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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이야기

  • 작성일 2007-07-25
  • 조회수 264

밤의 이야기

 

(세편의 이야기가 다 다른 글입니다.)

 

 

P.M 8:30

 

해가 이제야 겨우 떨어져서, 사방이 어두워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다지 어두운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밝은 편도 아니었고, 한 여름의 무더운 날씨 치고는 바람이 꽤 쌀쌀맞게 불어서 의외로 덥지 않고 시원했다.

저 멀리 꽤 예쁘장하게 보이는 한 여자가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뭘 하는 것인지는 거리가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질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몸을 좀 빼서 살펴보아야 어느 정도 보일 듯 말 듯 했다. 그 여자는 분명 우리나라 사람 같지는 않았다.

여자의 눈빛은 거의 죽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여자의 윗옷은 체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컸다. 여자들이 입는 옷이 아니라 거의 남자들이 입는 옷 같은 남방을 걸치고 있었는데, 그나마도 단추 몇 개가 살짝 풀려 있어서 안이 보일락 말락 했다. 굳이 단추 풀린 것을 통해서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이미 그 남방 자체가 훤히 잘 보일만한 얇은 천이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은 살며시 낯을 가렸다.

신호가 바뀌자 여자는 천천히 걸었다. 신호등을 지나면서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빛나자 그제서야 여자를 볼 수 있었는데, 확실히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었다. 혼혈은 아닌 것 같았고, 추운 나라에서 가장 확실하게 볼 수 있다는 순백의 새하얀 피부에 약간 연한 황갈색 머리를 하고 있었다. 빛이 굴절되는 각도에 따라서 그 황갈색 머리는 다시 다갈색 머리로 시시각각 변했다. 눈도 서양인이라는 것이 더 확실하게 나타나는 파란색의 -몇몇의 입장으로 보자면 너무 소름 끼칠 수도 있는-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 어디 나라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햇볕이 너무 쨍쨍한 나라에서 온 사람 같지는 않았다.

"Здравствуйте!?"

전혀 듣지도 보도 못한 -물론 한번쯤은 들어봤던 사람들도 있겠지만- 언어가 튀어 나오자, 내심 당황했는지 다가서려던 한 사람이 바로 발길을 멈추고 뒤돌아보더니 그대로 쌩 달려갔다. 사람이란 원래 그렇게 낯선 것에 호기심 같은 것을 잔뜩 곤두세우더니, 금방 이렇게 낯선 것에 대해 잔뜩 경계할 정도로 모순덩어리였나 싶었고, 여하간 그 여자가 자신의 소유물을 귀에 대고 횡단보도를 다 건너갈 때 까지, 심지어 파란 불이 깜박깜박 하며 변하려고 할 때까지 아무도 그 여자의 곁에 다가가려고 하지 않았다. 어른들은 물론, 아이들마저도 다가서려 하면 발길을 제지하는 무언가가 꼭 걸렸다.

“Оно знает, Оно знает, Оно знает! 젠장, 빌어먹을!

전화를 던져버리듯이 격분하며 툭 끊어버린 그 여자의 입에서는 마지막에 의외로 한국어가 나왔다. 여자의 눈시울은 살짝 붉어졌다. 하지만 주변의 어두움 때문인지 아무도 그녀의 눈시울을 보지 못했다. 그 여자가 처량맞게 하얗고 검은 줄무늬 길의 마지막을 건너는 순간, 그녀가 마지막에 내뱉었던 -단순한 분함의 표현, 일종의 욕설로도 볼 수 있었지만- 한국어 때문인지, 아니면 한국어를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너무 반가워서 그랬는지, 어떤 남자가 막 빨간 불로 바뀔 때쯤 뛰어가서 그 여자가 뒤로 흘리는 어떤 물건을 주우며 말을 걸었다.

“한국어 할 줄 아시나 봐요?

“조금은 해요.  그런데 누구시죠?

잔뜩 경계를 하는 산 고양이처럼 그 여자는 남자의 친절한 말에도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래도 대답한 것만으로도 수확이 있었던 것인지, 남자는 픽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손에는 여자가 흘린 물건 –손수건은 아니었고, 무슨 기계제품이었던 것 같다- 을 들고 있었다.

“당신 거죠?

“고맙네요, 주워줘서.

여자는 역시나 쌀쌀맞은 대답만을 남기고 낚아채듯이 그 물건을 가져가고서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뒤로 휑하니 가버렸다. 남자는 얼이 빠진 듯이 그 자리에 서 있었고, 그들의 하루 한 시간도 안 되는 그 짧은 만남은 그렇게 끝이 났다. 원래 만남이란 것은 다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그래도 여간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닌 듯이 남자는 입맛만 씁쓸하게 다시며 여자가 걸어갔던 뒤를 조용히 쫓아갔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가 걸어갔던 뒤라기 보다는 그냥 공원 한 켠의 벤치를 찾아 갔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아무튼, 그들은 그렇게 끝이 났고, 그 짧은 횡단보도에서는 여자가 흘리고 간 또 다른 물건 –그 여자의 행동을 증명하는 수치스러운 그런 물건- 이 그 자리에 죽치고 앉아 이리저리 밟히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P.M 10:45

 

밤이 깊어지면서, 희미하게 빛나는 가로등과 가끔씩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가는 차들의 헤드라이트만이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간 사람들에게 밤은 편안한 휴식을 주며, 잠을 잘 수 있게 하는 고마운 커튼이었지만, 아직까지 회사에 남아서 잔업을 처리해야 하는 현수와 같은 이에게는 지독하고 무서운 장애물이었다. 귀신이 잘 돌아다니고, 바로 옆에서 자신의 약점을 틀어 잡고 끊어내지 못하게 만드는 무섭고 간교한 여자, ‘현경이 있어서 그는 잔업 하는 것을 정말 끔찍하게 여기고 있었다. 물론 현경이 회사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넉넉한 잔업수당에 콧노래를 부르며 오히려 잔업을 더 하지 못해서 난리를 쳤는데, 지금은 울며 겨자 먹기로 잔업을 해야만 했다.

과장님, 오늘 어떤가요? 시간은 넉넉하세요?”

. . . 현경이 먼저 그의 자리로 다가와서 말을 꺼냈다. 어제 몇 번이나 잔업 하는 데 방해하지 말라고, 제발 더 이상의 관계는 갖지 말자고 윽박지르듯 해도 재벌 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원하는 것은 다 얻고 사는 그녀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더 집요하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나를 옭아매는 그녀에게 충분히 지쳤다.

현경 씨, 오늘 잔업이 마지막이라고 말 안 했던가요?”

그랬나요? 호호. 죄송해요. 그나저나, 할말이 뭐에요? 아까 할말이 있다고 했었잖아요.”

“아, 그 할말이요? ~ 이제 그만 두자구요

? 방금, 뭐라고 하셨죠?” 

더이상 현경 씨 앞날을 막고 싶지 않으니까. 이쯤에서 우리 관계, 딱 잘라버리자구요.

결국 직접적으로 말을 하게 된 순간, 현경의 얼굴은 삽시간에 새파랗게 굳어졌다. 조용히 내 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치며, 그녀는 나 자신도 거역 못하게 만들 가식적인 눈물을 무기로 앞세운다.

내가, 싫어진 거에요?”

, 아니. 현경 씨. 난 다만 ……”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가만히 있다가 기습적으로 나를 덥쳐 오는 현경의 키스세례에 또다시 맥도 못 추리고 그녀를 간절히 원하며 관계하던 것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그렇게 그녀를 범하며 자신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현경이 그의 셔츠를 풀어 헤치려던 순간, 탁 하는 소리가 났다.

, 현수 씨!”

그만 두라고 했잖아요? 더 이상은 현경 씨와 관계할 수 없어요. 먹잇감은 다른 곳에서 찾아보세요.”

그는 거세게 거절하며 그대로 책상에 앉아 어질러진 서류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새빨간 장미처럼 되 버렸다.

현수 씨, 내가 뭐 잘못했어요?”

더 이상은 현경 씨를 범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부족했나요? 아니면, 원하는 게 있는 거에요?”

원하는 거요? , 그러면 말할게요. 아예 우리 관계를 싹둑 잘라버리고,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사는 거요!”

현수는 거칠게 쏘아붙이며 정리를 마친 서류를 탁탁 털어내고, ‘부장석이라고 쓰인 자리에 가지런히 놓아두었다. 그때까지도 멍하게 있던 현경은 금방 정신을 차리고 현수의 옷깃을 잡았다.

당신,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난 이미 다른 회사 구했어!  너 까짓 게 이 회사에서 잘라낸다고 해도, 난 이제 살 수 있단 말이야!”

그 동안 눌려왔던 것들이 폭발해서인지 현수는 그녀를 뒤로 밀쳐냈다. 부르르 떨던 그녀의 입술에는 금방 붉고 찝찝한 것이 흐르기 시작했다.

, 날 밀쳐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 난 당신을 위해서 내 처녀성까지도!”

웃기는 소리 하지만. 내가 너와 처음 했을 때, 넌 이미 처녀가 아니었어!”

무슨 소리야? 지금 당신, 날 모욕하는 거야? 난 분명 당신이 처음이었어! 어떻게, 처녀를 성폭행해 놓고, 그렇게 버젓이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그럴 수가 있어?”

거칠게 오가는 말싸움에 현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가 화낸 것은 자신이 스스로 처녀를 바쳐놓고, 오히려 자신을 성폭행 하듯이 관계를 가져놓고 어이없게도 자신이 성폭행 당했다는 식으로 하는 말이었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예전에는 그의 인생을 들었다 놨다 할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다른 회사에 스카우트 되었겠다, 아내도 여전히 자신을 사랑하고 이해해주겠다, 저 여자만 없으면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웃기고 있군. 지가 오히려 나를 협박하듯이 관계하고, ? 성폭행을 당해? 정말 어이가 없군 그래.”

, 내가 네 녀석 아내에게 말 못할 줄 알아? 두고 보라고, 경찰에 당신이 그 동안 우리 회사공금 횡령한 거, 다 까발려 버릴 테니까!”

[!]

둔탁하고 묵직한 소리가 나면서 그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시뻘건 물과 무거운 돌과 비슷한 부장석이라는 명패가 붉게 젖어 들어서는 자신의 손에 꽉 잡혀 있었다. 눈이 멍해지면서 머리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라고는 불륜이 탄로날까 두려워 여자를 살해한 잔악 무도한 살인자라는 타이틀과 아내의 질끈 감은 두 눈과 부르르 떠는 입술 밖에 없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거리면서, 그는 끈 같은 것에 걸려 뒤로 넘어졌다.

[쿠당탕탕]

넘어지면서 부딪히는 큰 소리가 나자 그는 당황해 하며, 자신의 겉옷으로 얼른 피를 닦아냈다. 피 뿐만 아니라 명패에 남아있는 자신의 지문까지도 말끔하게, 아주 빡빡 닦아냈다. 여전히 그의 손은 후들후들 거리고 있었고, 눈은 초점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 어떻게 하지? , 시체는? 시체?”

손톱을 잘근잘근 씹던 그는 겉옷을 놓아두는 옷걸이 옆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꽤 묵직한 가방에 현경의 시체를 담았다. 자신의 옷과 피가 묻어있는 종이 자박 같은 것은 모두 자신의 서류가방에 담아두었다.

우발적으로 한 것 치고는 뒤처리가 깔끔하게 마무리 되자, 그는 서둘러서 가방을 챙겨 들고, 메모를 남긴 채 피 묻은 명패의 주인이 두고 간 값비싼 물건들을 주머니에 쑤셔 박았다.

, 하하, 하하하.”

소름 끼치는 웃음소리가 잠시 빈 공간을 울리다가 사라지고, 살며시 소리 내며 열리는 문은 다시 한번 닫히고 나자, 전혀 열리지 않았다.

 

이 곳은 어제 밤,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입니다. 피해자는 27살의 최모양으로 평소 관계가 잦았던 강모군에 의해 둔기에 얻어맞고 즉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경찰은 강모군을 용의자로 ……”

어젯밤, 남편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지 않던 불안함이 저런 끔찍한 뉴스로 나도는 것을 보자, 아내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았다.

에그머니, 저게 뭐래? 저거 새 색시 남편 아니야?”

세상에나, 세상에나.”

믿을 수 없는 현실의 잔인함에 아내는 그 자리에서 그냥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대고 엉엉 울기만 했다.

 

 

 

A.M 12:00

 

어른이란 종자들에게는 이제 막 우리가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마구잡이 짝짓기가 시작될 시간이었겠지만, 아이들이란 귀여운 종자들 사실 저 아이라는 종자도 우리에게는 가장 짜증나고 재수없게 보이는 종자들이지만- 에게는 꿈자리 속으로 빠져들어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이었다. 더불어 우리에게도 활동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어둠 속에서 눈이 한층 더 커진 몇몇 친구들은 밖에서 애타게 나를 불렀지만, 지금 나는 발길을 옮길 수가 없다. 불이 다 꺼진 아파트라고 생각들을 하시는 건가?

하지만, 지금 내가 사는 아파트의 거실에서는 아직도 작은 불빛이 켜져 있었다. 좀 더 깊이 들어가보면 이 아파트, 이 거실의 불은 어른들이 불을 켜놓은 것이 아니라 눈동자가 무척이나 어둡게 보이는 귀엽고 작은 아이가, 즉 나를 귀여워하고 돌보는 주인이란 이름의 아이가 불을 켜 놓은 채, 쪼그리고 앉아 있었던 상태였다.

머리를 양 갈래로 올려 묶은 주인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제 몸집보다 세배는 더 커 보이는 장롱 앞으로 갔다. 몇 분간 장롱 앞에 있었던 것 같았는데, 장롱 문은 열려 있었고, 주인은 옷 사이를 수십 번이나 뒤적뒤적 거리다가 겨우 낡고 검은 큰 지갑을 꺼내 들었다. 지갑 안에는 초록색의 번쩍번쩍하는 어떤 이파리들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비좁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주인은 그 중에서 너무 시끄럽게 소리를 치는 이파리 몇 장을 골라내서 꼬깃꼬깃 접었는데, 내 기억으로는 그 중에 꽤 다르게 생긴 썩어빠진 노란 이파리도 들어있지 않았나 싶다.

까망아, 같이 나가자.”

주인은 내 머리의 털을 가볍게 쓰다듬더니, 외로워 보이는 목소리로 나를 꼬셨다. 물론 그런 목소리에 넘어갈 내가 아니지만, 더군다나 친구들이 아파트 앞에서 버젓이 지키고 앉아있는데 주인과 함께 있는 것은 애완고양이 티를 너무 내고 다니게 되는 거라 정말 싫었지만, 주인을 선택하지 않으면 주인이 엄마라고 부르는 괴팍한 뽀글 머리를 한 사람이 정말 내 꼬리를 잘라버릴 만한 큰 몽둥이를 가지고 나를 때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인의 뒤를 따라가야 한다. 이런 반 강제적인 선택을 잘 아는 나의 여자친구인 나비는 늘 내 옆에서 같이 주인을 경호해준다. 나비에게도 주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과 달리 한 해가 다 가고 나니까 더는 놀아줄 시간도 없이 고개를 쳐 박고 사는 데에만 쓸데없는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내 객관적인 시선으로 봐도, 도무지 사람이란 종자들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것들이다. 왜 밤이면 밤마다 고개를 쳐 박고 사는 건지, 그것도 어느 일정한 시기가 되면 거의 말라 비틀어질 정도로 일찍 가고 늦게 오는 일이 허다했다. 그럴 때면 꼭 그것들의 엄마라는 사람들이 애지중지 하다못해, 몸에 좋다는 말만 돌면 바로 자기들한테는 자식이란 이름의 그 종자들에게 다 갖다 주는 것이었다. 그 덕에 우리 종족에겐 가장 철전지 원수들의 생고기가 좋다나 뭐라나 할 때 그 종족들의 얼마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괴로운 악몽이었다. 바로 옆집에서 늘 나를 놀리는 재미로 살던 하얗고 우람한 백구도 그 날, 어디론가 실려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때 내 코를 깊이 찌르는 냄새는 아직도 온기가 가시지 않은 생생한 피 냄새였다.

여하간 이런 짓을 하고 다니는 저 사람이란 종자들은 도무지 그 악독하게 구는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고, 그들에게 지배당해야 하는 나 자신이 한심스러운 뿐이었다.

까망아, 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세발 자전거라는 기계를 타고 주인이 찾아온 곳은 꽤 먼 거리의 골목이었다. 이 가게는 나도 여러 번 와봤는데, 생선 냄새는 별로 나질 않고 이상하게 코를 쿡쿡 찔러대는 고약한 냄새만 났다. 더군다나 이 가게를 맡고 있는 사람은 씻지를 않는지, 온 몸에서 고약한 냄새에 집 벼룩까지 친구로 삼아 살고 있었다. 정말이지 사람이란 종자들은 이렇게 더럽게 살아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가 보다.

하지만, 그 냄새를 못 맡는지 어쩐지 주인은 그 사람과 잘만 얘기하고 떠들어 대면서 몇 개의 부스럭거리는 것을 골랐다.

지현이 너, 또 지갑에서 슬쩍 꺼내온 거 아니야?”

아니에요. 할머니가 주신 거라구요.”

주인은 완강하게 고개를 흔들며, 그 부스럭거리는 것을 낚아채 듯이 가져가 버렸다. 사실, 인간들의 말로 풀어보자면 주인은 거짓말쟁이에 도둑이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주인이 나쁜 것이라기 보다는 주인의 엄마라는 사람이 더 나빠 보였다. 늘 그 몸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 그리고 괜히 휘청휘청거리게 만드는 알싸한 무언가에 난 몇 시간을 기절해본 적이 있다. 일어나보면, 주인이 옆에서 나를 보듬어주며, 빨리 일어나라고 부드럽게 속삭이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주인이 도둑이라는 것은 사실 말이 맞지 않는다. 원래 주인의 엄마가 가지고 있는 돈은 가끔 주인을 보러 오는 할머니라는 무척이나 지독한 향냄새를 풍기며, 무척이나 반짝반짝 거리는 것들로 치장한 사람이 주인에게 준 것을 거의 빼앗아 온 것이었다. 사실 어제도 그 할머니라는 사람이 푸른 이파리를 몇 장 쥐여주었는데, 주인의 엄마가 자신이 쓸 데가 있다며 주인에게서 빼앗아 온 것이다. 주인이 엄마의 지갑을 건드릴 때는, 엄마가 자기 돈을 가져갔을 때 몇 번뿐이었다. 결코 주인은 남의 것을 건드린 적이 없다.

그리고 거짓말쟁이? , 내가 본 주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어차피 엄마가 빼앗아간 것을 가져온 것이라고 말해봐도 사람이란 종자들은 원체 의심이 많아 그런지 도무지 믿질 않아서 그냥 믿을만한 말을 하는 것 뿐이었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지만, 나비는 어쨌든 그것도 거짓말이라며 주인을 신랄하게 비난했다. 하긴, 원래 나비는 거짓말을 싫어하니까.

어쨌든 주인은 겨우 그 가게를 빠져 나와 나를 데리고 다시 자기 집으로 향했다. 어차피 어두컴컴한 집에는 엄마라는 사람도 나가고 없었다. 주인의 유일한 편이 돼줄 수 있는 아빠라는 사람은 이미 사라진 존재였다.

이건 내가 우연히 아빠에게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금 주인의 엄마는 사실 주인의 진짜 엄마가 아니라고 했다. 가끔 주인이 들춰보는 낡고 꼬장꼬장한 사진 속에 무척이나 예쁘고 자상해 보이는 여자. 그 사람이 바로 주인의 진짜 엄마인데, 오래 전에 차에 들이받고 죽었다고 한다. 예전에 우리 엄마도 세게 지나가는 차에 얻어맞아 그 자리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했는데, 주인도 나와 같은 신세였다. 더군다나 주인의 아빠는 사라졌다고 한다. 어디서 사라진 지는 몰라도 지금은 없어진 지가 한 해가 다 되었다.

, 엄마!”

집 문을 열고 나처럼 살금살금 걷던 주인은 그 자리에서 그만 굳어지고 말았다.

이 년이! 정말 도둑이 되려고 그러는 거야! 어디서 엄마 지갑에 손 대는 거야!”

엄마라는 사람은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주인은 얼어붙은 채,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게 내 눈에는 훤히 다 보였다. 내가 아무런 힘이 없다는 것이 이럴 때는 정말 원망스러웠고, 사라진 아빠란 종자가 빨리 나타나 주기만을 바랬다.

어디서 돈을 훔쳐?! 어디서?”

할머니가 준 돈인데, 엄마가 빼앗은 거잖아요. 난 그냥, 오늘 먹고 싶은 게 있어서 할머니가 준 돈을 도로 가지고 간 건데.”

이 년이 정말! 그 돈은 내가 나중에 준다고 했지!? 이 년이, 지 엄마를 닮아서 아주 도둑년이네. 도둑년이야!”

끝끝내 주인을 울게 만드는 말이 나왔다. 다른 것은 다 기억 못해도, 저 말만은 내가 늘 끝까지 기억하는 말이었다. 지 엄마를 닮아서

주인의 눈시울은 금방 빨개졌고, 동그란 물이 툭툭 떨어졌다. 예전에 주인과 함께 보던 만화란 것에 나오는 마녀가 타고 다니는 빗자루란 것과 똑같이 생긴 것이 엄마의 손에 들려졌다. 조용히 옷을 걷고 서는 주인의 다리는 거의 부러질 듯이 빨간 줄이 그어졌다.

[]

이상한 소리가 났다. 주인의 얼굴은 새빨개져서 달아올라 있었고, 어안이 벙벙해진 듯한 엄마는 주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뺨이 부어올라 있었다.

, 이 년이!”

주인은 그 자리에서 문을 박차고 나갔다. 날렵한 몸을 유지한 덕에 나는 금방 주인을 뒤따라 잡았다. 그런데 그 순간, 주위가 너무 환하게 밝아졌다.

꺄아아아악!”

주인의 외마디 비명과 함께, 주인의 신발이 멀리 날아갔다. 그 이후는 아무 기억이 없었는데, 단지 주인의 팔이 나를 꼬옥 안아서 나는 무사했다는 점과 그 무언가에 세게 부딪힌 이후, 주인의 엄마는 물론이고, 나는 주인조차도 만날 수 없었다.

주인의 아빠가 결국 완전히 사라져 버린 이후 정확히는 사라졌다기 보다는 사진이란 네모나고 납작한 곳에 검은 줄을 그었고, 이상한 함에 주인 아빠의 사진을 담았다- , 나는 나비와 함께 건너편 아파트란 곳의 또 다른 주인을 만나게 되었다.

새로 만나게 된 주인은 몸집이 크고 꽤 뚱뚱했지만, 그 불어나 있는 몸집만큼 마음은 따뜻하고 넉넉해서 먹이는 좋은 것으로 많이 주는 편이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나는 주인이 생각난다. 아직도 옛 주인이 좋다.

특별히 잘해 준 기억은 없었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당시의 그 따뜻한 촉감이 잊혀지지 않아서, 밤이면 그 빨간 물이 흥건하게 적셔졌던 곳으로 가서 몇 번이나 울곤 한다.