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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받지 못한여자

  • 작성일 2007-01-08
  • 조회수 758

 

어차피 알고 있었다.

어차피 나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라는 것을

 

자랑은 아니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 특기가 있다. 특기라 하며 말을 하면 마치 내가 무언가 자랑을 하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정말로 나는 자랑삼아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진지하게 들어주길 바란다. 나의 특기는 바로 [눈치가  빠르다는 것] 다르게 이야기 하자면[ 감이 좋다는 것] 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이것은 정말로 자랑이 아니다. 이것은 어쩌면 나에게 있어서 저주와도 같은 것이다. 나는 이 빌어먹을 재주 때문에 내가 허락받지 못한 여자라는 것을 너무나도 일찍 알아버렸으니까.

 

기억은 외곡 되고, 번지고, 침식되고, 갈라지고, 망가지고, 부숴 지고 썪고, 말랑말랑해지고, 곡해되고, 퇴적된다. 하여간 내가 기억하기로  내가 제일처음 감을 잡은 것은...그러니까 내가 허락을 받지 못한 여자가 아닐까 하고 눈치 채게 된 것은, 빌어먹게도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유치원 때였다. 아니 아마도 유치원 때였을 것이다.

 

그날 유치원에서 간식으로 나온 빵은 너무나도 맛이 없었다. 사실 빵 자체를 싫어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물컹한 식감에 내가 싫어하는 건포도가 잔뜩 박힌 빵은 도저히 내가 먹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기에 나는 그 빵을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유치원선생님에게 간식으로 나온 빵을 먹지 않고 버렸다는 것을 들키면 혼이 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빵을 손에 쥐고 집으로 달려갔다. 우리 엄마는 건포도를 좋아했다.  이 빵을 엄마에게 주면 엄마는 기뻐할 것이다. 엄마를 위해 남겨왔다고 말을 해야지 그러면 나는 엄마에게 칭찬을 받겠지, 그리고 맛없는 건포도 빵을 먹지 않아도 된다. 모두가 행복해 질 것이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러나 짧은 다리와 작은 발을 열심히 움직여 도착한 우리 집은 여느 때와 조금 다른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시간이면 아빠는 회사에 가고 집안에는 엄마밖에 없어야 하는데 현관에는 커다란 남자 신발이 엄마의 신발 옆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우뚱 했다. 그리고 한손에는 빵을 쥐고 엄마를 찾으면서 집안을 돌아다녔다.

"엄마!!! 나왔어요!! 어디 있어요 엄마?"

 

작은 몸으로 소리를 쥐어 짜내면서 집안을 돌아다녔다. 정말로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던 것 같다. 하지만 엄마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질렀는데도 말이다, 내 소리를 못 들었을 리가 없는데..... 의아해 하며 나는  안방 문을 열었다. 거실에도 내방에도 엄마가 없었으니, 아마도 엄마는 안방에 있으리라,... 아마도 안방에서 청소를 하거나 ,음악을 듣느라 내가 부르는 소리에 대답을 못하신 걸꺼야, 그런 엄마에게 건포도 빵을 쥐어드려야지, 엄마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하고, 내 빵을 받아 먹을 것이다....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안방으로 달려갔다.

 과연 그곳에는 엄마가 있었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보며 웃어주지 않았다. 아니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엄마는 벌거벗고 있었다. 엄마의 작고 약간 쳐진 가슴과 유난히 까만 유두가 내 눈에 들어왔다. 마치 내가 싫어하는 건포도 같아서, 나는 순간적으로 잠깐 현기증이 났다. 그리고 엄마의 아래에는 또 한명의 벌거벗은 누군가가 있었다. 아빠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였다. 처음 보는 아저씨였다. 우리 아빠는 검고 짧은 까칠 거리는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반해 아저씨는 남자인데도 불구하고 귀를 덮는 길고 갈색 빛을 띄는 곱슬머리를 하고 있었다. 출렁이는 머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아빠는 볼록하고 튀어나온 배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의 배는 아주 납작하고, 그리고 울퉁불퉁했다. 마치 거북이 등껍질 같은 아저씨의 배는 `아주 멋있었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베게를 던진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건포도 빵을 떨어뜨렸다.

건포도 빵은 내 손을 벗어나 떨어지면서 [파사삭] 하는 소리를 냈다. 물컹물컹한 빵이었는데 어째서 떨어질 때에 파사삭 하는 소리를 냈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그날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눈치가 빠른 편이다 ,감이 좋은 편이다. 그래서 그 일을 아빠나 다른 누군가에게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냥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내가 본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게 옳은 것 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니까, 그냥.

 

그러나 엄마는 그날 이후로 나를 피했다. 나에게 웃어주지 않은 것도, 맛있는 것을 만들어주지 않은 것도, 안아주지 않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날이후 엄마는 어딘가 어색하게 나를 대했다. 언제나 내 눈치를 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를 쓰다듬어 주는 엄마의 손은 분명히 예전과는 달랐다. 아무리 가깝고, 끈적하게 나를 쓰다듬어도 끈적함 뒤에 느껴지는 건조한 뒷맛은 나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나는 외로워 졌다.

 

그래서 나는 그 일이 있은 지 한 달 정도 후에 엄마가 나에게 사과파이를 간식으로 주면서 우물쭈물 나의 눈치를 살피면서

"저기 아가야, 지난번에 말이야...네가 유치원에서 일찍  온 날...그날 기억나니?..그때에..."

이런 질문을 했을 때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사과파이 껍질을 입에 넣으면서

"응? 엄마? 무슨 말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하고 대답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한번 한숨을 쉬더니 나를 안고 쓰다듬어 주었다.나는 사과파이 안에 건포도가 들어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지만 뱉지 않고 맛있다는 듯이 사과파이를 목구멍으로 넘겼다. 엄마의 몸에서는 달콤한 향내가 났다. 하지만 그 향내는 달콤하면서도 너무나도 건조했다. 그리고 나는 새삼 내가 허락받지 못한 여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 한다 아가야"

"응 엄마 나도"

"넌 똑똑한 아이야.."

"......"

"그렇지?"

"네..엄마"

 

그리고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엄마의 배가 불러왔다. 주위 사람들은 나에게 웃으며 엄마는 임신을 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예쁜 동생이 태어날 것이라며 축하한다고 나에게 말했다. 엄마의 임신소식을 접했을 때에 엄마는 다시 한 번 나를 불러 말했다.

 

"동생이 태어날 것 이란다"

"네 엄마"

"예뻐해 줄 수 있지? 그치 아가야?"

"네 엄마"

"그래 너는 착한 아이니까.."

"....."

"그렇지?"

"네 엄마"

 

그리고 다시 몇 달이 지나, 엄마는 동생을 낳았다. 그 아이는 축복을 받으며 태어났다. 구불구불한 곱슬머리를 가지고,


동생이 태어나던 날 밤을 기억한다.

엄마는 소리를 지르며 병원으로 실려 갔다.

아빠는 엄마의 이마를 짚으며 발을 동동 굴렀다.

할머니는 내손에 만 원짜리 한 장을 쥐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얌전히 있어"

나는 그 돈을 손에 받아 쥐고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나의 시야는 점점 투명하고 흐릿해졌다. 흐릿해 져 가는 시야 틈으로, 호들갑을 떨며 엄마와 함께 현관문을 나서는 가족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우리 집안에 홀로 남겨졌다.

거실에 앉아 무릎을 구부려 고개를 파묻고 웅크리고 있는데, 시곗바늘 돌아가는 소리가 내 귀를 간지른다. 그날은 유난히 시계바늘이 큰 소리를 내면서 느릿느릿 돌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똑] 하고 무언가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으면 한참이 지나서야 [딱]하고 무언가 부딛치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다시 한참이 지나서 [똑] 그리고 다시 한참이 지나서[ 딱] 그렇게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마치 내 몸도 저 시곗바늘의 움직임에 따라, 똑,딱,똑,딱 하고 분절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어느 사이엔가 잠이 들어버렸다.

 

그것이 내 동생이 태어나는 밤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엄마는 아빠의 품에 안겨 내 동생을 안고 집에 돌아왔다. 할머니는 옆에서 호들갑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하이고오..어찌 그래 잘 낳았댜. 고생도 별로 않고"

"호호호..글쎄요 아가가 복덩이인가 보죠 첫아이 낳을 때에는 열 시간 넘게 고생했는데 이 아이는 그냥 힘 줄 틈도 없는데 나오더라고요"

"아가가 아주 이쁘당가"

"그렇지요 어머니 ....호호호"

"하여간 몸조리 잘혀, 아무리 고생 안했다 해도 몸 푸는게 쉬운 일이여?"

"괜찮아요 어머님, 정말로 오늘부터라도 집안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뭐"

"아이고..아가!! 그냥 있어, 그냥"

가족들은 내가 있다는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허락받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아가는 쑥쑥 자랐다. 아주 예쁘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다. 그녀의 피부는 우유같이 하얗고, 길고 가는 다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녀의 하얀 피부를 덮는 허리까지 내려오는 구불구불한 갈색머리는 그녀의 자랑이었다.

 

할머니는 아름답게 자라난 둘째 손녀를 흐ant하게 바라보면서 말씀하시곤 했다.

"하이고, 계집애, 어찌 저리 이쁘당가, 그나저나 어미도 직모고, 지 아비도 직모인데 어찌 저리 이쁜 곱슬머리가 나왔당가?"

그러면 엄마는 할머니에게 방금 깎은 사과를 쥐어드리며

"왜, 제 어머님이 곱슬머리셨잖아요..호호"

하고 능청스럽게 대답을 하곤 했다.

 

하여간 내 동생은 참으로 예쁜 아이였다.

그리고 머리가 [아주] 나쁜 아이이기도 하고 말이다.

 

외모가 아주 뛰어나고, 머리가 아주 나쁜 내 동생은 겉으로 보기에는 마치 우리 엄마의 걱정거리 같아 보였다. 유치원 때에는 그렇다 치고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부터 엄마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언제나 꼴지는 맡아놓은 당상이었고,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는데도 자신의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했다. 게다가 4학년때 놀이터에서 이상한 아저씨가 과자를 사준다는 말을 듣고 그 아저씨를 따라갔다가, 가랑이 사이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울면서 집에 돌아온 그 날 이후부터 엄마는 한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엄마는 항상 그녀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엄마의 걱정 꺼리이자, 골칫덩어리였다. 아니 골칫덩어리 인 것 같아 보였다.

 

그에 반해 나는 엄마의 별이었다. 아니 별이라고 엄마는 나를 보면서 말을 하곤 했다.

"우리 아가는 공부를 잘하네 넌 엄마의 별이야"

나는 엄마의 별이었다. 아마도

 

수학경시대회에서 일등을 하고 돌아오자 엄마는 방긋 웃으며 나에게 동생이 먹다 남긴 초콜렛 쿠키를 쥐어주었다.

"난 네가 자랑스럽구나 예쁜 우리아가"

초콜렛 쿠키에는 역시 건포도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냉장고 문을 열고 멜론을 깎아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나는 멜론을 졸아하지 않는다, 멜론을 좋아하는 것은 내 동생이다.

그래도 나는 잠자코 멜론을 씹어 삼켰다.

엄마는 그런 나를 자랑스러운 듯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가는 말썽 안 부릴 수 있지?잘 할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가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지? 엄마에게 잘 할 수 있지?"

나는 입안에 남은 멜론찌꺼기를 목 안으로 넘기면서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목안이 건조해졌다.

 

동생이 이상한 아저씨에게 끌려가 가랑이 사이로 피를 흘리며 돌아온 날 엄마는 동생의 등어리를 때리면서 서럽게 울며 그녀를 안았다. 동생은 파르르 떨면서 쓰러졌다. 엄마는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밤이 새도록 그녀의 침대 곁에서 그녀를 지켰다. 차가운 수건을 가져와 그녀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고, 쌕쌕 숨을 쉬며 잠든 그녀의 이마에 쉴 새 없이 키스를 해댔다. 그리고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남자 근처에도, 가지 마 ,너까지 엄마 속 썪이지 않을꺼지? 넌 똑똑한 아이니까 엄마가 무슨 말 하는지 알거야"

"응..알아요 엄마 "

나는 그렁그렁 눈물이 맺친 엄마의 눈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그러나 엄마는 내 다답을 듣는둥 마는둥 하고, 다시 동생에게로 눈을 돌려 그녀를 쓰다듬었다.

 

"바보같은 년....바보같은 년...."

엄마는 그렇게 밤이 새도록 그녀를 쓰다듬었다.

나는 그러는 엄마를 한참동안 쳐다보다가 , 이불을 끌어안고 잠이 들었다. 내가 엄마와 곱슬머리 아저씨가 섹스하는 것을 본 날, 그날 엄마의 이글거리는 눈 속에는 건포도 빵을 움켜쥐고 바르르 떨고 있는 내가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 날 이후로 엄마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엄마 말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고, 남자 근처에도 가지 않는 착한 아이로 재내는데도 말이다....

 

나는 건조함을 느끼면서 나의 방으로 가서 잠이 들었다. 나의 방으로 가던 중 얼핏 훔쳐본 동생의방에서는 아직도 옅은 불빛과 함께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세어져 나오고 있었다. 어두운 복도 틈으로 살짝 세어 나오는 주황색의 빛은 마치 천국의 빛 과 같다, 건조하고 어두운 이곳과는 달리 그곳은 촉촉하고 따뜻하겠지....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꿈속에서 나는 눈이 멀어있었는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곳에는 그저 검은 허공만이 존재했다. 검고 검기만한 공간에서 아무것도 못하고 방황하며 있는데 갑자기 허공 어딘가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그 목소리는 얇고 ,가늘고,심술맞고,앙칼졌지만,아름다웠다.

 

"넌 허락받지 못한 여자야"

나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 알고 있어!!"

그러자 허공은 시커멓게 웃었다.

나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나도 알고 있어!!!!"

"알고 있어!!!'

"알고 있다구우!!!"

나의 그런 외침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어느 사이 검은 목소리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 굳이 인식시켜주지 않더라도, 나는 내가 허락받지 못한 여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주 예전부터 지금까지 줄곧, 내내 말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부정할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다. 가끔은 내가 바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말이다.


알고 있다.

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

엄마는 허락하지 않는 여자.

그리고 그녀는 허락받은 여자.

그리고 엄마는 허락하는 여자.

 

그녀는 아름답게 자랐다. 정말로 아름답게 자랐다. 원래 예쁜 아이였지만 날이 갈수록 달이 지날수록 그녀의 아름다움은 격해져 갔다. 갈색 곱슬머리는 더욱 출렁거리고 풍성해졌으며, 피부는 하얗다 못해 창백해져 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만 움직이면 볼이 빨갛게 달아오르기에 그녀는 진실로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팔과 다리는 마치 성냥깨비 같았다. 그렇게 가늘고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조금만 오래 걸으면 그녀는 숨을 몰아쉬면서 주저앉곤 했다. 그러며 그녀의 붉은 입술은 더욱 붉어지고, 팔다리는 가늘게 떨렸다. 그것은 정말로 격한 아름다움 이었다.

 

그녀의 그러한 아름다움이 나를 방심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허락받은 여자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불구하고 나는 그녀의 아름다움에 현혹되어 본질을 잠시 잊어버린 것이다.

 

그녀가 더 이상 무엇을 허락받을 리는 없다고

그렇게 나는 방심을 하고 있었다.

실수였다.

 

 

그녀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에, 온 집안은 마치 축제와 같은 열기로 덮였다. 아빠는 회사에서 500송이나 되는 장미꽃 한 다발을 사가지고 들어와 그녀에게 안겨 주었다. 그녀는 징그러울 만치 빨갛고 커다란 장미뭉치를 들고 무거워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할머니는 집에 전화를 걸어 그녀에게 가지고 싶은 게 있으면 뭐든 말하라며 축하인사를 건넸다. 엄마는 그녀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귀에 몇 번이나 입을 맟추며 속삭였다.

"넌 내 삶의 의미란다 아가야"

그리고 그들은 낄낄거리며 꺌꺌 거리며 저녁식사를 하러 집을 나섰다. 나가는 길에 그녀가 잠깐 고개를 돌리더니 우물쭈물하며 묻는다.

"언니는 안가?"

 

"나 써야하는 레포트가 있어서 미안, 맛있는 거 잘 먹고 와, 아 그리고 축하해"

"응 그럼 다녀올게"

.

.

.

.

.

타앙

.

.

.

그녀는 엄마의 품에 안겨 길고 풍성한 갈색 곱슬머리를 날리며 사라졌다. 그렇게 문이 닫치고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렇다니까 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 이제 와서 뭐 그리 서러울 것도 없다. 정말로 서러울 것도 없다. 아주 예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 아닌가, 그래 물론 방심하고 있기는 했다. 모든것을 다 쥐고 있는 듯한 그녀였기에, 나는 더 이상 그녀가 허락받을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길을 걸으면 모든 사람들이 뒤돌아 그녀를 돌아보고, 남자들은 그녀가 근처에만 가도 사타구니를 조이며 그녀를 음미한다, 부모님은 한시도 그녀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그녀가 어릴 때에 강간을 당한 경험은 그녀를 임신 할 수 없는 몸으로 만들어 , 남자들이 그녀에게 부담을 가지지 않고 접근 할 수 있는 굉장한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주었다. 게다가 그녀는 워낙 머리가 나빠, 강간으로 인해 그리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 같지도 않았다. 아니 강간 당했다는 사실 자체를 까먹고 있는 듯도 했다, 정말 반칙이다.... 그녀의 마르고 가는 몸은 아름다울 뿐 아니라, 몸 자체를 약하게 만들어줘서 조금 많이 걷거나 운동을 하면 그녀의 하얀 얼굴을 새파랗게 만들어 주었는데, 그 때문에 그녀는 핸드백 이상의 무거운 것 한번 들지 않고 자라왔다. 이 이상 모든 것을 허락받을 수 있는 여자가 어디 있느냔 말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허락 받을 수 있는 여자] 나는 어찌 이리도 기본적인 본질을 간과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이제 대학마저도 들어가 버렸다. 비록 서울 변두리의 삼류 대학교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분명히 부모님은 그녀를 위해 모든 투자를 할 것이고,그녀는 그쪽 대학에서도 모든 남자들의 우상이 되어 군림하겠지......정말로 알고 있었는데 그녀와 나의 본질적인 차이를 말이다.

 

서럽지 않다

서럽지 않다

서럽지 않다.

 

서럽지는 않으나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서럽지는 않으나 갑자기 불안한 적막이 집안을 감싼다, 서럽지는 않으나  갑자기 먹물이 번지듯 세계가 어두컴컴해진다. 마치 예전에 꾸었던 꿈에서처럼 나는 검은 허공 한가운데에 홀로 남게 되었다.


어두운 허공 속에 나는 한참을 혼자 그리 서 있었다. 다른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나는 그저 허공 속에 멍하니 서있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없었다. 나에겐 내 의지 라는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의지도 없고, 사랑받지도 못하는 생물이다. 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다, 나는 그저 무언가가 토해놓고 간 배설물이다, 나의 존재는 의미가 없다, 내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로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데 나는 왜 존재하고 있는 것인가.

나는 왜 검은 허공 속에 서 잇는 것인가.

그저 이대로 침식되었으면 좋겠다, 온몸이 마치 모래부스러기처럼 갈기갈기 흩어지면 좋을 텐데, 그래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르락 거리는 작은 부스러기가 되면 좋을 텐데.

 

[사르락]

 

그래 저렇게 부스럭 거리기만 하는 작은 존재 말이다.

 

[부스럭]

 

그래 그래  저렇게 어둠속에서 가만히 꿈틀대기만 하는 존재 말이다.

아니 그런데 저기 어둠속에서 나는 저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무엇인가, 검은 허공 어딘가에서 무언가 더욱 검고 어두운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부스럭 부스럭 거렸고 형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것은 내 동생의 구불구불 거리는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 같다.

 

그리고 그 꿈틀거리는 것은 조금 더 부스럭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가 싶더니 꾸물꾸물 대며 내 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의 착각이려니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 꾸물대는 기운은 확실히 내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꾸물거리는 기운이 동반하는 냉기가 점점 내 몸을 강하게 감싸왔기 때문이다 나는 한기와 함께 어떤 종류의 공포를 느꼈다. 무서웠다. 도망쳐야만 한다.

 

하지만 어디로?

나는 그저 검은 허공 속에 서 있을 뿐인데.

내가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미친 듯이 도망친다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얼마만큼이나 나의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으며, 또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가. 저 검고 꿈틀거리는 것은 확실하게 말해서 공포 스럽다, 하지만 저것으로 인하여 나의 외로움이 끝난다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괜찮은 일 아닐까?

 

하지만 나의 머릿속을 뒤덮는 이러한 생각들과는 별개로 나의 다리는 검고 검은 허공을 박차며 마구 마구 움직이고 있었다. 어쩌면 나의 정신과 나의 몸은 별개의 생물일지도 모른다.

 

나의 다리는 마치 모터처럼 움직였고 ,나의 눈은 점점 캄캄해져 갔다. 그리고 움직일수록 숨은 가빠져와 [하악 하악] 거리는 거친 숨소리가 나의 귀를 자극시켰다. 그 소리는  마치 몸이 약한 내 동생이 더운 여름에 쇼핑을 하다가 쓰러져 입원하던 날, 쓰러지기 직전에 내던 거친 숨소리와 비슷했다. 소리가 나의 귀를 자극함과 동시에 나는 사타구니 사이가 저릿저릿해짐을 느꼈고, 그 저릿함은 점점 강해져 척추를 타고 흘러가 나의 뇌를 자극시켰다. 그리고 결국 나는 더더욱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져 시간이던 공간이던 현실세계를 지배하는 법칙에 대한 모든 자각을 잃은 채 그저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도망쳤을까. 꼬여있던 나의 뇌가 마치 선풍기 날개가 멈추는 듯이 천천히 풀어져 제 모양을 되찾고, 캄캄했던 시야가 점점 밝아오고, 척추의 저릿함이 없어질 즈음에 나는 내가 아주 익숙한 곳에 서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곳은  바로 내 방이었다.

 

분명히 아주 오랜 시간을 뛰어 도망쳤던 것 같은데, 나는 그저 가족들을 배웅하던 현관에서 나의 방까지 이동한 것 뿐이라는 것인가? 마치 여.우.에.게. 홀린 기분 이었다. 갑자기 허탈함이 내 몸을 감싸고 긴장이 풀리면서 나는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다리가 아파왔다. 근육이 당겼다. 여전히 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다리사이는 축축히 젖어있었다. 나의 몸은 내가 분명히 필사적으로 뛰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내 방안에 와있는 것인가.

방안공기의 눅눅함과 풍경의 익숙함에 숨이 막혀왔다.


은색 탁상시계, 베이지색 침대시트, 연보라색 벽지

그곳은 분명히 나의 방이었다.

숨을 쉴 수 없게 만드는 무겁고 텁텁한 공기

그곳은 분명히 나의 방이었다.

 

나는 검은 허공 속에서 검고 검은 물체를 피해 달려, 내 방에 도달해 있는 것이었다. 모든일 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이지, 나는 어둠속을 달리고 달렸고, 결과적으로 내 방에 도달해 있다.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언뜻 들으면 인과의 법칙에 어긋남이 없는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왜 나는 이 결과가 그리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인지. 나는 달리고 달려 내 방에 도착해있다. 달린다가 원인 내방도착이 결과, 내방도착이 결과, 달린 것이 원인. 원인과 결과가 이리도 극명한데 나는 왜 이리도 혼란스러운 것이지?

 

머리가 다시금 어지러워 졌다.

 

나는 비틀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침대로 향했다. 우선은 좀 누워야 할 것 같았다. 너무나도 분명한 인과관계가 나의 머리를 어지럽힌다, 분명히 이 인과관계에는 오류가 있는 것일 텐데, 지금의 내 정신 상태로는 그 오류를 간파해 낼 수 없어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다.

 

내방의 황토색 원목침대, 그리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베이지색 침대시트는 나의 비틀거리는 몸과 비틀거리는 정신을 한꺼번에 끈적하게 감싸주었다. 나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익숙한 내 방 침대에 누워 머릿속을 정리해 보려고 애를 썼다.

 

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이고

나는 가족들이 떠난 후 홀로 남겨졌고

검은 허공이 나를 감쌌고,

검은 허공 속 더욱 검고 어두운 물체가 나를 향해 다가왔고

나는 그 물체를 피해 달리고 달렸고

검은 허공 속을 한참이나 달려 나는 내 방에 도착했다.

 

어라라....어디가 잘못된 거지?

 

나는 내 방에 도착해 있고

그것은 내가 검은 물체를 피해 달려서 이고

검은 물체는 나를 향해 스멀스멀 기어왔었고

그 검은 물체는 검은 허공 속에 있었고

검은 허공은 가족들이 나를 남기고 떠나자 내 곁에 온 것이고

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다.

 

어라라...?

 

분명히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는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를 통 알 수 없다.

다만 다시 한번 극명하게 재인식 한것은 내가 허락받지 못한 여자라는 점 그저 그것뿐이었다.

 

아. 그렇구나!!!

이제 알았다!!!!

 

그래 그런 것이다.

가족들이 나를 남기고 가버린 것도

검은 허공이 나를 감싼 것도,

검은 허공 속에서 시커먼 물체가 나온 것도

내가 뛰어 도망친 것도

그리고 내가 한참을 뛰어서 도착한곳이 내 방이라는 것도

그저 내가 허락받지 못한 여자여서 그런 것이었군!!!

모든 것이 극명해졌다. 갑자기 빛을 발견한 기분이다.

그런데 그 빛은 너무 밝아 내 눈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엄청난 빛의 자극에 괴로워진 내 눈에서는 미친 듯이 눈물이 솟았다.

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

유치원 때부터 알고 있던 사실인데도 아직 그것이 서럽다.

 

지금쯤 그녀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족과 함께 일류 레스토랑에 가지 않았을까? 오늘은 정말로 그녀에게 특별한 날 일테니까, 수영장이 딸린 호텔의 가든뷔페를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곳에는 연한 양고기와, 송아지 혀, 그리고 최고급 버터를 사용한 건포도 빵과, 달콤한 사과파이가 있을 것이다. 후식으로는 멜론이 준비되어 있겠지. 그것들은 모두 내 동생이 좋아하는 것이니까. 아마도 엄마는 양고기를 얇게 잘라 그녀의 입에 넣어주고, 송아지 혀에 소스를 발라 구운 접시를 살펴보다가 주방장을 불러 우리 둘째딸은 예민하니까 조금 더 제대로 구워달라고 컴플레인을 하고, 건포토 빵과 사과파이를 적당히 잘라 그녀의 손에 쥐어주고 ,그녀가 그런 음식들을 오물오물 거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구경하며 멜론의 껍질을 벗기겠지....그리고 아버지는 그녀에게 말할 것이다. 가지고 싶은 것은 뭐든 말해보라고....너의 미소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식사가 끝난 후에는 서울의 야경이 보이는 호텔 가든에 있는 수영장에서 휴식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녀는 아름다우니까, 아마도 남자들이 또 그녀에게 접근하겠지, 그곳은 최고급 호텔이니까 분명히 그곳에 있는 남자는 의사 이거나, 유명한 대학의 법대생이거나....그들은 칵테일을 그녀에게 권할 것이다, 그녀는 술에 약하면서도 귀엽게 홀짝거리며 그것을 받아먹겠지, 부모님은 그 광경을 보면서도 [오늘 하루쯤은..] 이라며 그녀가 술을 마시는 것을 넘어가 줄테고, 그렇게 귀엽게 취한 그녀를 명문대 법대생은 부축해 안으면서 자신의 방으로 초대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아마도 내 동생은 임신할 걱정도 없는 편한 아이니까, 거리낄 것은 없을 것이야.....침대는 최고급이겠지?

 

엄마 아빠가 호텔 수영장에서 같이 칵테일을 마시며 축하하는 동안에, 그녀는 호텔방에서 옷을 벗고 있겠지, 아니 벗겨지고 있겠지. 그녀는 공주님이니까 분명히 남자는 도자기룰 굽는 장인처럼 손끝에 온 정신을 집중해 그녀의 옷을 벗길 꺼야, 오늘 그 애가 무슨 옷을 입고 나갔더라? 하늘하늘 거리는 분홍색 프릴스커트랑, 진분홍색 스웨터, 아아..그래 스웨터 부터 벗기려나? 그 스웨터는 작년에 그녀가 생일선물로 받은 것이지, 그 스웨터의 분홍색 천은 빛에 비추면 가늘게 빛이 나더군, 실속에 작은 반짝이 가루를 미세하게 박은 최고급 스웨터니까, 나같은 건 백년이 지나도 그러한 예쁜 색의 스웨터를 받지 못 할꺼야 기껏해야 감색스웨터겠지, "너에겐 감색이 어울리니까.."라고 말하면서 스웨터를 건네겠지, 다들 말야...그리고 그는 아마 그녀의 목에 걸린 목걸이는 푸르지 않을 꺼야, 금으로 만들어진 파란루비가 박힌 거, 그것은 그녀의 목에 걸려있어야 가치가 있으니까, 그것은 그녀를 처음 본 사람이라도 알 수 있거든, 스웨터를 벗긴 후에 그냥 치마로 넘어갈꺼야, 프릴스커트를 벗길때면 그녀는 수줍어하겠지? 사랑스럽게 두 볼을 붉히면서, 어쩌면 약간 정신을 차리고 "안돼요.."라고 말하며 몸을 흔들지도 모르지, 하지만 소용없어 그 점마저 더 사랑스러울 테니까, 그 사람은 아마도 괜찮아..라고 다정히 말하며, 어깨를 다독인 후, 손을 아래로 내려 그녀의 스커트를 벗길 꺼야...그리고 그녀는 결국 팬티 한 장만 걸치게 되겠지, 그녀는 브레지어를 하지 않으니까, 호텔방안의 은은한 조명이 그녀의 알몸을 비추면 그는 황홀한 듯 그녀를 보며 말하겠지."아름다워"라고 그리고 그녀를 한번 껴안겠지,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들은 어떤 짓을 할까? 나는 그 이후부터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분명히 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그것이 전개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난, 아직, 경험이, 없으니까...순진한척 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상상이 안될 뿐이다. 동생이 다리사이로 피를 흘리며 들어온 날, 엄마가 무서운 눈으로 날 쳐다본 날, 그날 이후로 나는 정말로 착한 아이가 되겠다고 엄마랑 약속했으니까, 그래서 초등학교때 부터 나는 남자아이들과 말도 하지 않았다, 중학교와, 고등학교는 여학교로 갔고, 대학에서는 엠티나, 오티, 술자리등에도 절대로 나가지 않고  그저 얌전히 공부만 했으니까, 남자와 손을 잡아본 일도 없단 말이다. 난 정말로 엄마가 요구한대로 착한 아이로 자랐으니까..난 착한 아이니까 섹스 따위는 어떻게 하는지 모른단 말이야, 정말로 어떻게 하는지 모른단 말이야.

 

하지만 생각해 내야한다.

생각해 내야만 한다.

남자가 동생의 모든 옷을 벗긴 후 동생의 몸에 어떤 짓을 할지 상상을 해야만 한다. 동생은 내 상상 속에서 신음소리를 내면서 흔들려야한다. 그것이 그녀의 의무이다, 엄청나게 야한소리를 내고, 이상한 데가 만져지고, 능욕당하고, 야한표정을 짓고, 그녀는 그래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잖아, 너는 말이야, 더러운 아이잖아, 착한 아이가 아니잖아, 너는 엄마가 거북이 등껍질 같은 배를 한 곱슬머리의 아저씨와 해서 태어진, 갈색 곱슬머리를 가진 아이잖아, 야한 아이잖아, 이것봐 나는 검은 생머리란 말이야, 나는 내 머리카락처럼 곧아, 하지만 넌 네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약하고, 구불구불해 약한 아이잖아, 비뚤어진 아이잖아, 넌 내 상상 속에서 능욕당해야만 해 왜냐하면 넌 허락받은 아이니까, 나와는 달리 넌 섹스해도 되잖아. 넌 더러운 아이니까. 허락 받았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녀가 당하는 것을 상상해야만 한다.

맞아, 사실 나는 섹스 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엄마와 그 아저씨가 하던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섹스장면을 본 그날, 그래 넌 아마도 그날의 우리엄마처럼 호텔에서 당하겠지? 그렇지? 그렇지? 응?

 

엄마와 아저씨가 하던 날을 생각해 냈다.

아저씨는 누워있었고, 엄마는 아저씨의 위에 앉아있었어, 그리고 아저씨의 한쪽 손은 엄마의 한쪽 가슴을 쥐고 있었지. 그리고 두 사람의 아랫부분은 연결되어 있더랬어.

 

맞아 그랬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리얼하지 않아.

엄마는 기분 좋아했던 것 같은데...그리고 나를 보자마자 곧 화난 표정을 지었지 아마도 그건 내가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을 방해해서였다고 생각해. 동생도 아마 지금쯤 기분 좋아하고  있을 거야. 그날의 엄마처럼.

 

나는 나의 손을 조심스럽게 내 가슴에 가져갔다.

 

아저씨가 엄마의 가슴을 이런 식으로 쥐었던가?.......나는 내가 기분 좋으려고 이러는 게 아냐.......그날의 엄마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야 해서 이러는 거야...엄마가 어떤 기분이었는지 알아야, 그녀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알 수 있으니까....

 

나의 가슴은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다. 처음 내 손가락은 어설프게 가슴 위를 지나갔을 뿐이지만, 이내 나는 점점 더 대담하게 나의 가슴을 더듬었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럽다 ,좋은 감촉이었다. 나는 내 가슴이 이런 감촉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동생에게는 언제나 부드러운 시선이 허락되었지만, 나에게 온 것은 언제나 딱딱한 시선뿐이었지, 그래서 나는 내 가슴이 딱딱할 줄만 알았다.

 

가슴은 좋다!!

말랑말랑하다!!

말랑말랑한데 내 가슴이다!!

좋은 것이다!!

내 가슴은 좋은 것이다!!

내 가슴인데도 좋은 것이다!!!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기 시작했다. 나의 가슴이 이렇게 좋은 거였구나. 뱃속부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아올라왔다. 그것은 일종의 감격과도 같은 것 이었다


가슴

가슴

가슴

.

.

.

.

얼만큼 동안이나  나의 가슴을 만졌을까,

나의 손과 손가락은 점점 대담해져 ,내 가슴 위를 내달렸다. 마치 난생처음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을 알아버린 어린아이가, 혀 놀림을 컨트롤 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 역시 나의 손가락을 컨트롤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적극성의 극치를 달려 내 손가락 끝으로 유두를 비트는 지경에 이르렀을 때에 [끼익~]하고 마치 문이 열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났다. 어쩌면 내 유두는 다른 세계로 통하는 문 같은 거였는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내가 유두를 비트는 순간, 아니 그러니까, [끼익~]하는 소리가 난 순간 나는 서늘한 밤공기의 냄새를 맡았고, 그 서늘함에 정신을 차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처음 보는 장소에 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누워서 가슴을 만지고 있던 나의 방은 온데간데없었다.

 

그곳은 이상한 곳이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깊은 들판이었다. 그리고 그 들판을 가득채운 허리까지 닿는 갈대는 들판을 가로지르는 밤공기의 움직임에 따라서 [쏴아아..]하고 적막하고도 아름다운 소리를 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들판위로는 달이 떠있었다. 그것은 눈부시게도 노랗고도 하얀 보름달이었다, 아니 잘 보니 조금 일그러져 있는 듯도 했다. 보름달이 되기 몇일 전의 달인 것 같기도 하다, 달은 보름달이 되기 몇일전의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들었다. 그래서 저 달은 저리도 아름다운 것인가?

 

나는 분명히 방 안에 있었는데 이곳은 갈대밭이다.

나는 분명히 누워있었는데 나는 지금 갈대사이에 서있다.

나를 감싸던 것은 건조함과 칙칙 함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는데

지금 이곳은 너무나도 청량하고 아름답다.

 

왜 이렇게 달빛과 갈대가 아름다운지 알 길이 없다.

내가 어떻게 발을 붙이고 서 있는지도 알 길이 없다.

내가 왜 갈대밭 한가운데로 오게 된 것인지도 알 길이 없다.

 

나는 혼란함에 머리를 휘저었다.

도대체 여기는 어디이며,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건가?

달빛이 지독히도 아름답고, 나는 지독히도 부끄럽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저 멍하니 서 있는 수밖에 없다.

 

달빛은 지독히도 희고 곱다, 갈대는 지독히도 깊고 푸르다, 달빛을 받아 더욱 푸르다, 밤공기는 더없이 청량하다, 깨질 것만 같다.

[쏴아아.....]

다시 한번 밤공기의 흐름에 갈대가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아름다운 소리이다.

[쏴아아아아..]

아름답다.

달빛도 밤공기도 갈대도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그들이 조화를 이루어 내는 소리의 하모니는 마치 천상의 음악과도 같았다.

나는 그것들의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귀를 쫑긋 세워 그 풍경에 융화되고자 했다

그런데. 

 

[사르락]

 

언제부터인가 그들의 완벽한 하모니 사이에 무언가 자그마한 불협화음이 끼어들어왔다. 그 불협화음은 분명히 갈대와 달과 공기의 멜로디를 가로지르며 화음을 방해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이질적으로 소리의 조화를 깨뜨리진 않아, 볼쾌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만.....

 

[바스락]

 

그 불협화음은 예전에도 들은 적이 있는 성질의 것이었다.

어디에서 였더라. 그래 어딘가 달콤한 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다, 향수의 냄새인가,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것을 보니 아마도 아주 오래전에 들은 소리인가 보다.

 

"여어이~~나야,나"

 

아니 그런데 저기 어둠속에서 나는 저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무엇인가, 검은 허공 어딘가에서 무언가 더욱 검고 어두운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은 부스럭부스럭 거렸고 형체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꿈틀거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느낄 수 있었다. 마치 그것은 내 동생의 구불구불 거리는 길고 탐스러운 머리카락 같다.

 

어라 방금 전 그 독백은 누구의 것이었나, 들어본 적이 있는 것이다.

 

"여어이~~나야"

 

그나저나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

 

그리고 그 꿈틀거리는 것은 조금 더 부스럭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가 싶더니 꾸물꾸물 대며 내 쪽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의 착각이려니 했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 꾸물대는 기운은 확실히 내 쪽을 향해 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꾸물거리는 기운이 동반하는 냉기가 점점 내 몸을 강하게 감싸왔기 때문이다 나는 한기와 함께 어떤 종류의 공포를 느꼈다. 무서웠다. 도망쳐야만 한다.

 

"여어이~~나야"

 

어라라 방금 전의 그 독백은 어디에서 왔나, 마치 말해본적이 있는 듯 친근하다.

 

그나저나 어디에선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은데, 그 소리에 집중을 해야한다. 소리를 따라가 보자.

 

소리를 따라, 나는 갈대밭을 내 달렸다, 기억과, 공간과 ,시간과 소리와, 촉각과, 미각과, 후각,모든 것이 뒤얽혀 내가 과연 달리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달리고 있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 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달리고 내달려 나는 소리가 얽혀 근본을 이루고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여어이~~나야"

"여어이~~나야"

"여어이~~나야"

"여어이~~나야"

"여어이~~나야"

 

"너는 누구입니까"

나는 소리의 엉킴을 향해 질문했다.

 

"어이~~나야"

"이~~나야"

"~~나야"

"~나야"

"나야"

"나야"

"나야"

"나야"

 

소리의 엉킴은 같은 소리를 반복하다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같은 소리의 찌꺼기들을 걸러네 그곳을 뭉치고 뭉쳐, 이내 형체를 이루었다. 그 형체는 마치 갈대로 엮은 오두막 같았다.

 

"나야, 들어와"

그리고 소리의 뭉텅이는 나에게 자기의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유했다.

 

그 갈대로 엮은 오두막에 들어가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저녁밥을 먹어야하는가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하는가의 문제만큼이나 나에게는 결정하기 어려운 것이었지만, 오두막 앞에 서서 풍경을 보니 여전히 갈대는 바람에 흔들리고, 달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또 내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서 새삼스레 더없이 부끄러워 졌다. 결국 나는 그 오두막에 들어가는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두막에는 입구가 없었다. 하지만 갈대가 매우 얼기설기 얽혀있어 나는 손으로 갈대를 벌려 손쉽게 그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갈대오두막의 속은 매우 좁았다, 사람이 2,3명만 들어가면 꽉 찰 것같은 크기였다, 하지만 대신 매우 시원하고 깨끗했으며, 쾌적했다.

나는 오두막에 들어가서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들어왔어요, 이제는 어떻게 하면 되나요?"

 

"뒤를 돌아봐"

 

나는 그 말에 따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 곳에는 한 사내가 서있었다.

 

그 사내는 아주 마르고 가녀린 몸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는 뼈대와 마른 몸 위로는 근육이 얇지만 탄탄하게 잡혀있었다. 그 남자의 벗은 윗통 위에는 검은색과 붉은색으로 무늬가 그려져 있었는데, 그 무늬가 글인지 그림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또한 그는 목과 팔에 팔찌와 목걸이 등 장신구를 가득 두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동물의 뼈로 만들어 진 듯한 것도 있었고, 나무열매며, 혹은 천으로 이루어 진 것 등 다양했다. 한마디로 그는 꽤나 이국적이면서도 매혹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에서인지 나는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목까지는 또렷히 보이는데 이상하게 그의 얼굴은 아무리 보려고 노력해도 보이지 않았다.

 

"당신은 누구이신가요?"

"나는 여우 남자야"

 

그는 스스로를 여우남자라고 칭했다.

 

"그렇다면 여우남자님, 여기는 어디 인가요? 또 왜 나를 이곳에 들어오라고 부른 것인가요?"

 

이 질문에 그는 약간 얼굴을 붉히는듯하더니 대답을 했다, (분명히 얼굴이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가 얼굴을 붉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곳은 나의 땅이야, 그리고 너의 땅이기도 하지 내가 너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너를 내 색시삼기 위해서다"

"....!?"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지는 것을 느꼈다, 미국이 테러를 당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에도, 또한 집을 나서기 전 새로 산 구두의 밑창이 떨어진 날에도, 이렇게 머리가 멍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뭐라고요?"

".....난 한국말로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목소리가 너무 작았던 건가..."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다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물론 아까보다 크고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이다.

 

"이곳은 나의 땅이야, 그리고 너의 땅이기도 하지 내가 너를 이곳에 데려온 것은 너를 내 색시삼기 위해서다"

".........."

"이번에도 목소리가 작았나..다시 한번.."

"아니요, 들었어요, 들었다고요!!"

"...아, 그래..."

나는 당황한 가슴을 진정시키고 다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색시 라뇨, 내가, 당신의?"

"그래 네가 ,나의, 색시라고"

"색시라면...그..부인을 뜻하나요?"

"음....색시라는 단어에 다른 뜻도 있었나?"

"..........."
"내가 아는 바로는 다른 뜻은 없는 것으로 아는데, 좋아 그럼 다시 말할게, 내가 널 여기 데려온 이유는 널 색시삼기 위해서, 다르게 말하면, 부인 삼기 위해서, 다른 말로 하면 반려자 삼기 위해서, 다르게 말하면 아내삼기 위해서, 다르게 말하면.."

 

그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단어만 바꾸어서 무한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 꼴이 묘하게 진지해서 웃음이 나올 것도 같았지만 나는 쏟아지려는 웃음을 참고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잠깐만요!!잠깐만요!!"

"응?"

"그래요 뜻은 충분히 알아들었어요, 하지만 납득할 수가 없어요"

"납득할 수가 없다니?"

"한마디로 말하자면 싫다고요!!"

"......?...."

"못 알아 들었나요?싫.다.고.요"

".....음..싫다함은 거절한다는 뜻인가?"

"네 싫다는 것에 다른 뜻도 있었나요? 네 싫어요, 졸아 그럼 다르게 말해보죠, 다르게 말하면 아내가 될 수 없어요, 다르게 말하면 결혼을 할 수가 없어요, 다르게 말하면 난 돌아갈 꺼에요"

"....잠깐"

 

이번에는 그가 나의 말을 가로 막았다.

"...그거 이해 할 수가 없군"

"왜죠? 전 오히려 당신이 이해가 가지 않는 군요"

"넌 왜 나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거지?"

"그거야 결혼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결혼을 할 이유가 왜 없는 건가?"

"그렇다면 당신은 왜 저와 결혼을 하려는 거죠?"

 

나의 질문에 그는 한번 피식 웃는가 싶더니, 별걸 다 묻는다는 투로 다시 대답했다.

 

"...별걸 다 묻는 군 그야 당연하지 않나"

"...무엇이?"

"우리는 당연히 이루어 져야한다"

"왜요?"

"그거야..."

".....?"

"너는 나고 나는 너이니까"

 

도대체 이 사내는 무슨 말을 지껄이고 있는 것인가, 이런 갈대 숲 사이에서 사는 여우를 닮은 사내와, 도시 한가운데에서 살아가는 아무것도 닮지 않은, 아니 제대로 말하자면 그 어느것과 닮는 것도 허락되어지지 않은 내가 어떻게 같을 수 있단 말인가

 

"당신과 나는 달라요"

"같다"

"달라요"

"같다, 그리고 우리는 예전부터 서로를 갈구해 왔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같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

"같다"

"이유를 설명해줘요"

"나는 예전부터 너의 곁에 있었다"

"거짓말쟁이!!"

 

나는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음...그 말은 그냥 듣고 넘어갈 수가 없군, 내가 왜 거짓말쟁이 라는거지? 나는 거짓말 쟁이 라는 표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거짓말쟁이니까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거죠"

"...음......왜?"

"그거야 나는 언제나 혼자 였으니까요"

"음...맞아 너는 혼자였다."

 

앞뒤가 안 맞는 그의 대답이 너무나도 당연한 듯 나오는 것이 당황스러웠지만 나는 당황스러움에 지지 않고 곧바로 말을 이었다.

"그것 봐요, 그러니까 거짓말쟁이죠"

"왜?"

"나는 혼자 였다며요"

"어 ,그래"

"그런데 당신은 예전부터 내 곁에 있었 다면서요"

"어 ,그래"

"앞뒤가 맞지 않잖아요"

"왜?"

"당신이 곁에 있었는데, 내가 혼자 였다는게 말이 되나요?"

"응"

"........"

"왜냐하면..."

".....뭐하자는 건가요 지금?"

"왜냐하면 나는 너고 너는 나니까, 넌 예전부터 혼자였고, 그리고 예전부터 나와 함께였지"

"........."

 

맞는듯하면서도 맞지 않는 듯한 그의 논리는 나를 더욱 더 혼란스레 만들었다.

 

"뭐에요, 뭐에요, 뭐에요, 뭐에요 뭐에요"

"너도 오래전부터 눈치를 채고 있었지 않는 가"

"아니에요"

"검고 검은 외로움의 끝 지점에서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었다"

"......."

"네가 극심히 혼자라는 것을 느끼고 웅크리고 있을 때에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었다"

"......."

"네가 검은 허공에 둥둥떠서 정신을 잃어가고 있을 때에도 나는 항상 네 곁에 있었다"

"........."

 

"나는 너이고 너는 나이다, 나는 너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외로움의 또 다른 이름 이다,나는 허락받지 못함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우울과 몽상의 또 다른 이름 이다, 나는 자기 위로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비뚤어짐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자학의 또 다름 이름이며 ,나는 원망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성도착의 또 다른 이름이다, 나는 환상의 또다른 이름이다. 나는..."

"그만, 그만해 주세요!!"

"나는 너의 또 다른 이름이다"

"그만..."

"그러니까 너는 나의 신부가 되어야 한다"

 

그는 잔인하고 부드럽게 웃으면서 나에게 말했다.

"아름다운 아이여, 나의 신부가 되지 않겠는가.."

"나는, 나는...아름답지 않아요"

"나는 자기애의 또 다른 이름이다"

"......"

그는 나를 향해 한걸음 한걸음씩 가다오더니 이내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나의 신부가 되어라 아름다운 아가씨"

"아......"

 

혐오감인지 기쁨인지 모를 감정이 가슴 속부터 복받쳐 올랐다. 그의 손을 잡을까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지만 무언가 놓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잠깐만요"

"응?"

"잠깐만 생각할 시간을 주세요"

"그럼 무언가가 달라지나?"

"달라질지 달라지지 않을지는 모를 일이에요, 다만 조금만 바람을 쐬며 생각을 해 볼래요"

"좋을 대로"

그는 그렇게 말하며 갈대 짚을 벌려 문을 열어주었다.

 

"잠시 산책을 하고 오도록 해 나의 신부여"

나는 그에게 고개를 까닥이며 고마움을 표시하고는 집 밖을 나왔다.

 

분명히 나의 손가락은 가슴을 더듬고 있었던 것 같은데, 감은 눈을 움직여 눈꺼풀을 들어보니 나의 손은 어느 사이 사타구니 속에 넣어져 있었다.

 

나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서 마치 목욕이라도 한 듯 했고, 어느 사이엔가 나는 입고 있던 치마도 팬티도 벗어던지고, 셔츠의 모든 단추를 푸른 채 알몸에 가까운 모양새를 하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엄습해왔다.

내가 무엇을 하던 중이었던 거지,

가슴을 탐닉한 것도 모자라서, 어떻게 사타구니 사이로 손가락을 넣을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나는 제정신인가.

 

나는 서둘러 그 사이에서 손가락을 빼 내었다.

[쩌억..]

소리를 내며 질척함 속에서 나의 손가락은 빠져나왔다, 온통 젖어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내 눈앞에 가져가 보았다. 손가락 끝에는 이슬이 고여 있었다. 방글방글하게 고여진 이슬은 빛에 반사되어 아름다운 빛을 띄었다.

 

"끈적끈적하게....수건으로 닦아야 겠네.."

나는 이렇게 말한 후  수건을 찾아 일어서려고 했다. 하지만 다리가 후들거려 차마 일어 날 수가 없었다.

내가 방금 전까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음란해도 정도가 있지, 다리사이를 적시며 손가락을 집어넣다니, 이런 것은 그녀가 하는 짓이지 내가 하는 짓이 아니다.

 

혐오스러워, 음란하다.

 

음란하다, 혐오스럽다.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않겠다.

 

음란함은, 아무에게나 허락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녀처럼 아름다운 사람에게만....나는 착한아이니까, 음란하면 안된다, 나는 아름답지 않기에 음란하면 안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그녀를 혐오하고 동경할 의미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

.....하지만 그는 나에게 아름답다는 말을 했다.

그는 내가 아름답다고 말해줬다.

 

[여우남자]

 

어쩌면 나는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는 음란해도 될 지 모른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혼자라도 즐길 수 있는 음란함이라면,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해도, 스스로 거울을 보고 웃을 수 있는 아름다움 정도는, 어쩌면 나도 가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

하지만 나 정도는 나를 상랑 해도 되지 않을까,

어쩌면 그것은 사치가 아닐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허락받지 못했으면서, 왜 이렇게 남들의 가치에 의존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저 나는 혼자다, 그러니까 혼자만의 가치를 만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 아닌가, 나는 나의세계에서라도 ,혼자서라도, 나를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지 않는가, 어쩌면 나는 지금까지는 진정 혼자가 아니었는지 모른다, 모두에게서 허락받지 못했으면서도 나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의 옷자락을 억지도 늘어지게 붙잡고, 사랑을 갈구 해왔는지도 모른다, 무리를 하면서 까지, 진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그들의 곁에 있으려함은 도대체 어떤 까닭에서 였는지.

 

그래

 

그래

 

그래 나는 아름답다

 

그래

 

그래

 

그래 나는 음란하다.

 

그래

 

그래

 

그래

 

나는 여왕이다.

내 세계에선 내가 여왕이다.

 

그래

 

그래

 

나는 사랑 받는다

아니 사랑할 것이다.

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이니까.

나는 나의 세계를 만들 권리가 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아직 끈적임이 가시지 않은 손가락을 다시 사타구니 쪽을 향하여 전진시켰다. 허락받지 못한 나는, 음란랄 권리가 있다.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아 버린 것이다.

 

손가락은 조심조심히 수풀 속을 탐험했다, 한번 가본 길이라지만, 익숙한 길은 아니라 처음에는 조금 헤메었다, 하지만 예전에 남긴 이슬의 흔적이 곧 답을 찾게 해주었다. 나는 다시금 수풀 속 갈대집 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답은 정해져 있다.


잠시 나갔다 들어온 것 같은데 그 사이에 갈대 집은 많이 변해있었다. 조금 더 넓어진 것도 같았고, 그 외에 집 안에 여러가지 살림살이가 조금 늘어있었다. 동물의 뼈와 천으로 벽은 화려히 장식되어있었고,

푹신해 보이는 짚 침대와, 하얀 동물의 털가죽으로 만들어진 의자는 꽤나 쾌적해 보였다.

 

여우남자는 그 하얀 털가죽 의자에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약간 초조 한 듯이 보였다.

 

"기다렸잖아"

"그리 오래 있다 온 것도 아닌데요"

 

나는 면쩍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야 오래야, 기다리는 사람도 좀 생각해 달라고"

"...성격도 급하시네요"

"그래서 대답은 정했나?"

"...네"

 

그는 움찔하며 대답했다.

",...아..그래..대답을 정했다고."

"네"

"그래 뭐지?"

"아, 네..그건요"

"아!!잠깐!!!"

그는 갑자기 내말을 막으며 소리를 질렀다.

 

"긴장되니까 조금 있다가 말하라고!!"

"......."

"아 그래 그런데 미리 말해두지만 ,이곳은 참 아름다운 곳이야, 언제나 아름다운 달이 떠있고,,,이곳의 공기가 차갑고 따뜻한 것은 알고 있지?ㅡ아 그리고 정말로 나는 힘이 세다고, 말라보이지만, 여기에 있는 하얀 몽구스 가죽도, 저기에 잇는 황소의 뿔도 모누 내가 잡아서 만든것 들이야, 대단하지? 대단하지 않아? 모두 내가 잡았다고, 또 이곳은 그저 단순히 갈대로만 이루어진 곳이 아냐 끝이 보이지 않는 갈대숲이지만 더더욱 들어가면 더 아름다운 풍경도 많다고,,또.."

"그만해요"

"....아아...내가 너무 시끄러웠나?"

"네 저는 이미 마음을 정했으니까요"

"아아..그런가..음..."

"네"

"음...음...그래..음.."

"결혼 하겠어요"

"!!!"

그는 나의 말을 듣자 펄쩍 뛰더니 다시금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음..저기 또 한번 듣고 싶은데..그말.."

"아...당신과 여기서 살 것이라고요"

"정말인가?"

"네"

"정말인가"

"네"

"정말인가?"

"정말이에요"

"아..아아..이거정말..이거 정말이지 기쁘군.."

그는 정말로 기쁜 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아아..정말 괜찮겠나..아니다, 아니야, 이런말은 말자구, 잘했어, 후회없는 선택을 한거야, 잘했어"

"네"

"정말로 행복하게 해줄게, 넌 정말로 아름다워"

"네"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뭐죠?"

"......안아 봐도 괜찮겠나?"

그는 정말로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나에게 질문을 했다.

(역시 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역시나 그가 얼굴이 새빨개져 잇다는 것으 알 수있었다)그 모습이 너무너무 귀여워서 나 역시 얼굴이 붉어질 지경이었다.

 

나는 그에게로 한 발짝 다가가 대답했다.

"물론 이지요"

"기쁘군"

 

그는 나를 안더니 말했다.

"정말로 행복하게 해볼게"

"나 역시요"

숨이 막힐 지경까지 나를 다시 한번 세게 껴안고 그는 말을 이었다.

아아..정말로 말이 많은 남자다 그 점도 귀엽지만..

 

"이곳을 좋아하게 될꺼야, 그리고 나를 많이 사랑하게 될꺼야, 다른 곳 따위는 생각나지도 않게 될거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너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만이 존재하게 될꺼야, 세상 모든 사람들은 우리를 부러워하게 될꺼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이들이라고 말이야, 가장 행복하게 해줄게, 가장 기분 좋게 해줄세...가장.."

 

그는 필사적인 듯, 그렇지만 자신감이 넘치게 나에게 말했다.

그에게 안겨있는 내내 나는 내가 마치 세상의 여왕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행복했다.

 

"이곳에서 있을래요"

"고마워"

"당신과 있을래요"

"고마워"

"이곳의 여왕이 될래요"

"물론이지"

"날 사랑하세요?"

"예전부터 ,너를 가질 상상만 했어"

"날 버리지 않을 껀가요"

"널 버리면 나도 죽어"

"이제 전 외롭지 않을 수 있나요"

"내가 있을 꺼니까"

"허락받은 건 가요"

"세상 그 누구보다 네가 필요해"

"맹세 하나요"

"그래 맹세해.."

 

나는 드디어 허락받았다. 있을 곳을 찾았다고 느꼈다. 지독한 외로움과 절망감 속에서 내 자신이 있을 곳을 발견한 것이다. 그곳의 형태가 어떻던, 어떤 곳이던 간에 상관없다, 이제야 겨우 허락받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다.

 

여우남자의 품은 따뜻했다.

그리고 포근했다.

나는 드디어...

.

.

.

.

.

[덜그럭..]

....?

 

여우남자가 흐믈흐믈해 지기 시작한다.

 

[찰칵]

 

갈대로 만든 집이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

.

.

.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가족들의 행복한 듯 한 웃음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린다.

 

"맛있었죠?"

"응 그래 맛있었어.."

"특히 후식으로 나온 건포도 빵은 정말로 최고 였어요"

"응 적당히 달고 부드러웠어요"

"멜론도 신선했고.."

"맞아요 ,맞아"

"엄마 아빠는 약간 취한 것 같은데 괜찮아요?"

"괜찮아,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니까 이정도 쯤은"

"그나저나 넌 아까 칵테일 마시다가 어디 갔었니?"

"아....잠간 화장실에 속이 갑자기 안 좋아져서 갔었어요"

"그래 넌 몸이 약하니까, 조심해야지"

"네네"

"그나저나 정말로 행복한 저녁이었어.."

그들은 저마다 기쁜 듯이 꺌꺌 거리며 한마디씩 했다.

 

"그나저나 저 언니에게 음식 가져다주러 갈게요"

"그래 그 녀석 저녁 안 먹었으니까"

"레포트 쓰는데 방해되지 않게 살짝 가져다 주고 와라"

"네"

 

그리고 어느 사이 내 방문이 열렸다.

 

여우남자도 수풀도 달도 밤공기도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그저 내 방안에 옷을 벗어던지고, 다리를 벌리고, 손가락을 사타구니에 끼운 채 누워있을 뿐이었다.

 

혼자.

 

동생은 그런 나를 보더니,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녀의 하얀 피부가 붉게 물들어 아름답다, 그녀의 길고 가늘 곱슬머리가 그녀의 몸과 함께 바르르 떨린다.

 

엄마와 아빠는 그런 동생을 보며 무슨 일이냐고 질문을 한다.

 

동생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한다.

 

[뚜벅]

[뚜벅]

엄마와 아빠가 내 방 쪽을 향해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동생은 여전히 나를 보며 굳어있다.

.

.

.

.

.

그렇다니까..나는 허락받지 못한 여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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