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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과 이방인

  • 작성일 2007-09-21
  • 조회수 299

나는 사람을 죽였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내 앞의 사람은 아무 미동도 없다. 숨도 쉬지 않는다. 목에는 시퍼런 원이 둘러져있다. 내가 내손으로 이 여자의 목을 졸라서 죽였다. 나는 두려움과 역겨움에 덜덜 떨면서 죽은 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야가 흐렸다. 툭 툭 투둑. 나는 울고 있었다. 이유도 알 수 없이 나는 울고 있었다. 두려움에 우는건가? 나는 끝내 오열했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그리고 그 어느 순간 숨겨놓은 꽁꽁 싸매놓은 쓸쓸함과 외로움이 나를 휩쓸었다. 빌어먹을.





해는 질 때를 모르고 타올랐고 뜨거운 햇빛에 나는 온 몸이 타들어갈 것 같았다. 이마가 땀에 젖어 앞머리가 다닥다닥 이마에 달라붙을 때 즈음 나는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계절은 그 계절의 마지막에 그 화려함을 발하기에 8월을 며칠 남기지 않은 여름의 끝은 여전히 무덥다. 밝은 햇살에 인상을 저절로 찌푸렸다. 하늘은 오로지 그 밝은 빛으로만 가득 찬 듯 했다. 나는 숨이 컥 하고 막힐 듯 했다. 집에 돌아가야지 어서.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으로 들어서니 그제야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작게 욕을 내뱉으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집은 고요하다. 더위를 피한 것 보다 집으로 돌아왔다는 그 자체에 나는 안도했다. 커튼으로 창문을 가려놓은 탓에 햇살은 나의 집까지는 따라오지 못했다. 나는 그것에 다시 한 번 안도했다. 어둡다. 나는 더듬 더듬 거리며 불을 켰다. 네모난 벽들로 나를 감싸주는, 나를 보호해주는 이 공간. 나만이 존재하는 이 공간. 나의 행성.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받을까 말까를 고민했다. 되도록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전화이기를 나는 소망했다. 서서히 전화로 다가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나는 내 목소리가 낯설어 흠칫 놀랬다. 아, 여보세요. 여자 목소리다. 나는 등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사람의 목소리는 두렵다. 나는 피하고 싶었지만 그냥 그대로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늘 다녀가신 분이시죠? 나는 예하고 짧게 대답했다. 출판사 직원인데 오늘 내일 다시 한 번 뵈어 야할 것 같아요. 책 출판 하는 거랑 여러 가지로 얘기할 게 많아서요. 아시다시피 아까 얘기가 다 끝나지 안았으니까..... 여자의 목소리는 귓바퀴를 타고 사라진다. 오늘 다 끝난 거 아니었나요?라고 물으니 너무 힘들어하셔서요. 그럼 그냥 책 안내도 돼요. 나는 목구멍까지 솟아오르는 이 말을 삼켰다.


“저는 내일 좀 바빠서 밖에는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아, 그러세요?”


나의 쌀쌀한 반응에도 여자는 굴하지 않았다. 아 그럼 제가 집으로 찾아갈까요? 나는 당황해서 아, 아 , 아니요. 안돼요. 말을 더듬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냥 제가 갈래요 .그래요 제가 갈게요. 집은 안돼요. 여자는 당황한 듯 했다. 아니에요. 바쁘시다니까 제가 집으로 갈까요? 사무적인 일로 찾아가는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마시구요. 그럼 내일 7시쯤 찾아갈게요. 전화는 끊겼다. 뚜 뚜 뚜 소리가 적막하게 나의 집을 울렸다. 그래요. 내일 7시에 뵈어요. 나는 끊겨진 전화에 대고 작게 말했다. 나는 입술을 꽈악 깨물었다.

 

 


사람을 만난다. 그것도 우리 집에서. 그 끔찍한 두려움에 나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계세요?”


여자는 높은 하이힐에 긴 머리를 하고 있었다. 아 들어오세요. 7시가 되기 10분 전이었다. 좀 일찍 왔죠? 하고 웃는 여자의 손은 빵빵하게 찬 비닐 봉지를 쥐고 있었다. 오늘 햇살을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라 나는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햇빛이 너무 강렬하다. 나는 나의 집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여자에게서 두려움을 느꼈다.

 

 


나는 더듬더듬 거리며 불을 켰다. 혼자사시나 봐요. 예 혼자 살아요. 목소리가 갈라진다. 나는 두려움에 몸을 움츠렸다. 오다가 초밥 좀 사왔어요. 여자는 비닐 봉지를 장난스럽게 들어올렸다. 아 하고 나는 약간의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설픈 소리였다.

 


초밥은 맛있었고 여자의 목소리는 사무적이었다. 앞으로 나올 나의 책 이야기를 계산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녀의 목소리는 정확했고 듣기 좋았다. 나는 속으로 웃었다. 경계 할 필요가 없었다. 다행이다. 나는 안도했다. 경계심을 너무도 쉽게 놔버렸다. 앞으로 자기 회사와 계속해서 계약을 하면 어떻겠냐는 여자의 제안에 나는 작게 웃었다. 여자는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여자는 긴긴 설명을 끝내고 나를 불렀다. 나는 여자의 사무적인 목소리를 기대하며 네?하고 대답했다. 여자의 표정은 미묘하게 달랐다. 나는 그것을 눈치체지 못했다.

 

 


근데요 저 그 책 진짜 좋아해요. 완전 반해버렸다니까요. 나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어서 그냥 멍하니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 소설 말이에요. 이번에 당선된 거. 좋았어요.  여자는 나의 책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사실은 원래 회사에서는 절 안 보내려고 했는데 제가 너무 만나보고 싶어서 고집 부려서 왔어요. 근데 생각보다 훨씬 젊고 예쁘시네요. 24살이시죠? 저는 26살이에요. 여자는 자기 나이를 알려줬다. 나보다 두 살이 많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목소린 무언가 미묘하게 달랐다. 나는 막을 쳐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여자의 목소리를 막을 만 한 적당한 시간이 없었다.  나는 아 고마워요 하고 말했다. 알 수 없었다. 목소리는 점차 점차 미묘하게 달라졌다. 왜 왜 도대체 왜 달라지는 거지? 나는 사라진 두려움이 다시 스멀스멀 나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여자의 목소리에 나는 배신감을 마저 느꼈다. 나를 속였다. 글을 되게 오래 쓰신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씁쓸했던 느낌도 좋았고요. 하긴 당선됐으면 그 정도는 해야죠? 여자는 예쁘게 웃었다. 나는 여자를 따라 어설프게 웃었다. 

 

 


여자는 그 후로도 많은 이야기를 했다. 많은 잡담과 많은 웃음을 보여줬고 나는 많은 두려움과 많은 공포심을 등 뒤에 감추어야 했다. 나는 어설프게 따라 웃었다. 이야기를 해보라길래 시덥잖은 이야기를 했고 여자는 다시 웃고 또 웃었다. 여자의 웃음소리에 나는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여자는 잡담하느라 일을 반도 끝내지 못했노라고 말했다. 나는 울컥 눈물이 나려고 했다. 내일도 올게요. 여자의 짧은 말과 짧은 인사. 나는 현기증이 나려고 했다. 사람과의 대화. 웃고 떠들고 하는 대화. 피하고 싶었던 그 것을 해버렸다. 나는 구역질이 올라와 허겁지겁 변기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여자와 먹었던 초밥들이 목 밖으로 쏟아져나온다. 눈물은 볼을 타고 흐르다가 변기 안으로 뚝 뚝 떨어졌다. 

 


나는 누군가 내 집, 내 영역에 발을 들여놓는 것을 방어하지 못했다. 예상하고 있었지만 경계하지 못했다. 너무 쉽게 경계심을 놓아버렸다. 나는 나의 바보 같음에 나의 한심스러움에 엉엉 울었다. 내일도 그 여자가 와. 나는 나의 행성에게 말을 걸었다. 행성 역시 슬퍼하고 있으리라. 우리의 공간에 내일도 그 여자가. 나는 그날 밤 조금 더 경계 할 것을 다짐했다. 잠이 들 때까지 여자의 이질적인 웃음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다음날도 여자는 8시가 되기도 전에 다른 얘기를 꺼냈다. 여자의 어린 시절 이야기였다. 아버지 어머니가 있고 여동생이 하나 있어요. 근데 여동생은 요즘 연락이 잘 안되요. 잘 안 된다기 보다 어느 날 그냥 사라졌어요. 대학도 자퇴하고 자취방도 옮기고. 원래 없었던 애처럼 어느 날 사라졌어요. 그게 벌써 몇 년 째네요. 여자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여자의 어린 시절을 듣고 나는 내 이야기를 했다. 저는 21살에 대학을 자퇴했어요.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렇게 혼자 살면서 계속 글을 쓰고 있고요. 가끔은 당선이 되고 책도 가끔 내요. 왜 자퇴를 하신거에요? 라는 여자의 물음에 나는 쓰게 웃었다.

 

 


21살. 나는 모든 것을 인정했다. 관계는 하찮고 삶은 내게 항상 어렵기만 했다. 관계의 끝에 다다를 때 즈음 나는 항상 모든 것, 모든 사람들에게서 잊혀졌고 외면당했다. 가족도 친구도 예외는 없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항상 외로웠고 끝없는 쓸쓸함에 괴로워했다. 21살. 내가 모든 것을 놔버렸을 때부터 쓸쓸함과 외로움은 사라졌다. 그 동시에 나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감정을 느끼지 못했지만 그것에 만족했다. 나는 더 이상 외롭지 않았고 쓸쓸하지 않았다. 내게 남은 것은 내가 21살 모든 것에서 떠나온 시절부터 나와 함께인 이 집과 나의 몸뚱아리. 그리고 사라진 것들을 대신해준 나의 글 들 뿐이었다.

 

 


물론, 나는 나의 생각들 중 그 어느 것도 여자에게 말하지 않았다.

 


여자는 항상 7시가 10분 모자란 시간에 들어왔고 항상 잡담과 웃음 때문에 일을 다 끝내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은 지독히도 힘든 일이다. 나는 여자의 잡담을 들으면서 도대체 언제까지 나를 괴롭힐 껀지에 관해만 생각했다. 어느 날부터는 여자의 웃음소리는 환청으로까지 나를 괴롭혔다. 내게서 한참 멀어진 웃음소리, 그 이질적인 여자의 것은 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다.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여자를 만난 후로 나는 내 등 뒤에서 살아있는 무언가의 숨소리를 듣게 되었다. 작았지만 확실한 소리였다. 그 것의 숨소리는 등골을 타고 흘렀고 여자를 만나면 만날수록 그 존재감은 확실해져갔다. 처음에는 미약했던 그 숨소리는 어느새 가만히 서있어도 등 골뒤의 바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해졌다.



“오늘로 다 끝났습니다.”

 

 


여자는 안경을 벗고 피곤한지 눈을 비비었다. 나는 여자가 가져온 케이크를 포크로 살짝 떠먹었다. 수고하셨어요. 나는 무덤덤히 말했다. 이상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행성은 따뜻해보였다. 내 행성은 항상 차가워야하는데. 여름도 이제 다 지나가네요. 여자는 일어나더니 창을 가리는 블라인드를 걷어냈다. 시계는 8시를 가리키고 있었고 창밖은 깜깜했다.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요”

 

 


여자의 목소리는 단정적이었다. 나는 들고 있던 포크를 떨어뜨렸다. 누가요?라고 묻고 싶었다. 작가님이랑 저랑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아요. 처음부터 느낌이 좋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작가님은. 여자는 깜깜한 창 밖을 바라보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에서 회오리치는 그 무언가를 느꼈다. 나는 외면하고 싶었다. 그 순간을. 여자는 나와 내 행성으로 다가와서 우리를 마구 짓밟고 있다. 이상하게도 구역질은 더 이상 치밀지 않았다. 제가 올 때까지 기다리고 계셨죠? 여자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나는 귀를 막고 싶었다. 나는 나를 배신했던 걸까 지금까지. 나는 나조차도 모르게 익숙해졌던 걸까. 이 여자에게. 우리는 지금도 좋은 친구 같지만 앞으로도 더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지금까지 이렇게 편하고 즐거운 사람은 만난 적이 없어요. 여자는 기쁘게 웃고 있었다. 나는 분노로 온 몸이 덜덜 떨리려고 했다. 여자는 이제 나의 행성을 짓밟고 내 마음의 막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어느 순간부터 나의 막을 가르고 내 안으로 한 발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나는 왜 그걸 몰랐지. 어째서 나는 그걸 몰랐지.

 

 

“사실은 처음 봤을 때부터 제 동생 같다고 생각했어요”

 


여자의 말은 짧았다. 제 동생도 21살에 사라졌거든요. 여자의 목소리는 흔들렸다. 나는 이   여자를 모른다. 정말 모른다. 이 여자는 그 동생과 내가 똑같이 21살에 증발했다는 그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지금 궁지에 모는 것이다. 나는 괴로움과 두려움에 움츠러드는 마음을 다잡았다. 역시 외부인은 들이는 게 아니었다.

 


뭐 착각하는 거겠죠. 여자는 작게 웃었다. 그래서 더 작가님한테 정이 가는 건지도 몰라요. 동생 생각도 나고 그래서 안쓰럽고. 여자는 창 밖을 바라보면서 작게 작게 말했다. 여자가 작게 말하는 그 모든 이야기가 내 마음을 할퀸다.

 


커다란 회오리 바람이 나를 움직인다. 나는 이 여자에게 하나의 친구가, 하나의 동생이 되어있었다. 끔찍했다. 내가 이런 상황에 있으면서도 울고 불고 날뛰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로. 이 여자는 정말 나를 하나의 곤충으로 만들어버린건가. 나는 두려움에 손이 달달달 떨렸다. 인정할 수 없었다. 내가 내가 어떻게 내가. 어떻게 나를 그런 존재로 만들 수 있는건지 나는 구역질이 치밀었다. 여자가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을 때 나는 벌떡 일어났다. 저는 친구 필요 없어요. 동생도 필요 없고요. 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여자는 나의 삶을 파괴했고 지금 나의 막을 찢어내고 있다. 이러면서 아무것도 몰라? 나는 그녀에게로 달려가서 목을 졸랐다. 있는 힘껏 졸랐다.

 


여자는 켁켁 거렸다. 긴 손톱으로 내 살갗을 쥐어 뜯었다. 나는 그 것에 굴하지 않고 그 여자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졸라댔다. 여자는 한참을 발버둥 치더니 어느 순간 픽 하고 쓰러졌다. 내 손을 아프게 파고들던 손톱이 달린 손도 툭하고 쳐졌다. 숨소리는 없었다. 그렇다. 나는 사람을 죽인 것이다. 나는 그 여자가 죽은 것을 확인하고 그 시체로 툭 떨어져서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니 새벽 1시 즈음이었다. 숨겨놓은 것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내 행성을 무언가가 날아다니고 있다. 그 희미하고 썩은 내 나는 그 것. 그리고 동시에 내 마음과 내 등을 헤집던 그것이 날개짓을 시작한 것이다. 나는 다리의 힘이 풀렸다. 쓸쓸함이 내 행성을 활보하고 외로움이 나의 몸뚱아리를 배회한다. 잠겨졌던 자물쇠가 풀렸다.

 


나는 혹시 그녀가 살아있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가 살아있다면 같이 밖에 산책이라도 나가야지 라고 생각했고 어느샌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보고 다시 미친 듯이 웃어버렸다. 누군가가 내 마음으로 다가온 그 누군가를 나는 죽였다. 당연한 일을 했지만 그것은 그 동시에 당연하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그 모순에 나는 숨이 멎을 만큼 웃었고 그 후에는 숨이 멎을 만큼 울었다.



나는 그 여자를 남는 방에 들여다 놓았다. 울어서 지친 나는 침대로 기어들어갔다. 나는 왠지 내일 아침에는 그녀의 시체가 사라지고 7시가 되기 10분 전에 그녀가 나의 집으로 찾아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그 방문을 슬쩍 열어보았다. 시체는 존재했다. 나는 픽하고 기운이 빠졌다. 혼자 앉아있는 그녀의 시체 옆으로 갔다. 시체는 어제와 그대로였다. 무섭진 않았다. 나는 다만 슬펐을 뿐이다. 나는 그녀의 시체를 바라보며 다시 엉엉 울었다. 나는 도대체 뭐가 슬픈지는 알 수 없었지만 너무 슬퍼져서 울지 않고는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그녀를 죽였고 그녀는 나를 살렸다. 나는 이 명제와 이 진리에 굴복했다. 내 행성을 날아다니는 그 모든 감정들. 내 마음의 창고에서 튀어나와 내 몸뚱아리를 가득 채운 그 쓸쓸함, 그 외로움. 맞딱드리고 싶지 않았던 그 것들에게 나는 발이 잡혔다. 나는 툭툭 떨어지는 눈물들을 닦지 않았다. 나는 계속 타인이고 싶었다. 그녀는 나를 타인이 아닌 그 이상으로 여겼고 나는 그것에 알지 못하게 익숙해져다. 그리고 그 익숙함은 거북스러웠다. 나는 손가락으로 차분히 모든 사건들을 혼자 정리했다. 상황은 간단했고 우스웠다. 나는 시체의 손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 다시 작게 웃었다. 이렇게 저렇게 정리해도 역시 남는 것은 두 개였다. 그녀는 나를 정신적으로 혹은 감정적으로 살려냈고 나는 그녀의 정신을 육체에서 빼놓았다. 나는 하루 종일 6시 50분을 기다리면서 그녀의 시체 옆에 있었다. 6시 50분에 들려올 초인종 소리를 기다렸다. 초인종 소리는 8시가 지나도록 들리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112에 전화를 했다.


“저기요. 사람을 죽였어요”


비가 내리고 있다. 추적 추적. 늦 여름 더위는 모두 지나가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경찰을 발소리를 기다리며 오랫동안 나는 발가락 끝에서부터 머리 꼭대기까지 가득 찬 그 외로움이라는 것과 대적했다. 오랜만이었다. 외로움 앞에서 이렇게 웃어본 것은. 그녀는 결국 나를 이 지경 까지 몰고 온 것이다. 거울에 언뜻 비친 나는 웃고 있었다. 감정을 숨길 순 없었다. 처음부터. 그래서 두려웠던 거고 그래서 나는 항상 무언가 부족한 듯 이 몇 년을 살아왔던 거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 모든 것을 포기한 21살부터. 나는.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낯가림이 심해서 친구를 많이 사귀지 못했어요.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그래도 항상 정말 좋은 친구가 생길 꺼라고 어렴풋이 생각해왔는데 그게 그 쪽이 아닐까 생각해요. 나는 그 여자에게 내동하려던 말을 그 여자의 육체에게 건내보았다. 발 소리가 들린다. 발거리 소리가 많고 큰 걸 보니 경찰인가 보다. 나는 또 다시 작게 웃었고 시체의 손을 잡았다. 여자의 손가락은 가늘고 길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 몇 년동안 참아왔던 감정들의 싹들이 내 행성을 날아다니며 갖가지 소리로 웃고 있다. 다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저기 있잖아. 그 직원 말이야. 전에 긴 머리에 날씬하던 그 김 대리 알지? 알지. 근데 김 대리가 왜? 죽었대. 아직 30살도 안됐잖아 왜 벌써 죽은 거야? 목졸려죽었대. 화장실 안 변기를 청소하던 청소부 이씨는 목소리를 줄여 다시 말한다. 책 출판하는 문제로 어떤 작가를 집으로 찾아갔는데 그 집에서 그 작가한테 목 졸려서 끽. 청소부 이 씨는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30살도 안된 아가씨가 벌써 죽어? 우습네. 청소부 김씨는 화장실 바닥을 닦으며 말했다. 근데 더 웃긴 건 뭔지 알아? 알고 보니 목 조른 그 작가가 바로 김 대리 동생이었대. 세상일 진짜 웃기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