 맨 정신으로 다시 그의 글을 다시 읽을 수가 없을 것 같아 캔 맥주 두 병을 단 숨에 들이켰다. 어쨌든 다음 날 오후까지는 그 작자의 소설에 대한 평론을 넘겨야 했다. 먼저 M출판사의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원고를 읽기 시작했다. 남자의 소설은 선정이유에 걸맞게 기존의 문학에서 볼 수 없는 화법과 문체가 있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그의 소설을 다 읽을 수 있었고 남자를 인터뷰하기 그의 소설을 몇 번이나 정독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김억새라는 작가의 작품이 갖는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소설이야말로 한국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이었다. 그를 작가로 만들어 준 단편소설도 다시 읽어보았다. 그의 단편소설 또한 부족한 부분이 있으나, 아직 신인이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작으로 충분히 당선될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었다. 꼬박 밤을 새고  오후가 되서야 그의 단편과 장편에 대한 평을 편집장에게 넘기게 되었고 약간의 교정을 본 후에 인쇄소로 전해졌다. M출판사의 10주년 창간호와 남자의 첫 장편소설이 일주일 뒤 집으로 배달되었다.

예상한 대로 남자는 그 흔한 작가의 변도 넣지 않았다. 하지만, 편집장에게 그 이유를 묻지는 않았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M출판사 사장님, 대학원은사님, 편집장이 함께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술자리가 끝날 무렵, 편집장에게 남자의 근황을 물어보았다. 편집장은 자신도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들리는 얘기로 남자는 절필을 하고 낙향을 했다고 했다. 집으로 오는 길에 그동안 정작 남자의 소설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불현 듯 들었다. 남자에게 조금은 미안한 생각도 들었지만 남자의 괘씸한 행동은 그렇게 넘어갈 일은 아니었다. 남자는 왜  그런 당선소감을 썼을까. 당선소감은 그저 당선소감일 뿐이다. 쉽게 말해 복권 당첨 후 해야 하는 의례적인 본인 확인 같은 별 의미 없는 과정인 것이다. 내가 그의 당선소감에 과잉반응을 보였듯 그도 그랬던 것은 아닐까라는 추측만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그가 정말 왜 그런 당선소감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끝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론가로 직업을 바꾸고 나서 꽤 오랜시간 글을 쓰지 않았지만 강의 나가는 틈틈이 몇편의 단편과 장편을 준비하여 몇 차례 문예지에 기고한 결과 꽤 권위 있는 문예지의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래서였는지 팔자에도 없는 한 지방 신문사의 신춘문예 심사위원으로 위촉 되었고 꼬박 한달 동안 호텔에 머물며 당선작을 선정하기 위해 밤낮으로 응모작들을 탐독하며 지냈다. 응모작 모두가 좋은 글은 아니었지만 가능성은 있어보였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옥석은 가려내야 했다. 결국, 며칠에 거친 난상토론을 거쳐 당선작과 가작을 정하게 되었고 심사평도 쓰게 되었다. 가작으로 선정 된 작품은 아직 정돈되지 않은 문체와 완숙하지 않은 인물 묘사가 단점으로 지적되기는 했지만, 그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또한, 수상작가가 아직 20대 중반의 학생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그 해도 수많은 신춘문예를 통해 신인작가가 배출되었고 권위 있는 문학상 수상자도 나오게 되었다. 수상작마다 나름대로의 선정이유가 있었고 수상작가들의 당선소감도 그에 걸 맞는 포부와 책임감을 담고 있었다. 그 후로 몇 년이 흘렀지만 각종신문사와 출판사, 문예지들이 쏟아내는 수상작들 속에서 김억새라는 작가의 이름은 찾을 수 없었다. 그가 편집장의 얘기대로 정말 낙향을 했든 절필을 했든 아니면 앞으로 소설을 쓰든 쓰지 않든 중요하지 않았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그와의 약속장소였던 까페를 찾아가보았지만 그새 주인은 바뀌여 있었고 젊은 부부가 대신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그 까페의 오랜 단골이라는 중년의 남자에게 물어보았지만 그 작자를 기억하지 못했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까페 여주인이 전달한 그 남자의 편지가 떠올랐다. 남자는 편지에 무슨 이야기를 썼을까. 왠지 그 남자의 편지에는 아무런 글도 없었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그는 애초부터 내가 그 편지를 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집에 돌아오자 M출판사 편집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올해 M출판사 신춘문예 심사위원장으로 참석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신춘문예의 계절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