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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작성일 2006-06-23
  • 조회수 438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시작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빚쟁이처럼 들이닥친 아버지 앞에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엉거주춤 일어나는 아버지의 등을 향해 다급하게 창을 던지듯 왜 엄마가 죽었는지 아냐고 물었을 때 그때 이미 내 안에 뭔가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언제 시작된 건지 도무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는 것이다.

 

모든 일들이 그럭저럭 잘 되고 있었다. 약간 따분하긴 하지만 안정적인 직장이 있으니 요즘처럼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인 세상에 그것만 해도 날마다 동서남북 돌아가며 한번씩 감사하다고 절을 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시간 나는 대로 틈틈이 쓴 소설은 현업에 있는 작가 몇 분들로부터 가능성 있다는 호평을 받아 놓은 상태니 그만하면 성과도 좀 있는 편이었다. 노력만 하고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것도 힘든 일일텐데 그런 면에선 난 운이 좋은 편이었다. 10년이 넘게 혼자 살고 있다. 물론 가끔 외롭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소주 한 병 다 털어 넣고  눈물 콧물 찍찍 짜대며 지랄을 떤 적이 아직까지는 없다. 다행히도. 서른 다섯이 되도록 결혼을 안 한 내 친구들 중에는 한 달에 한번씩 나를 붙들고 주기적으로 난동을 부리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 앞에서는 그래 내가 네 마음 안다 네가 어디 가서 이렇게 맘 놓고 풀어지겠냐 괜찮다고 하지만 난 속으로 왜 하필이면 사람들 다 쳐다보는 길에서 저런 추한 꼴을 보이는 걸까 생각하곤 했다. 모든 일들이 다 잘 되고 있었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그래, 아무리 원인을 찾아봐도 맘에 탁 하고 걸리는 것은 없었다.

 

3년 사귄 남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다. 다른 여자가 생겼고 그 여자는 자기 아이를 가졌다고 했다. 순간 악을 써대던 락음악이 뚝 끊겼고, 취한 혓바닥을 쉴새 없이 놀리던 옆 테이블 넥타이부대들의 움직임도 뚝 끊어졌다.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취기가 달아났고 테이블 한 가운데에 내려 앉아 있던 달을 닮은 조명도 꺼져 버린 듯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눈, 코, 입 골고루 하나씩 못을 박아 벽에 걸어버릴 듯이. 그는 움찔하며 눈을 감았다. 내 손바닥이 그의 뺨따귀를 후려칠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야 술이나 마시자. 잔이 비었네. 언니 여기 500하나 더 갖다 주세요.”
“어차피 너도 나하고 결혼할 마음 없었잖아.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하게 된 건 미안하지만 어쩌면 너도 다행이다 싶을 거야. 이쯤에서 헤어지게 된 거. 우리 그냥 친구로 남으면 어떨까? 가끔 만나 술이나 한 잔 하는.”
“친구. 좋지. 근데 어쩌냐. 난 너말고도 친구 많은데. 야 술이나 마시자.”
“그만 마셔. 너 취했어. 이러지 마.”
“나 안 취했어. 내가 뭘 어쨌다는 거야. 너한테 차였다고 찔찔 울고 매달리기라도 해야 한다는 거야? 가고 싶으면 가. 안 붙잡아. 개자식.”
“이런다고 나 너한테 돌아가지 않아. 미안하다. 하지만 나도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잘 살아. 넌 나 없이도 잘 해낼 거야.”
“놀고 있네. 내가 잘 살든 말든 네가 뭔 상관이야. 개자식. 빨리 꺼지기나 해”
“너무 망가지진 마라. 내 맘이 아프다.”
나는 아직 맥주가 반이나 남은 잔을 들어 바닥에 내던졌다. 거품이 사방으로 튀었다. 차고 비릿한 맥주향이 콧속으로 달려들었다. 작은 파편하나가 얼굴을 스치고 날아갔다. 피가 나고 쓰렸다. 모르겠다. 왜 맥주잔을 던졌는지. 화가 났던 건 아니다. 단순히 귀찮았던 것 같다. 내 앞에서 주절거리고 있는 그를 보는 일이 귀찮고 짜증스러웠다. 그냥 아무 말 하지 말고 잔이나 채워주는 술친구 노릇만 해주면 좋으련만 나에 대한 배려라고는 끝까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그라는 인간이 순간적으로 짜증스러웠다. 나의 돌발행동에 어지간히 놀란 듯 그는 꽁지에 불 붙은 참새꼴을 하고 달아났다. 그의 뒤통수는 늦도록 나무에 매달려 있는 늙은 모과처럼 보였다. 뒤통수가 깎은 밤처럼 매끈해서 그것 때문에 그를 사랑하게 된 건 아닌가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그게 다였다. 뭔가 억울하고 기막히고 화가 나야 할 것 같은데 아니었다. 소금 빠진 밀가루반죽에 혓바닥을 갖다대는 것처럼 덤덤했다. 내 맘이 그랬다. 3년을 사귄 건 사실이지만 3년 내내 뜨거웠다면 그건 거짓말일 테고 1년 전부터는 주말에 굳이 만나지 않아도 크게 아쉽진 않았다. 늘 가슴 벌렁거리는 연애를 한다면 제 명에 죽긴 힘들 거라고 생각하면 시들함도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 마음이 시들해지기 시작했으니 그에 걸맞는 자기합리화가 필요했던 거다. 그래도 굳이 헤어지려 마음먹지 않았던 이유는 그럭저럭 구색 갖추듯 연애상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아무리 마음이 식어버렸다 해도 상대가 먼저 등을 보이는데 마음이 이렇게 담담할 수 있을까. 금방 비질을 끝낸 절 집 마당처럼 고요하고 가지런한 자신의 마음이 정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잡는 시늉이라도 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한참 지난 후에 생각했다. 어떻게 네가 날 버릴 수 있냐고 눈물이라도 한 방울 흘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한참이나 지난 후에 생각했다.

 

그가 가고 난 후 난 기어이 500㏄ 한 잔을 다시 시켜놓고 혼자서 마셨다. 맥주가 물 같았다. 뱃속에 저장탱크라도 하나 만들어둔 듯 숨도 쉬지 않고 한 잔을 다 들이켰다. 약간 비틀거리며 거리로 나왔을 땐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발소리만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대숲에 들어선 듯 바람소리가 유난히 부산스럽게 느껴졌다. 가로수를 붙잡고 위장 속으로 구겨 넣었던 갖가지 음식물들을 좌판 벌이듯 토해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번씩 힐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어디라도 숨고 싶었다. 하지만 연체동물이 된 듯 흐느적거리는 다리는 도통 말을 들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방금 쏟아 부은 시멘트 반죽 속에 들어앉은 듯 온 몸이 질척거렸다. 몸이 점점 굳어져 가는 것 같았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몸을 던졌다. 그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지나가는 행인1의 얼굴처럼 희미해져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 술잔을 기울이던 사람인데 기억이 잘 나질 않았다.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3년이란 긴 시간을 달라붙어 있었던 사람인데. 이미 오래 전에 과거로 떠밀려 내려간 듯 작은 흔적만이 지나간 자리를 어색하게 지키고 있었다. 상관 없었다. 차라리 대홍수의 힘이라도 빌려서 모든 걸 싹 쓸어내 버리고 싶었으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서 클렌징크림을 듬뿍 발라 화장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화장을 지우고 얼굴을 씻고 옷도 갈아입어야 해. 아니 옷을 갈아입는 일이 먼저던가 아무튼 일어나야 해. 이대로 잠들면 안 돼. 하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거인 하나가 내 양쪽 어깨를 손바닥으로 찍어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일어나려고 기를 써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늪에 빠져들 듯 서서히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내가 잠을 자는 것이 아니라 잠이 나를 베고 뻗어버린 것 같았다.

 

나무였다. 아주 오래된 나무 같았다. 둘레는 어른 두 사람이 팔을 벌려 겨우 닿을 듯 굉장히 컸다. 뿌리가 힘줄처럼 울툭불툭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갑자기 덩굴이 하나가 뻗어 나와 내게 달려들었다. 덩굴은 내 온 몸을 친친 감기 시작했다. 뻣뻣하고 억세기는 빨랫줄 같았지만 나름의 탄력이 있어서 점점 더 세게 내 몸을 조여왔다. 그러다 덩굴 하나가 내 목구멍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하지만 캑캑거리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눈을 떴다. 무늬 없는 흰 벽지가 발라져 있는 익숙한 내 방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인을 따돌리고 무사히 집에 도착한 잭처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한 전등스위치를 보았다. 그래 내 방이 확실해. 이젠 안전해. 그러니 안심해도 돼. 그런데 어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왜 이렇게 머리가 무겁고 몸도 무거운 걸까. 별일은 없었다. 남자친구와 헤어졌고 술을 좀 마셨고 그리고 돌아와서 잤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일이다. 30대 독신녀에게 흔히 일어나는 일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침대에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처음엔 몸이 마비된 줄 알았다. 하지만 곧 육체적 문제가 아니라 정신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침대를 빠져나오는 일이 죽기보다 싫었다.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을 챙겨먹고 익숙한 직장으로 출근을 하는 일이, 그 날은 공룡이 통나무를 다듬어 이쑤시개로 만드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하고 요원한 일로 느껴졌다. 매일매일 지겹게 반복되던 일상적인 일들이 그 날은 미션임파서블처럼 여겨졌다는 뜻이다. 때론 도저히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머리 속이 뻐근했다. 물을 잔뜩 머금어 팽창하는 통나무조각이 머리 속에 들어있는 듯, 머리를 돌리면 오래된 디딜방아처럼 삐그덕, 쿵 소리가 번갈아 들릴 것 같았다.

 

침대에 누워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은 채 어제의 일을 되짚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그저께, 그 전날 그 전전날. 그렇게 지난 일주일 동안의 일들을 소가 되새김질하듯 천천히 다시 돌이켜보았다. 온 몸이 마비가 되고서도 정신만은 가혹할만큼 말짱한 사람들처럼 마치 내 몸 가운데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것이 뇌인 것처럼 뇌기능만 과잉활성화시켰다.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정확히 말하면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거지만 사실 큰 차이는 없었다)이 잠깐동안 부끄러웠다.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이불이라도 끌어 덮고 싶을 만큼 부끄러웠다. 하지만 나는 시위하듯 손끝도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계속해서 생각만 했다.

 

지난 주 일요일에 아버지가 찾아왔었다. 점심 무렵이었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영화나 한 편 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약속이 있었던 건 아니었고 그저 무료하게 휴일 오후를 보내느니 영화라도 보는 게 낫겠다 생각했던 것 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얼굴을 보자마자 나는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고 말했다. 반쯤 남긴 인스턴트 비빔면 그릇을 들여다보던 아버지는 점심을 먹으러 나가자고 했다. 나는 약속이 있다며 버텼다. 아버지와 나는 한참동안 서로 마주보고 서서 뻣뻣한 침묵만 잡아당기고 있었다.
“네 엄마 입원했다. 시간 내서 한번 들여다봐라. 올 때는 빈 손으로 오지 말고 과일이든 음료수든 사들고 와라.”
“또 위경련인가요?”
“전시회 준비하느라 신경을 너무 많이 썼는지 갑자기 풍이 왔다. 왼쪽으로 마비가 왔는데 그나마 심한 건 아니라고 하니 다행이지. 수술은 잘 됐다고 하더라. 꾸준히 치료받으면 차츰 좋아질 거라는구나.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네 얼굴 본지 오래됐다며 궁금해 하더라.”
기껏 아는 얼굴 몇이 비쭉 들여다보는 전시회를 한답시고 어지간히 유난을 떨었나 보군. 그래봤자 그림 하나 제대로 팔리지 않는 전시회를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할 셈인지.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꾸역꾸역 기어 올라왔지만 애써 꾹 눌러 참았다. 아버지의 이야기가 더 이상 길어지는 걸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젠 너도 결혼해서 가정도 꾸리고 해야지. 하긴 벌써 많이 늦긴 했지. 네 친구들은 학부형 될 나이가 아니냐.”
“그 말씀 하러 일부러 오셨어요?”
“왜 늘 나한테만 차갑냐. 그 냉동 창고 문은 아직 열릴 때가 안 된 거냐.”
“.......”
칼이라도 물고 있는 듯 꽉 닫힌 내 입을 한참 쳐다보고 있던 아버지는 엉거주춤 일어났다. 나는 돌아서는 아버지의 등을 향해 창을 던지듯 소리 질렀다.
“아버진 엄마가 왜 죽었다고 생각하세요? 아버지는 엄마의 죽음에 전혀 책임을 못 느끼죠? 그러니까 늘 그렇게 당당하죠?”
나도 모르겠다. 왜 그 말이 툭 튀어나온 건지. 항상 가슴에 품고 있었던 말이긴 하지만 단 한번도 입 밖에 꺼내본 적은 없는 말인데 왜 그 순간 그 말이 튀어나왔을까. 무슨 대답을 기대했던 것도 아니면서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오학년 되던 해 봄에 세상을 떠났다. 잠을 자기 위해 수면제를 조금 많이 먹었을 뿐이라고 아버지는 설명했지만 그렇게 많은 양의 수면제를 먹은 이유가 단지 잠을 자기 위해서였을까. 엄마는 한 달이 넘게 잠을 자지 못했고 차츰 수면제의 양을 늘려갔다. 물론 별 효과가 없었다. 밤에 잠들지 못하는 엄마는 낮에라도 좀 자면 좋으련만 낮 동안에도 작두를 타는 무당처럼 정신이 말짱했다. 하루종일 누워 있었지만 1시간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엄마가 손을 놔버린 집안 일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되었다. 지나가는 자리마다 물길을 흥건하게 만들면서 걸레질을 했고, 설거지를 했는데도 밥알이 한 두개씩은 붙어 있는 밥그릇에 밥을 담아 동생과 먹었다. 학교에 갔다 오면 엄마는 언제나 등을 보이며 누워있었다. 인사를 해도 받는 둥 마는 둥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진짜 엄마가 집을 나가버리고 가짜 엄마가 저렇게 누워 있는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진짜 엄마를 찾으러 나서야 하는 거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집 없는 고양이처럼 온 얼굴에 검댕을 묻히고 돌아다니다 해가 다 져서 기어 들어오는 동생은 밥 숟가락을 놓기가 무섭게 잠들어버렸다. 잠든 동생의 얼굴을 보면 화가 났다. 그래서 돌아보지도 않을 엄마의 등을 향해 몇 번 악을 써대기도 했다. 은영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그러니 엄마 제발 정신 차리라고. 엄마는 어깨를 들썩이며 울기만 했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 무렵 아버지는 거의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쯤 들어와서 옷가지들을 챙겨 나가곤 했다.

 

그때 엄마가 알코올의 힘이라도 빌렸다면 어땠을까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까짓 좀 취한 눈으로 바람 난 아버지도 슬쩍 봐 넘기고, 바람 핀 남편 때문에 속앓이하는 자신도 다독이면서 그럭저럭 살아냈다면 목숨을 버리지는 않았겠지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랬다면 알코올중독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버렸을지.

 

엄마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고 처음 아버지가 말했을 때 나는 우울증이란 단어에서 이끼 냄새를 맡았다. 축축하고 비릿한 이끼 냄새. 우울증이란 단어는 감기나 맹장염 같은 질병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었다. 그것은 질병이라기보다는 저주 같았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덫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가끔 세상을 버린 엄마를 미워하다가도 그런 자신이 슬그머니 미안해지기도 했다. 엄마의 우울증의 원인이 예민한 성격에 있었다고 아버지는 강조했다. 아버진 정말 자신이 책임질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던 걸까?

 

엄마가 세상을 떠나고 한 달이나 지나서야 나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그때서야 슬픔이 가슴을 북처럼 두들겨댔다. 세상을 버린 엄마가 가엾다는 생각을 그제야 했다. 그전에는 무섭다는 생각만 했다. 시체가 되어버린 엄마가 무서웠고,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 내게만 의지하는 것도 무서웠고, 엄마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당당하게 우리 집 현관에 구두를 벗어두는 그 여자의 얼굴을 보는 것도 무서웠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세상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다 식은 풀빵처럼 후줄근해져서 내 옆에 달라붙어 있던 동생이 없었더라면 난 그때 정말 도망쳤을지도 모른다.

 

스르르 무너지듯 다시 주저앉은 아버지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딱히 할 말을 찾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정지버튼을 누른 듯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한참을 멈춰 있었다. 내가 던진 말을 이미 충분히 후회하고 있던 나는 숨을 죽이며 모든 것이 그저 지나가길 바라고 있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떠밀려 가는 나무들처럼 뒤로 뒤로 빨리 사라져가길 바랐다.
“네 엄마 수술비가 좀 많이 나왔다. 여유가 있으면 좀 빌려줬음 좋겠다. 언제 갚을 수 있다는 장담은 못한다. 못 갚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디 가서 얘기할 데가 없었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등록금이 없어 휴학을 하게 됐을 때 일주일을 고민하다 아버지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달큼한 향이 폴폴 나는 참외를 깎고 있던 그 여자는 내 눈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한 학기 정도 휴학하는 일이 뭐 큰일이냐고. 그때 아버지는 고개를 돌린 채 끝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속울음을 삼키며 서걱서걱 참외만 씹고 있었다.

 

“계좌번호나 적어두고 가세요.”
아버지는 한결 개운해진 낯빛으로 가뿐하게 일어나 현관 쪽으로 걸어 나갔다. 늙은이처럼 주름이 잡힌 뒷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한번도 돌아보지 않고 문을 나서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작고 까칠해 보였다.

 

출근시간이 이미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침대 속에서 꼼짝할 수가 없다. 부지런한 편에 속하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맘대로 결근이나 하는 불성실파에 속하지는 않는다. 심하게 아파서 두 번 결석한 걸 빼면 학교 다니는 내내 별로 결석 한 적도 없다. 그런데 아무 이유도 없이 출근을 미룬 채 침대에 누워 있다. 당황스럽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면 적당한 걸까. 꾀병 부리는 어린아이처럼 버티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 참 당황스러웠다. 이불 밖으로 발가락을 하나 꺼내 보았다. 어딘가에서 도끼라도 날아와 내 발가락을 찍어버릴 것 같아 얼른 다시 집어넣었다.


전화벨이 신경질적으로 울렸다. 심장이 폭풍우 만난 숫말처럼 날뛰었다. 받을 수가 없었다.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세 번이나 끊겼다가 다시 울리는 질긴 벨소리를 들으면서도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은 이미 내 것이 아니었다. 아예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내가 내리는 어떤 명령도 듣지 않겠다는 듯 완강하게 버티는 내 몸뚱아리를 할 수만 있다면 던져버리고 싶었다. 벨소리 고문에도 점점 익숙해질 즈음 먹장구름 번지듯 빠르게 잠이 몰려왔다. 아무것도 생각하기가 싫었다. 밀려오는 잠을 붙잡고 저 캄캄한 우물 속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다시 올라올 수 없다 해도 상관없었다.

 

12시가 넘어서 겨우 다시 일어났다. 타이어라도 등짝에 매단 듯 몸이 너무 무거웠지만 겨우 일어나 씻고 화장을 하고 출근할 준비를 마쳤다. 그것만해도 대단한 일을 한 듯 잠시나마 자신이 대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예상대로 과장한테 왕창 깨졌다. 그따위로 할거면 시집 가서 애나 보라는 다소 과격한 발언을 그냥 받아넘겼다. 무어라 대거리를 할 기운이 부족했다. 죄송하다는 말을 두 번쯤 더 하고 나서야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옆창구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팻말을 옆으로 치워놓고 잠깐동안 입술을 억지로 움직여 표준화된 미소를 짓는 연습을 했다. 그리고 부산행을 시작으로 티켓을 끊어나가기 시작했다. 눈과 손만이 살아 있는 듯 바쁘게 일을 하다보니 어느새 내게 들이닥쳤던 무력감은 완전히 사라진 듯했다. 그저 몸이 좀 안 좋았을 뿐이고 이젠 괜찮아진 거라고 생각해도 될 듯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날 아침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평생 샤워를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처럼 머리 속으로 샤워를 어떻게 해야 하나 30분이 넘게 고민했다. 일단 욕실로 가야 해. 그리고 옷을 벗고 샤워기를 트는 거야. 그 다음엔 머리를 감는 거지. 일단 물부터 적시고 샴푸로 거품을 내서 씻고 잘 헹궈내야 해. 머리를 감고 난 다음엔 몸을 씻어야 해. 라벤더향이 나는 바디크렌저로 거품을 잘 내서 씻으면 돼. 머리 속으로 순서를 열두번이나 되짚어서 반복해 보았지만 자신이 없었다. 도저히 욕실까지 갈 자신이 없었고, 그 복잡한 과정들을 정확하게 해낼 자신이 없었다. 참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내가 처한 현실이었다.

 
토할 것 같았다. 난파선에 올라탄 듯 대책 없이 뒤집히는 뱃속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 얼굴이 식초에 절여놓은 무처럼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만 욕실까지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분수처럼 밖으로 뛰쳐나오려 하는 것들을 더 이상은 막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그 자리에서 토해 버렸다. 어제 저녁에 먹은 우동가락이 미처 소화되지 못한 채 뚝뚝 끊어져 마치 구더기처럼 방바닥에 널브러져 있는데 그걸 차마 치우지도 못하고 피하지도 못하고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눈물이 났다.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대책 없이 눈물이 났다.

 

질질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대충 훔쳐내며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저 와달라고만 했다. 영준이네 학교 급식당번이라 바쁘다며 동생은 나중에 가면 안되냐고 했다. 나는 무작정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이럴 수 있어. 엄마 돌아가시고 나서 너 먹이고 씻기고 한 사람이 누구야. 그 여자가 너 버릇 가르친다며 툭하면 매질 할 때 막아서서 바람막이 해준 사람이 누구야.”
왜 이런 말을 하는지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서운함이 목구멍까지 들어차서 어쩔 수가 없었다. 결국 협박 아닌 협박이 효과가 있었던지 동생은 만사를 다 제치고 달려왔다.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들을 아무 말 없이 치우고 나더니, 눈물로 뒤범벅이 된 얼굴을 무릎 사이에 박고 있던 나를 끌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품을 잔뜩 낸 타월로 온 몸을 구석구석 씻어 주었다. 집 없는 고양이처럼 돌아다니던 동생을 내가 씻겨 주었던 것처럼. 거품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섬짓섬짓 솜털이 돋을 것 같았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샤워를 해보는 사람처럼 두렵고 떨렸다. 샤워기의 물이 입 속으로 한꺼번에 들이닥쳐 숨이 막혀 버리면 어떡하나 더럭 겁이 났다.
“아무것도 못하겠어. 그냥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들어. 무서워. 몸이 자꾸 떨려. 무서워서.”
“언니 괜찮아질 거야. 겁내지 마. 그냥 몸이 좀 아픈 것 뿐이야.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어.”
“내가 도대체 무슨 병에 걸린 거니? 넌 알고 있지? 죽을 병이야? 나 죽는 거야?”
“아니야. 그런 거. 내가 보기엔 우울증이 좀 온 것 같아. 요즘 기분은 좀 어땠어? 가라앉지 않았어?”
2주전부터 기분이 가라앉기는 했었다. 짜증이 좀 자주 났고 별 것 아닌 일에 동료에게 화를 내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생리전증후군일 거라고 생각했다. 으레 생리 전엔 우울해지고 힘들었으니까.
“스트레스 받거나 힘든 일이 있었어? 하긴 특별한 원인도 없이 우울증이 오기도 하니까... 언니 나도 작년에 참 힘들었었어. 언니한테도 얘기한 적 있었지? 나 셋째 낳고 살이 엄청 쪘잖아. 한 6개월 지나면 빠질 줄 알았더니 더 찌는 거야. 날마다 몸무게가 느는 것 같은데 아주 미치겠더라. 사람 만나는 것도 싫고, 밖에 나가기도 싫고, 그저 죽고만 싶었어. 애도 팽개쳐두고 거두질 않으니까 박서방이 이상하다 싶었는지 병원에 끌고 가더라고. 처음엔 저 인간이 날 미친년 취급하나 싶어 기분이 참 나빴는데 병원에 갔더니 글쎄 우울증이래. 약을 한 6개월쯤 먹었나봐. 나는 증상이 심한 편은 아니래. 그래도 방심하면 안되고 꾸준히 관리해야 한대. 언니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어. 우울증도 내림병인가. 엄마한테서 물려받은 병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

 

돌아누워 있던 엄마의 등이 떠올랐다. 세상을 향한 모든 문을 단단하게 닫아 건 듯 딱딱하게 옹이져 누워 있던 엄마의 등이 떠올랐다. 결국 나도 엄마처럼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될까. 엄마를 가둔 덫을 나 역시 피할 수 없는 걸까. 두려움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그랬다. 두려움이 내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도 지하철도 더 이상 안전하지가 않았다. 거리를 걷는 즐거움도 빼앗겨버렸다. 아니 거리를 걷는 즐거움만이 아니라 모든 즐거움을 빼앗겨 버렸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해물나베우동을 먹어도 오래 삶아 다 늘어진 팬티고무줄을 씹는 것처럼 역겹기만 했다. 관객 천만명이 들었다는 영화를 봐도 졸음만 밀려왔다.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와도 녹슨 못처럼 윤기 없는 목소리로 서둘러 끊기 바빴고, 동생이 어렵사리 둘만의 여행을 가자고 제안해 와도 귀찮다며 손사래를 쳤다.
끝도 없이 기분이 계속 가라앉기만 했다. 물 먹은 솜처럼 자꾸만 무거워져가는 팔다리 때문에 걸을 때도 어정쩡하게 팔다리를 질질 끌고 가는 것 같았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그것은 말 그대로 생각뿐이었다. 아무리 해도 내 기분을 내가 조절할 수 없다는 참담함만이 돌아왔다.
모든 것은 그대로인데 내 안에 있던 행복만이 사라져버렸다. 그랬다. 세상은 여전히 아무 일 없는 듯 잘 돌아가고 있는데 나만 변해버렸다. 나는 사라지고 대신 괴물 하나가 내 자리를 차지했다.

 

동생의 손에 질질 끌려 병원에 갔다. 카페처럼 인테리어에 잔뜩 공을 들인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간호사가 맞춤 제작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커피도 있고 녹차도 있으니 입맛대로 골라 마시라고 했다. 그저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시선을 돌렸다. 목이 말랐다. 하지만 정수기까지의 거리가 100미터는 되는 듯 느껴졌다. 귀찮았다. 그냥 침만 꼴깍꼴깍 삼키며 앉아 있었다. 10분쯤 후에 진료실로 초대되었다. 의사의 얼굴은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푸석푸석한 얼굴을 슬쩍 뒤로 감춘 채 직업적인 친절함을 성의 없이 가운 위에 걸치고 앉아 있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나마 호주머니에 찔러 넣고 왔던 작은 기대마저 접어 넣었다.
오전과 오후의 기분은 어떻게 다른가. 어떤 일에 대해 웃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자신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아는가. 수면 패턴과 욕구들에 변화가 있었는가. 의사는 연달아 질문을 던졌고 나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요즘엔 좋은 약들이 많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은 3개월 정도 약물치료를 해봅시다. 그러고 나서 경과를 보고 어떻게 할지 결정합시다. 마음을 편하게 가지세요. 참 임신가능성은 없으시죠?”
“네? 전 아직 미혼인데요.”
“가임기 여자분들에겐 통상적으로 하는 질문입니다.”


의사가 처방한 약이 어떤 효능이 있는지 어떤 부작용을 일으킬지 아무것도 모른 채 약봉지를 한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젠 저 약들이 내 일상을 지배하겠구나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나사못으로 천천히 조이는 것처럼 혹은 산 채로 서서히 말라가며 미라가 되는 것처럼 머리에 가해지는 압력이 점점 커져갔다. 12시간을 계속 잤다. 꿈 속에선 빛이 다 사라진 캄캄한 곳을 무릎으로 기어 돌아다녔다. 무릎이 다 까지도록 기어다니면서 무언가를 찾아 헤맸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야 나는 바닥이 온통 깨진 유리 조각 투성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순간 갑자기 주위가 환해졌다. 거울 조각들에 비친 일그러진 내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그리고는 손을 내밀어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선명한 붉은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눈을 떴을 땐 새벽이었다. 곧 해가 뜨려하는지 어슴프레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내 우울증이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했다. 내 인생에 별 불만은 없었다. 남들 눈에야 뭔가 부족한 듯 보이는 서른다섯 노처녀지만 결혼에 대한 환상도 기대도 별로 없는 나는 대체로 만족했다. 나이에 떠밀려 그냥 남자친구와 같이 살아볼까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이미 열정이 다 식어버렸는데 미지근한 방바닥에 조금 남은 온기를 부여안고 살아가기는 싫었다. 그의 이별선고는 그래서 섭섭하긴 했지만 그다지 충격적인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대체 이유가 뭘까.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유도 모른 채 이 지독한 녀석을 체념하듯 받아들여야 한단 말인가. 이유라도 알면 속이라도 시원할 것 같았다. 평생 약봉지가 내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약 없이는 정상적인 기분을 유지할 수 없게 된다면, 여행을 가든 어디를 가든 약봉지를 주렁주렁 매달고 갈 수 밖에 없다면 그건 더 이상 내 인생이 아니라 약의 인생이 아닌가. 약에게 주인 자리를 내주고 나는 노예처럼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나는 완전히 지쳐 버렸다. 삶을 접고 싶었다. 시든 배춧잎처럼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그만 여기서 마감하고 싶었다. 빛이 완전히 꺼져 버린 암흑세계에서 나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지금 이 시간이 자살하기엔 딱 좋은 시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자살을 하기로 결심하고 나자 마음이 급해졌다. 영화나 책에서 본 수많은 자살방법들을 떠올려보았다. 손목을 긋는 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피를 본다는 것도 찜찜했고. 옥상에 올라가 떨어질까도 생각했지만 머리가 깨진 내 모습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너무 끔찍했다. 그렇다고 목을 매는 건 너무 오래 고통받을 것 같았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한 가지. 수면제나 독극물을 사용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일단은 수면제나 독극물을 손에 넣는 일이 문제였다. 마음이 급했다. 언제 약을 사서 모아 자살을 한단 말인가. 병원에서 타온 약봉지를 죄다 뜯어 수면제만 골라냈다. 일단 입에 털어 넣고 물을 마셨다. 그 다음 생각했다. 이렇게 내 인생의 마침표를 내 손으로 찍어버리는구나. 엄마처럼. 눈물이 났다. 엄마를 별로 그리워하지 않는 척 살았는데 눈물에 얼룩져 질질 흐르는 마스카라처럼 흉하게 다 드러나고 말았다.  오랜만에 엄마를 위해서 울었다. 엄마가 버리고 떠난 나를 위한 눈물이 아니라 나를 버리고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엄마를 위한 눈물이었다. 엄마를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나는 중얼거렸다.

 

잠이 왔다. 눈꺼풀이 너무 무거워 견딜 수가 없었다. 뱃속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음식물쓰레기통이라도 뱃속에 들이부은 듯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뱃속이 발효가 되는 것처럼 쿨렁거렸다. 네 발로 방바닥을 기어다니다가 결국은 왈칵 토해내고 말았다. 띄엄띄엄 죽 사발을 엎은 듯 방바닥은 축축하고 미끌미끌했다. 온 몸이 떨렸다. 배가 터져 죽은 개구리처럼 사지를 뻗은 채 나는 방바닥에 엎드렸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죽음이 다가와 서성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응급실이었다. 그리고 살아 돌아온 나에게 기막힌 소식 하나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뱃속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가 안 보는 사이에 마당 한 켠에 떨어진 완두콩이 싹을 틔우고 저 혼자 쑥 자라 올라오는 것처럼, 하나의 생명이 그 약하디 약한 뿌리를 내리고 살아남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죽으려 했고, 그 작은 생명은 살려고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던 거다. 죽으려 했던 나는 살아났고, 살려고 했던 그 생명은 죽었다. 내가 그 어린 것의 생명을 훔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은 미처 준비되지 못했고, 속에선 자꾸 쓴 물이 넘어왔다.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가슴을 부여잡았다.

 

다시 해가 뜨고 뻔한 일상들이 지루하게 반복되었다. 약봉지를 끼고 살아가는 일이 자랑스러울 것도 부끄러울 것도 없는 일상이 되어갔다. 여전히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시간 나는 대로 소설을 쓰려고 노력하지만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무기력감, 불안, 두려움 같은 녀석들이 수시로 찾아와 내 곁에 드러눕는다. 아예 며칠이라도 머물다 가려는 듯 베개까지 챙겨오는 독한 녀석들이다. 나는 그 녀석들과 친구하기가 싫다. 하지만 쫓아도 꾸역꾸역 또 찾아오는 녀석들을 나로선 당해낼 재간이 없다. 많은 것이 변해 버렸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아마 잘 찾아보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