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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왕자

  • 작성일 2007-10-30
  • 조회수 284

행복한 왕자
 
, 할 짓 없는 군중들이었다. 그들은 그저, 어떤 의미도 없이, 화려하고 위엄을 갖춘 동상을 하나쯤 갖고 싶었을 뿐이다. 말하자면, 그네들이 사는 그 고장을 대표할 만한 눈에 확 들어오는 그 무엇을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일을 맡긴 장인에게서 부터 생겨난다. 동상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는 그 노인네는, 독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만든 물건들은 모두, '정신'을 갖게 되는 것이었다. 그 한심한 군중들은, 그 능력조차 탐이 났다. 그런 물건이 그 고장 입구에 떡하니 서 있게 되면, 작은 마을이라고 비웃던 이들조차 감히 무시할 수 없게 될 테니까.
동상 만드는 노인네는 그들의 바램을 들어주기 위해, 화려하고 위엄있는 인물상- 왕자상- 을 만들어 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동상의 겉면에는 제법 두께감 있게 황금이 발려졌다. 우스운 일이었다. 그렇게나 쌈짓돈을 꽁꽁싸매 숨겨두고 살던 그들이, 어째서 그 동상에는 그렇게 술술 주머니를 풀기 시작했는지.
어쨋든 그 덕분에, 황금의 왕자상은 완성되어 그들이 사는 고장 입구에 놓여지게 되었다. 언덕배기에 세워진 왕자상은 고장을 굽이굽이 내려다 보는 듯 했다. 사람들은, 그 왕자상이 마을에 재운과 축복을 주리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고작, 사람 손으로 만들어진 그 물건에, 그들은, 신성한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별한 능력을 가진 노인네가 만든 신물, 왕자상, 에 깃든 '정신'은 참으로 심난한 것이었다.
주문한 이들의 마음 조각이 실려 정립되는 정신에, 그 우스운 군중들의 기대치가 더해졌으니, 과연 그 왕자상의 정신이 어떤 색깔일지, 대강 알 만도 하다.
왕자상은, 살아 있었다. 달이 떠오르는 시각, 그는 인간을 제외한 생물들과의 소통도 가능했다. 그의 정신세계는 참으로 심오하고 오묘하고 암울하기까지 하였으니, 그것은 즉, 그 왕자상의 정신은 아가페를 표방한 채 여기저기 처덕이는 갓난애 오줌같은 것이었으며, 친절을 가장한 채 뒤통수에 하이킥을 먹이기 일쑤이며, 선량한 말투로 함정을 파는 것이었으니, 그 원인은 그 군중들의 그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고장을 위해- 라는 명분으로 각자의 이득을 위해 손을 뻗었고, 그 누구의 집에서 한 치라도 더 가까운 것을 용서치 못해, 신작로만이 훤히 뚫린 입구에 동상을 세우기로 하였으며, 아름다운 우리 고장으로 오세요- 라고 외치며, 속으로는 어떻게든 이방인의 주머니를 털어 낼 계산으로 꽉 차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어쨋든 겉으로 보이기에 왕자상은, 아가페를 표방하고 있었고, 친절하고, 선량하였다. 그렇기에, 순진하디 순진한, 이제 막 비행을 배운 어린 제비를 속여 넘기기도 쉬웠던 것이다. 물론 영리한 까마귀나 늙은 독수리를 비롯해, 왕자상 주변을 가끔 산책하는 영악한 고양이도, 받침돌 밑에서 머물며 모든 소리를 듣고 있는 메뚜기도 그의 정신이 보여지는 것과 달리 무척이나 어두운 것임을 깨닫고 있었기에 왕자상과의 대화에 끼지 않았으니, 뭣 모르고 혼자 왕자상과 대화를 나눈 제비가 더욱 쉽게 말려들 수  밖에 없었던 것이기도 하다.
이미 왕자상의 실체를 알고 있는 까마귀와 독수리와 고양이와 메뚜기는, 제비를 말릴 수 없었다. 왕자상이 언제 어느 순간, 자신들에게 함정을 칠 지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그냥 방치하는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구나 그렇듯, 그들은, 남의 사정으로 내가 피해를 보는 건 원치 않았으니까.
 
 
 
자상은 순진한 제비에게 속삭인다. "봐, 저들이 불쌍하지 않니?", "저 아이를 봐.", "저 노인을 좀 보렴."하며 제비의 귀를 현혹시킨다. 현혹된 제비는 진실을 보지 못한 채 왕자상의 이야기에 홀려 들어간다. 하나도 불쌍할 것 없는 사람들, 그저, 자신이 저지른 일의 댓가를 치루고 있는 사람들이거늘, 제비는, 그저, 그들이 당장에 처한 상황만을 보고, 왕자상이 하는 이야기를 믿고, 믿는다.
왕자상에 장식 된 루비, 사파이어, 그 몸의 금조각을 떼어내는 일 만으로, 이미, 제비는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하고 부리와 발톱이 상하는 희생을 치룬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제비가 왕자상을 벗겨내는 것을 눈치 챈 사람들이, 제비를 공격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이, 꽁꽁 숨겨 두었던 돈을 털어 만든 그들의 위상이고 표상인 왕자상이 망가지는 것을, 눈뜨고 당할 수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왕자의 목표는 그것이다. 위선과 가식, 착한 척의 대표자가 되어 준 제비를 기만하고, 괴롭히고, 농락하는 것에서 얻는 즐거움과 또 하나는 두터운 금과 보석으로 치장된 자신을 보며 마치 자기들이 왕자상이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한 인간들의 얼굴에 구정물을 부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왕자상은,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정돈되지 않은 것, 바르지 않은 것, 틀어진 것, 깨진 것, 상처받는 것. 그는, 닽콤한 언어의 유희로 주변을 휘둘러 상처 입히기를 즐기는 지독한 새디스트. 그것이, 자신이 망가지는 방법일 지라도,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제비는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한다. 망가진 부리와 닳아 없어진 발톱, 그 모습 그대로, 북풍에 휘말려 왕자상 아래에서 동사하고 만다. 이 모든 것을 지켜본 까마귀와 독수리와 고양이와 메뚜기는, 여전히 침묵을 지킨다. 그들에게는 안타까운 제비의 죽음보다도, 아직도 영롱하게 살아 빛나는 왕자상의 눈빛이 더욱 두려웠다. 법보다, 가까운 것은 주먹이다.
쓸데없는 공명심에 불타올라 결국 개죽음 당한 제비의 어리석음도, 자신을 만든 인간들에 대한 공격심리를 엉뚱한데에 표출한 왕자상의 비뚤어짐도, 어느 한 쪽도 탓할 수는 없다. 둘 다, 멀쩡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니까.
 
 
 
콜중독의 엄마에게 루비를 준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그녀에게 돈이 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술의 양으로 계산 될 뿐이다. 가난한 극작가라고 말하지도 말라.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 한량이, 글 쓰는 체 하며 끄적인 낙서들을, 보고도 눈치채지 못한 제비가 병신이지. 무너져 가는 마을 외곽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금조각이라고 말했을 때, 눈치 챘어야 했다. 재개발 지역 한 복판의 그들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음을. 가난하지 않기에, 더욱 그 곳에 눌러 있어야 했던 것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보상으로 받아내기 위해서. 그렇게 해서 그들은 하루하루 앉은 자리에서 돈을 벌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제비는, "힘내세요."라며 금조각을 던져주고 왔던 것이다. 그들은 그 금을 가져다 무엇을 했을까.
사기극 난무하는 동화 속 이야기에서, 그대가 본 결말은, 왕자상의 납심장을 하늘로- 천국으로- 올려보내게 되었다는 '지극히도 아름다운' 이야기.
왕자상에는 심장이 없다. 심장따위 만들 필요가 없었으니까. 왕자상은 쉽게 폐기되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긴 세월, 저주받은 동상으로 이름을 날렸다. 폐기는 커녕, 그 고장이 쇠퇴하여 모두가 사라진 뒤에도, 왕자상만은 그 자리에 꿋꿋이 서 있었다. 누덕누덕 주물이 드러난 몸을 하고, 발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며, 어리석은 인간들을 킬킬 비웃으며.
아직도 모르겠는가, 동화의 결말이, 그렇게 거짓으로 적혀 있었던 이유를. 행복한 왕자의 이야기를 뿌려댄 것이, 누구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 과연 누구일 것 같은가. 바로, 그 고장의 후손이었을 것이 자명한 일이 아닌가. 선조는, 후손에게 어둑한 이야기따위 전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가볍게 각색되어 왕자상에 깃들어 있던 어둠의 정신따위, 싸그리 삭제하여 전달하였고, 후손은 그 뒤, 왕자상이 저지른 만행을 미화하였고, 그 후손의 후손은 그 뒤, 왕자상이 마치, 저기 어느 곳에 있다는 눈물 흘리는 기적의 성모상이라도 되는 양, 미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초가 그러했듯, 왕자상은, 인간의 욕심에서 탄생하여, 인간의 이기로 미화되어, 아직까지도, 죽지 않고 떠돌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것이다.
아직도, 저 산 너머 작은 마을 입구 귀퉁이에서 킬킬대며, 인간만이 듣지 못하는 모든 생물이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인간을 비웃으며 서 있는 그를, 모르겠는가. 한 가지 만큼은 확실하다. 그는, 행복한 왕자다. 지금도 그는, 여전히, 행복한, '왕자'인 것이다. 비록, 금딱지와 보석따위는 사라졌더라도, 그런 것이 없다고 왕자가 평민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