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대한민국 태극기이 누리집은 대한민국 공식 전자정부 누리집입니다.

공식 누리집 주소 확인하기

go.kr 주소를 사용하는 누리집은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관리하는 누리집입니다.
이 밖에 or.kr 또는 .kr등 다른 도메인 주소를 사용하고 있다면 아래 URL에서 도메인 주소를 확인해 보세요.
운영중인 공식 누리집보기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 작성일 2008-02-09
  • 조회수 234

지난 60년동안 하루도 쉬지 않았다. 쥐꼬리만한 월급으로는 살아생전에 '그것'을 사기는 커녕 절대 만져보지도 못할것 같았다. 퇴근을 하면 곧 바로 막노동판을 전전했어야만 했다.
  그렇게 60여년. 바로 오늘. 그것을 만들기 위한 핵심부품인 엔진을 구입했다. 미국 나사에서 직접 공수해온 엔진은 더할나위없이 늠름해보였다. 흐뭇했다. 대견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지난 60년간의 노력의 결실이 오늘에서야 맺어지게 되는것이었다. 몇년전 수없는 시행착오 끝에 완성된 도면이 나왔을때의 흥분의 딱 100배의 흥분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것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오줌을 지리고 말았다.
  엔진을 장착하고 연료를 주입한다. 엔진 저 밑에서부터 연료가 채워지는 소리가 청명하기만하다. 이젠 거의 모든준비가 끝났다. 
 

  그렇게 개인 우주선을 만들겠다고 내 모든것을 바쳐가면서 까지 매달렸을때 사람들은 저 사람이 큰일을 겪더니 미친놈이 되어버렸다고 손가락질을 해댔다. 몇몇 사람들은 저러다 말겠지라는 생각으로 거짓 응원을 보내기도 했고 어떤이는 우주선을 만드는데 보태쓰라면서 꼬깃꼬깃한 만원짜리 몇장을 건네는이도 있었다. 내가 하는일이 다른사람들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는 몰라도 나는 이 우주선을 꼭 만들어야만했다.
 
  2067년 11월 23일 새벽1시.
 
  나는 우주로간다. 아무도 모르게 나는 간다.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지구와의 기약없는 이별이될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짐한다. 나는다시 돌아온다. 다시돌아와야 한다.
 
  푸슈슝.

 

  엔진이 굉음을 뿜는다. 앞으로 닥칠 엄청난 압력이 내 몸을 갈기갈기 찢으려하겠지만 설계대로라면 그리 고통스럽지는 않을것이다.

  칠흑같은 어둠과, 눈조차 뜨기 힘든 광채가 번갈아가면서 정신을 괴롭혔다.
 
  광활한 우주는 머리속을 멍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끝이 끝이 아니었고 시작이 시작이 아니었으며 방향감각조차도 상실하여 자동항법장치가 없었다면 우주미아가 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전속력이다. 무조건 전속력이다. 지구와는 무조건 멀어져야만 한다. 아인슈타인의 그것만 생각하고 무조건 빛의 속도 보다도 빨리 지구와 멀어져야한다. 그렇게 얼마나 달려왔을까. 우주선에 미리 장착해둔 망원경을 지구쪽으로 방향을 수정한다. 지구에서 출발한 날짜가 2067년 11월 23일이었지만 계산대로라면, 이론대로라면, 우주를  빛의 속도로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망원경으로 본 지구는 그보다 훨씬 전의 시간으로 되돌려져 있을것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면된다. 다시 안전벨트를 매고 다시 달린다. 조금만 더 달리면 된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갑자기 손이 파르르 떨린다. 좀처럼 진정이되지않는다. 심호흡을 해봐도 물을 벌컥벌컥 마셔봐도 진정이 되지않는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2007년 10월의 어느날, 내가 사랑했던 그녀가 누군가에게 뺑소니를 당했다. 목격자도 없었고 그 어떤 증거도 찾지 못했다.  현장에 도착했을때는 그녀의 파르르 떨리는 손목을 붙잡아보는것밖에는 해줄수 있는일이 없었다. 아무런 목격자도 없이, 뺑소니 사고의 용의자를 잡는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그렇게 의미없는 질문과 의미없는 대답만이 포물선을 긋는 몇년의 시간이 의미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그 뺑소니범을 찾아야만 했다. 하지만 그 어떤 단서도 찾을수가 없었다. 결국 그 뺑소니범의 얼굴을 직접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방법밖에는 현재 할수 있는 방법이없다. 그리고 그러기에는 내게 딱 두가지가 부족했다.

 

  첫째. 돈.

  둘째. 이론.

 

  나에겐 애시당초 돈이라는것이 전무했다. 월급이라고 해봐야 쥐꼬리만한것이 전부였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는 나의 생각을 뒷받침해줄 이론조차 갖추어져있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게 수년을 고심했다. 미련하게 생각만한것은 아니었다. 먼저 돈을 벌기 위해 다니던 직장에서 퇴근을 하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돈을 주는것이라면 그 어떤것도 가리지 않고 일을 했다.

  이론적인 부분은 아무리 다듬어보아도 불안하기 마찬가지였다. 나는 살아있어야만 했다. 범인에게 복수를 하기위해서는 나는 살아있어야만했다. 나의 생명과 연관이 되어 있는 이론을 다듬는 일은 굉장한 압박으로 다가왔다. 학창시절 친구의 도움을 받기로했다. 물리학과를 졸업한 녀석으로 지금은 누구나 다 아는 회사의 임원으로 일을 하고 있는 친구였다. 언제나 그랬듯 잘지냈냐는 말로 운을 땠지만 그 친구는 간만에 연락온 친구들이 다 그렇다면서 뭐가 아쉬워서 전화했냐고, 다소 냉소적으로 물어왔다. 그런데도 그 순간마져도 고마워서 눈물이 날뻔했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친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말좀 해보라고 보채도 긴 한숨만 들릴 뿐 이렇다할 답을 해주지는 않았다. 말로는 설명할수 없다고 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나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할것 같다며 불안한 기색을 비쳤다. 친구의 사정은 생각지도 않고 내 멋대로 약속을 잡고 말았다. 친구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늦은 밤 모처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 친구가 말해준 이론은 꽤나 흥미로웠지만 위험성이 다분해 보였다. 빛보다 빠른 속도로 우주공간으로 튕겨져 나가 망원경으로 지구를 들여다보면 시간이 그 만큼 되돌려져 있는 모습을 목격할수 있을것이라는 이론이었다. 다소 허망해보였다. 이것이 실현가능할까 하는 생각이 덜컥 들었지만 처음보다는 다소 자신감에 찬 친구의 모습에 안심이 되었다.


  우주, 검다 못해 내가 눈을 뜨고 있는것인지 감고 있는것인지도 불명확한 상태의 공간속에서 시간을 거슬러 가겠다는 내 생각에 조금씩 의구심이 들때마다 조금더 조금더 속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정확히 6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망원경의 위치는 그녀가 뺑소니를 당한 바로 그 위치에 고정되어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그녀를 죽인 사람의 얼굴을 볼수 있다. 생각만해도 가슴이 터져버릴것같았다.

 

  조그만 경보음이 울렸다. 지구로의 귀환까지의 연료를 제외하고 연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당황스러웠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가면 평생 죽이고 싶었던 그 살인자의 얼굴을 볼수가 있다. 생각하고 뭐할 겨를도 없이 귀환하는데 사용하는 연료탱크의 잠금장치를 풀었다.


  아-

 

  긴 탄성이 나왔다. 한줌 재가 되어버린 그녀가 인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망원경에 붙어있는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댔다. 틱틱 거리며 필름이 다 떨어졌다고 하는 소리가 나도 연신 셔터를 눌러대기 바빴다. 그녀는 가슴 한가득 장미꽃을 가득안고 60년전의 나를 만나러간다. 아슬아슬하게 귀에 걸친 핸드폰에 귀를 대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웃고 있었다.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나와의 마지막 통화, 그녀는 그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웃음을 잃었다. 나 역시 그 후로 웃음을 잃었다. 하염없이 손을 뻗어보지만 그녀에게 손이 닿을리가 만무했다. 허공을 젓는 손이 처량해보인다. 다시 눈물이 한줄기 흘러내렸다.

  뺑소니 차량으로 보이는 차가 저 멀리서 다가온다.  그녀는 앞으로 그녀가 닥칠 일에 대해 꿈에도 생각못했을것이다.

 

  조심해! 조심해!

 

  목이 터져라 울부짖는다. 마음을 가다듬었다.이 순간을 보기 위해 60년을 기다렸다. 격한감정때문에 바보같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사람들은 나를 바보라고 손가락질 해댔고 어느누구는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현실은 오직 그녀를 죽인 사람을 찾는것이었다. 바로 그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다.

 

  뺑소니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을 머리속에 집어넣었다. 60세에 가까운 얼굴. 어깨가 축 쳐진다. 너무나 황망하여 눈물조차 나오지않았다. 60년이 지난 지금. 그 사람이 살아있기를 기대하는것은 무리가 있다. 복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푼돈 모으는데 시간을 보낼때 저 사람은 조용히 편안한 죽음을 맞이했겠지, 분했다. 원통했다.

 

  하염없이 흐르는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고 복수를 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서서히 누그러지고있었다. 대신에 그녀의 마지막순간을 바라볼수 있었다는것에 대해 감사했다.

  이미 지구로 귀환하기는 불가능하다. 나의 우주로의 여행을 도와준 친구에게 마지막 이메일을 띄우고 주위의 행성에 착륙을 시도한다.

  불시착한 행성은 심장끝까지 냉기를 뿜는 차가운 행성,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차가울지라도 눈에서 흐르는 뜨거운 눈물만은 식히지못했다.  저멀리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었다. 손끝이 부서질듯한 냉기에도 조금씩 조금씩 땅을 팠다. 그리고 60년전의 그녀를 찍은 사진의 필름을 가슴팍에서 꺼내어 묻었다. 그리고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사진이 묻힌바로 그자리에 입맞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