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門)
- 작성일 2007-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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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었어. 문은 사방 어디에도 다 있는 거였어. 출생의 순간 열어보고는 죽을 때나 또 한번 열 수 있는 것이 문인지 모르겠어. 아마 그럴지 몰라. 생사의 문만은 의지와 상관없는 것이거든. 의지를 내세우는 한 문은 마치 절벽처럼 굳고 높은 것이야.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상 그런 문을 피할 수는 없는 법이지. 아무리 피해도 문은 또 앞에 늘 서있는 것이거든. 문 앞을 서성거리며 혹은 두려워하고, 혹은 망설이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인지 몰라. 한 남자가 있었어. 남자는 서른하고도 몇 살인가를 더 먹었는데, 컴컴한 새벽을 휘적휘적 걷고 있었어. 특별히 잘생기지도, 잘난 능력도 없는 남자는 비쩍 마른 몰골을 한 몸마저도 볼품이 없었어. 남자는 작은 손칼을 하나 주머니 속 손에 꼭 쥐고 있었는데,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돌아 서늘한 느낌마저 주는 날이 선 것이었어. 그건 일종의 허세처럼 보였어. 십 년이 넘도록 지니고 있었어도 실제로 사용 할 일은 거의 없었거든. 때마다 정성스럽게 갈아 날을 세워왔을 뿐이었어. 남자는 술에 취한 것처럼 다리에 힘이 풀린 상태로 기차역 앞 광장을 어슬렁거리며 걸어왔어. 한 창녀가 남자에게 손짓을 했어. 남자는 별 망설임 없이 창녀를 뒤따라갔는데, 그건 결코 우연한 만남이 아니었어. 필연적인 것이었지. 탯줄을 끊는 순간 세상에 던져져 손닿지 않는 이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필연적인 것이었어. 그때 남자의 내면은 비척거리는 몰골과는 사뭇 다른 강한 목소리로 그에게 배설을 요구하고 있었거든. 창녀는 폐병 환자처럼 창백한데다가 깡마른 것이 남자나 별다름 없었어. 그런 쪽의 일을 하기에는 자격미달의 얼굴과 몸집이었지. 그래서 이 창녀의 모습이라는 것은 오히려 밥맛이 떨어질 만큼 추하게 느껴지는 것이었어. 운이 나빴는지 몰라. 그러나 남자는 실망하지 않았어. 남자의 현실이라는 것이 늘상 그랬기 때문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을 거야. 아름다운 여자였지. 남자가 역 앞 광장을 향하여 걷는 내내 줄 곳 무의식 속에 도사리고 있던 존재는 이미 까마득히 먼 옛날, 유년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때의 여자였어. 남자가 세상에 난 후 처음 가슴 터질 것 같은 두근거림을 느꼈던 바로 그녀였던 거야. 그녀는 남자에게 빛처럼 투명하게 비쳐지는 존재였어. 저만치 멀리에서라도 그녀의 모습이 나타나기만 하면 남자는 턱 막혀버린 숨을 쉬기 위해 한동안 애를 써야 했어. 손에 닿지도 가까이 할 수도 없는 존재였어. 남자의 눈앞에 언뜻 비쳤다가 숨통만 잔뜩 막아놓고 사라지는 향기 같은 존재였어. 봄을 눈부시게 열어 놓고는 정작 자신은 쉬 사라져버리는 목련꽃처럼 아쉬운 그런 존재였지. 남자는 홀린 것처럼, 비린 냄새가 날 것 같은 창녀의 그림자를 밟으며 따라갔어. 빛 같이 투명한 그녀는 남자의 무의식 속에 가두어, 그녀를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채 말야. 그녀가 남자의 무의식 속에 갇혀 버린 것은 체념 때문일 거야. 남자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체념하고 있었거든. 그녀에 대한 마음을 체념한 것은 아니었어. 굳이 말하자면 소유를 포기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거야. 남자의 인생이라는 것이 바라는 것과는 항상 달랐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체념 할 수 있었지. 체념을 한다는 것에 관한 한 노련했던 거야. 창녀는 좁은 골목길을 이리 저리 돌아 조그만 쪽문을 열고는 경사가 급한 철 계단을 텅! 텅! 소리나게 밟으며 익숙하게 올라갔고, 남자는 그 소리를 거슬려하며 조심조심 창녀를 따라 올라갔어. 창녀는 왜소한 몸집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강인하며, 그 강인함으로 인해서 자유로운 것처럼 느껴져서 하마터면 창녀를 부러워 할뻔하기까지 했어. 짧은 순간, 거의 찰나에 가까운 동안 그런 생각을 하던 남자는 창녀에게 눈을 흘겨 주었어. 소리의 울림이, 예민한 상태였던 남자에게 자극을 주었거든. 푸른빛이 도는 칼날이 저미듯 살을 베어 들어가는 느낌이 살아왔어. 그때 창녀를 넘어서 철 계단위로 방문이 보였어. 남자의 根은 불끈 머리를 쳐들었지. 아직도 창녀는 철 계단을 텅! 텅! 울려대며 올라가고 있었고, 남자는 코앞에 보이는 방문 안에서 이제 곧 전해질 전율을 상상했던 거야. 창녀를 따라 방에 들어서 문을 닫자 남자는 한숨을 내쉬었어. 외부세계와 차단된 공간에 놓여지자 긴장이 풀린 탓이었어. 그런 것이 양심의 본질인지도 몰라. 혹은 불안으로부터 벗어났다는 안도감일지도 모르지. 때로는 비닐 한 장의 두께만으로도 추위를 가릴 수 있는 법이거든. 남자는 자신의 심리 상태를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어. 나름으로는 명분이 있었어. 그러나 또 한편 잠복한 불안감 때문에 약간 당황하고 있었던 거야. 남자는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낮 선 여인과 한방에, 그것도 침침하고 불그레한 조명의 좁은 공간에 있게 되었어. 창녀는 씻지 않을 거냐고 묻더니, 미처 대답도하기전에 제 옷을 훌훌 벗어놓고 사라져 버렸어. 남자는 머리 속이 텅 빈 것 같은 느낌을 순간적으로 느꼈어. 지남철에 이끌리는 쇳가루처럼 쫓아 왔는데, 창녀가 갑자기 사라지자 잠시 공백 상태에 빠졌던 거야. 비닐 커튼만이 가리운 욕실에서 창녀의 몸에 물을 끼얹는 소리가 쫙, 쫙 하며 들리자 남자는 자신의 머리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정신을 차렸어. 남자가 정신을 차리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불결하다는 생각이었어. 흐릿한 불 빛 아래에서조차 이부자리에 끼인 때가 꾀죄죄했고, 그 위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창녀를 부둥켜안고 射精 해 대었을 것을 생각하자 슬슬 메스꺼워지는 듯도 했어. 남자는 약간 후회하기 시작했어. 아니 후회라기보다는 후회의 방식을 빈 자책에 가까운 것이었어. 무의식 속에 감금되었던 그녀가 불쑥 떠올랐던 거야. 남자는 언제나 가슴앓이만 했을 뿐 그녀에게 단 한발자국도 다가가지 못했어. 그건 초등학교 시절, 처음부터 그랬어. 그녀를 바라보면 숨만 막혔지. 그런 숨 막힘이 그녀를 거룩한 존재로까지 생각하게 했나 몰라. 그녀에게로의 다가섬은 그녀의 순정함을 더럽힐 것 같은 두려움마저 있었어. 늘 바라보는 남자의 마음을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그녀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랬어. 가끔, 아주 가끔 서로 머무는 눈빛을 교환하면서 알 수 있었어. 언제 건 손만 내밀면 그녀가 손을 맞잡아 주리라고 여기게 되었어. 남자가 변함없는 마음으로 그리움을 쌓아가듯, 그녀 역시 남자에 대한 마음을 열고 있다고 믿게 되었지. 마치 비밀을 감춘 것처럼 잠시 스쳐 가는 눈길이었지만, 그 눈길에는 충분히 의미가 담겨있다고 말이야. 창녀의 샤워하는 소리가 들리는 그때 방 한 구석을 기어가는 바퀴벌레가 보였어. 바퀴벌레는 창녀의 방안에서 살고 있었어. 잡식성인 바퀴벌레에게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방안이었지만 그건 사람들의 생각으로만 그런 거였어. 의외로 창녀의 방안에는 먹을 것이 풍부했거든. 많은 사람들이 흘리고 간 피부각질이거나 창녀의 귀지조각, 과자 부스러기, 하다못해 남자들이 뿌려 댄 정액의 마른 찌꺼기들까지 바퀴벌레에게는 훌륭한 먹이가 되었지. 어떤 것이 어느 장소에서 생존하고 있다는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야. 음침하고 습하며 얼어 죽지 않을 만큼의 온도를 항상 유지하고 있는 이 방은, 게다가 먹이까지 그렇게 풍부해서, 바퀴벌레에게는 상당히 훌륭한 서식지라고 할 수 있었지. 그 날 바퀴벌레가 사람처럼 생각했다면, 남자가 창녀의 방을 불결하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 비웃었을 거야. 바퀴벌레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지. 다만 입장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야. 도저히 서로 이해 해 줄 수 없는 생존방식에 대한 입장차이 말야. 그것은 어떤 경우에는 사람들끼리도 그래. 그런 입장차이는 부부간이건 부모자식간에도 있을 수 있어. 하지만 그 차이는 여간해서는 인정되는 것이 아니야. 자신의 입장만 있을 뿐이야. 거기에 이해관계라는 것이 얽히면 사소하게는 다툼이 되고 때로는 전쟁이 되기도 하지. 남자와 바퀴벌레 사이에 그 순간 다툼이나 전쟁은 없었어. 그들은 입장차이만 있었을 뿐 서로 이해관계까지 얽히지는 안았거든. 더구나 남자는 심과 신이 다 지쳐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만일 바퀴벌레가 싸움을 걸어왔다고 하더라도 피하고 말았을 거야. 남자는 자신의 불안을 배설로 해소하려는 무의식적 요구에 떠밀려 거기에 있는 것이었어. 그냥 무의식중 이었지. 그러나 무의식은 늘 의식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되는 것이어서, 바퀴벌레를 바라보는 중에 뱀눈이 떠올랐어. 억지로 딴청을 하고 있었는데 말야. 뱀눈의 생존방식이야 말로 남자와는 바퀴벌레만큼이나 판이해서 입장차이가 분명했던 거야. 그런 뱀눈이 어느 날 갑자기 남자의 인생에 끼어 든 거였어. 머리 속에서 뱀눈을 몰아내야 했어. 느긋하게 방 한 구석을 기어가고 있는 바퀴벌레에게 새삼 증오가 생겼어. 심과 신의 극심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바퀴벌레를 단 한 손질에 납작하게 죽여 버렸지. 어쩌면 이제 무의식의 한구석에 발을 디딘 일종의 자신감이었을 수도 있어. 뱀눈은 남자의 눈에 뜨인 첫 번째부터 남자를 기죽게 했어. 눈의 차가움 때문이었어. 어쩌면 남자가 운수 나빴던 것이었는지도 몰라. 유년의 남자는 고개를 숙여 땅을 보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느 날 무심코 뱉은 침이 그의 발치 앞에 떨어졌거든. 침이 땅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거의 동시에 반짝거리는 구두코를 발견했어.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당시 고등학생이던 뱀눈을 보게 되었지. 그때 살기가 싸 하게 돌도록 차가운 그 눈과 마주친 거야. 남자는 미안함보다는 두려움에 질렸어. 남자에게 뱀눈이 그렇게 처음 눈에 뜨인 후, 이상스럽게도 남자는 그와 자주 마주치게 되었어. 무슨 관계가 맺어진 것은 아니야. 그저 남자는 특별히 눈에 띄는 그를 바라보게 된 것뿐이었어. 그런 우연한 마주침으로 남자는 그가 싸움꾼이고, 또래들 간에는 우두머리노릇을 한다는 것을 알았어.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형편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반짝거리는 구두를 신을 수 있는지도 짐작하게 되었어. 한번은 뱀눈이 싸우는 것을 직접 목격했는데, 그는 번개같이 빠를 뿐 아니라 잔인하기까지 해서 거의 반응을 보이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놓고 쓰러져있는 상대의 얼굴을 질근질근 밟고 있었어. 차가운 비웃음을 흘리며 말야. 뱀눈의 머리에서도 피가 흘러 온 얼굴을 적시고 있었지. 남자는 그 후 더욱 주눅이 들어 그와 마주치더라도 감히 눈을 바라보지 못했어. 숙인 고개를 더 깊이 쳐 박고 그의 구두코를 바라보며 상상만 했을 뿐인데, 상상 속의 뱀눈은 차갑게 남자를 쏘아보는 것이었어. 뱀눈은 그렇게 각인되어 남자를 따라다녔어. 가정형편상 고학을 각오하고 뒤늦게 들어간 대학에서 촌뜨기라고 무시하며 심술을 부려대던 동갑내기 동아리 선배에게서도 그랬고, 새벽 으슥한 시간에 집합을 시켜 이유 없이 매질을 하던 군대 고참의 목소리를 들을 때도 남자는 소리에 묻어 쏘아보는 눈을 보았던 거야. 그것은 제대로 적응도 못한 채 매일 타박만 받던 첫 직장의 홍 대리에게서도 그랬어. 특히 홍 대리는 겨우 취직한 직장을 못 견디게 하여 바닥 생활이랄 수 있는 행상을 거쳐, 택시운전을 하게 된 원인 인물이었어. 억울했어. 남자는 불행을 겪어 낼 때마다 칼을 정성스레 갈았어. 칼을 갈고 있노라면 마음이 진정되었거든. 차분해진 마음의 한가운데는 언제나 빛 같은 그녀가 보였어. 그녀는 문을 굳게 잠그고 저쪽 편에 서 있었지. 잘 갈아 날 선 푸른 칼날에 손가락을 대면, 남자의 마음으로 옮아오는 저릿한 느낌을 느낄 수 있었어. 새삼 뱀눈을 생각하며 득의에 차있는 중에 창녀가 다시 방에 나타났어. 곧 쓰러질 것 같은 파리한 안색에 온 몸은 비쩍 말라 뼈만 걸어 다니는 듯 했지. 홀딱 벗은 몸에 수건으로 자신의 거웃만을 가린 채 한 손은 가슴에 얹고 어색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창녀를 보자 남자는 기묘한 느낌에 사로 잡혔어. 그 느낌을 무어라고 설명 할 수는 없지만, 하여튼 그 순간만은 남자에게 배설의 욕구나 쾌감을 바라는 본능 같은 것은 없었어. 잠시 망각한 거였지. 하기는 존재의 극단적 위기 상황이 아니었거든. 어떤 심리학자의 견해에 의하면, 인간은 극단적 위험 상태에 빠졌을 때 성적인 행위를 가장 우선한다는 거야. 종족 번식을 위한 본능적 선택이라는 거지. 배설에 대한 요구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지금 상황은 그렇게까지 절박한 것은 아니었어. 그래서 대가리를 쳐들었던 根도 풀이 죽은 채 잠시 창녀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일어 날 만큼 여유가 있었던 거지. 본능이라는 것이 단지 쾌락을 추구하는 욕망만으로는 다 설명 할 수 없듯이 인간의 생각으로부터 불쑥 솟아나는 돌발적인 관심 또한 포유동물로서의 인간을 설명하는 한 근거인 것은 부인할 수가 없어. 인간은 꼭 본능에 의해서만 움직이지 않는단 말씀이야. 사실 그것이 인간을 종잡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기도 해. 그러나 만일 창녀가 조금이라도 탄탄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거나, 아름다움의 근처에라도 접근해 있었다면 사정이 달랐을지 몰라. 하여튼 남자는 창녀를 바라다보면서 갑자기 연민이 일어났어. 그것 때문에 지독하게 괴로운 그런 것이 아니고 봄바람처럼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연민이었지. 거룩한 존재인 그녀에게 품은 연민에 비하자면 너무나 하잘 것 없는 것이었어. 그랬어. 빛이며 향기와 같았던 여자아이가 성숙한 처녀가 되었을 때, 그녀의 불행을 목격한 후 남자는 그녀에 대해 끝없는 연민을 키워 온 거야. 세월은 그녀를 닦아내기는커녕 그 두께만큼 남자의 무의식까지 채웠어. 옷을 훌훌 벗어 던진 남자는 몸을 가리기 위해 뒤집어쓰고 있던 창녀의 이불을 들쳐 내고 서로 알몸으로 마주 앉았어. 그리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이대로 진실하게 한번 말해보자.”하고 말했어. “나는 너하고 그 짓을 안 해도 좋아” 하는 말도 했지. 어쩌면 남자는 창녀를 자신의 거룩한 대상인 여인과 혼동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창녀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지. 남자는 평소에 자주 이야기했었어. 비록 창녀라고 할지라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자신은 그 창녀를 부족함 없이 사랑 할 수 있노라고 말야. 남자가 그 말을 남발하듯 사용하기 시작했던 것은 그녀가 이혼을 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였는데, 그녀가 이혼을 당한 까닭이 처녀가 아니었던 탓이라는 유년 친구들의 소문은 신빙성이 있는 이야기였어. 소문이란 늘 상당한 근거를 가지고 퍼지기 마련이거든. 그녀와는 전혀 상관없는 화제로 전혀 다른 상황 속에서 한 말이기는 해도, 남자의 말은 아마도 자신의 상실된 여인, 빛이었으며 향기였던, 자신에게는 거룩하기까지 했던 그녀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거야. ‘비록 창녀라고 할지라도 진실로 자신을 사랑하기만 한다면 자신은 그 여자를 부족함 없이 사랑 할 수 있다’ 는 남자의 말은 진실로 사랑하기만 한다면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가 수없이 많은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인데, 그건 아마도 영혼과 관련된 말이었을 거야. 사실 창녀라고 하더라도 물리적으로 더러운 건 아니잖아. 남자는 그녀에 대해 그렇게 정리한 거야. 하기는 남자의 입장에서 그렇게 밖에는 정리할 길이 없었을 거야. 그리고 그렇게 정리했다면 그녀가 이혼을 한 후에라도 남자는 고백을 해야 했었어. 하지만 그러지 못했지. 오히려 이혼녀가 된 그녀를 한번쯤 건드려보고 싶다는 뜻을 농담인 척 떠드는 친구에게조차 화도 내지 못하고 속만 앓았단 말야. 어쩌면 마음을 들킬까봐서 그랬을 거야. 남자의 여자에 대한 그리움이라는 것은 그런 모순을 가지고 있었어. 수음을 할 때면 늘 그녀를 생각했고, 절정을 느끼고 나서는 죄스러워했거든. 목숨을 바쳐서라도 도와야 했을 때는 머뭇거렸고, 간절히 원하면서도 고백을 못했단 말야. 남자 스스로는 한순간도 잊지 않고 동경해 왔다는 점 때문에 진실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건 일종의 허위의식일 수도 있어. 하기는 단 한번도 그녀의 마음을 확인해 보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기는 해. 창녀는 남자의 복잡한 심리상태를 직감했는지 몰라. 비록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본질을 느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지. 그러나 남자의 느닷없는 진지함에 대해 귀찮아하는 기색은 역력했어. 창녀의 표정은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오늘 정말 재수 없는 날이군” 하고 말하고 있었어. 그랬기 때문에 남자가 애써서 위안을 주려는 노력은 소용없었지. 그것은 그냥 턱도 없는 동정이었을 뿐이야. 창녀는 “어서 끝내고 가야 나는 한 명이라도 손님을 더 받지 이 미친놈아! 날도 새 가는데 재수 없게 별 지랄 다하고 자빠졌어!” 하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거든. 그러나 창녀의 마음 한구석에도 남자에 대한 연민이 있었어. 그건 처음, 남자의 꼴을 멀리서나마 척 보았을 때부터였다는 것이 맞을 거야. 어쩌면 어딘가에서 잔뜩 굶어 마른 몰골로 헤매고 다닐 창녀의 남동생이나 오빠를 연상했는지도 몰라. 그런데 갑자기 남자가 밑도 끝도 없이 자신을 가엽게 여기는 기색이 보이자 불쑥 화가 난 거야. 사람이란 참으로 특이해서 자신이 아무리 비관적 상태에 빠져 있거나 혹은 비관 주의자라고 할지라도 자기 자신 자체에 대해서는 항상 긍정적이거든. 그런 특성이 그들 남자와 창녀에게 자신의 처지보다 딱하다고 여겨지는 서로에게 연민을 갖게 했어. 그런 식으로 남자와 창녀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는 묘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어. 남자는 곧 창녀가 귀찮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 그러나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렇지는 않았어. 자신의 진심이 통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의문만 잔뜩 들었을 뿐이야. 남자는 진심이 통 할 만큼 서로 익숙하지 않은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어. 한편으로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몰라. 입장의 차이란 어느 누구에게나, 사소한 것부터 대단한 차이까지 다 있게 마련이거든. 입장 차이가 있는 한 서로 소통된다는 것은 힘든 일이야. 서로 다른 입장에 대해 이해 할 때까지의 일정한 관계가 필요하지. 그 관계가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계속 이루어짐으로써 비로소 서로 이해가 가능하게 되는 거야. 그러나 첫 번째부터 어긋나게 되면 그들은 영원히 진심을 나누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어. 관계를 유지해 가는 동안의 시간이 필요한 거야. 적어도 진심이 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시간이 필요한 것이란 말이지. 그러니 난생처음, 그것도 육체와 배설을 매개로 한, 거래로 만난 이들에게 진심의 소통이란 불가능 한 건지도 몰라. 하지만 남자는 진심이란 언제 어느 때나 누구에게나 항상 통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 그런데 자신의 진심이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 자신에게 조차 의심이 들지 않았겠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진심이 진실일까 아닐까 하는 의심 말이야. 남자는 잠시 어리둥절했어. 어리둥절함에서 깨어난 건 순전히 의도적인 회피였어. 얽혀진 사고를 정리하는 것은 마치 알렉산더가 매듭을 잘라버린 것처럼 그냥 단절시켜버리면 문제 자체로부터는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거야. 순응함을 익힌 사람들의 교활하고도 현명한 자기 처신 법이지. 남자는 그렇게 했어. 그리하여 연민으로부터도 진심의 문제로부터도 창녀로부터 동정을 받는 묘한 상황으로부터도 자유로워졌지. 그리고는 자신의 본래 목적으로 되돌아 갈 수 있었어. 내내 자신을 졸라대던 배설의 욕구가 되살아 난 거야. 그것이야말로 일관되게 남자의 의식에 요동치면서 목말라하고 요구하던 이른 바 진심이었어. 불과 몇 분, 사고 속에서의 혼돈은 혼돈 일 뿐이었어. 남자는 그때서야 자신의 갈 길을 찾은 듯, 고개를 치켜드는 根을 다시 느끼고 있었지. 창녀는 그렇게 본래의 목적과 태도를 찾은 남자를 다행스럽게 여기는 것 같았어. 그것은 남자에 대한 동정심과는 상관없이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었어. 이미 거래가 이루어진 이상 어서 상품을 넘기고 보내야 했거든. 그리고 또 다른 판매를 위해 시간을 써야했단 말이야. 창녀의 얼굴은 보통보다 많이 추한 쪽에 가까워서 자신에게 목표 지워진 매출에는 시간이 늘 모자랐거든. 남자가 자신을 충족시켜달라고 잔뜩 화가 난 根을 움직여 창녀에게 접근했을 때 문제가 생겼어. 처음이었거든. 남자는 당황했어. "이게 아니네?"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야. 눈앞이 깜깜했지. 당혹하기 그지없었어. 혼자 상상했던 여체와 들어맞지를 않았던 거야. 자신이 상상했던 여체는 단지 관념일 뿐이었어. 지금 현실로 부닥친 여체는 자신에게 문을 열어놓고는 있었지만 남자는 그 문을 찾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런 것은 당연히 아무렇게나 해도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어. 뱀 눈은 너무나 쉽게 그 일을 해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어. 그 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되지 않은 봄 날, 남자는 동네 뒷산의 코끼리 바위에 가 햇볕을 즐기며 책을 읽고 있었어. 그곳은 단지 새소리와 바람 소리만 있을 뿐 세상과는 단절된 곳이었거든. 남자는 자주 세상을 피해 그곳을 찾았어. 남자가 그곳에 가서 책을 읽는 것은 그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이며 기쁨이기도 했어. 세상 밖에서 편함을 구하는 것이야말로 남자의 본질이었는지 몰라. 봄볕이 너무 따가워서 조금 떨어진 숲 속 그늘로 자리를 옮겼어. 코끼리 바위가 빤히 바라다 보였어. 얼마쯤 책을 읽다가 코끝을 살살 간질이는 바람에 취해 깜빡 잠이 들었는데, 얼마나 잤는지도 모르는 곤한 잠을 비명 소리에 깨게 되었어. 아슴아슴한 시야에 꽃잎이 떨어지고 있었어. 빛처럼 투명한 목련 꽃잎이 지난겨울 함박눈처럼 온 하늘을 가리며 떨어지고 있었지. 남자는 순결한 꽃잎이 파르르 떨며 짓이겨지는 것을 지켜보았어. 그녀가 그 날 어쩌다가 거기까지 끌려왔는지 모를 일이지만, 남자는 그 일을 직접 목격하고 만 거야. 뒷목이 뻣뻣해지며 피가 끓어 머리로 몰리는 것을 느꼈고, 그런 흥분은 마치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착각을 줄 정도로 심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일종의 배려이기도 했지. 남자가 불쑥 나타남으로써 그녀가 갖게 될 수치심에 대한 배려 말야. 그러나 그런 배려란 핑계에 불과했어. 진실을 말하자면, 뱀눈이 무서웠던 거야. 남자의 의식 밑바닥은 뱀눈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거든. 뱀눈이 어떤 존재인지를 현실적으로 알고 있었단 말야. 뱀눈에 맞서 그녀를 구한다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었어. 더구나 그런 증오와 분노의 와중에 자신의 根이 술렁거리며 몸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발견 한 남자는 당혹했어. 갓 스물의 왕성한 수컷에게는 당연한 현상이었는지 모르지만 남자는 화가 났어. 그래 이제는 누구에게 화를 내는 것인지 조차 모르게 되어버렸어. 뱀눈은 쉽게 그녀의 문을 열었어. 주섬주섬 바지를 주워 입고,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고는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어. 그녀는 머리를 무릎에 파묻고 앉아 흐느끼고 있었지. 뱀눈이 능글맞은 눈웃음만 그녀의 목덜미에 남겨둔 채 사라지고, 한참이나 어깨를 들썩이던 여인마저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내려가고도 남자는 자리를 뜰 수 없었어. 온 몸이 축축해진 한 밤중이 되어서야 산을 내려 왔지. 그건 꼭 자신의 비겁함에 대한 자책 때문만은 아니었어. 그렇게 격렬하게 저항하던 그녀는 어느 순간, 그녀가 의식을 했든 안 했든, 하얀 팔을 슬며시 들어 뱀눈의 목을 감았던 거야. 그 한순간만은 뱀눈을 받아들인 것이 분명했어. 한 편으로 거부하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받아들인 사실이 남자를 혼란스럽게 했어. 질투와 의문과 분노가 뒤범벅이 되어 혼란하기 그지없었지. 모순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진 않았지만 남자는 애써 외면했어. 억울하기도 했어. 그녀는 이제 손닿지 못할 곳으로 멀어진 느낌이 들었어. 좌절이었지. 첫 번째 좌절이었어. 뱀눈은 그런 식으로 남자의 인생에 끼어 든 거야. 어둑한 산길을 터덜거리며 내려와 조명에 반사되어 유독 반짝이는 작은 손칼을 발견하고 남자는 그것을 샀어. 조명에 반짝거리는 손칼은 위험해 보일 정도로 날이 선 것처럼 착각이 들었는데, 남자는 자신의 머리에 이끼처럼 끼인 생각들을 날카로워 보이는 그 칼로 깎아 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 한 것 같아. 그러나 기대처럼 생각들이 사라지지는 않았어. 남자는 막연하게 뱀눈과 그녀가 결혼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뱀눈은 제법 자금이 든든한 고리대금업자의 외동딸과 염문을 파다하게 퍼트리더니 결국 그 집의 사위가 되었어. 유부녀였는데 말이야. 뱀눈의 방식이었어. 고리대금업자의 사위가 된 후 뱀눈은 장인의 눈에 들만큼 수완을 발휘했어. 빼앗다 시피 돈을 가져가는 뱀눈을 마땅치 않게 여기던 장인도 그가 재산을 늘려 되돌려주는 일이 잦아지자 그를 신임하게 되었어. 뱀눈은 강제와 타협 그리고 술수와 굴종을 두려워하지 않았지. 그런 뱀눈의 방식이 적과 아군을 분명하게 만들었지만 적을 두려워하지는 않았어. 뱀눈은 힘을 지닌 사람들의 편에 속해있었거든. 소수의 적들을 제외한 사람들의 뱀눈에 대한 평판은 장인이 죽고 그가 소유하게 된 여러 가지의 것들과 비례해서 차츰 부러움으로 바뀌었어. 뱀눈은 고향 사람들에게 신화처럼 이야기되었어. 남자가 세상으로부터 조금씩 밀려나는 동안 뱀눈은 그렇게 원하는 것들을 차지해 갔어. 뱀눈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그는 추진력과 친화력을 갖춘 지역사회의 지도자로까지 주목받기에 이른 거야. 창녀가 손으로 남자의 根을 잡아 인도하지 않았다면 남자는 여자에게 질이 따로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을 거야. 수치심을 느끼며 얼굴이 달아올랐지. 그런데 그보다 더 참혹한 것은 창녀의 몸속에 자신의 根을 넣어 하나가 되고서는 단 일분도 되지 않아서 배설을 해버렸던 거야. 그리고는 곧 풀이 죽어 버렸어. 조금 전까지의 상황과는 딴판이었지. 조금 전까지 남자는 불안한 한편으로 자신감이 있었거든. 새벽 한시가 넘어 거리가 한산한 시간에 무방비 상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취한 뱀눈이 남자의 택시에 탔어. 인사불성인 그는 남자를 알아보지 못했어. 늘 세상의 한구석에 숨죽여 지내 온 남자를 어쩌면 처음부터 모르고 있었을지도 몰라. 남자는 뱀눈의 시선을 끌기에는 사실 볼품없는 사람이었지. 그 우연한 마주침 때문에 남자의 가슴은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어. 공포였어. 처음에는 그랬어. 그러나 게게 풀린 뱀눈은 날카로움도 없고, 살기도 없었어. 그저 한낱 주정뱅이의 모습으로 눈곱마저 끼어 있더란 말야. 남자는 사지에 힘이 빠지며 부들부들 떨리는 가운데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끼고 있었어. 뱀눈은 잔뜩 취한 채 지껄이며 과시하듯 명함을 남자의 코앞에 내밀었어. 그건 자신의 허술한 상태를 신분으로 방패막음 하기 위한 본능이 시키는 교활한 술수였어. 그러나 남자에게 그런 술수는 처음부터 필요 없었어. 남자는 뱀눈의 환영(幻影)만으로도 두려워하거나 분노하며 살아왔거든. 남자의 선택은 극단적인 둘 중의 하나 일 수밖에 없었던 거야. 두려움에 도망을 치거나 아니면 사생결단의 작정을 하고 달려드는 것이었지. 그런 상황에서 뱀눈은 만신창이로 취해 건드리기만 해도 쓰러질 지경으로 남자의 눈앞에 있었던 거야. 아침이면 자신을 태웠던 초라한 택시기사의 얼굴 같은 건 기억하지도 못할 거야. 무방비 상태로 널브러진 뱀눈을 눈앞에 두고 남자는 두려움보다는 차츰 화가 났어. 비겁하긴 했지만 힘겨운 상대의 뒷통수를 바라보며 서있을 수 있는 기회는 그다지 흔한 것이 아니었어. 남자는 가벼운 광기마저 느끼고 있었어. 고된 세월을 채운 여러 사람의 얼굴이 한꺼번에 떠올랐어. 증오가 차창 밖 거리의 어둠 속에 날뛰기 시작했어. 혼자 혀 꼬부라진 소리를 몇 마디 하다가 잠들어 버린 뱀눈은 아무런 힘도 쓰지 못 할 것이 뻔했어. 남자의 가슴은 새벽의 적막을 다 깨우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고동치고 있었어. 가슴 뜀은 인적이 없는 강변에 뱀눈의 根이 잘린 몸뚱어리를 팽개치고야 조금 진정되었어. 제대로 반항도 못하고 허둥거리던 뱀눈을 생각하자 코웃음이 나왔어. 그는 허우적거리기만 할 뿐, 몸 하나를 제대로 주체하지 못했거든. 사타구니에 두 손을 쑤셔 넣고 꺽꺽 알아듣지 못할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어. 살아 온 지난 세월이 괜히 서글프기도 했어. 뱀눈의 根을 강물 속에 던져버렸어. 택시를 끌고 거리로 나서자 여러 가지 생각들이 복잡하게 떠올랐어. 무슨 생각인지도 모를 너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채우자 멍해져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어. 그곳이 어디쯤인지도 모르고 차를 버려 둔 채 걷기 시작한 거야. 남자는 참담한 심정이 되어 버렸어. 미처 몸이 합쳐지기도 전부터 창녀는 코 먹은 소리로 교성을 내지르고 있었어. 그 소리는 빈약한 벽을 타고 다른 방에서도 아까부터 나던 소리였는데, 순진한 사람이라고는 하더라도 그 소리의 의미만은 경험과 상관없이 알고 있었거든. 그 소리가 문제였는지 몰라. 너무 빨랐던 거야. 그렇게 허무하게 끝날 줄은 도대체 예상하지 못했었어. 그러나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어. 사실, 남자가 자신감이라 느낀 뿌듯한 덩어리는 진작부터 배설을 재촉하고 있는 거였거든. 남자는 억지를 부렸지만 창녀는 금새 눈치를 채고 일을 마무리해 버렸어. 남자를 밀쳐내고 주섬주섬 옷을 입기 시작했지. 단지 팬티하나를 입었을 뿐인데 창녀는 이미 굳게 닫힌 성문 안으로 숨은 듯 느껴졌어. 남자는 이대로 끝내야하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지만 팬티와 바지, 브래지어와 윗도리를 합쳐 겨우 네 쪽 밖에 안 되는 옷을 창녀는 벌써 다 입어가고 있는 중이었어. 남자도 할 수 없이 옷을 입었어. 문 밖으로 나서자 알몸인 채 쫓겨 나온 것 같았어. 참 이상한 일이야. 쫓기듯 창녀의 방안으로 숨어들었는데, 다시 창녀의 방에서 세상으로 쫓겨난 기분이라니! 새벽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어. 남자는 “젠장......”하고 투덜거렸어. 자신의 생각 속에 비린내 나게 깡마르고 창백할 뿐 아니라 못 생기기까지 한 창녀가 덕지덕지 붙어있다는 것을 알아 챈 거야. 또 남자는 뱀눈의 根을 버린 것보다, 참담하나마 배설을 하면서 더욱 후련했었다는 사실도 눈치 챘어. 붉은 색조로 뿌예지는 새벽 여명을 바라보며, 자신의 확신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그녀에게 고백하지 못할 것 같은 예감을 했는지도 몰라. 문은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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