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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

  • 작성일 2006-08-24
  • 조회수 1,506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



1.


국민학교 시절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한 아이가 있었다.  워낙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여서 바로 옆에 있어도 존재감을 거의 느낄 수 없는 투명한 신기루같은 존재였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왜소한 체격을 가졌었는데 당시 나로서는 그저 키가 조금 작은 정도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세상의 이치에 빠른 몇몇 아이들은 '난쟁이새끼'라면 놀려댔고 아직 세상물정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난쟁이라는 단어가 갖는 음습하고 어두운 사회학적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그 단어가 내포한 사전적, 생물학적, 사회학적 의미까지 대략은 이해하게 되었고 그리 축복받지 못한 열성의 유전적 형질이 아이의 몸에서 서서히 발현되고 있었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었다. 친구들과 달리 그 아이에 대해 조금이나마 특별한 기억을 갖게 된 이유는 점심시간 바로 뒤에 이어진 국어수업시간때문이었다. 국어담당이었던 담임은 수업이 시작하자마자 칠판에 조금은 이상한 문장하나를 크게 적었다.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 순간 아이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자지러지게 웃어댔다. 담임은 한바탕 아이들의 웃음꽃이 지나가고 나서야 빙그레 웃으며 왜 이 문장이 잘못되었는지 아이들에게 되물었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단순한 문장에 의도적으로 설정 된 기초적인 문법적 오류들에 대해 병아리 새끼들처럼 울어댔다. 담임의 의도는 띄어쓰기의 중요성이었다. 담임은 곧 칠판에 올바른 문장을 다시 썼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 그리곤,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간단한 띄어쓰기 하나가 얼마나 큰 의미의 오류를 만들어내는 지 손쉽게 설명했다. 아이들은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자기들끼리 첫 번째 문장을 반복해 재잘대며 깔깔거렸다. 하지만  그 아이만은 왠지 얼굴이 벌게 진 채 아이들이 웃는 이유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그 날의 기억은 유년시절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후로는 고향에 대한 기억을 거의 떠올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 국문학을 전공해서였는지 - 국민학교 시절 잘못 된 문장이라고 배운 문장에 정말 오류가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2.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이들이 그렇게 웃었던 이유는 잘못  된  띄어쓰기 때문에 생기는 문법적 오류를 이해해서라기보다 오류의 샘플로서 아버지라는 인물이 그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이야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는 퇴역 군인의  빛바랜 훈장정도로 여겨지지만 그 때만 해도 아버지라는 존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소유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희화화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 어린 학생들이었지만 모두의 공감을 살 수 있었던 게 아닐까라는 추측을 할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 또한 난쟁이 친구처럼 (그 아이의 이름은 동수였다) 웃지 않은 아이 중 한 명이었는데 그 이유는 좀 달랐다. 나  역시 동수처럼 아버지에 대해 그 나이에 갖을 수 있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다. 아버지는 엄청난 폭군이었다. 술주정뱅이였고 노름판에 살다시피 하며 입에 담지 못 할 온갖 못된 짓은 다 하고 다녔다. 어린 생각이었지만 아버지가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가 죽어 없어지길 바랬다.  지금이야 시(市)로 승격되었지만 고향은 그 때만 해도 읍에 속하는 작은 마을이였다. 그래서, 누구누구 아버지가 뭐하는 사람인지 어제는 무슨 반찬을 먹었는지부터 어제밤에 봉수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짓을 했는지 안했는지까지 다음날 이면 마을에 파다하게 소문이 퍼졌다. 그런 작은 마을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아버지라는 존재는 없는 것보다 못했다. 노름판에서 돈을 다 잃은 날이면 숨겨 둔 돈을 내놓으라며 어머니를 닦달했고 먹고 죽을 래도 없다며 대드는 어머니를 가학적으로 패곤 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면 그 자리에서 어머니의 옷을 벗기곤 내가 보는 앞에서 어머니에게 그 짓을 하곤 했다. 어머니가 당하는 모습을 보고 어린 마음에 그에게 덤벼보았지만 항상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달려드는 어린 아이의 명치부분을 정확하게 발로 가격했고 내가 방 구석에 나동그라지는 것을 태연히 확인하고 다시 그 짓을 끝까지 했다. 볼 일을 다 본 아버지는 정신을 잃은 어머니를 벌거벗긴 채 집 밖으로 내쫓아버렸는데 그런 어머니를 측은히 여긴 동네 아주머니들은 자신들의 집으로 데려가 옷을 입히고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아버지는 그 짓을 하고 나서는 굶주린 짐승처럼 부엌에서 게걸스럽게 허기를 때우곤 다시 건넌방으로 들어가 대자로 누워 오후가 될 때까지 자빠져 잠을 잤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일어났을 때 올릴 저녁을 준비하기 위해 해가 지기가 무섭게 허겁지겁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는 느지막이 일어나 다시 한 끼를 때우고는 잘 먹었다는 인사도 없이 읍내로 유유히 걸어 나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에 대한 뿌리 깊은 앙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아버지는 가끔 외간 여자를 데리고 와 며칠 씩 묵어가곤 했는데 그 때만은 행패도 부리지 않았고 건넌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대낮부터 방에서 교태스러운 여자의 신음소리가 새어나오곤 했는데 그 때만큼은 어머니도 부르르 몸을 떨며 분을 삭이지 못하셨다. 아마도, 어머니는 그 때 약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깊은 병을 얻으셨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천성이 착한 여자였고 남편에 대해 평생 어떠한 불평, 불만도 내색하지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하는 어머니가 더 미울 때도 있었지만 외아들인 나 하나만을 믿고 사는 그를 진심으로 미워할 수는 없었다. 도대체 언제 적 이야기냐며 의아해 할런지도 모르지만 삼십년 전 쯤 한 촌 동네에서는 그런 일이 있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3.


국어수업시간에 아이들 모두가 까르르 웃어댈 때 같이 웃지 못했던 건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도 발견했는데 현실에서 어쩌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아버지라는 존재를 간단히 처리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간단한 문법적 조작을 통해 한 존재를 원하는 상태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면 최소한 아버지라는 존재도 우리가족으로부터 멀리 떨어뜨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하곤 했다. 보통 사람들도 자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대상에 대한 분노를 희화화함으로서 그 욕망을 대신하고 싶어서 몇 년 전 사람들 사이에 그런 유머가 유행했는지도 모르겠다.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법'이라는 유머가 갖는 논리적 비약에도 불구하고 유행했던 이유는 해결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가 단 세 줄의 문장으로 해결됨으로서 묘한 카타르시스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코끼리뿐만 아니라 자신의 상사, 변절한 애인, 돈 떼어먹고 도망간 친구들을 모두 냉장고에 넣었다. 우리가 현실에서는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대상들에 대한 복수를 개념상으로라도 간단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일시적이나마 감정적인 탈출구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단순한 문법적 오류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간단한 오류를 통해 존재의 실체와 의미를 변형, 격리시킬 수 있다는 것은 잔인하면서도 매력적인 사실이었다. 그 대상이 자신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권력을 소유한 증오의 대상이라면 문법의 힘을 빌어 그렇게 만들 수 만 있다는 상상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퍽 행복한 일이 될 것이다.

젊은 시절, 혹사인지 호사인지 모르겠으나 노름질과 주색잡기에 빠져 지낸 덕에 아버지는 일찍 병을 얻었고 병명도 알지 못한 채 세상을 하직하게 되었다. 그는 임종을 앞두고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고향집에서 마지막을 맞길 원했고 그렇게 건넌방으로 들어가 송장이 되어서야 나올 수 있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어릴 적 배웠던 짧은 문장에 세상의 이치가 담겨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버지가 빨리 죽길 바랬던 나에게 그 문장은 현실이 되어주었다. 띄어쓰기가 존재의 의미 자체를 뒤 바꾸어 놓은 것이다. 


4.


쪽팔린 아버지를 두었다는 비슷한 처지 때문이었는지 동수와는 곧잘 어울리게 되었고 동수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는 있었다. 동수의 아버지는 서커스 단원으로 몇 달에 한 번씩은 마을에 들려 한 달 이상 장기공연을 했었다. 마을에 서커스단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동수의 얼굴은 곧 근심으로 가득 찼다. 미처 그 사실을 몰랐던 나는 동수에게 서커스구경을 가자고 졸라 댔지만 동수는 끝내 가지 않았다. 당시 서커스는 문화생활이라고는 없던 마을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고 갖가지 신기에 가까운 묘기들을 보노라면 모두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안도감을 느끼도록 해 주었다. 본격적인 서커스가 시작하기 전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몇 명의 난쟁이들이 익살스런 마술쇼를 벌이곤 했는데 그 중 한 난쟁이 남자는 동수를 많이 닮아 있었다. 동수의 아버지는 익살스런 몸짓과 함께 여러 번 작은 여행용 가방에 들어가는 묘기를 보이곤 했었다. 정작 쇼를 볼 때는 인식하지 못했었지만, 바로 수업시간에 배운 문법적 오류가 현실화 되는 순간이었다. 동수가 웃지 못한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거리를 지나가는데 웬 건장한 남자가 다가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동수였다. 나는 어릴 적 왜소한 체격의 동수만을 기억하고 있던 터라 놀랍기도 하고 반갑기도 했다. 동수는 다행히 모계 쪽을 닮아 난쟁이가 되는 불행을 피할 수 있었다고 했다. 나는 급히 가 볼 데가 있어 연락처만 주고 받고 헤어졌지만 그 뒤로 연락처를 적은 메모지를 잊어버려 연락은 하지 못했다.


아버지는 임종을 앞두고 급속하게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몸무게는 30킬로그램이 넘게 줄었고 앙상한 뼈와 살가죽만으로 끊어져 가는 생명의 끈을 가늘게 잡고 있었다. 젊은 시절 그렇게 건장했던 아버지는 언제 그랬냐는 듯 왜소하고 작아져 있었다. 가끔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를 보노라면 잠시 연민의 정이 들기도 했지만 이미 삼십년 전 아버지는 간단한 문장의 조작으로 나에게는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린 나이였지만 한 인간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은 세월이 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다 아버지와 손이라도 닿을라치면 소스라치게 놀라 팔을 빼내어 버릴 정도였으니까. 의식이 오락가락하는 아버지가 일부러 내 손을 잡으려 했을 리는 만무하지만 아버지의 살갗이 닿는 것 자체가 죽기보다 싫었고 나에게는 이미 송장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날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공책에 아버지를 죽일 수 있는 문장을 이렇게 저렇게 쓰느라 밤늦게 까지 잠을 자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아버지는 유언대로 화장되었고 유골함에 담겨졌다. 나는 아버지의 유골함을 다시 작은 가방에 넣었다. 문득, 담임이 칠판에 처음 쓴 문장은 문법의 오류일런지는 몰라도 최소한 잘못 된 문장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간단히 어릴 적 내 소원은 이루어졌다. 아버지의 장례를 끝내고 유골을 고향 여기저기에 뿌렸다. 어머니도 몇 년이 지나 암으로 돌아가셨고 아버지의 제사는 더 이상 지내지 않게 되었다. 내 아이들은 빠르게 자라 큰 아이는 대학을 졸업하고 장교로 군대를 갔고 작은 아이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기일에 어머니의 묘소에 갈 때마다 아버지의 혼이 고향 어딘가를 떠돈 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어머니는 아버지처럼 화장되기를 원했지만 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고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묘 자리를 구해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드렸다. 평생, 다리 한 번 못 뻗고 사신 어머니가 죽어서는 편안히 지내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5.


큰 아이가 휴가를 나와 가족이 함께 바람도 쐴 겸 시외로 나갔다. 작은아이가 남이섬에 가보고 싶다고 해서 우연히 들렀는데 마침 서커스단 공연이 있었다. 이제 공식적으로는 유일하게 남은 서커스단이었다.

어렸을 때 보았던 서커스보다는 훨씬 좋아졌지만 왠지 그 때 느꼈던 감흥이 나지 않았다.

서커스단 난쟁이 단원들을 보니 동수 생각이 났다. 얼마 뒤 수소문 끝에 동수와 다시 만나게 되었지만 좋지 못한 소식을 듣게 되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동수의 아이들은 모두 난쟁이라고 했다. 동수는 그래도 자기 자식들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동수와 술자리가 끝날 무렵, 동수는 눈물을 보였다. 아이들을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들어서라고 했다. 동수는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고 10년이 지나서야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찾아갔지만 서커스단은 해체되어 모두 뿔뿔이 흩어지고 없었다고 했다. 동수는 끝내 아버지의 시신을 찾을 수 없었다. 동수는 계속 울고 있었고 나는 그저 잔에 술을 따라 마실 뿐이었다. 동수야, 울지 마라. 삼십년 전 배운 두 문장은 모두 문법적 오류가 없었다. 그러니, 우리가 웃지 못한 것을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잘못 된 문장은 없었으니까. 모든 존재는 문법이라는 하잘 것 없는 작은 그릇에 담기기보다 자유롭기를 원한다. 그들은 존재와 생명이 받는 억압을 간단한 문장의 오류를 넘어서 증명해 보인 것뿐이다. 나는 좀처럼 눈물을 그칠 것 같지 않는 동수에게 위로인지 놀림인지 모를 말을 던졌다. 아버지는 모두 가방에 들어가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