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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아가 버린 참새를 잡아..

  • 작성일 2006-12-06
  • 조회수 300

- 머릿속 참새가 짹..짹..-


우리 집 재롱이는 내 앞에서 재롱을 떨지 않는다.

재롱이는 고모네서 애지중지 키우던 치와와 종류의 개이다.

그러던 것을 고모부가 우리 밭에서 호박과 고추를 거저 따가며

선물이라며 내게 준 것이다.

마침 말복이 지나 개집이 텅 비어 있었다.

녀석의 크기에 비해 턱없이 커다란 개집은 동네 계집애와 둘이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넓었다. 처음 고모부가 내 팔에 재롱이를 안겨주려 할 때

녀석은 내 손을 물었다. 난 그저 귀여워 해주려 했을 뿐인데,

녀석은 한사코 고모부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앙탈을 부렸다.

그래서 녀석에겐 목걸이가 필요했다. 고모부가 호박을 따고 있는 동안

나는 철물점에 달려가 철제 개목걸이를 샀다.

재롱이는 목걸이에 묶여서야 내 뒤를 쫓아왔다.

비록 나의 힘에 의해 땅바닥에 엉덩이를 질질 끌며 따라왔지만 말이다.

개집에 녀석을 묶어둔 후 나는 녀석의 엉덩이에 발길질을 했다.

앙! 앙! 녀석이 잽싸게 피하면서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겨우 녀석을 떼어 놓은 후, 나는 싸리 빗자루를 가져와 녀석을 위협했다.

될 수 있는 한 녀석의 이빨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

그 후로부터 재롱이는 내 눈치를 슬금슬금 살폈다.


- 가슴속 참새가 짹..짹.. -


재롱이는 개밥을 먹지 않았다.

개밥그릇에 먹다 남은 음식을 수북이 주어도 침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내가 지켜보고 있건 딴청을 피우며 녀석을 예의주시하고 있건 관계없었다.

녀석은 도무지 먹질 않았다.

"먹지도 못할 거 뭐 하러 줬담. 끌..끌.."

할아버지는 개고기를 좋아하셨다. 그러나 내가 녀석을 안방까지 끌고 가 할아버지께

보여 드려도 이런 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할아버지는 고모부에게 장인어른 대접을 받고 싶었던 것이다.

고모의 아버지는 우리 할아버지가 아니다. 우리 할아버지에겐 딸이 없었다.

그러나 할머니에겐 우리 아버지보다 나이 많은 딸이 둘이나 있었다.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커서 내가 태어났을 무렵, 내겐 이미 나보다 열 살이나

많은 고종사촌들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할머니가 과부였을 때, 보쌈을 했던 것이다.


- 손끝의 참새가 짹..짹..-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노골적으로 적개심을 드러내곤 했다.

동네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인품에 대해 좋게 말하면 할머니는 극구 아니라고

부인하며 할아버지의 험담을 늘어놓았다.

"글쎄 저 영감탱이가 돈을 꼬불쳐 가지고 아랫말 김 씨네 김장하라고

갔다 줬다지 뭐요. 그럴 돈 있었으면 내 치마저고리나 해 입을 수 있었을 텐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수? 저 영감쟁이..주막거리 여편네랑 눈이 맞은 게

분명해..그러니 허구한 날 늦게까지 술 처먹고 들어오지.."

할머니의 험담은 늘 이런 식이었다.

어느 날 대취하신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잔소리를 듣다, 참다, 울다 홧김에 농약을 마셨다.

입에 허연 거품을 물고 뒤로 넘어가는데 그제야 정신을 차린 할머니가

함지박에 물을 떠와 할아버지에게 억지로 먹였다.

한참을 토해내고 병원에 가서 위세척까지 하고 난 후에야 할아버지는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비록 거동이 불편해지셨지만 말이다.

안방에 누워계시던 할아버지께서 부르셨다.

나는 재롱이의 밥그릇을 땅에 엎어뜨린 후 쏜살 같이 달려갔다.

요강을 비우지 않아 분뇨가 꽉 차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저 녀석 방안에서 단팥빵만 먹이며 키웠다던데 맨밥은 안 먹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기도 전에 할아버지는 바지춤에서 쌈짓돈을 꺼냈다.

"얼른 가게 가서 단팥빵 사 오너라..생 짐승 굶겨 죽일 수야 없지 않니.."


- 네게 있는 참새가 짹..짹..-


그리고 얼마 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고모는 물론 고모부도 오셨다. 온 동네 사람들이 잔칫집인양 몰려들었다.

"아이고..아이고..아버지.."

"아이고..아이고..장인어른.."

고모는 물론 고모부도 이렇게 울지 않았다.

단지 할아버지의 영전 앞에서 곡 흉내만 내고 있었다.

대충 곡을 끝낸 고모부가 마당에 묶여 있는 재롱이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녀석은 눈에 띄게 말라 있었던 것이다.

고모부가 조문객들을 위해 차려놓은 상에서 고기 몇 점을 가져와 재롱이에게

던져주었다. 녀석은 고기를 아주 잘 먹었다. 고모부가 안 보고 계실 때

내가 흙 묻은 발로 고기를 짓이겨도 잘 먹었다.

喪中이라는 등을 장의사에서 철거한 다음 날이었다.

잔치가 끝나 아무도 없었다.

재롱이가 나를 보며 짖어댔다. 쇳소리가 섞인 듯한 소리였다.

나는 녀석에게 다가가 발길질을 했다.

녀석이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나만 보면 오줌을 질질 흘릴 만큼 흠씬 패주었다.

그런데 왜 녀석을 때리는데 내 가슴에서 깽깽하고 소리가 나는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


- 참새는 날아가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