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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고 가증스러운

  • 작성일 2007-07-21
  • 조회수 1,888

분명하고 가증스러운

 

 

1

 

아빠가 돌아왔다. 3년만이다. 중학교 3학년인 나는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어김없이 지펠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 냉장실에서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곤 했었다. 열쇠로 현관문을 열고 들어갈 때만 해도 못 보던 리복 운동화가 현관 바닥 위에 함부로 어질러져 있어도 그게 아빠의 것이라는 상상은 전혀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아빠는 돌아왔다. 거실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TV 리모콘을 손에 쥐고 서재응의 메이저리그 4승 도전 경기를 태연하게 관람하고 있었다. 아빠는 마치 삼일 전에 출장 다녀온 사람 마냥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였다.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3년이 지났어도 이 집은 여전히 아빠의 집이니까. 3년 전에도 아빠는 지금의 소파 위에 앉아 있었다.

아빠는 나를 환한 웃음으로 맞아 주었다. 나를 보자마자 TV 리모콘을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내 몸을 끌어안곤 ‘많이 자랐구나’라는 말을 반복했다. 물론 나는 많이 자랐을 것이다. 굳이 3년이란 시간이 지나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그 동안 내 머리카락은 허리 밑까지 내려왔고 키는 15센티미터나 더 자랐으며, 시력도 많이 약해져서 굵은 뿔테 안경도 착용했으니까. 아빠는 그런 내 모습을 동물원 원숭이 바라보듯 신기하게 훑어보았다. 두 손은 여전히 내 몸을 으스러질 듯 끌어안고 있으면서.

아빠는 달라진 것이 거의 없었다. 3년 전의 뱅뱅 청색 점퍼도. 이제는 사라진 이랜드 브랜드 계열중의 하나인 브렌타노 면바지도 그대로였다. 며칠 깍지 않은 수염은 턱 주위에 푸르스름하게 자랐으며, 머리도 제법 길어 곱술인 앞머리가 가볍게 눈을 찌를 정도였다. 그런 아빠가 다시 소파로 돌아와 앉아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거실을 두리번거리며 책장도, 베란다의 러닝머신도, 42인치 파브 TV도, 3년 전에는 모두 없던 것들이니까. 아빠는 입술을 오물거리는 여전한 버릇을 반복하며 변하지 않은 건 자신이 앉아 있는 가죽 소파뿐이라고 했다.

그리곤 아빠는 배가 고프다고 말했다. 때맞춰 내가 아빠에게 어떻게 문을 열고 들어왔냐고 물어보려 하는 찰나였다. 3년 전의 문고리는 이미 훼손 된지 오래다. 하지만 아빠는 내 물음엔 대답하지 않고 배고프단 말을 바꿔서 반복했다. 아빠는 입안에 넣을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다고 말하며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서 나와 아빠는 식탁에 나란히 앉아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통째 나눠 먹었다. 원래의 계획이 엉망이 된 것이 거슬리긴 하지만 뭐,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 아빠가 정말 배고픈 듯 밥을 먹을 때 쓰는 숟가락으로 열심히 붉은 색이 감도는 스토우베리 아이스크림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그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오후 5시쯤 되었을까. 엄마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엄마는 언제나 나보다 늦게 집에 들어왔다. 나처럼 초인종을 누르지 않고 현관문을 열쇠로 열고 들어오곤 했다.

나와 아빠는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TV를 관람했다. 동방신기의 새 앨범 뮤직 비디오를 볼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아빠를 위해 꾹 참았다. 아빠는 정말 재밌게 야구경기를 보는 것 같았다. 코미디 프로도 아닌데 그런 아빠의 얼굴엔 잔잔하고 더없이 만족스런 미소가 배여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난 일이지만 아빠는 야구경기를 집중해서 본 게 아니었다. 아빠의 눈이 사시라는 사실이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완벽히 달라질 수 있다는 건 나만의 착각이요 희망사항이었다. 아빠는 TV를 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원래는 나를 향하고 있던 것이다. 바로 손만 뻗으면 무릎이나 손을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말이다. 나는 그때 교복차림이었다. 짧은 치마도 아니었고, 흰색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라도 끄르지 않았는데, 그런데 아빠는 내 손을 잡고 같이 안방으로 들어가길 원했다. 아빠가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빠도 남자니깐. 3년이 지났다고 해서 아빠의 다정스런 손버릇이 사라진 것은 아니니깐 말이다.

아빠는 TV 리모콘을 쥐던 손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3년 동안 제대로 목욕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고백을 했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아빠는 그걸 몰라서 묻는 거냐는 식의 억울하단 표정을 지었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일어나 안방에 딸린 욕실로 걸어갔다. 아빠는 욕실 문을 잠그고 싶어했지만 내가 열어 놓았다. 문을 닫으면 답답하다. 숨이 멎을 것 같기 때문이다.

아빠는 내가 보는 앞에서 옷을 벗었다. 뱅뱅 청색 점퍼를 벗고 체크 남방을 벗고 제임스딘 러닝 셔츠를 벗고 브렌타노 면바지를 벗고 마지막으로 브랜드를 알 수 없는 트렁크 팬티를 벗었다. 나는 아빠의 자지를 무표정하게 바라봤다. 나는 확신한다. 내가 아빠의 자지를 아무 표정의 변화 없이 지켜봤다는 것을. 왜냐하면 그것을 보면 정말로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아빠의 돌출한 자지를 보며 무슨 대단한 생각을 할 딸아이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는지 묻고 싶다.

아빠는 욕조에 누워 샤워기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의 온도를 나보고 맞춰달라고 했다. 물의 온도는 적당히 미지근했다. 거울에 수증기가 서리고 타일 바닥이 훈훈하게 느껴지는 감각이 싫지 않았다.

아빠는 나와 달랐다. 아빠는 몹시 감격스런 모양이다. 입가에 환하게 머금은 미소를 여전히 거두지 않았다. 심지어 그런 아빠의 눈엔 촉촉이 눈물까지 맺혀드는 것 같았다. 아빠는 다시 그 얘기를 꺼냈다. 욕조 속의 물이 반 이상 차 올라 자신의 몸이 적당한 온도의 온수 속에 완전히 잠기게 될 때였다. 아빠는 3년 동안 제대로 맘놓고 목욕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특히 마사지도 받지 못하고 쫓기듯 살아 와서 그런지 온 몸이 언제나 뻐근하다는 말을 힘주어 강조했다. 그런 아빠가 3년 전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옷을 벗고 자기 등 좀 밀어달라는 부탁 말이다.

직접 옷을 벗는 게 나았는데 아빠는 그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내 웃옷부터 벗기기 시작했다. 교복 웃옷 상의를 벗기고 흰색 블라우스의 단추를 세심하게 끌러내고 무릎 뼈 위에까지 너절하게 덮어 내리는 체크무늬 교복 치마의 지퍼를 내리고, 그리고 내 맨살의 다리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정중히 내게 부탁했다. 마사지를 해달라는 부탁.

어려울 건 없다. 아빠가 정말 전문적인 마사지를 받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니깐. 브래지어와 팬티는 벗지 않아도 된다. 아빠는 생김새와는 다르게 수줍음이 많이 편이니깐. 또한 별다른 수치심을 느낄 것도,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완전히 옷을 벗은 것도 아니고 그저 욕조 난간에 엉덩이를 대고 걸터앉아 아빠의 어깨만 대충 주물러주면 그만이다. 10분이나 20분 정도.

아빠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오른손을 내 두 다리사이에 파묻고 얼굴은 욕실 천장을 향하는 방향으로 있는 대로 크게 뒤로 젖힌 채로 말이다. 나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냐고 물었지만, 아빠는 대답하지 않고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그런 아빠가 눈을 뜬 건 오래지 않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그 누군가의 손에 주어져 있던 과일 같은 것이 담긴 비닐봉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그리고 그 누군가인 엄마의 비명소리가 터져 나오자 기어이 아빠는 눈을 뜨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때서야 아빠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욕실 앞에 떨어졌던 교복을 입거나 하진 못하고 그것들을 대충 주워들고 내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때 아빠는 나와 엄마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걸로 기억한다. 3년 만에 돌아온 아빠가 말이다.

 

이제야 정말 산 것 같다.

 

 

2

 

아빠는 제대로 조련된 아마추어 복싱선수처럼 민첩하게 몸을 움직였다. 거실 바로 앞에서.

소파엔 내가 앉아 있었고 나는 그때 KBS에서 하는 미니시리즈를 보는 중이었다. 그리고 엄마는 아마도 그때 안방이나 건넌방 구석에 숨어 아빠의 행동을 숨죽여 훔쳐보고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도 물론 아무 방에나 들어가 숨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보고 있기엔 정말이지 민망하고 어색한 장면이었지만 아빠나 새아빠는 내심 자신들의 현재 모습을 딸인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새아빠와 아빠 사이에 벌어진 일이란 대략 이런 거다. 먼저 그 날. 엄마가 저녁 6시쯤에 들어왔고, 돼지 멱따는 소리 비슷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2시간이 지난 다음에 초인종이 울렸고 내가 문을 열어주자 새아빠가 들어왔다. 그는 언제라도 변하지 않을 듯한 인자하고 평화로운 성자의 얼굴을 하곤 나를 반기다가 이내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아빠를 발견하게 되었다. 똥 씹은 표정이 된 건 엄마와 거의 다를 바 없지만, 새아빠는 의외로 침착했다. 아빠를 보며 정중히 인사했고 내가 방으로 들어가려 하자 거실에 그냥 있으라고 말했다. 내 손목을 붙잡으며 말이다. 그러자 곧 이어 아빠의 복싱스텝이 시작되었다. 아빠는 무표정했지만 얼굴은 포도주에 담겨진 묵은 포도알 마냥 발그레해졌고 좌우 스트레이트 펀치를 새아빠의 얼굴을 향해 무자비하게 내던졌다. 그런 행동이 무려 5분 여 동안이나 반복되었을 것이다. 나도 내심 신경이 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빠보다 적어도 20센티미터는 더 큰 키를 가진 새아빠가 덩치에 걸맞지 않게 아빠에게 반항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모습을 지켜 본 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새아빠의 표정도 우습고 생소하긴 마찬가지였다. 새아빠는 아빠에게 주먹으로 얼굴이며 어깨, 가슴 따위를 야만적으로 얻어맞는 것에 대해선 별다르게 분노하는 것 같진 않아 보였다. 그런데 두 눈을 새벽 1시의 부엉이처럼 동그랗게 뜨고 아빠를 노려보는 모습은 그야말로 다시 제대로 살아난 좀비를 보는 듯한 놀라움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새아빠의 그 모습을 보면서 아빠는 계속해서 펀치의 강도를 높여갔다. 쾌감에 사로잡힌 표정으로 말이다.

5분 정도 지났을까. 엄마가 다시 돼지 멱따는 비명을 상스럽게 질러대며 방문을 열고 거실로 튀어 나왔다. 끝내 참지 못한 모양이다. 엄마는 무슨 대단한 희생양을 보호하기라도 하듯 입술을 피가 날 듯 꽉 깨물고는 어느새 쌍코피를 흘리며 바닥에 주저앉은 새아빠를 가로막고 섰다. 아빠와 엄마가 마주했다고 해서 아빠가 표정의 동요를 보이는 건 절대 아니었다. 아빠는 정말이지 이전의 아빠가 아니란 걸 보란듯이 입증하기라도 하듯 얼음인간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아빠는 새아빠를 앞으로 5분 동안만 더 두들겨 패주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죽이지 않고 남자구실은 하게 해줄 테니깐 너무 몸달아서 징징거리지 말라고 엄마의 저지를 경망스러운 것으로 전락시켰다. 엄마는 눈물이 많은 여자다. 나 같은 년은 명함도 못 내밀 정도다. 엄마는 계속해서 눈물 콧물 쏟아내며 이제 그만 때리라고 애원했다. 아빠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았다.

상황이 그쯤 되자 아빠는 약간은 아쉽다는 얼굴을 하고 다시 거실 소파에 주저앉았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내 손에 쥐어져 있던 리모콘을 가로채 다시 메이저리그 야구경기 방송을 틀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새아빠는 그런 나를 주저앉은 채로 올려다봤다. 쌍코피를 흘리는 새아빠의 얼굴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익은 감자처럼 으깨어져 있었다. 한쪽 눈이 터졌고 입술도 찢어 졌을 뿐더러 새아빠가 즐겨 입던 입셍로랑 와이셔츠도 보기 좋게 찢겨져 있었다. 그러나 나는 새아빠에게 별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그냥 눈만 한 번 마주치곤 서둘러 내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아빠의 얻어터진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 폭소가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그냥 우스운 것이다. 새아빠의 얻어터진 꼬락서니가.

 

 

3

 

이쯤 되면 아빠의 실종과 부활에 대해 대략이나마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되겠지. 그렇다고 시시콜콜 수다를 늘어놓을 생각은 추호에도 없으니 주의해서 읽어주기 비란다.

3년 전 아빠는 위태로운 중소기업의 사장이었다. 핀란드에서 수입해 온 정수기를 국내에 유통시켜 판매하는 한 마디로 무역회사였는데, IMF이후부터 모든 게 어려워졌다고 했다. 자세한 건 모르겠다. 당시 고딩도 아닌 내가 알면 얼마나 더 잘 알겠느냐.

여하튼 그렇게 위태롭던 사업이 끝내 부도를 맞으면서부터 아빠는 완전히 맛이 가버렸다. 몸에 잘 받지도 않는 양주를 병째 나발불고 못 피우던 담배도 한 갑 이상 피우면서 괴로워했다. 그때도 지금 살고 있는 40평 아파트였는데,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허접한 살림살이에 빨간 압류딱지가 붙는 건 지켜보는 건 흥미로울 정도였다.

그런 아빠가 어느 순간 죽어버렸다. 정확히 3년이 지난 지금쯤 말이다. 유서 따윈 남기지 않았다. 오후 2시쯤인가. 꽤 한가해지려고 하는 대교 난간을 보기 좋게 들이박고 아빠의 그랜저 XG는 그대로 한강 물 속으로 다이빙했다. 7시 뉴스에도 나왔다던 아빠의 사망사고는 그런데 정확히 사망이 아닌 실종사고로 처리 됐었다. 왜냐고? 시체가 발견되지 않았으니깐.

경찰은 차가 박살난 걸로 봐선 아빠가 살아날 가능성은 1퍼센트도 없다고 입에 거품까지 물며 아빠의 죽음을 확신했다고 한다. 그래서 끝내 아빠의 장례까지 치르게 되었다. 시체도 없는 빈 관을 덜컹 덜컹 끌고 다니며 화장터까지 갖고 갔던 그때의 일은 지금 생각해도 코미디다. 아빠가 죽었는데 엄마는 그다지 슬퍼하지 않았다. 물론 끝내주게 울음을 터뜨렸던 것은 분명하다. 사고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생명보험사로부터 사망보험금 7억 5천만 원을 수령 받을 때까지 엄마는 정말이지 언제라도 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앞서도 말한 적이 있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 건 엄마의 주특기다. 엄마는 그것말고는 잘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여자로 생각될 만큼 정말 대차게 울어댔다. 그러나 딸인 나는 물론 알고 있다. 엄마가 별로 아빠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생명보험사에서는 아빠의 사고 후 거의 한 달 동안 끈질기게 엄마를 추궁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울음으로 대응했다. 거의 대꾸도 안 한 걸로 기억한다. 오죽했으면 보험회사 아저씨들이 엄마를 옆에 두고 나한테 아빠에 대해 물어 볼 정도였으니까.

아저씨들이 물어보는 건 주로 아빠의 태도에 대한 거였다. 최근 아빠가 수상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더냐. 이를테면 죽고 싶다는 말을 한다거나 부도난 사장이 보일 수 있는 극단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냐는 질문 따위. 나는 엄마가 시킨 대로 그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 아빤 대범한 남자라고. 정수기 회사 하나 말아먹은 것 가지고 죽음을 생각할 정도로 소심한 남자가 아니라고. 그런데 나는 그때 그 아저씨들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솔직한 탓이다. 보험회사 직원 중 한 명이 당시 중학교에 갓 입학하게 될 내 무릎을 보며 이렇게 물었던 적이 있다. ‘너 무릎이 유독 부었구나.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거니?’ 짧은 청스커트를 입고 있던 내 오른 무릎이 유난히 부어 있던 건 사실이다. 정확하게 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병이 있는 게 아니라 아빠가 너무 자주 만져서 부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도대체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까지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묻지도 않은 부연설명까지 보태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빤 내가 아주 어렸을 적부터 함께 발가벗고 목욕하는 걸 좋아했다고. 그런데 그 습관은 내가 나이가 들어 생리도 하고 젖도 제법 탱탱해질 때까지도 그만두지 않았다고. 어느 때는 함께 목욕하다가 아빠가 내 오른손을 붙잡아 일부러 자기 자지를 만질 수 있도록 시킨 적도 있다고. 그러면서 목욕이 끝나고 나면 아이처럼 울면서 나한테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그렇지만, 그 버릇은 끝나지 않고 거의 매일 내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오면 아무리 바빠도 기다리고 있다가 함께 목욕하는 걸 멈추질 않았다는 말들을.

효과가 아예 없진 않았다. 보험사 직원들은 그 후론 엄마나 나를 더 이상 귀찮게 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예상대로 한달 정도 지나니깐 아빠의 실종은 자연스럽게 사망으로 변해갔고 엄마가 사망신고를 하러 구청에 간 것도 두 달이 조금 못 되었던 때로 기억한다. 물론 장례는 그 전에 이미 치른 상태였다.

엄마가 보험사 직원들에게 했던 말 중에 가장 큰 거짓말을 하나만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건 바로 아빠가 대범하다는 사실이다.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다. 아빤 이 세상 누구보다 소심한 사람이었다. 어린 내가 봐도 어떻게 저런 소심한 성격으로 사장이 됐는지 의문이 생길 정도로 아빤 모든 일에 신중했고 조심스러웠다. 사소한 일에도 지나치게 집착했으며, 특히 엄마와 관련된 행동에 있어선 더욱 그랬다. 아빠의 허물을 더 들춰내는 것 같아 좀 찜찜하지만 기왕 밝힌 김에 하나 더 밝히자면 엄마에 대한 아빠의 생각이다. 한 마디로 아빠는 날 친딸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무슨 말인가 하면 엄마가 결혼하기 전에도 결혼하고 나서도 처음부터 남자 손이 많이 탈 정도로 음탕해서 자기가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거라고 의심하는 것이다. 그런 걸 두고 의처증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니깐 아빠는 자연 엄마의 모든 행동을 의심하고 감시했다. 예민하게 더듬이를 치켜든 사마귀 두목 마냥 말이다.

그러나 사실을 밝히건대 엄마는 순전히 아빠의 말을 빌려 남자의 많이 탈 만한 스타일이 결코 아니라는 걸 분명히 해두고 싶다. 30대 후반인 엄마는 촌스럽고 못생겼으며 무엇보다 또래에 비해 뚱뚱한 편이다. 그런 엄마를 심 혜진이나 김 희애 떠올리듯 바라보는 아빠의 취향은 그야말로 엽기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엽기에 가까운 일이 그러니까 맹랑하기만 한 어린 순정만화 작가의 스토리보다도 못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현실로 드러난 건 정확히 아빠가 실종되고 난 지 삼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일이었다. 바로 엄마에게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 남자는 바로 아빠가 경영하던 회사의 부하직원이었다는 것. 그리고 아빠의 의심이 단순한 근거 없는 의심이 아니라 정말로 사실이었다는 것. 엄마와 지금의 새아빠가 된 남자와는 벌써 오래 전부터 섬씽이 있어 왔다는 것. 제법 쇼킹한 일이었다고 기억한다.

새아빠와 엄마의 결합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지 않았던 걸로 보면 둘은 제대로 된 플라토닉러브라고도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무엇보다 착하고 순박하기만 한 190센티미터의 큰 키를 가진 실제로 씨름 선수 출신이라는 새아빠는 한 푼의 돈도 없었으니깐. 아빠의 부하직원이라고 엄마한테 소개받았을 때, 나는 아빠의 바로 밑의 직원. 부장이나 상무 정도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니었다. 새아빠는 스무 명도 채 안 되는 아빠 회사에서도 최하 말단인 대리였다. 취직만 하면 누구나 갖다 붙이는 대리. 회사가 절단 나고 아빠의 그랜저 XG가 대교 밑으로 다이빙할 때, 그리고 이번엔 순전히 엄마의 말을 빌려 보험사 직원들의 잔인한 박해와 추궁이 계속될 때에도 새아빠는 항상 엄마의 옆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고 한다. 실제로 내가 옆에서 지켜봤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상상하기는 어려웠다. 그 새아빠가 엄마의 남편이 되리라는 상상 말이다. 왜냐하면 우선 새아빠는 지나치게 엄마보다 나이가 어렸고, 그래서 상대적으로 자기 나이보다 다섯 살은 많아 보이는 엄마랑 나란히 옆에 서면 큰누나와 막내 동생정도로밖에 보이질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사람들도 쓸데없는 의심을 안 한 것 같기도 하다. 워낙 새아빠가 설치고 다녀도 그냥 자기 다니던 회사 사장의 일이니깐. 그리고 워낙 주책없이 끼어대는 사람이니깐 저러나 보다 했던 것 같다.

뭐. 새아빠가 엄마와 아빠의 죽음으로 인해 얻게 될 보험금에 흑심이 있다고 해도 난 별로 불만이 없다. 사실 뭐 얼마나 내가 대단히 별 볼일 있는 집안의 외동딸도 아니고 아빠의 몸값으로 받아 낸 7억 5천 만 원도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렇게 큰돈도 아니니깐 말이다.

어쨌든 새아빠는 그렇게 나의 새아빠가 되었다. 나와 정확히 열 다섯 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 서른 살 총각이었던 새아빠는 아빠의 장례식을 치르고 보험금을 받아 40평 아파트인 우리 집을 경매의 위험에서 건져내고 빨간 압류 딱지가 붙어있던 낡고 고리타분한 살림살이를 죄다 걷어내고 지금의 42인치 파브 TV를 비롯한 최신형 가전제품들을 무더기로 들여오던 바로 그 날부터 새아빠로 불려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지금 새아빠와 엄마는 아빠의 몸값으로 받은 보험금의 일부를 투자하여 둘이 함께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한 근처 상가에서 치킨 집을 운영하고 있다. 체인점으로 운영되는 치킨 집이라 음식개발 따위의 귀찮고 머리 쓰는 일을 할 필요도 없고 그저 배달만 죽어라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니깐 대단히 자랑하고 다닐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예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새아빠에 대해 별다른 불만이 없었던 건 순전히 상대적인 이유에서다. 절대적으로만. 그러니깐 새아빠 한 사람만 놓고 봤을 때 그는 별 볼일 없는 인간이다. 많이 배운 것도 없어 중학교 영어 수학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전혀 없으며 클래식을 듣는 다거나 DVD를 수집하는 따위의 취미도 없고 술을 잘 마시지도 않고 친구도 별로 없는 것 같으며, 그저 집과 치킨 집만 미친 개처럼 들락거리는 전혀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인간이란 말이다. 그럼에도 새아빠는 우선 나와 같이 목욕하잔 말을 단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다는 건 무척 맘에 드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빠와 같이 목욕한다고 해서 대단히 충격적이고 수치스러워 견딜 수 없는 시간을 보냈다고는 쉽게 단정하지 마라. 그런 건 전혀 아니라는 걸 밝혀두고 싶다. 그냥 나는 귀찮고 성가실 뿐이다. 아빠의 자지를 만지는 일이 대책 없이 울어대는 아빠를 달래야 하는 일은 학교 대강당에서 ‘죽은 시인의 사회’를 2시간이나 풀타임으로 봐줘야 하는 것만큼이나 따분한 일이기 때문이다. 새아빠에겐 그런 일이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메리트였다.

정리해보면 아빠가 그렇게 사라지고 난 뒤는 대단히 좋을 것도 대단히 나쁠 것도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학년이 올라가고 지폘 냉장고에서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먹고 저녁 10시만 되면 거실에서 파브 TV를 통해 KBS 미니시리즈를 보는 일 정도로 나는 만족했고 엄마도 새아빠도 별다른 불만이 없는 것으로 나는 기억한다.

그러나 엄마는 결국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아빠가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미 7억 5천만의 몸값을 전부 다해버린 아빠가 말이다.

 

 

4

 

아빠가 돌아왔다는 게 나한테 의미하는 바는 별로 없다. 3년 정도 떨어져 있긴 해도 아빠의 얼굴이 아예 재수 없게 변한 것도 아니고 그저 익숙했다. 하는 행동 몇 가지가 변한 것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바로 냉장고 문을 열고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오후 4시에 즐겨보는 MTV를 마음놓고 볼 수 없다는 애로사항과 엄마가 저녁을 하러 치킨 집에 오기 전에 아빠와 함께 안방에 딸린 욕실에서 30분 정도 함께 발가벗고 목욕을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추가된 것도 물론 거슬리는 일 중의 하나이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엄마와 새아빠는 나처럼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새아빠의 얼굴은 보는 그대로 표현하자면 지옥이었다. 지옥을 본 사람처럼 끔찍했단 말이다. 190센티미터의 100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그 놀라운 체구를 가진 새아빠의 얼굴에서 그처럼 엄청난 양의 공포가 숨겨져 있는 줄은 미처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물론 지옥을 만난 건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엄마의 컨디션이 가족 중에 가장 최악일 거라는 측은함은 든다. 우선 엄마는 아빠가 등장한 뒤부터 새아빠와 섹스를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깐. 단순히 섹스만을 할 수 없게 된 게 아니다. 안방은 그 날 아빠가 돌아온 이후로 아빠의 차지가 되어버렸다. 그걸 뭐라고 하는 사람은 우리 가족 중에 아무도 없었다. 아빠만 그렇게 안방 하나를 차지하면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지만 어디 아빠가 그럴 인간인가. 아빠는 그 안방에 엄마를 끌어들였다. 아빠의 말을 빌리면 이제야 온전히 제자리를 찾았다는 논리가 성립된 것이다. 그럼 새아빠는? 새아빠는 40평 아파트에서 가장 작은 방인 드레스 룸으로 사용하던 화장실 옆방으로 강제이주당했다. 나도 가끔 그 방에서 자본 적이 있는데 최악이다. 엄마와 나의 옷가지들이 질서 없이 쌓여있는 것도 모자라 누가 치킨 집 사장 아니랄까봐 배달용 치킨 박스 샘플들이 수천 장씩 묶음으로 한 가득 쌓여 있어 아마 새아빠는 잘 때도 두 다리를 오그리고 자야 할 정도로 비좁고 퀴퀴한 곰팡내 가득한 방이었다. 그래도 새아빠는 아빠에게 한 마디 반항도 하지 못했다.

식사시간의 변화도 한 번 짚고 넘어가야겠다. 아침 8시에 거실 식탁에 앉아 토스트와 딸기우유를 먹던 것은 늘 나 혼자만의 일이었다. 엄마와 새아빠는 밤늦게까지 장사를 했으니 오전 10시가 되어야 일어나는 게 일종의 생활패턴이었다. 하지만 아빠가 돌아온 후로 아침 8시에 모두 네 명의 남녀가 함께 식탁에 앉게 되었다. 메뉴도 완전히 뒤바꿨다. 시금치국이나 된장찌개 같은 걸로.

아빠는 다행히도 아침식사에 새아빠를 끼워주었다. 새아빠와 나와 나란히 앉고 그 맞은편에 아빠와 엄마가 나란히 앉았는데 그걸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느낌 가는 대로 표현하자면 조금 이른 나이에 사고친 부부가 일찍 아들을 먼저 낳고 한참 후에 늦둥이인 딸을 낳은 끝내주게 무미건조하게 사는 콩가루 직전의 가족 식사시간을 보는 것 같은 풍경이었다. 새아빠는 그렇게 졸지에 아빠의 노숙한 아들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빠가 가장 많은 말을 하는 시간도 바로 아침 시간이었다. 아빠는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을 번갈아 보며 시국이 어쨌느니 경제가 이 모양으로 가다간 나라를 아예 통째로 말아먹겠다는 등 한국 정치 경제의 고민을 죄다 짊어진 민족 투사 마냥 나불거렸고 그냥 혼잣말로 그렇게 지껄이면 좋겠지만 하나의 화제가 끝날 때마다 반드시 새아빠에게 ‘그렇지 않냐?’라든가 ‘안 그래? 윤 대리?’하면서 새아빠의 동의를 끈질기게 구했고 그때마다 새아빠는 제대로 훈련된 애완견 마냥 ‘예. 그렇죠’ ‘사장님 말씀이 맞습니다.’라는 말을 구호처럼 반복했다.

엄마는 도대체 아빠를 어떻게 해야 좋을지 항상 걱정하는 눈치였다. 식사가 끝날 무렵에는 언제나 반복되는 멘트가 되어버린 아빠의 소위 정체성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 것을 건의하곤 했다. 쉽게 말해 아빠의 주민등록증.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권리에 대한 문제다.

엄마의 말은 당연히 일리가 있었다. 아빠는 구청에서도 사망신고가 되어 있고 그러니 자연히 주민등록은 말소되었고 호적등본을 떼어 봐도 사망이라고 기재되어 있고 보험회사로부터 그 생난리를 겪고 난 다음 보험금 7억 5천만 원을 죄다 까먹었으니까 한 마디로 아빠는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엄마의 그 말은 언제나 그렇듯 아빠의 야만적인 폭력으로 되돌아 왔다. 그런 게 아빠의 변한 모습이다. 3년 전의 아빠는 엄마를 의심했고 소심한 행동들로 주위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긴 했지만 엄마를 때린다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거나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오늘의 아빠는 달라졌다. 아빠는 엄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새아빠를 두들겨 팼던 것처럼 복싱선수가 원투 잽을 날리듯 엄마의 면상을 결코 약하지 않게 두어 번 후려쳤고 그것도 모자라 의자에 앉아있는 엄마의 옆구리를 발로 걷어찼다. 그러면 엄마는 약간은 과장된 비명을 지르며 바닥으로 뒹굴었고 배를 움켜쥐며 죽는시늉을 해 보였다. 아빠는 그에 멈추지 않고 엄마를 동정하지도 않고 자신이 먹다 남긴 밥그릇이며 숟가락 따위를 엄마를 향해 집어 던졌고 ‘3년 동안 내가 어떻게 견뎠는지 알아? 이 개 같은 갈보 년아.’ 라고 외치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울먹거리며 자신이 이 집의 주인임을 재확인했다.

새아빠는? 새아빠는 뭐하고 있었냐고? 당연히 새아빠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밥만 축내고 있었다. 여전히 얼굴은 지옥을 본 사람처럼 굳어버린 채로 말이다.

한달 정도 이런 생활이 반복되자 나도 엄마가 더 이상 이런 상태로는 살아갈 수가 없겠다는 판단이 들 정도가 되었다. 아빠는 무서운 집중력으로 그 한달 동안 아파트 밖을 한 번도 나가지 않고 거실과 안방. 베란다를 오가면서 메이저리그 야구를 보다가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우거나 그것도 지루해지면 혼자 안방에 들어가 마스터베이션을 하며 시간을 죽였다.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하루에 한 번씩은 반드시 구타당할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면서도 누가 주책 맞은 돼지 멱따는 비명의 소유자 아니랄까봐 아빠의 거취문제를 집요하게 들먹거렸고, 그럴 때마다 아빠는 ‘이 집 주인은 나야. 이 아파트를 지켜낸 거며 파브 TV. 치킨 집을 누구 덕에 얻게 된 거냐’며 목에 핏대까지 올려가며 엄마를 때렸고 또 그때마다 공교롭게 새아빠는 정말로 먹는 것 외엔 다른 아무 대책도 없어 보이는 식충이 마냥 밥만 꾸역꾸역 처먹고 있었다.

난 새아빠가 혹시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당연한 의문이다. 내가 만약 새아빠라고 생각해 본다면 아마 미쳐버릴지도 모르겠다. 자기 부인이 다른 남자와 함께 강간에 가까운 섹스를 하게 되는 걸 지켜봐야지. 안방도 빼앗겼지. 저녁에 들어와도 TV도 맘대로 보고 싶은 걸 못 보지. 하루 매상도 아빠한테 모두 보고해야 되지. 도대체 왜 저러고 살까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새아빠는 그저 그 한달 동안 똥씹은 표정을 하면서도 이제는 사장도 뭐도 아닌 아빠의 말을 알라신의 말씀 마냥 절대 복종하는 우스꽝스런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새아빠는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단한 천재도 아니지만 난 아빠가 돌아 온지 한달 보름이 넘는 어느 날 밤. 새아빠의 진면목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새아빠는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한 단계 더 레벨이 높은 잔인하고도 심플한 계획을 갖고 있음 또한 알게 되었다.

 

 

5

 

방학이 되자 제일 물 불 안 가리고 기뻐한 건 나도 아니고 내 남친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새아빠는 물론 아니고 바로 아빠였다. 딱히 친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도둑고양이 마냥 싸돌아 다니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나는 방학 동안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거실 소파에 누워 크라운 산도를 먹으며 여성 TV나 비디오를 보는 게 유일한 취미라면 취미였다. 그런데 이번 방학은 순전히 아빠의 차지였다. 아빠는 내가 학교를 다닐 때면 오후 4시에만 한 번 함께 목욕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었다. 그런데 방학이 되면서 그 원칙은 형편없이 무너졌다. 아빠는 낮 밤 가릴 것 없이 기회만 되면 날 안방에 딸린 욕실로 데리고 가 함께 발가벗고 목욕하길 원했다.

그래. 여기까지도 좋다. 뭐 자주 씻는 거야 위생에도 좋으니까. 문제는 아빠가 무슨 생각에선지 나와 단순히 목욕만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 데 있었다.

이제부터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한 마디로 쪽팔린다. 그래도 고백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클라이맥스이기도 하니깐 빠뜨릴 수는 없겠다. 아빠가 내 빵빵하지도 않은 젖가슴을 고무찰흙 주무르듯 주무르는 것까지는 어떻게 참아볼 수 있겠다. 나 혼자서도 젖이 적은 게 늘 고민이었으니깐 한 참 발육이 왕성할 때 다른 사람도 아닌 아빠가 직접 만져주는 거야 뭐 어떻겠느냐. 하지만 아빠가 유난히 시커멓고 오른쪽으로 잔뜩 휘어있는 자신의 성기를 내 입 속에 집어넣으려 하는 행동은 참기가 힘들었다. 그건 짜증스러운 일이다. 남친에게도 해주지 않은 일을 굳이 아빠라고 해서 해줘야 하는 것도 우습지 않겠느냐?

몇 번 거부하다가 끝내 해주긴 했지만 찜찜하고 개운치 않은 기분이 나를 괴롭혔다. 그 후론 밥을 먹을 때 나는 소시지 종류의 반찬은 결코 먹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다.

그 이후로 목욕은 이제 제대로 된 목욕이 아니었다. 아빠는 옷만 죄다 벗어제치고 욕실에 들어갔다는 것뿐이지 목욕이나 샤워와는 전혀 거리가 먼 행동에만 몰두했고 대단히 여리고 철모르는 아이처럼 즐거워했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 다음과 같이 물었다. ‘옛날에는 내 무릎만 만져도 나 같은 놈 죽어야 돼 하면서 통곡을 하더니 이제는 왜 울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냐’고 말이다. 그러자 아빠는 너무나 당연하다하는 듯 이렇게 대답했다. ‘이제 넌 내 딸도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 사이도 아니니깐 너와 이런 짓을 벌여도 전혀 죄책감을 갖질 못하겠다. 내 자신도 신기할 정도다. 내가 죽었다 살아나서 가장 만족스러운 건 바로 너와 함께 목욕을 할 수 있다는 것 하나 뿐이다.’

아빠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엄마의 말처럼, 그리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아빠는 이제 그 무엇도 아니다. 아빠는 3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고, 그 보험금으로 새아빠와 엄마는 치킨 집을 차릴 수 있었고, 42인치 파브 TV를 갖게 되었다. 그러니깐 아빠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40평 아파트의 일부일 뿐이다. 그런 아빠가 내게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다 맞는 말이다. 아빠는 한 마디로 자유인이 된 것이다. 아빠가 소심해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게 이제 분명해 진 것이다. 그가 집밖으로만 나가지 않는다면 늙어 벽에 똥칠할 때까지 거실과 안방. 베란다와 욕실만 착실하게 왔다 갔다 하며 어린 내 입 속에 언제까지라도 오른쪽으로 휘어 있을 자신의 자지를 집어넣다 뺐다를 반복할 수만 있으면 되니깐 말이다.

그런데 나는 화가 났다. 이상하게 화가 났다. 만약 아빠의 말이 사실이라면 정말 그렇다면 내가 아빠와 목욕을 같이해야 할 이유 또한 소멸해 버리기 때문이다. 아빠와 아무 사이도 아니라면 아무 사이도 아닌 아빠의 자지를 입안에 집어넣어야 할 만큼 나는 박애주의자가 아닌 것이다. 내가 아빠와 함께 목욕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빠가 아빠였기 때문이 아닌가. 아빠가 괴로워하고 다신 그렇지 않겠다고 어린 내 앞에 무릎꿇고 사죄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주룩 주룩 흘렸기 때문에 아빠와의 목욕을 허락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아빠는 그저 귀찮고 성가실 뿐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아빠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 아무 것도 아닌 존재 때문에 엄마는 지옥을 몸소 체험해야 하고 새아빠는 그 지옥을 비명 한 번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고스란히 감당해야만 한다.

순전히 이 상황만 놓고 보자면 아빠는 내가 알고 있는 최악의 악마일 수밖에 없다. 한 가정의 평화를 무참히 짓밟고 자기가 직접 싸질러 놓은 친딸의 입안에 다른 사람의 것도 아닌 자기 자신의 자지를 집어넣고 엄마의 돼지 멱따는 비명소리를 즐기고 공휴일도 없이 밤낮 죽어라 스쿠터를 몰고 다니며 닭을 팔고 벌어온 새아빠의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한푼도 에누리 없이 착취하고 그러면서 이름도, 주소도, 주민등록증도, 여권도, 집문서도, 자동차등록증도, 재직증명서도, 휴대폰 가입자 성명도 그 어떤 것에도 존재하지 않는 아빠가 분명하고 가증스러운 악마가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뭔가 부당하고 억울하단 생각이 치밀 즈음 나는 새아빠가 말했던 제안을 다시 기억했다. 일전에 들려주었던 강도 높은 잔인한 계획이란 거 말이다.

 

 

6

 

아빠가 거실 소파에 TV를 켜 놓은 채로 그대로 잠이 든 어느 날 밤. 책상에 앉아 성문 영문법 공부를 하고 있던 내게 새아빠가 찾아 왔다. 새아빠는 천성이 그런 것 마냥 예의가 바른 사람 같다. 노크를 했으며 ‘들어가도 되니?’라는 양해의 말까지 구하며 딸의 방에 들어왔으니 말이다.

하지만 새아빠가 나를 보자마자 보여준 행동은 전혀 조심성이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보아온 새아빠의 모습과는 다소 달랐다. 그 날 밤만큼은 그랬다.

지금까지 새아빠는 묵묵히 아빠의 개가 되어 한달 보름이란 시간을 견뎌냈다. 엄마의 소득 없는 아빠에 대한 반항으로 인해 얻게 된 구타와 모멸을 바로 코앞에서 목격하면서도 용케 견뎌오던 새아빠는 그렇게 날 보더니 울음부터 터뜨리는 게 아닌가. 마치 막대사탕을 잃어버린 못난 아이처럼 말이다.

솔직히 좀 오버스럽다는 느낌은 새아빠가 노크를 하고 들어온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 같다. 나를 침대 모서리에 앉히고 자신은 내가 앉던 책상 의자에 대신 앉은 새아빠는 우선 닭똥 같은 눈물을 억지스럽게 쏟아내더니 콧물까지 훌쩍거리며 다음과 같은 제안의 성격이 담긴 말을 조심스럽지만 비교적 빠르고 신속하게 전달해 주었다.

새아빠가 하고자 하는 제안은 단순했다. 아빠를 원래 자리로 되돌려 주자는 것. 나는 멍청하게도 그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자면 새아빠가 아빠 자리를 내놓고 그 자리에 아빠가 다시 아빠노릇을 하겠다는 거냐고 따져 물었더니 새아빠는 기겁을 하며 그게 아니고 아빠를 3년 전의 아빠로 되돌려 놓자는 말을 강조해 반복했다.

나는 거듭 물었다. 어떻게 하면 아빠를 3년 전의 아빠로 되돌려 놓을 수 있냐고. 그러더니 새아빠는 대답 대신 몇 개의 증명서류를 내게 보여주었다. 그것은 아빠의 사망확인서와 장례식 절차 때 쓰인 영수증. 아빠의 빈 유골이 묻혀 있다는 납골당의 고유번호와 새아빠와 엄마의 혼인신고서. 끝으로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나와 있는 의료보험증까지. 나는 그것들을 건성으로 훑어보기만 했다. 뻔한 증명서류들에 불과하니깐. 하지만 새아빠는 그 서류들에 대해 썩 대단한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 봐라. 아빠는 죽었다. 3년 전에. 그리고 이제 우리 가족은 엄마와 나. 그리고 너. 이렇게 세 명뿐이다. 가족. 가족. 그 말을 유난히 힘주어 강조한 새아빠는 더 이상은 못 참겠다는 듯 헐크같은 얼굴이 되어 정말이지 눈의 힘줄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위태로운 상태로 다음과 같은 말로 화제를 비약시켰다.

새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가족이라면 자신의 친딸의 입 속에 자지를 집어넣게 하거나 하진 않는다’고. ‘진짜 한 가정의 가장이라면 아내를 개 패듯 패고 하루 종일 집구석에만 틀어 박여 아무 것도 하지 않고 TV만 보면서 시간을 죽이진 않는다’고. 그리고 새아빠는 무슨 자격지심이라도 들었는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아빠의 사망으로 인해 얻게 된 보험금에 대해서 자긴 원래 정말이지 그런 돈의 혜택을 입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어쩌겠느냐. 자기보다 열 살이나 더 많은 엄마와 나를 제대로 먹여 살리기 위해선 수중에 뭐라고 갖고 있어야 하는데 어쩔 수 없었다면서 지금 자기가 하루 종일 스쿠터 타고 다니며 치킨 조각들을 배달하러 다니지 않으면 엄마와 나. 그렇게 우리 세 식구는 길바닥에 나앉게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해가면서 더 이상 울먹이진 않고 마치 자기가 부당한 박해를 받는 희생자인 것마냥 억울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나는 새아빠의 장황한 신세타령이 슬슬 지겨워졌다. 가만히 보면 새아빠는 괴팍한 콤플렉스에 겹겹이 쌓여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래서 참다 못한 나는 새아빠의 말을 중간에서 잘라먹었고 알기 쉽고 명확하게 하고자 하는 말만 하라고 다그쳤다. 물론 그게 딸로서 아빠에게 해야 할 말버릇은 아니지만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도무지 새아빠의 말이 끝날 것 같지가 않아서였다.

다소 머쓱해진 새아빠는 그때부터 냉정을 되찾았다. 그리고는 내게 요점만 간단히 말해주었다. 거의 통고에 가까운 말들.

이번 주말에까지 아빠를 주민등록 말소자의 신분으로 다시 되돌릴 예정이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세 가족의 단결과 굳은 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이번 주말이 아빠의 마지막 날이 되어야 한다. 엄마와 자신은 어느 때와 다르지 않게 가게에 나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들어올 때는 아빠의 예고 없이 도둑처럼 들어올 것이다. 그러면 아마 그때 나와 아빠는 안방에 딸려있는 욕실 욕조에 함께 발가벗고 목욕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를 노릴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알고 며칠만 더 참고 있어라.

나는 보다 직접적인 대답을 새아빠로부터 직접 듣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아빠를 죽일 거냐고?’ 그러나 이러한 내 질문에 새아빠는 그 큰 머리통을 세차게 가로 저으며 ‘이건 아빠를 죽이는 게 아니라’고 했다. 아빠를 우리의 원래 기억 속으로 되돌려 놓자는 것뿐이라고 했다. 3년 만에 돌아온 아빠가 자신의 신분도 위치도 모두 망각한 채 날마다 딸을 강간하고 부인을 때리고 한때 충성해 마지않던 이제는 아내의 새 남편이 된 자신을 복날 개 패듯이 두들겨 패는 그러한 아빠는 이미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하며 한 번 욕실에서 곰곰이 아빠의 얼굴을 살펴보곤 했다. 그러면서 새아빠는 다소 비현실적인 말을 들려줌으로서 나에게서 자신의 계획을 향한 무언의 동의를 얻어냈다. 새아빠는 자신은 지금 아빠를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애석하게도 나도 그런 새아빠의 말에 동의하고 있다. 아빠에 대한 애착이 없어서도 아니다. 아빠에 대한 미움이나 황당함. 새아빠 말대로 아빠가 돌아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는 것뿐이다. 그것도 살아서 살아 숨쉬며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거나 무슨 도깨비 방망이처럼 커졌다 작아졌다를 수시로 되풀이하는 검붉은 자지를 가진 살아있는 인간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엄마도 같은 생각일 거다.

어쩌면 아빠 그 자신조차도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7

 

새아빠가 말한 문제의 주말이 어김없이 시작되었다. 토요일 아침은 의외로 고요했다. 엄마도 더 이상 아빠의 거취문제를 두고 따져 말하지 않았고 아빠도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빠는 새아빠에게 오늘은 몇 시에 들어올 거냐고 물었고 새아빠는 주말이라 바쁘니 점심때도 못 들어오고 저녁 7시나 돼서야 들어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새아빠는 이제 내게 물었다. 토요일에도 학교를 가냐고. 나는 토요일이라 오전 수업만 한다고 아빠에게 말했더니 아빠는 그깟 오전수업 안 하면 어떠냐고. 여자가 너무 많이 배워도 특별히 쓸모도 없다는 식의 시대착오적인 폭언까지 섞어가며 투덜거렸다.

그 날 아침에 아빠의 소위 정체성에 대해 물은 건 엄마도 새아빠도 아닌 바로 나였다. 난 아빠가 밥 한 공기를 제대로 비우고 숟가락을 식탁 위에 올려놓는 것과 때를 맞춰 지금 행복하냐고 물었다. 아빠에게.

그러자 네 사람이 앉아있는 식탁 위엔 가공할 만한 정적이 감돌았다. 순간, DVD 정지화면처럼 새아빠, 엄마, 그리고 아빠가 단단하게 굳은 석고상이 되어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집중된 것이다.

아빠는 그런 건 왜 묻느냐고 내게 되물었고 난 궁금해서 그렇다며 지금 우리 네 사람 모두 행복한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자 아빠는 진짜 행복해 지려면 모든 게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어야만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것은 3년 만에 좀비처럼 다시 살아난 아빠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남긴 진지한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 원래 상태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것은 새아빠가 했던 것과 똑같은 내용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 원래 자리란 대체 무슨 의미를 갖고 있는 걸까?

그 날 낮에 기어이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오후 2시. 1시 30분쯤에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나는 엄마가 차려 놓고 간 미역국을 다시 끓이고 냉장고 문을 열어 장조림과 깻잎 따위의 밑반찬을 점심식사 메뉴로 준비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날따라 뭐가 그리 급했는지 아빠는 점심은 먹기 싫다고 했다. 나는 그래도 점심은 먹어야 하지 않냐고. 아빤 어떨지 몰라도 나는 지금 몹시 배가 고프다고 따져 물었지만, 아빠는 막무가내로 그렇게 저항하는 내 손목을 붙잡고 안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으라고 명령하듯 말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그 날 따라 아빠는 무슨 모종의 결심을 한 사람처럼 난폭하게 굴었다. 교복 치마와 블라우스도 벗고 장미 레이스가 달린 팬티도 벗고 브래지어도 마저 벗으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시 내 손을 잡고 날 안방에 딸려있는 욕실로 끌고 들어갔다. 욕조엔 이미 더운물이 한 가득 채워져 있었고 욕실 안은 희뿌연 수증기로 가득 찼다. 아빠는 제대로 옷도 벗지 않은 채 그저 성급히 바지와 팬티만 무릎 아래까지만 벗겨 내리더니 어느 때와 다를 거 없이 자신의 자지를 내 입 속으로 집어넣으려 했다. 그런 아빠는 무정한 음성으로 입을 있는 힘껏 크게 벌리라고 명령했다. 무슨 자기가 유명한 치과 의사도 아니면서 말이다.

기묘하게 뒤틀린 신음소리를 내며 아빠는 내게 무언가 분명치 않은 말들을 중얼거렸다. 그건 일종의 고백과도 같았는데 워낙 경황이 없었던 탓인지. 아님 아빠의 말들이 워낙 부정확하고 제 멋대로 여서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그때 기억나는 건 어서 빨리 이 시간이 지나가 주기만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처음으로 아빠가 진짜 죽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아빠가 돌아온 이후로 정말로 처음으로 하게 된 생각이고 발상이며 충동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고 벌린 입을 아빠의 자지에서 잽싸게 빼내고는 잠시 고개를 들어 아빠를 올려다보았다. 욕조 안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내 머리와 가득 채워진 욕조 속 푸른 물빛 위로 검고 붉은 핏방울들이 거침없이 떨어져 내렸다. 순식간에 욕조의 물은 핏빛으로 번져나갔으며 내 머리와 얼굴, 가슴에도 핏방울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이지 고백하건대 아빠가 죽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그때 단 한 순간만 상상했었다. 물론 그건 강한 충동이었고 나를 성가시게 하는 상황들에 대한 저주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아빠는 내가 알몸이 되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 앞에서 진짜 죽음을 맞이하고 있었다.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아빠의 죽음은 험악하고 끔찍했다. 도대체 저런 걸 어디서 구했는지 묻고 싶을 만큼 새아빠의 손에는 크고 육중한 금속 연장이 쥐어져 있었고, 새아빠는 그 연장으로 아빠의 뒤통수를 내리친 것이 성에 안찼는지 아빠가 뒤를 돌아볼 겨를도 없이 다시 한 번, 두 번. 있는 힘껏 아빠의 머리통에다 연장을 내리 박았다.

아빠의 죽음은 비교적 간단했다. 두 세 번 연속해서 머리통을 가격 당한 아빠는 그 자리에서 바지와 팬츠도 제대로 걷어올리지 못한 채로 쓰려져 죽어버렸다. 새아빠는 쓰러진 아빠의 코끝에다 손가락을 갖다대는 영화에서 많이 봄직한 행동을 민첩하게 해 보이며 아빠의 완벽한 죽음을 확인했고, 나 역시 그제야 비로소 아빠의 죽음을 분명하고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고백하자면 그건 내가 그런 아빠의 죽음을 보며 전혀 슬픔의 기운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슬프지가 않다. 단지 찜찜할 뿐이다. 우선 치약을 잔뜩 묻힌 칫솔부터 손에 들고 어금니가 아예 바스러질 때까지 입 속을 게워내고 싶으며 본의 아니게 몸에 직접 달라붙은 핏자국들을 닦아내고 싶었다. 단지 그런 것뿐이다. 나는 설마 했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아빠를 빼앗긴 슬픔이 밀려들고 새아빠를 잔인한 사람이라고 내 자신에게 세뇌하며 고통스런 기억을 끌어안고 살아가게 되는 청승맞은 스토리가 전개될 거라는 예상을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새아빠의 말처럼 아빠는 그저 이전 자신의 자리로 되돌아 간 것뿐이다. 세 식구가 함께 밥을 먹는 식탁의 일부로, 지폘 냉장고의 일부로, 베란다에 일렬로 놓여있는 이름도 알 수 없는 화초들의 일부로 되돌아 간 것뿐이라는 생각이 너무나 견고하게 내 머리 위에 성벽을 쌓아올리고 있어 나는 아빠가 잠시 동안 내 기억 속을 제법 집요하게 맴돌던 악몽의 등장인물정도로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새아빠가 핏물과 물기로 촉촉이 젖어있는 내 알몸을 욕조에서 끌어내어 다정하고 따스한 손길로 닦아주는 그 순간부터 아빠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의 감정마저 깡그리 증발되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

 

 

8

 

아빠가 그렇게 원래 자리를 되찾은 지 삼일이 지난 평일 오후에 새아빠는 엄마와 나를 데리고 수원의 납골당을 찾았다. 물론 아빠의 뼛가루 따위가 그곳에 보관되어 있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아빠의 몸은 한 번도 열기로 가득한 화로 속에 들어가 태워진 적이 없으니까. 대신 그곳엔 아빠의 얼굴이 촌스럽게 찍혀있는 흑백영정사진과 아빠의 이름과 사망일지가 적혀있는 아빠의 분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새아빠와 엄마는 약속이라도 한 듯 검은색 양복과 투피스를 정갈하게 갖춰 입었고 나만 쑥색 후드 T와 리바이스 청바지 차림이었다. 새아빠는 언제 어디서 구입했는지 모를 백 송이는 더 되어 보이는 국화꽃 한 다발을 아빠의 자리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한 5분 정도일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청히 서있기엔 더없이 길고 지루한 그 5분 동안 새아빠는 기도를 하는지 묵념을 하는지 어쨌든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눈을 감고 있었다. 가만히 보니 그런 새아빠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새아빠의 정신세계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도대체 저건 무슨 플레이란 말이냐. 엄마와 나도 울지 않는데. 오히려 그 옆에 달라붙듯 서있는 엄마의 얼굴은 마더 테레사 수녀의 사진 속 표정처럼 인자하고 평온하게만 보였다. 나 역시 마찬가지일 테고 말이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 세 사람은 휴게소에 들려 우동 두 그릇을 나눠 먹었다. 새아빠가 한 그릇 전부를, 엄마와 내가 나머지 한 그릇을 서로 나눠 먹는 식으로. 그리고 그때 새아빠는 아빠의 처리문제를 엄마랑 의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피투성이가 된 아빠의 시체가 믿기 힘들겠지만 지펄 냉장고 안에 보관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토막으로 잘린 채로 보관했는지. 아님 통째로 우겨 밀어 넣었는지는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