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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하는 남자

  • 작성일 2006-10-01
  • 조회수 356

 

 남자는 수영을 한다. 단조로운 팔 동작과 다리 동작으로 남자의 몸은 앞으로 향한다. 남자가 수영하는 곳은 앞뒤 위아래조차 보이지 않는 암흑. 검은 심해 속인 듯 단 한 줄기 빛조차 삼켜져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남자는 그 불가사의한 공간에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아가야, 물을 조심혀라.’
 공간의 어딘가에서 정겹고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할머니.”
 남자는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알았다. 남자는 동작을 멈췄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린 곳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주변은 숨이 턱 막힐 듯한 시커먼 어둠. 남자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꼈다. 이 어둠 속에 갇혀 영원히 벗어날 수 없다는 두려움.
 ‘아가야, 물을 조심혀라.’
 어디선가 또 다시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는 몸을 모로 틀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던 곳을 향해.
 남자는 다시 수영을 했다. 할머니의 목소리를 좇아. 이 시커먼 어둠을 헤쳐 나갈 수 있는 한 줄기 빛을 좆아.


 「네 아이 지웠어. 하얀 양수와 같이 사라지더라. 네가 그토록 염원했던 자궁 속에서 차가운 집게에 짓이겨져 진공청소기 같은 흡입기에 산산이 빨려 들어가더라. 의사가 정신적 충격을 줄 수 있다고 보지 말라는 초음파, 끝까지 다 봤어. 흡입기로 빨려 들어가는 아이. 눈물을 꾹 참고 다 봤어. 봐야지. 내가 죽이는 애니까. 내가 꼭 봐야지. 약 30분 정도였는데 끝나더라. 회복실에서 미역국을 먹으며 참 많이 울었어. 아니 안 울었어. 솔직히 울었는지 안 울었는지도 모르겠어. 눈물을 하염없이 났던 거 같은데 소리 내서 울지 않았거든. 보름 간 몸조리하면서 네 생각 많이 나더라. 네 아이를 없앴다는 죄책감 때문이었을 거야. 그렇게 며칠이 지나니까 덤덤해졌어. 하지만 너에게는 알려줘야 할 것 같아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메일을 써서 보내. 현생에서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아이가 못 이뤘던 거 다음 생에서는 꼭 이뤘으면 바래. 언제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바래. 잘 지내. 한 때 사랑했던 ○○가」
 여자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보며 남자는 담배 한 개비를 태웠다. 여자와 헤어지고 나서 한번도 보지 않았던 편지를 남자는 이제야 다시 열어봤다. 그것도 여자에 대한 소식을 오늘 듣지 않았다면 영영 사장하다시피 했던 것을 말이다. 여자의 메일을 보고 있는 남자의 얼굴엔 형용하기 힘든 어떤 수심이 가득 고여있었다. 잊지 않았던가. 그녀에 대한 기억은 내 머리 속에, 가슴 속에 단 일말의 것도 남아있지 않는데. 어째서 다시금 이렇게 상기되고 있는가. 남자는 속이 쓰려왔다. 신경성 위염이 갑자기 일었다. 남자는 통증을 없애기 위해 담배필터를 깊게 빨았다. 빨갛게 타오르는 담배 불빛 속에서 아롱아롱 붉게 피어오르는 네온사인이 보였다. 남자는 어느 덧 몇 시간 전의 자신으로 돌아가 있었다.


 붉은, 노란, 파란. 형형색색의 네온사인이 영롱하게 빛을 내며 사람을 유혹한다. 사무실에서 잔업을 끝낸 남자는 퇴근할 생각을 않고 멍하니 창밖의 네온사인을 바라본다. 6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남자의 머리 위에 힘겹게 매달린 형광등을 제외하곤 전부 불이 꺼져 있다. 남자는 그 어떤 아늑함을 느꼈다. 압박붕대같이 답답하고 좁은 자신의 자취방이 아닌 사무실에서 남자는 정말이지 편한 느낌을 가졌다. 마치 엄마의 품속에 안겨 있는 듯한 그런 포근함. 어둠이 주는 고독은 때론 이렇게 해어나오기 힘들 정도로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타인과 시간을 공유(共有)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시간을 소유(所有)할 수 있는 매력.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매력 속에서 예리하고 시퍼런 회칼로 가슴 한 귀퉁이를 성큰 썰어놓은 것 같은 허전함이 들었다. 사람이 고팠다. 남자는 주섬주섬 책상을 정리했다. 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바에서 칵테일 한 잔 하고 갈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때였을 것이다. 대학 동창으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 사무실 문을 닫고 나설 때, 바지 주머니속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발신번호를 보니 처음 보는 거였다. 평소 자신이 알고 있던 전화 외에는 받지 않은 그는 한참동안 파란색 발신창을 바라봤다. 누군가를 깊이 신뢰하지 못 하는데에서 온 버릇이었다. 받을까 말까를 고민하다 숨이 넘어가 듯 울리던 전화기의 폴더를 열었다.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가 매우 메말랐다. S냐? 나다. 귀에는 익었지만 선뜻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 머리 속에서 목소리와 매치되는 인물이 떠올랐다. 남자는 조심스레 인물의 이름을 수화기에 읊었다. 수화기에서는 이제 기억 나냐는 치기어린 힐난을 했다. 남자는 쓴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고 했다. 친구는 얼굴 까먹겠다고 만나자고 했다. 남자는 머뭇거리다 수락했다.


 방학 때라 그런지 대학가의 호프집은 비교적 한산했다. 남자와 친구들은 카운터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 일행이 안자마자 웨이터가 메뉴판을 가지고 왔다. 일행은 3000cc와 마른안주 모듬을 시켰다. 기본 안주를 씹으면서 일행은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꺼내며 회포를 풀었다. 대부분이 남자에게 쏟아지는 질문이었다. 다른 친구들끼리는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는지 서로 나누는 얘기가 그다지 없었다. 남자는 쓴 웃음을 지으며 어설프게 친구들과의 대화에 끼었다. 3000cc통이 두세 번 정도 갈아졌을 때였다. 니들 대학 3학년 때 편입해 온 ○○ 알지? 누구? 아, 그 곱상하던 애? 어, 걔가 그런데 저번 여름에 죽었대. 순간 잔을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이 굳었다. 친구들은 술에 취했는지 남자가 굳은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얘기를 풀었다. 어쩌다가? 사고로 죽었대. 몇 개월 전에 걔 아는 친구들이랑 서넛이 모여서 모 섬에 놀러갔었는데 그 때 파도에 휩쓸렸대. 친구들은 뭐하고? 그 때가 초여름이어서 사람들이 만원이었나 봐. 요새는 피서 철보다는 조금 이르게 움직이잖아. 그래서 친구들도 몰랐나봐. 걔 학창시절에 괜찮았는데 안타깝다. 친구 중 누군가가 씁쓸한 낯빛을 띠었다. 사람 인생이라는 게 다 그러지, 뭐. 여자의 이야기를 맨 먼저 꺼낸 친구 녀석 또한 어두운 얼굴로 말을 받았다. 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있는데 그런 꾸리꾸리한 얘기로 분위기 잡쳐야 하냐. 자, 자, 한잔씩 쭈욱 들이키자고. 다른 친구 녀석이 남자를 의식했는지 분위기를 수습하려고 애썼다. 친구들은 이미 수습된 분위기에 휩쓸리는 거 같았지만 남자는 쉽사리 분위기에 합류하지 못했다. 어쩐지 아무도 없는 바다에 혼자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어차피 지금 이 자리에 그는 있으나 없으나 했다. 자기들의 얘기들 속에서 시시덕거리던 친구들 사이에서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떠올렸다. 헤어진 지 2년 남짓 했는데 그새 얼굴이 잊혀졌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사고였다는 친구의 말에 남자는 여자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비릿한 확신을 갖는다. 여자는 왜 자살 했을까? 그 때 그 일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렀다. 그리고 쉽게 목숨을 끓을 정도로 여자는 어리석지 않았다. 자기 피아르를 잘하는 여자는 분명 남자와 헤어지고 나서 얼마 안 가 다른 남자를 만났으리라. 그런데 여자의 죽음이 단순 사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가, 자살이라고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대체 뭘까?


 나 임신 했어. 여자의 말에 남자는 뒷머리에서 피가 아래로 쏠리는 느낌을 받으며 얼었다. 뭐라고? 남자가 딱딱하게 물었다. 임신 6주래, 병원 가봤어. 여자의 얼굴엔 내심 남자가 자기와 같이 기뻐해줬음 하는 바람이 흘렀다. 남자의 얼굴빛이 점점 창백해졌다. 대체 어떻게? 미스테리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이런 엿 같은 상황과 같은. 남자는 여자를 알아가고, 여자와 사귀고 관계를 가질 때 단 한번도 여자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넣지 않았다. 그런데 임신이라니? 혼란스러워 하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여자는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니 아이 맞을 거야. 널 알고 사랑하는 동안 다른 남자와는 한 번도 관계를 한 적이 없거든. 남자는 차라리 여자가 다른 남자와 같이 어느 날 원나잇 스탠드를 즐겨서 생겼다고 말했으면 바랐다. 자기 아이라니. 믿기지 않았으며 바라지도 않았다. 여자의 얘기는 계속 이어졌다. 나도 이 상황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의사 말이 그럴 수도 있다는 거야.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그래도 잘 됐지 않아? 어차피 너와 나, 곧 있으면 결혼할 테고 이 아이를 계기로 해서 좀 더 집과 가까워질 수도 있잖아. 여자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밤하늘의 보름달을 보는 마냥 시리면서 말라있었다. 지워. 들리듯 말 듯한 작은 소리였지만 여자의 귀에는 분명히 들렸다. 여자의 얼굴이 하얀 조가비마냥 딱딱하게 굳어지며 되물었다. 뭐라고? 지워. 그 딴 거 필요 없으니까 없애버리라고. 나는 지금 애를 키울 준비도 결혼이고 자시고를 할 생각도 없어. 그리고 애가 있다 한들 나와 그 사람들 사이가 좋아지거나 하는 기적 따윈 일어나지 않아. 괜히 그런 거로 나한테 얽매이려고 하지마. 네가 그럴수록 너에게 느꼈던 감정이 하찮아지니까. 여자의 얼굴이 싸늘하게 변했다. 주먹 쥔 손이 부르르 떨렸다. 뭐라고? 지우라고? 이제 생겨난 지 6주 밖에 안 된 배아를 없애라고. 그래, 없애. 깨끗이 없애. 그까지 것 없애는 거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 짝, 남자의 뺨이 불거졌다. 너는 개새끼야. 아니, 너는 개만도 못한 놈이야. 어쩌면 그렇게 이기적일 수 있어? 너 혼자 잘난 척, 아픈 척 다 하는데 정말 가증스러워. 부모님한테 버림받았다고 스스로 피해망상에 빠져 부모님을 욕하는데 그럴 자격 너한테 없어. 너도 똑같으니까. 여자의 욕설에 남자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흔들렸다. 아이가 태어난다. 그 아이는 자신과 닮았다, 그 이전에 자신을 낳은 남자와도 닮았다. 그리고 그 남자를 낳은 그 위의 남자와도 닮았다. 이상(李想)의 시처럼 아버지의 아버지,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가 되는 것이 싫었다. 내 아들이 그 아버지의 아들이 되는 것도 싫었다. 대물림이라는 이름의 자가복제에 진절머리가 났다. 짝. 여자의 뺨이 붉어졌다. 남자가 차갑게 대꾸했다. 뭔가 착각 하는가 본데. 나는 버림받지 않았어. 내가 그 사람들을 버렸을 뿐이야. 여자는 얼얼한 뺨을 어르며 남자를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물기가 그렁그렁하게 맺힌 여자의 눈을 보며 남자는 현기증이 느껴졌다. 여자의 얼굴에 오버랩 되며 떠오르는 어떤 사람의 얼굴 때문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들리지 않을 작은 소리로 얼굴의 주인공을 불렀다. 할머니.


 하얀색. 하얀 복도, 하얀 침대 시트, 하얀 간호사들, 하얀 얼굴, 하얀 천.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면 맨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었다. 하얀색은 가장 깨끗하고 순결하다고 하는데 남자는 하얀색이 죽음으로 가는 인도(引導)로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어이없는 오진의 연속에 의해 속이 썩어 들어가는 줄도 모르다 막판에야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으신 할머니, 늙은 시어머니 때문에 나는 죽을 수 없다고 악착같이 오기를 부려 병원에서 정한 것보다 약 6개월 정도 더 살다가 떠나신 할머니.
 ‘유 마리아’라고 금실로 수 놓여진 하얀 천이 마름모꼴로 관을 덮었다. 관은 포크레인에 의해 아래로 내려간다. 관을 묻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 주위에는 남자를 낳은 남자와 여자, 그리고 그 가족들이 서럽게 통곡을 한다. 남자도 그치지 않는 눈물을 흘리며 통곡한다.
 “할머니가 오늘을 넘기시기 힘들 거 같다.”
 할머니가 가시기 하루 전, 남자를 낳은 남자가 남자에게 말했다. 할머니의 소원이다 까지 덧붙였건만 남자는 할머니께 그토록 아끼던 손자의 마지막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기껏 하루에 무슨 일이 있겠냐는 오만에 빠져 학교 친구 집에서 그 하루의 시간을 보낸 그에게 운명은 그를 꾸짖고자 하려는지 아니면 비웃으려 했는지 상상할 수도 없는 결과를 내렸다. 할머니가 널 얼마나 챙겨주셨는데, 큰 손자라고 어렸을 때 몸 아파서 죽을 고비 여러 번 넘긴 놈이라고 당신 손에서 떨어질세라 싶으면 겁이나 너부터 찾으신 분인데.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너는 배은망덕한 놈이야. 너 같은 놈은 인간자격을 가질 필요가 없어. 할머니가 임종하신 요양원으로 들어서는 길에 남자의 아비는 남자를 그렇게 질책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한동안 아비는 남자를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으려 했다. 그런데 남자는 아비의 질책이 정당한 것인지, 그것이 정녕 자신에게만 제한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그것은 남자가 좀 더 크면서 아비에 대한 배신감을 느끼면서 더더욱 짙어졌다.
 남자는 14살의 자신으로 돌아가 할머니의 묘 앞에서 서럽게 우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저들의 눈물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할머니가 마지막을 준비하기 위해 요양차 계시는 동안 유지됐던 거짓된 안정, 거짓된 행복, 거짓된 평화. 돌아가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행해진 부모의 이혼, 그리고 이어진 아비의 새로운 출발들, 기회다 싶으면 어린 딸 데리고 아비 앞에 나타나 아비를 농락하던 어미, 그 기로에서 멀찌감치 내동댕이 쳐져버린 남자의 학창시절.
 한편의 장막 드라마 줄거리 같은 이야기의 당사자들이 그 때 자신들 앞에 누워계신 고결한 분께 흘렸던 건은 정녕 진실된 것일까? 남자는 자신의 눈가를 만져본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하염없이 울어 어느 새 말라버린 눈물. 할머니 영정 앞에 모든 눈물을 바치는 바람에 그 후에 어떤 슬픈 일이 있어도 단 한 차례도 나오지 않는 눈물은 진실된 것일까? 할머니가 돌아가신 5일 동안 남들이 있을 때는 눈물, 콧물 다 짜내며 서럽게 울면서 혼자 있을 때는 단 한번도 제대로 울지 않은 자신이 정말 진실이었을까? 남자는 자신에게 의문을 갖는다.


 네온의 물결이 남자에게 굽이친다. 남자는 물결에 몸을 맡겨 이리 실리고 저리 실린다. 빌어먹을, 남자의 입에서 나직히 욕이 나왔다. 얼마나 마셨을까? 주체 못할 만큼 마셨다고 생각했건만 머리 속에 떠오르는 여자의 얼굴과 할머니의 모습은 술기운에 상관없이 점차 선명하게 떠올랐다. 물결의 흐름에 몸을 맡긴 남자의 발걸음이 우뚝 섰다.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에 <에코Eco>라고 이탤릭체로 휘갈겨진 붉은 네온빛이 들어왔다. 남자의 발이 움직였다.
 어서오세요, 가게 안 종업원들과 사장의 목소리가 중첩되어 남자의 귓가에 울렸다. 입구에서 본 가게는 상당히 널찍했다. 가게 한 켠에 라이브 무대가 설치되어 있고 거길 기점으로 양 옆에 룸이 세 개씩 설치됐다. 남자는 왼편 가운데 룸으로 몸을 들이밀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웨이터와 여자가 들어왔다. 남자는 웨이터가 내민 메뉴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뜸 웨이터에게 말했다. 독한 걸로 아무거나 주세요, 웨이터가 당황한 얼굴로 여자를 바라봤다. 여자는 입 모양을 벙긋거리며 위스키 한 병을 주문했다. 웨이터는 알겠다는 얼굴로 인사를 하고 들어갔다. 웨이터가 나가자 아가씨가 남자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담배를 빼물며 창 넘어 거리가를 주시했다. 보니까 술을 하시고 오신 듯한데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봐요. 독한 술을 또 찾으시는 거 보니. 기억을 지우고 싶은데 지워지지는 않고 더더욱 선명하게 떠올라서요. 차라리 이길 수 없을 만큼 독한 술에 취해 필름이라도 끊겨 버렸으면 해서 왔어요. 남자는 시선을 고정해둔 채 말했다. 무슨 기억이기에 그렇게 힘들어하는 거예요? 혹시 시련당한 기억? 여자가 농을 던지며 살풋 웃었다. 그러나 남자의 반응이 삭막해 되레 무안했다. 때마침 술이 오고 여자는 기회다 싶어 남자에게 술을 따라주며 말했다. 무슨 일이에요? 말해 봐요. 남자는 여자의 술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이 화끈할정도로 독한 술이었다. 여자는 남자의 잔이 비워지는 대로 술을 따랐다. 남자는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머리가 싸해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 머리를 망치로 때린 듯 멍했다. 남자의 입가에 마른 미소가 번졌다.
 여자가 몇 차례 왔다갔다 하는 동안에도 남자는 술만 들이켰다. 처음에는 생기발랄하던 여자의 얼굴도 기운이 빠졌는지 많이 죽어 있었다. 양주 두 병이 비워질 때 즘 남자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저기……, 팔짱을 낀 채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여자의 얼굴에 다시 화색이 돌았다. 네. 여자는 기대감이 가득 찬 얼굴로 반문했다. 남자는 여자를 빤히 바라봤다. 그녀의 얼굴에서 뭔가를 찾고 있는 거처럼. 남자의 입술이 움직였다. 나랑… 같이 잘래요?


 물결이 움직인다. 성난 물결이 격하게 움직인다. 모든 걸 쓸어버릴 듯 물결은 거세게 바람에 몸을 맡긴다.
 한 여자가 있었어요. 남들은 괜찮고 참하게 생겼다고 하는데. 나는 그걸 잘 못 느끼겠더군요. 내가 그녀를 사랑하게 된 이유는 그녀가 할머니를 닮았기 때문이에요. 할머니의 요리솜씨를 닮았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는 손은 그녀의 손이 아니라 할머니의 손이었어요. 그녀는 어느 순간 알아서 내가 그토록 거부했던, 그러면서 갈망했던 요리를 해주더군요. 된장찌개요. 할머니가 마지막으로 끓여주셨던 된장찌개를 그녀는 똑같이 만들어냈어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이었어요. 하루는 학교를 파하고 곧바로 학원에 가기 전에 할머니께서 밥을 먹고 가라 하신 거예요. 반찬도 없었고, 국도 없었기에 그냥 안 먹고 갔지요. 학원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아버지가 날 부르셨어요. 굉장히 화난 얼굴로 말이에요. 어머니도 심각해 있었죠. 할머니는 방에서 뭔가 할 말이 있으신 거 같았지만 하지 않았고요. 안방에 들어가니 아버지가 가끔 위협용으로 쓰는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가 문 옆에 있었어요. 아버지가 특유의 낮은 목소리로 앉으라고 하셨어요. 편하게 앉으라고 했는데 무릎 꿇고 앉으라 하셨어요. 나는 뭔가 잘못 돌아간 게 있구나 생각하며 무릎 꿇고 앉았어요. 대뜸 아버지가 그러시더군, 네가 그렇게 대단한 존재냐고. 무슨 말인지 몰랐죠. 나는 아버지의 그런 질책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뭔지 몰랐으니까. 그러다 그러시더군. 할머니가 내가 국 없다고 밥 안 먹고 가니까 나를 위해서 국을 끓여 주셨다고요. 속이 썩을 대로 썩어서 죽 한 그릇 제대로 못 드시는 분이 손주가 한 끼 배곯는다고 손수 시래기 된장찌개를 끓여 놓으신 거예요. 그날 저녁 그 된장찌개로 밥을 먹긴 했는데 넘어가지 않더군요. 그리고 그 이후에 그 때와 같은 된장찌개는 먹을 수가 없더군요.
 그러다 몇 년이 지나서 그 때와 같은 된장찌개를 먹을 수 있게 됐어요. 그녀를 만나면서였죠. 맨 처음 그녀가 된장찌개를 끓여서 가지고 올 때가 아직도 생생해요. 제 색을 잃은 시래기들과 이제 막 넣은 파, 양념으로 쳐진 고춧가루, 그것들을 아우르고 있는 흙빛 국물. 그 국물을 떠서 입안으로 넣을 때까지 조마조마한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본 그녀의 얼굴……. 입안에서 감도는 국물 맛은 그 때 그 맛이었어요. 그리고 그 때 나를 보고 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할머니의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그녀가 죽었다는 걸 오늘 들었어요. 죽은지 1년이나 지났더군요. 나와 헤어진지 거의 1년 만이었어요. 사람들은 사고로 죽었다고 하는데 나는 그녀가 자살했다고 생각해요, 나 때문에.
 

 섹스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사랑에 결속되는 섹스와 오직 쾌락에 치중되는 섹스. 나와 하는 것은 후자겠고, 당신의 그녀와는 전자였나요? 여자의 물음에 남자는 입을 다물었다. 사랑이 결속된 섹스, 죽은 그녀와? 그녀와 사랑이 완전했다면 그녀의 죽음이 이렇게 크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찰랑거리는 물이 공기를 대신해 두 사람 사이에서 일렁댄다. 남자의 몸짓과 남자의 여자의 몸짓은 물에 헤쳐진 창포마냥 하늘거린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들어. 여자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남자가 말했다. 어떤 생각?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어릴 때? 언제? 태어나기 이전, 그러니까 태아 때로. 하하, 역시 자기는 별나. 남들은 고등학교 때라던가, 스무 살 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는데 당신은 태아 때라니. 하하하, 그래, 이유가 뭔데? 남자의 머리가 점차 아래로 내려갔다. 여자는 남자가 편하게 애무할 수 있게 몸을 들었다. 그 때는 나도 수영을 잘 할 수 있었을 거 아니야. 지금처럼 물에 대한 두려움도, 구속감도, 제약 같은 것도 없었을 테니까. 남자의 머리 속에 예전에 수영강습을 하기 위해 찾은 스포츠센터 강사의 말이 떠올랐다. 아기들은 물의 적응이 굉장히 빠릅니다. 그건 태어나기 전부터 양수 속에 10달 동안 들어있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생후 1개월 정도 된 아이들은 물 속에서 약 5분에서 10여분 정도는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왜 예전에 TV 광고에서 아기들이 물 속에서 헤엄치는 모습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게 사실이라 하네요.
 그런데 정말 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수영을 못하는 거야? 이렇게 물 속에 있는데? 여자가 의구심 가득한 질문이 남자의 기억 틈새를 뚫고 들어왔다. 남자는 물 속으로 고개를 넣어 여자의 배꼽 쪽을 자리 잡았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남자는 고개를 들어 숨을 헐떡이며 여자의 물음에 답했다. 특별히 물에 대한 기피증 같은 것은 없어. 다만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께서 너는 심장이 약하니까 물을 조심하라는 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셨더만 그것이 일종의 강박관념처럼 자리 잡은 듯 해. 남자는 다시 고개를 물속에 박았다. 여자의 입구에 찾아들어서는 남자의 귓가에 수압 때문에 일어난 환청일지 모를 소리가 들린다. 아가야, 물을 조심혀라. 물에 함부로 들어가지 마라.


 강박관념이라는 말이 남자의 입에 맴돌았다. 나와 그녀는 한번도 제대로 된 섹스를 한 적이 없어요. 아니 안 했어요. 우리는 언제나 페딩으로 끝냈어요. 페딩? 발기부전 환자들이 한다는 애무로 끝나는 섹스 말인가요? 남자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데요? 당신은 멀쩡하잖아요. 전혀 그런 게 안 보이는데. 어째서 그런 거죠? 그녀가 당신과의 관계를 피했나요? 아니면 당신 스스로가 그녀의 처녀성을 유지하고파서 그런 건가요? 여자가 의아한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남자는 씁쓸함이 가득한 자조적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그렇게 착한 놈으로 보입디까? 그렇게 생각했다면 한참이나 헛짚었어요. 나란 놈을. 그게 아니라면 왜 그런 거예요? 앞서 말한 섹스의 종류 중 사랑이 결속된 섹스의 필요충분조건이 뭐라고 생각해요? 엑스터시 아녜요? 천만에, 그건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에요. 진짜 필요한 것은 서로에 대한 완전한 신뢰에요. 자신의 일부가 아닌 모든 것을 그 사람에게 줄 수 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섹스는 이뤄지는 거예요. 대학 때 호기심 삼아 잠시 읽어봤던 <프로이드 심리학>에서 나온 거예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성본능에 치중하게 되는데 그 성본능을 유도하는 게 사랑이고, 그 사랑을 유도하는 게 신뢰라고. 그런데 나는 그녀한테 그게 없었어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를 완전히 믿지 않았어요. 아니, 그녀뿐만 그 누구에게도 그러지 못했어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당신까지도. 말을 마치고 남자는 경련을 일으키듯 몸을 꿈틀했다. 그에 맞춰 여자의 몸에 뭔가가 묻어났다. 우유처럼 희뿌옇고 비릿한 점액질. 여자는 머리맡에서 티슈를 꺼내 점액질을 닦아냈다. 남자는 휴지에 묻어 사라지는 자신의 정액(精液)을 바라보며 여자의 편지를 떠올렸다. 하얀 양수와 같이 사라지더라. 하얀 양수 속에서 산산이 부서져 끈덕진 토사물처럼 흐물흐물하게 쓰레기통으로 쳐박혀버린 자신의 아이, 만약 자신의 아비가 좀 더 완강했던가, 자신의 어미가 좀 더 고집스럽지 못했다면 자신 역시 아이처럼 그렇게 버려졌겠지. 그들은 왜 그 때 자신을 버리지 않았을까? 어차피 나중에 거추장스러워질 거라면 그 때 없애버려도 되지 않았겠는가. 왜 그 때 없애지 않고 나중에 와서 그와 그의 동생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겨놓았는가. 남자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억울했다, 차라리 그들의 품이 아닌 다른 사람의 품에서 빛을 봤다면 달라졌을까하고 생각하니 괜히 화가 났다. 남자는 여자를 보며 솟구쳐 오르는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며 무겁게 말을 이었다. 난 의심했어요, 그녀의 사랑을. 아니, 내가 그녀에게 주는 사랑을 의심했을지도 몰라요.


 남자가 눈을 떴다. 머리가 두 쪽, 세 쪽 나듯 아파왔다. 속이 뒤틀리듯 울렁거렸는데 이상하게 심한 갈증과 공복감이 밀려왔다. 남자는 방 한 켠에 있는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벌컥 벌컥 들이켰다. 벽에 몸을 기댄 채 물을 마시며 남자는 전날 밤의 일을 곱씹어봤다. 처음으로 ‘내 여자’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섹스. 그 섹스는 황홀하지도 그렇다고 무덤덤하지도 않았다. 꿈과 경계의 모호성에 서서 남자는 다른 여자에게 자신의 여자의 얘기를, 할머니의 얘기를, 자신의 얘기를 풀어놓았다. 누구에게나 쉽게 털어놓지 못한 것을 딱 한 번 본 여자랑 자면서 다 털어놓았다. 남자는 전날 밤의 자신이 진짜였는지 의구심이 느껴졌다.


 살랑살랑 물결이 남자에게 다가왔다. 바람을 타는 듯 물결은 가벼이 남자에게 왔다가 다시 가벼이 물러난다. 왔다 갔다, 왔다 갔다. 포대기로 감싼 아이를 어르듯 물결은 그렇게 움직이고 있었다. 남자는 물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공복감과 허기는 여전히 그의 뱃속을 뒤집고 있었다. 이상했다. 이곳에 오는 길에 식당에 들러 밥을 먹고, 그에 맞춰 물도 양신 먹었건만 포만감보다는 뭔가 부족한 공허함만이 뱃속을 맴돌았다.
 그녀가 이곳에서 죽었을까? 남자는 의문이 들었다. 그녀가 죽었다는 곳은 사람을 삼킬 정도로 물이 깊지도 않고 물의 흐름이 거세지도 않았다. 이런 곳에서 여자가 죽었다는 사실이 다시금 믿기지 않았다. 남자는 손을 내밀어 물결을 어른다. 여자의 살결을 어르듯.
 당신은 왜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는 거죠? 당신의 할머니의 죽음과 당신의 여자의 죽음이 당신에게서 비롯된 것은 아니잖아요. 스스로 그렇게 비약시켜서 얻어지는 게 뭔데요? 지리멸렬한 궁상과 자기혐오 밖에 더 있어요? 당신 안에 있는 짐을 벗어봐요. 그리고 두려워말고 받아들여요.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이잖아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전날 밤 함께한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바닷물결이 그의 손바닥 안에서 하얗게 흩어진다.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가족들은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진혼곡과 찬송가를 섞어 부르며 할머니의 임종을 숭고하게 했다. 여자의 영정 앞에서 그의 가족들은 어떤 노래를 불렀을까? 여자는 특별히 종교를 가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냥 곡소리만 빈 단상 앞에서 그녀의 떠남을 위로했을까?
 남자의 입에서 뭔가가 새어나왔다. 뚝, 뚝 끊어질 듯 하면서 이어지는 것은 한 곡의 노래였다. 여자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 함께 부르자고 했어도 피해버린 노래를 남자는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노래는 할머니가 즐겨 부르셨던 노래이기도 했다.
 남자의 뺨 결에 어느새 물줄기 흔적이 생겨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10여 년간 멈춰버린 물줄기가 봇물 터진 거처럼 터져버렸다.
 하늘은 어느새 선홍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노란 알을 삼키는 바다는 하늘과 동화되어 같은 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물기 어린 남자의 눈에 붉은 빛을 머금은 물결은 어느새 손짓이 되어 남자를 부른다. 돌아가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노래를 멈추고 남자가 나직이 읊조린다. 손짓은 조용히, 천천히 남자를 부른다. 남자는 손을 뻗는다. 몸을 숙인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남자를 이끌었다. 몇 번의 헛손질 끝에 손끝에 뭔가가 잡혔다. 남자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린다.
 돌아갈 수 있어, 그 옛날로. 그 곳으로.


 남자는 수영을 한다. 평소에 잘 안 움직여 곤혹스러웠던 팔과 다리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남자의 몸은 점차 앞으로 향한다. 남자가 수영하는 곳은 온통 빨간 공간이었다. 마치 남자가 그토록 염원했던 자궁 같은 곳. 남자는 한참을 수영을 한다.
 아가야, 이리 오너라.
 자기야, 이리와.
 남자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들이 들렸다. 남자는 수영을 멈추고 목소리가 나온 곳으로 고개를 들었다. 할머니가 있었다. 남자는 웃으며 할머니에게 갔다. 할머니는 어느 새 여자로 바뀌어 있었다. 남자는 더 가까이 갔다. 여자는 다시 할머니로, 할머니는 다시 여자로 파노라마 필름을 영사기에 빠르게 돌리 듯 두 사람은 반복됐다. 남자는 할머니와 여자를 부르며 수영을 했다. 수영을 하는 남자의 배꼽에서 하얀 줄이 생겼다. 그리고 팔과 다리가 점점 오므라들었다. 살은 점점 통통해지고 머리는 두 배정도 커졌다. 남자의 몸이 마치 쥐며느리 같이 둥글게 움츠렸다. 붉은 공간에는 어느새 아이 하나가 태동을 느끼고 있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